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NEWStage 선정작 <9월> 9월이여, 가라

2018. 10. 1. 08:50Review


9월이여, 가라

<9월> 

설유진 작, 연출 


글_권혜린

  

<9>이라는 간결한 제목의 작품은 극단 9072018 유망예술지원 NEWStage 선정작으로서 914일부터 20일까지 공연했다. 9라는 숫자가 여기저기에서 등장하지만 작품 속에서 9월의 의미는 다소 모호하다. 과거의 사건이 9월에 일어났으며 현재의 배경도 9월일 거라는 연장선에서의 추측, 9월이라는 시간적인 배경이 8월까지의 폭염을 무사히 이겨 내고 겨우 한숨 돌리는 바람이 살짝 불어오는 계절이므로 과거의 엄청난 사건에서 한 걸음 비껴 나가 이야기를 들려주기 좋은 계절이라는 앞서나간 짐작으로만 가늠할 뿐이다. 그만큼 결말과 제목 그리고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방식을 자유롭게 열어 두기 때문에 생각할 틈을 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사람과 이야기의 교차점, 기차역

 

기차 소리로 시작한 무대에는 기차에서 가방을 잃어버린 선희가 등장한다. 여기에서 잃어버린 가방에 대한 당사자와 주변인의 인식 차이가 드러난다. 선희에게는 가방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이 중요하지만 다른 이들은 가방 안에 있는 물건이 얼마나 중요한지 중요도에만 관심을 보인다. 물건이 중요하면 가방을 찾는 것이고, 중요하지 않으면 가방을 찾지 않는다는 것은 일종의 은유처럼 보인다. 선희가 찾아간 곳은 과거의 기억이 얽혀 있는 곳이며 과거에 가족을 상실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곳을 찾아가는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사람 혹은 사연을 잃어버렸던 그곳에 다시 간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이렇게 가방 이야기로 포문을 열면서 잃어버린 사람 혹은 사연을 찾기 위해 커튼이 걷히고 더 큰 무대가 나타난다. 사방으로 뻗은 의자들은 앞으로 펼쳐질 개방된 이야기들을 보여 주는 듯하며 다양한 인물들의 행동을 동시에 볼 수 있게 한다. 또한 펼쳐져 있기 때문에 어느 한 인물을 선택해서 볼 수 있게 하기도 한다. 반면 가운데에 길게 이어진 통로는 그 위에 있는 인물을 집약적으로 보게 한다. 때로 그 통로를 따라 앞으로 나와 독백 혹은 대화하는 장면에서는 관객들이 한곳에 집중하게 된다. ‘따로 또 같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더 큰 무대에서는 과거의 사건과 연관된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북한과도, 서울과도 거리가 멀지 않지만 사람들이 많이 떠나 퇴락한 마을에는 슈퍼를 운영하고 있는 전직 경찰관 근호와 근호의 딸이자 공무원인 리아가 살고 있다. 킥보드를 타고 무대를 활보하는 리아는 없던 민박집을 즉석에서 능청스럽게 만들어 선희를 자신의 집에 묵게 한다. “그냥 왔다고 이야기하는 선희는 리아의 집에 묵게 된다. 여기에서 그냥이라는 말은 그 안에 더 큰 사연들을 숨기고 있지만 차마 뱉지 못한 말 대신에 나온 말이다.

이러한 장면에서 한 여자와 한 남자는 배경에 정물화처럼 서 있으면서 시야를 넓게 확보하는데, 여자는 모든 인물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영주이고 남자는 역무원이다. 이 작품에서 맨발로 등장하는 인물들과 달리 유일하게 신발을 신고 있는 역무원은 단순히 기차역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다. 기차역이 오는 사람과 가는 사람이 교차하는 지점이라고 할 때, 이 작품의 역무원은 오는 이야기와 가는 이야기를 교차하는 교차로이며 질문을 하면서 인물들에게서 이야기를 이끌어 내는 역할을 한다. 또한 의자에 올라가서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전지적 시점처럼 인물들을 내려다보기도 한다. 이는 관객의 시선과도 중첩되는데 때로 관객에게 등을 돌린 채 관객과 같은 방향에서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이 작품의 티켓이 기차역 승차권이라는 점에서 관객들도 역무원과 동일 선상에서 이야기들이 흘러드는 기차역에 함께 승차한 셈이다.

 


폭력의 미시사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은 다소 어둡다. 이는 퇴락한 고향과 맞물려 쓸쓸한 느낌을 준다. 마을의 가게들은 옷가게와 철물점을 같이 하거나 다방과 빵 가게를 같이 하는 등 묘한 혼종을 띠는 경우가 많다. 인적이 드물어 변화의 여지가 없는 곳에서 선희의 등장은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선희는 슈퍼를 지키고 있던 근호를 형사님이라고 부르면서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지 묻는다. 이때부터 과거의 사건들이 스며 나오기 시작한다. 과거의 9월에 대한 이야기이다. 동시에 폭력으로 점철된 슬프고 잔혹한 가족사이기도 하다.

선희는 과거의 9월에 영주의 사진관을 찾아갔다. 이는 형사에게 중요한 사건인데, 영주가 선희의 남편의 내연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희는 그때에도 그냥 갔다고 이야기한다. 여기에서의 그냥역시 다른 사람들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에는 진실을 숨기는 듯하지만, 개인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정말 그냥간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선희는 영주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었고 사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 갔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말은 형사에게는 들리지 않고 그저 본처와 후처 사이에 얽힌 뻔한 얘기이자 치정 관계로 번역된다. 이는 나아가 형사에게는 살인 사건의 계기로 작용한다. 분노와 폭력을 막고자 카메라로 내려친 바람에 선희의 남편이 죽자 선희와 영주는 서로 자신이 죽였다고 하다가 결국 선희가 해리를 영주에게 맡기고 가게 된다. 그러므로 그들을 단순히 본처-후처관계로 보기 어렵다. 둘 다 폭력의 희생자로서 목에 졸린 상처를 숨기기 위해 스카프를 두르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을 다른 위치에 두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 후 영주는 해리를 딸처럼 키운다.

이러한 삶 속에서 내내 괜찮기는 어려울 것이다. 마음속에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 영주는 사람들이 찾아가지 않는 필름들을 자주 들여다본다. 그러면서 사진 속 인물들은 못생긴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많은 것이라고 하며, 사진을 고를 때 진짜 이야기를 숨기고 싶어 한다고 말한다. 영주가 다른 이들의 사진만 찍어 줄 뿐 자신의 사진을 찍지 않았던 것은 자신의 진짜 이야기를 숨기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근호를 만나 리아를 낳으면서 근호, 영주, 리아, 해리는 한 가족이 되지만 결국 해리와 영주는 서울로 가고 근호와 리아는 마을에 남게 된다. 그리고 영주는 해리와 살던 집에서 나가 실종 상태가 된다.

영주의 부재 속에서 이야기는 해리에게로 이어진다. 해리는 영주에 이어 순간을 찍는 사진 일을 한다. 영주가 사라진 뒤 한 달이 지나자 해리는 리아와 근호를 찾아온다. 그리고 그곳에서 친엄마인 선희를 만나지만 선희는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 묘한 관계 속에서 다 함께 미역국으로 식사를 한 뒤(무대에서는 모두 함께 박카스를 나누어 마시는 장면으로 나온다.) 떠나기 위해 다시 기차역으로 가면서도 선희는 해리를 그저 한번 뜨겁게 안아 준다. 잃어버린 가방 대신 딸을 찾았지만 요즘엔 잃어버리면 잘 못 찾는다고 말하면서 진실을 끝까지 숨기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해리 역시 영주는 못 찾았지만 사진을 그만둘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카메라를 바닥에 내려놓는다. 카메라를 일부러 잃어버리는 것이다. 또는 이야기를 남겨 두고 가는 것처럼 보인다.


 

미해결의 장

 

이로써 실타래는 풀렸지만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보기 힘들다. 오히려 미해결의 장에 가깝다. 과연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모두가 주인공일 수도, 아무도 아닐 수도 있다. 또는 모든 것이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일 수도 있다.

과거에 영주, 근호, 해리, 리아는 빗속을 뚫고 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를 목격한다. 이 사고로 사망자가 생기지만 이는 철저히 타인의 고통으로서, 사고의 관찰자들에게는 불편을 끼쳐 드려 죄송하다는 방송처럼 불편함으로 치부된다. 사람도 기차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휙휙 지나가서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풍경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폭력으로 쓰인 가족사도 해결되는 것은 없다. 근호가 넋두리처럼 반복해 이야기하듯이 거시사로서 남북통일은 이루어질 가능성이 보이는데 미시사로서 반으로 분열되어 흩어진 가족은 통일되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 곳에 고통은 피처럼 고여 있다.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는 아버지로서의 실패에 대한 회한을 가지는 근호, 아버지 같은 사람에게서 폭력적인 시선을 받고 엄마까지 상실한 해리, 원치 않게 반쪽의 가족을 잃어버려 가족과 서울을 그리워하는 리아,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 영주, 마찬가지로 진실을 털어놓지 못한 채 잃어버린 상태로 떠난 선희까지 모두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 ‘마음에도 피가 나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상처가 겉으로 드러나면 티가 나겠지만 숨겨 놓은 상처는 안으로만 파고든다. 또한 불행은 감기와도 같아서 전염이 잘 된다는 말처럼 모두 상처를 껴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펼쳐진 불행들을 한순간에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오히려 억지로 봉합하는 것이 더 큰 상처로 이어질지 모른다. 이 작품에서도 그러한 것을 보여 주듯 답답한 현실을 억지로 바꾸려고 하지 않고 그저 펼쳐 놓는다. 그리고 조용필의 <어제, 오늘, 그리고>라는 노래에 춤을 추는 장면으로 마지막을 장식한다. 절제된 군무에서 시작해 점차 고조되는 춤은 고통을 표출하면서도 감내하는 모습을 드러낸다. ‘바람소리처럼 멀리 사라져 간 인생길에서 우린 모두 같이 떠나가고 있구나라는 가사처럼 그저 흘러가다가 만나기도 하고, 다시 떠나기도 하는 기차역 같은 인생으로 마무리하는 것이다. 그 춤을 보며 과거의 9월이 흘러 현재의 9월까지 왔지만 불행이라는 감기는 치유되기 힘들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곧 인생인 것이다. 그러니 <9>의 마지막 장면처럼 그저 노래하고 춤추면서 이 9월도 다시 지나가리라, 믿을 수밖에.



*사진촬영_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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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_권혜린

 소개_작은 매처럼 책과 책 사이를 날아다니고 싶은 골방 탐험가입니다.

        http://blog.naver.com/grayhouse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