2009. 4. 10. 14:25ㆍReview
- 보이스 씨어터 MOM소리
- 김해진
- 조회수 296 / 2009.01.10
보이스씨어터 몸MOM소리 <꿈 70-18>, <나의 배꼽 이야기>
팟저 프로젝트의 주운아이 워크샵 쇼케이스에 갔을 때였다. 그리드 천장 쪽에서 흡사 동물의 비명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놀라서 눈을 끔벅였는데 내가 서있는 자리에서는 천장에 무엇이 있는지 잘 보이지가 않았다. 그 상태로 소리가 생생히 지속되다보니 위에서 동물학대라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강한 의구심마저 들어 조마조마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희한하고 강렬한 소리는 보이스 퍼포머의 목소리였다. 리플렛을 다시 뒤져보니 그녀의 이름은 Joanna Dudly. 독일에서 온 어느 목소리가 보이스씨어터에 대한 관심을 일깨웠다.
지난 10월 28일~11월 2일 소극장 모시는사람들에서 보이스씨어터 몸MOM소리의 <꿈 70-18>, <나의 배꼽 이야기>가 공연됐다. 김진영 작.연출의 이 두 작품은 각각 가면과 의상 오브제로 인물을 만들어내는 간단하면서도 뚜렷한 풍경을 보여준다. 김진영과 이철성 두 배우가 출연하는 두 작품이 각각 2001년, 2003년에 이스라엘에서 공연됐다는 기록으로 보아 움이 튼지 벌써 몇 해가 된 작품이다. 쌀쌀해진 날씨에 대학로로 향하면서 얼마 전 관심을 갖기 시작한 ‘목소리’ 연극의 다양한 모습, 숙성된 형태를 가늠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꿈 70-18>
무대 왼편에는 벤치가 놓여 있었다. 공연이 시작되자 피부가 쪼그라든 얼굴 가면이 늙고 힘없는 노파가 되어 앉아 있다. 붉은 의상을 넉넉히 뒤집어 쓴 배우는 움츠러든 표정의 가면 뒤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꿈 70-18>의 비주얼한 요소는 주제 차원과 맞닿아있는데, 그래서 가면과의 심적.물리적 거리를 조정하는 것이 작품의 울림에 크게 관여할 거라는 생각이 스쳤다. 가면처럼 얼굴에 덧붙어버린 세월의 흔적이, 인물의 헛헛하고 속절없는 마음의 표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꿈 70-18>에서 돋보인 것은 도망치는 소녀의 손아귀였다. 소녀가 노파에게 쫓기는 장면에서 둘의 사이를 오가는 손은 두 배우가 주거니받거니 하며 자신의 손을 활용하는데, 소녀가 되어 쫓기면서도 '쫓는 자'의 손을 동시에 연기하는 김진영의 손은 마치 따로 떨어진 다른 존재인 것처럼 분명하고 단호했다. 반면 노파는 바람빠진 마고할미처럼 기력이 빠지고 내 눈에서도 자꾸만 빗겨나갔다. 무대를 주로 가로의 형태로 활용하고 있었는데, 세로 방향의 무대 안쪽을 더 활용해 공간의 깊이감을 더하면 노파의 존재가 더욱 입체적이 될 듯 보였다. 가느단 철사 끝에서 떨던 나비처럼 첫 번째 작품은 두 번째 작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야위어보였다.
<나의 배꼽 이야기>
이번 보이스씨어터 몸MOM소리의 공연에서는 작품의 무게감, 중량감이 느껴졌다. <나의 배꼽이야기>에 등장하는 김진영, 이철성의 몸은 덩어리의 풍부한 질감을 전했는데, 그동안 보기 드물었던 개성이었다. 주로 매끈하고 민첩하게만 다듬어진 배우들이 많다고 느꼈던 차에 참 반가운 몸이었다. 쭉쭉 늘어나는 성질의 옷을 입고 배꼽을 휘어잡아 몸의 바깥으로 빼내었다 다시 집어넣기도 하는 몸짓이 두려움에 직면한 한 여성의 변화를 그려내고 있었다. 이리저리 뒤척이는 몸과 어느새 섞여든 호주 원주민 악기 ‘디제리두’의 원시적인 소리가 극장을 메웠다.
기대했던 목소리가 드디어 실체를 드러냈다. 김진영의 목소리는 가파른 산을 부드럽게 오르내리는 것처럼 윤기가 있다. 떡장수 엄마의 목소리, 엄마를 잡아먹는 호랑이의 목소리, 엄마에게 대답하는 소녀의 목소리 모두 동화 속에서 이제 막 빠져나온 것처럼 생기발랄하지만 같은 이유로 목소리 자체만의 낯선 특질과도 마주하고 싶다는 마음이 슬며시 솟아올랐다. 이야기에 실린 소리, 이야기 안에서 운용되는 소리는 아무래도 안정적인 느낌. 그래서 디제리두의 음파장과 김진영의 소리가 거칠게 호흡을 주고받을 때는 눈을 감고 '들었을' 만큼 호기심이 동했다. 그것은 링가와 요니의 소리였다. 원시적인 형태가 감지되는, 섹슈얼한 소리. 그 육감적인 소리는 '금기'를 뚫고 나온다.
<나의 배꼽 이야기>에서 기둥을 이루는 것은 배꼽을 금기시하는 ‘엄마’이기도 하다. 배꼽을 불허하는 엄마와 배꼽의 실체를 보고 싶은 ‘나’는 출산을 통해 순환의 구조를 만들고 역할을 주고받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 ‘엄마’와 ‘나’는 <꿈 70-18>의 인물이 되기도 하는 것일까. 보이스씨어터 몸MOM소리의 이번 공연이 문학적인 연쇄고리 안에서 몸을 쓰고 있다고 여겨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보충설명
<꿈 70-18>, <나의 배꼽 이야기>를 만든 사람들
작.연출 김진영
조연출 김대준
출연 김진영, 이철성
조명 박강미
소품 양승주
의상 안창희
촬영 윤종필
분장 안선희
홍보 황진원
기획 이정은
제작 보이스씨어터 몸MOM소리
www.voicetheater.net
* 이상 팸플릿 참고
* 사진제공 - 보이스씨어터 몸MOM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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