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춤, 다른 일상을 꿈꾸다" <드림앤비전댄스페스티벌2009>

2009. 7. 9. 13:24Review

글 김민관 mikwa@naver.com



지난 26일 오랜만에 홍대 포스트극장을 찾았다. 평론가로 보이는 분도 없고, 전체적인 관객의 연령층도 젊은, 만 원에 세 작품으로 볼 수 있는, 무엇보다 춤으로 꿈꾸고 자신의 춤을 향해 가고 있는 젊은 춤꾼들이 자신들의 춤을 구현 시키는 장으로서 ‘드림앤비전댄스페스티벌2009’는 시작하고 있다.

「붉은 심장」(안무_금배섭), 일상을 헤집다

Photo © 방성진

일상의 숨이 턱 막히는 답답함과 뒷걸음질, 반복과 반복되는 일상, 두 남녀의 움직임이 일치된다. 뭔가 우스꽝스러운 분위기 아래 남자는 호흡을 닫는 대신 웃음을 띠고, 여자의 맹한 표정은 약간 그로테스크하면서 백치미를 풍긴다.

일상을 건너뛰는 방식은 단순하면서도 과감하다. 음악의 전환과 마치 상상의 날개를 펼치는 것과 같이 오락가락 둘의 만남과 상생의 춤 물결이 이어진다. 유쾌하게 몸을 뒤섞고 몸의 반동을 움직임에 싣는다.「붉은 심장」은 이십 여분의 짧은 시간 안에 거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보여 준다는 생각이 든다.

일상의 모습과 여행을 통한 시공간의 전환, 절제된 움직임에서 일상의 현실을 숨으로 흡입하고, ‘후’
뱉는 장면들은 공기를 현실의 기류로 상정하고, 일상의 틈의 균열을 발견하고 그에 흡착하는 몸짓으로 읽힌다.

남자의 웃음 띰이 호흡을 자신으로 갈무리하지 않고, 무대라는 숨 가쁘고 널뛰는 역동과 생성, 흥분의 장에 대한 맛을 무심코 느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의도적인 전략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진지하지 않게 무대에 위치하고 있음으로 보인다는 것을 생각지 못했던 것 같다.

마지막에 벌거벗은 남자가 엎드려 기는 가운데 여자가 엉덩이를 만지고 가는 행위로 끝난다. 약간의 여운을 주는 행위 안에서 둘은 다시 무대 뒤편으로 사라지면 앞을 응시하는데, 굳이 보지 않아도 됐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이 한 몸으로 인생의 수레바퀴를 엉금엉금 기어서 헤치고 가는 함께 나오는 '광야'에 고적한 자취를 남기며 인생의 쓸쓸함과 심연에 가닿는 행위로 보였다. 현실에서 꿈으로 다시 인생의 진실로 전환하는 과정들로 생각됐고, 그 전환은 매우 빠른 것이다.


「못잊어」(안무_김선미), 감정의 조각들을 몸에서 풀어내다

Photo © 방성진

무대에 사각형의 조명을 생기게 하고 그 안에는 한 여자가 처량한 처지를 안고 앉아 있고, 두 여자가 그 사각형의 테두리를 천천히 걷고 있다. 마치 지나간 시간 내지는 미래의 시간을 쫓아가듯 한 명이 다른 한 명을 뒤따라가는 양상을 보인다.

이들의 표정에 드리운 감정은 그리움이고 아련한 임의 체취이다. 상대방에 대한 희구는 몸의 느린 양태와 서로를 더듬어가는 느린 몸짓들에 묻어난다. 그리고 출연한 남자는 단순한 관계가 아니라 그 꿈이 실현되는 존재를 길어 올리는 힘이 된다.

대체로 이 세 여성의 몸짓은 여러 감정을 표현주의적으로 재현하며 감정의 실타래를 순간순간 풀어내는 방식이다. 툭툭 꺼내놓듯 다양한 감정과 정한의 깊이가 묻어 있다. 그것이 한국무용에서 출현하고 그 표피를 띠고 있지만, 너무 과거의 어느 한 시점에 매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아름답지만 순간순간 그것은 처음처럼 슬프지 않고 그것을 증폭시키지 못한다. 조금 더 슬픔과 존재에 대한 희구가 현실적이고 단단하게 표현됐으면 좋았을 듯했다.

무대 위에 덩그러니 놓인 의자에 여러 겹의 옷을 껴입고 힘겹게 앉은 남자는 관객을 응시하고 눈빛과 손짓으로 말을 거는 일견 마임과 같은 움직임들로 웃음을 준다.


「허기[虛飢] Ⅱ」(안무_전미라), '일상 전환'

Photo © 방성진

담배 한 대를 피우기 위해 잠시 의탁한 의자를 사회적인 위치나 현실적인 주거의 이익적 영역으로 바꾸는 건 한 여자가 그의 몸에 뒤엉켜 들어오면서부터이다. 그의 평안한 적막은 깨지고 뒤이어 출연한 남자와 셋은 의자 뺏기 놀이를 한다. 영리하면서도 적잖이 비열한 미소를 띠고 있는 남자와 유혹적인 양태에 남자를 지배하는 것 같은 섹스 심벌의 미소를 품은 여자와의 싸움에서 남자는 번번이 도태되기 일쑤다. 결국 둘은 섹스의 응전 장으로 바뀌고 남자는 의자를 들고 쓸쓸이 무대 뒤편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한 겹씩 옷을 벗어가는 남자 옷을 한 꺼풀 벗고 자신의 몸을 빠르게 접촉하는 같은 움직임을 벌인다.

처음 의자에서 실뜨기와 같은 무형의 움직임으로 장력을 형성하며 즉흥 몸짓의 힌트를 주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어 호흡을 빨아들여 상대방의 움직임을 좌지우지 하며 호흡이 교차하고, 끊임없이 장을 전환하는 식으로 움직임을 이어간다. 남자의 숨은 적다한 허풍이 실려 있고 남녀의 끊임없는 리듬의 창출과 몸의 뒤섞음과 의자에서 옷을 벗는 움직임은 묘하게 병치된다.

마지막에 담배 한 가치를 의자에서 발견해서 피우는 남자의 얼굴에 다시 익살이 나타난다. 어쩌면 담배 한 대를 피우는 동안의 온갖 정념들을 날려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흘러가는 정념들을 몸으로 감내하며 벗겨 내는 작용이자 현실에 대한 반작용적인 행동으로서 저항하는 것일 수도 있고. 일상은 그런 식으로 우습고도 슬픈 어느 하나의 기억으로 전염되고 있었다.

춤, 거들떠보자

앞서 말한 만 원에 세 작품이면 정말 훌륭하지 않은가 싶다.

그것보다 ‘매년 공개 모집을 통해 장르와 소속에 관계없이 젊은 무용가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며 (……) 이를 통해 선발된 참가자들에게는 작품 발표의 기회를 제공하고 공연 전반에 걸친 기획, 홍보 마케팅 과정을 지원하며(……)’, 프로그램 북을 보면 이런 문구들이 나온다.

아무래도 이러한 장이 있다는 것이 신선한 에너지를 춤계, 공연계에 수급하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렇지만 포스트 극장은 외로울 때가 많은 것 같다. 프린지 페스티벌 때 수시로 드나들면서 지금은 익숙해졌지만 몇 년 전만 해도 대학로만 다니다가 홍대 전철역에서 헤매며 힘겹게 강화정 연출의 공연을 본 적이 기억난다. 여기서는 이런 식의 실험적인 공연이 일어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꼭 그런 건만은 아니지만 지하 두 층을 내려가서 극장 입구가 맞는 특이한 느낌이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 극장이 작품들에 대한 묘한 시선을 주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어쨌거나 포스트극장을 가보지 않은 분이라면 또는 춤의 팔딱거리는 생명력, 젊은 에너지의 고스란한 숨과 열정이 분출되는 장을 직접 확인해 보고 싶은 분이라면 시간을 내 극장 문을 두드려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공연 정보
6월 26일(7:30 pm)-27일(5:00 pm) 금배섭ㅣ 김선미 ㅣ 전미라
7월 3일(7:30 pm)-4일(5:00 pm) 손정민 ㅣ 이지은 ㅣ 이범구
7월 10일(7:30 pm)-11일(5:00 pm) 심새인 ㅣ 오정화 ㅣ 이우재
장소 : 포스트극장
주최 : 포스트극장, 공연예술기획 이오공감
문의 : 02-704-6420

김민관 mikwa@naver.com
공연예술 분야 자유기고가, 現다원예술 비평풀(daospace.net)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