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글이 목소리가 될 때: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 This is what we think> 북토크

2024. 3. 18. 16:53Review

글_이청

 

리뷰에 앞서,

이따금 문화예술 장애인 접근성을 주제로 의견을 나누는 자리에 참석할 때가 있다. 그런 자리는 대부분 주최 측에서 유의미한 대화를 기대한다며 다양한 인사들을 모아주신다. 모든 자리가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열에 일곱은 비장애인들끼리 머리를 맞댄다. 그럼 나는 한껏 눈치를 보다가 결국 슬쩍 손을 들어 질문할 수밖에 없다. 비당사자들끼리만 의견을 주고받는 것이 의미가 있느냐고.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는 당사자가 주체가 되어 두 시각장애인이 경험한 공연과 전시에 관한 생각을 담아냈다는 점에서부터 이미 다가오는 온도가 다르다. 물론 책의 서두에 나온 내용처럼 두 사람의 이야기가 모든 시각장애인의 견해를 대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가 절실한 시기에 이 책이 뜨겁고도 찬란하게 그 포문을 열었음은 확실하다. 

북토크 포스터 @ 사진제공 : 1도씨(@1docci)

드디어 만났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이런 책, 이런 목소리, 이런 경험, 이런 생각. 읽는 내내 이런 책이 너무 반가워서 활자들과 하이파이브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말미에 이르러서는 웃다 보니 웃을 때가 아니게 된 마음으로 나의 지난 경험을 곱씹었다. 알면서도 행하지 못한 실천들과 미리 알았더라면 하지 않았을 수많은 실수가 스치고 동료들과 그려보던 이런저런 상상들을 상기하던 중 북토크 소식을 알게 됐다. 자칫 E-book을 끌어안고 반성의 동굴에 고립될 뻔했는데 여럿이 모여 도란도란 책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신다니, 들뜬 마음으로 달려갈 수밖에.

부슬부슬 비 내리는 날, 청운동의 ‘곧곳‘에 사람들이 모여앉았다. 바깥은 꽤 쌀쌀했지만, 곧곳에는 아늑한 기운이 일었다. 본격적인 북토크에 앞서 각자 무슨 일을 하고 어떤 것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 책의 어떤 점이 기억에 남는지, 오늘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지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무용가, 배우, 작가, 연출가, 간호사, 접근성매니저, 시각예술작가, 문화예술 기관의 접근성 실무자분들까지, 정말 곳곳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였다. 나는 두 저자(이성수, 장근영)의 동료이자 팬으로서 존경하는 마음으로 읽고 공감과 반성을 반복했다는 말을 시작으로 이 책이 부디 종이책으로도 출간되어 접근성 작업자들의 필독서가 되기를 바란다는 소망을 전했다. 독자들이 나눠준 첫 번째 이야기 중에 “현학적이지 않은 말로 쓴 글”이라는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이 책은 경험하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진짜 이야기를 일말의 꾸밈없이 전한다. ‘배리어프리 리얼타임’이라는 부제답게 동시대 감각을 꿰뚫어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더 넓은 세상에 대한 관점을 제시한다. 북토크에 참여한 독자들이 전한 주된 감상은 무지에 대한 반성과 깨달음에 대한 고백이었다. 나에게는 그 고백들이 저자에게 전하는 감사로 들렸다. 모르는 것을 모른 채로 살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들이 모여, 몰랐음을 고백하고 이제는 모르고 싶지 않음을 다짐하는 듯이 느껴졌다. 

- 관점 / 다시 관객 되기 / 나만의 상상 / 장르 / 저시력 / 무용 / 사람

북토크는 두 저자가 뽑은 7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나는 그중 3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곧곳에 앉아 떠올렸던 소소한 생각들과 그날의 이야기를 전해본다.

#관점

장애의 원인을 개인의 손상에 두는 ‘의료적 관점’과 장애는 사회적 배제에서 기인한다는 ‘사회적 관점’에 대한 이야기가 한 차례 지나고 공연에서 배리어프리(접근성) 회차를 나누는 방식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접근성매니저로 작업을 하다 보면 제작 극장이나 극단과 이 문제로 자주 부딪치는데, 예산이나 인력의 문제로 접근성 장치를 전회차 운영하기 어려울 때 담당자로서 괴로워지곤 한다. 누구는 전회차 올 수 있고 누구는 일부 회차만 올 수 있는데 배리어로부터 프리한 공연이라 부를 수 있나? 그렇다고 없는 예산을 불릴 수도, 한정된 인력에게 모든 과업을 몰아줄 수도 없는 노릇이니 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 앞에서 떼를 쓰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이 질문에 대한 성수님의 답변은 명확했다. 장애인식개선교육에서 ‘분리’는 기본적으로 차별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무엇과 무엇을 나누는 결정은 차별이 맞다. 하지만 성수님은 이에 전제를 붙였다. 결국 태도에 관한 문제라는 것. 회차를 나누거나 좌석을 구분 짓더라도 그 방식을 결정하고 운영하기까지 그 프로덕션의 사람들이 어떤 고민과 마음을 담았는지 관객들에게는 다 느껴진다는 말이다. 관점을 달리하고 태도를 가꿀 것, 이는 어쩌면 예술가이자 동료 시민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이기도 하지 않나. 성수님은 이를 식당에 비유했다. 가기 편하고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요리를 팔지만 손님에게 불친절한 사장이 운영하는 식당과 가기 힘들고 좁고 음식이 소박할지라도 손님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는 상냥한 사장이 운영하는 식당 중 어느 식당을 선호하겠는가. 나는 얼른 메모장을 켰다. 도망치지 않을 것, 내 안의 차별을 마주할 것, 전심을 다 할 것. 

북토크 전경(왼쪽부터 이성수, 장근영, 허영균) @ 사진제공 : 1도씨(@1docci)

#다시 관객 되기

근영님은 중도시각장애인으로서 ‘다시’ 관객이 되면서 극장을 찾고 미술관이나 전시장에 가기까지 새로운 용기가 필요했음을 이야기했다. 특히 미술관에 가면 시각장애인이 시각예술을 보러 온다는 것 자체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편견 어린 시선에 관한 경험도 덧붙였다. 주로 시각예술을 다루는 독자들이 저자에게 이 책을 만나고 ‘시각예술’이라는 단어 자체가 갑자기 생경하게 느껴졌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근영님은 분야를 막론하고 우선 장애인 관객(관람객)들이 많은 공연, 전시를 접할 수 있어야 하고 기관이나 업계에 있는 비장애인 직원들이 장애인 관객들을 일상적으로 만나는 당연한 환경을 강조하며 ‘배리어프리(혹은 접근성) 문화예술소식 통합알림서비스’를 제안했다. 일례로, 남양주시에서는 ‘내손에남양주’라는 서비스를 운영하는데 이는 신청한 시민이 시정소식과 생활정보, 문화예술소식을 텍스트(SMS, 카카오톡, 메일)로 받아보는 서비스다. 근영님은 ‘내손에남양주’같은 시스템을 빌리면 좋겠다는 의견도 더했다. 해외 사례로는 극장이나 전시장 홈페이지에서 접근성 관련 정보 수신 동의 여부를 선택하면 해당 회원들에게 적절한 정보와 문의 창구가 안내되는 시스템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책에서 언급된 ‘가치봄 화면해설영화’의 경우 비슷한 방식으로 관람 정보를 안내하고 있지만 아직 공연과 전시에는 그와 비슷한 통합알림서비스는 없다. 독자들도 정보접근성의 한계에 대해서는 상당히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연극, 뮤지컬, 무용, 미술, 전시, 음악, 교육 할 것 없이 아무리 꼼꼼히 준비해 두었다 한들 장애인 당사자 즉, 문화예술 이용자들에게 정보가 닿지 않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신기하게도 함께 작업하는 동료들과 이러한 플랫폼의 필요성에 대해 논의한 지 며칠 안 됐는데 마침 이런 주제를 나누게 되어 기뻤다. 근영님으로부터 지지와 응원을 얻은 기분이다. 상상에 그치지 않도록 차분히 고민해야겠다.

취재 온 기자님의 녹음기 @ 사진제공 : 1도씨(@1docci)

#나만의 상상

무용 공연을 음성으로 해설하는 방식에 대해 꽤 길게 이야기를 나눴다. 두 저자도, 여러 독자들도 당장 뾰족한 수를 내기보다는 재미난 것들을 요리조리 시도해보자는 이야기로 이어지던 중 근영님이 [(먼)미래무용X공영선_신촌극장]의 예를 들었다. 어떤 장면에서 현장에서 발생하는 소리에 집중을 넘어 몰입하게 됐는데 해부학적 움직임, 근육, 정서, 중력의 당김, 공기가 온전히 느껴져 자신도 모르게 천천히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그리고 이어서 두 저자는 우리에게 그들의 상상을 들려주었다. 성수님은 무용수와 시각장애인 당사자가 함께 움직임을 찾아가는 무용 공연에 대해, 근영님은 음악을 통한 자극을 드로잉이나 신체의 움직임으로 표현하는 작업에 대해. 사실 제작자이자 창작자인 이곳의 많은 독자들에게 새로운 예술적 자원을 선물해 준 셈이다. 그들은 기대에 찬 표정으로 시각장애인이 예술을 감각하는 다양한 방식들이 더 개발되고 시도될 필요가 있음을 설파했다. 배리어프리(접근성) 공연이 특별한 장치가 아니라 하나의 장르가 되어 보편적인 문화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는 성수님의 말을 깊이 담아두고 싶다. 나도 그런 날을 꿈꾼다. 

이날의 북토크는 참 촉촉했다. 혼자 읽었을 때는 나를 반추하느라 다소 건조해졌다가 북토크 자리에서 포용과 수용으로 가득한 대화들을 들은 덕에 상태가 꽤 촉촉해졌다. 독자들에게 선물로 나눠주신 말랑한 떡처럼 몰랑몰랑해진 마음으로 돌아가는데 건물 1층에 ‘감동’이라고 크게 적힌 발매트가 깔려있었다. 분명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을 텐데 곧곳으로 가는 길에는 전혀 모르다가 북토크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는 멈칫하게 만든 그 ‘감동’ 발매트처럼, 문화예술에서의 접근성은 나에게 발견이다. 끊임없이 발견하고 탐색하면서 내 안의 편견을 기쁘게 부수는 깨달음의 원천이다. 그래서 이 북토크가 유독 소중했다. 그 성찰의 순간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하는 사람들과 현재를 점검하고 진일보하기를 희망하는 대화를 나눌 수 있음에 틈만 나면 감동 섞인 숨을 쉬었다. 이렇게 글이 된 경험이 목소리가 되어 세상에 슬쩍 말을 걸었으니, 곳곳의 목소리가 더해져 곳곳에 울려 퍼지기를.

북토크 장소 1층 동감 @ 사진 제공 : 이청

실명토크의 권위자 성수님을 본받아, 진행을 맡은 허영균님·성다인님과 저자 이성수님·장근영님에게 감사와 응원의 마음을 전합니다.

필자소개


이청
배우, 접근성매니저. 예술이 보다 많은 존재들의 곁에 닿기를 바랍니다.
새로운 감각이 열리는 순간을 좇다보니 하고 싶은 일이 자꾸 많아집니다. 오래 오래 예술인(력)으로 살아갈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