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0. 12. 00:48ㆍReview
프린지+두산 프로젝트 빅보이 2.
집단 움틈 <브리튼을 구출해라!>
브리튼을 구출해라!
개로부터 시작하고 싶다. 브리튼을 지키는 것이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그 개. 할머니가 브리튼을 지키라고 했다고 참말 그 수호의 세계에서 진득하게 매맞으며 살고 있는 개. 남자가 때려도 브리튼이 때려도 스스로를 구출할 수 없는 개. 마르고 아프고 약한 개는 핏대를 세워 으르렁거리며 남자와 대적하지만 “닥쳐.” 한 마디에 소리죽여 웅크린다. 개야, 힘을 내. 브리튼을 깨워보자!
개는 <브리튼을 구출해라!>에서 이야기의 진행을 리드하거나 매듭을 짓는 역할은 아니다. 오히려 브리튼과 남자의 변화를 경고하고 두려워하는 인물이다. 시원스레 컹컹 한번 짖지도 못하고 그르렁 거리지만 끊임없이 객석을 향해 위험을 알린다. 그런 개에게 계속해서 마음이 쓰였다. 특히 남자에게 좀 더 대적하지 않고 브리튼을 좀 더 깨우지 못할 때 더욱 그랬다. 이것은 배우의 연기 차원이라기보다 서사의 차원에서 눈에 띄는 부분이다. 브리튼도 남자도 역시 무기력하다. 이 공연은 쓰레기가 가득한 세상의 이야기를 힘없는 얼굴들의 이름으로 잠그고 있다. 잠겨 갇힌 그곳에서 브리튼을 구출하라고 공연은 직접 말한다.
바퀴를 달아 움직일 수 있는 커다란 단을 두 개 만들고, 그 위에 갖가지 폐품을 쌓았다. 신문지, 계란판, 타이어, 나무 조각 등 잡다한 물건들이다. 이 무대는 뒤집으면 바로 유흥가의 사진들이 콜라주된 배경으로 바뀐다. 붉은 기운의 배경 사이로 걸어 나오는 브리튼은 짝퉁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욕망을 입고 노래를 부른다. 코러스들은 공연 전반의 리듬을 계속해서 잡아나간다. 배우 강우혁과 홍은택은 능청스레 장단을 주고받으며 극의 강약을 조절하는데, 그들의 말놀이는 “브리튼을 구출해라!”라는 선동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상황을 다지고 뭉친다. “일렁이는 춤을,”, “이랬더랬, 그랬더랬, 그랬었더랬다.”, “악취, 악취, 구역질나는 악취.” 반복하는 박자의 말들이 공연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그런데 10월 9일 금요일 공연은 지난 프린지페스티벌 포스트극장에서 본 공연보다 생생함과 활기가 덜했다. 공간이 바뀌면서 적응할 시간이 필요해서일까. 혹시 두산아트센터의 너무 번듯한 분위기가 배우들의 활기를 잠재웠을까.
이 공연에는 코러스와 더불어 계속해서 음악이 흐르는데, 팸플릿에 나오는 ‘음악극’이라는 이름이 중요한 건 아니니 그 연원이나 요새의 형태들을 밝히기 보다는 <브리튼을 구출해라!>의 음악이 어떤 인상을 남기는지를 보는 게 더 좋겠다. 만드는 입장에서는 음악과 드라마의 유기적인 결합을 위해 배우들과 함께 많은 신호를 공유하고 있으리라 예상해보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는 음악이 다만 고여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인물들의 내적인 변화까지도 모두 ‘구출의 이전’ 혹은 ‘없는 구출’ 안에서 맴맴 돌고 있기 때문에 그와 함께 호흡하는 음악 또한 고인 정서를 강화하는 효과를 내게 됐을 것이다. 잠시 음악이 멈춘다면 어떨까 관객으로서 원하기도 했었다. 만약 음악이 무대 위에서 라이브로 연주됐더라면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졌을 것이다.
‘알량한 역사’를 담고 있는 신문지들이 잘게 찢어져 무대를 가득 메우고 있다. 그 안에서 살고 있는 브리튼과 개, 돌아오지 않는 할머니(말을 통해 살고 있는), 그리고 현실의 짐으로부터 도망 와 살게 된 남자를 바라보면서 나는 자꾸 방송에서 보았던 ‘긴급출동 SOS 24’ 프로그램을 떠올렸다. 쓰레기를 모으며 그것이 자신의 재산이라고 생각하는 어느 아주머니의 이야기나, 아들이 자신의 아버지를 우리에 가두어 짐승처럼 살게 하는 상황이나, 술만 마셨다 하면 아이를 때리는 알콜 중독 남성의 모자이크 된 얼굴 등등 말이다. <브리튼을 구출해라!>를 보면서 나는 자꾸만 구체적인 상황을 떠올리고 싶었다. 방송의 에피소드들은 그래서 떠올랐다. 나는 공연에서 말하는 ‘알량한 역사’의 실제가 궁금해졌고, 구체적인 현실과 상황이 궁금해졌다. 작품이 펼쳐 보이는 상징적인 풍경과 대사의 운율 안에서 머물고 싶어도 자꾸만 튕겨져 나왔다.
인물들이 자주 정면을 향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브리튼을 구출해라!>라는 선명한 제목처럼 배우들은 자주 관객들을 바라본다. 관객들은 코러스의 “그랬었더랬는……” 이야기를 듣는 청중이 되기도 하고 개가 알려주는 위험을 알아채는 목격자가 되기도 하는데, 브리튼과 남자가 각자의 허무한 세계에 침잠한 채 정면을 바라볼 때 그들의 눈빛을 바로 볼 수 있기도 했다. 앞을 향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배우가 관객에게 직접 호소하는 시간이 길다는 걸 의미하기도 하지만,(마치 보이지 않는 유리벽을 바라보듯이 눈빛으로 호소한다. ‘구출해주세요.’ 라는 눈빛.) 반대로 생각해보면 인물들 사이에 쿵짝을 맞추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코러스들이 서로 마주보며 연신 쿵짝을 맞추고 브리튼과 남자가 서로에게 반한 듯 마주보고 서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인물들 사이에 적극적으로 반응을 주고받는 순간들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남자가 개를 팰 때도, 브리튼이 개를 팰 때도 상대 인물과 상호작용이 잘 안 이루어지는 듯이 보인다. 자신의 소중한 면을 버리고 망치게 된 이의 허무하고 절절한 화에 집중하고자 했기 때문이었을까. 그것이 ‘때린다-맞는다’의 구도였기 때문이었을까. 공연의 전반부에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꿈을 꾸던 브리튼은 눈빛이 야릇하면서도 멍하게, 무섭게 변해있다. 파멸과 자폐를 향해 내달리는 여린 소녀라……. 각종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약자로서의 소녀 캐릭터는 이제 솔직히 궁금하지 않다. 브리튼을 지켜야 한다고 불안한 운명을 말하다가 홀로 웅크렸던 개가 마음에 남아있는 건 반대로 궁금해서였다. 개와 브리튼은 어떤 관계일까. 무엇 때문에 소녀를 지키고 싶어하는 걸까. 우화, 상징, 이런 거 말고 쌍둥이 혹은 또 다른 자아, 내면에서 또 달리 방치된 면, 그냥 개, 할머니 말씀, 이런 거 말고 정말로 그 둘은 어떤 사이인 걸까. 구체성을 찾게 된다는 건 이런 맥락에서다. 관계를 맺으며 서로 입체적이 되어가는 인물들을 보고 싶다. 다시 노래를 부르자고, 누드도 좋겠다고 브리튼을 설득하려는 남자와 설득당하지 않는 브리튼 사이에도 휑한 거리감이 있을 뿐 주고받는 것이 없어 보여 길게 느껴졌다.
극으로부터 튕겨져 나왔던 또 다른 순간은 남자가 브리튼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때였다. 배우가 눈물을 흘린다는 건 어떤 감정을 향한 집중, 자신이 찾은 어떤 극적 진실에 가 닿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배우가 어떤 과정을 통해 눈물을 흘리게 되는지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을 테니까 여기서 한가지로 줄여 말할 수는 없겠지만, 한 관객이 극의 상황을 오히려 더 낯설고 멀게 느낀 이유라는 걸 말할 수는 있다. 배우 개인과 인물 사이를 끊임없이 오고가야 하는 오묘한 작업이 배우의 연기이겠지만, 배우와 인물이 너무 가까워져서 혼동의 문턱을 밟을락 말락하는 그 순간과는 또 다른 것이리라 생각해본다. 어쩌면 그보다는 남자의 상황을 따라가다가 만난 눈물이 다소 갑작스럽게 느껴졌다는 게 더 정확한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브리튼을 구출해라!>는 남자가 과거
의
브리튼을 회상하는 구조로 짜여있다. 기억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브리튼이 자신을 구해달라고 말할 때까지 공연은 현재에 있지만 이야기는 과거에 놓여있다. 코러스들은 과거와 현재를 수시로 오간다. 쓰레기 냄새가 가득한 이곳, 돼지들을 피해 진진, 나나, 수수, 미미의 이름으로 살아갔던 소녀의 이름이 ‘브리튼’이라는 말로 잠기는 순간 인물들의 자폐적인 성격은 더욱 강화된다. 세상과 만날 수 있는 이름이기도 했지만 남자가 소녀에게 입힌 역할로 고정되자, 바깥과의 단절은 여전하다. 이야기를 좀 더 바깥으로 밀어냈다면 어땠을까. 혹시 쓰레기 세계를 뒤집으면 붉은 기운의 유흥가가 나오는 것처럼,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엔 바깥이란 없고 양면이 있을 뿐일까. 인물들에게 감정이입하면서 생긴 바람이면서 동시에 공연의 ‘꽁꽁 에워싼’ 구도를 한번 열어보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하는 기대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브리튼을 구출해야 하겠지. 그런데 이야기의 구도가 전형적이라고 느끼는 순간, 브리튼을 어떻게 구출해야할지는 쉽지 않다.
나는 공연을 보고 나와서 두산아트센터 화장실에 갔다. 화장실 바로 옆에는 청소도구를 보관하는 작은 공간이 있었는데 잠시 문이 열린 사이에 그곳 바닥에 앉아 쉬시는 아주머니를 보았다. 그 풍경과 공연이 마음 속에서 겹쳐졌다. 집에 가려고 지하철을 탔는데 얇은 모시 날개를 가진 벌레가 아름답게 날고 있었다. 어쩌다 지하로 내려왔을까. 어디에 갇혀 또 맴돌게 될까. 역시 공연이 또 떠올랐다. 오히려 극장에서 빠져나오자 공연을 보고 난 감흥이 움을 텄다. 갇힌 존재들을 떠올렸다. 구출은 언제쯤이나 가능할까. 공연에서 흐르던 노래에서 빗방울을 세고 있는 눈은, ‘그 눈은 아무것도 모른다’는데 그 역설을 어떻게 해야 하나. 빗방울의 슬픔과 아픔을 알고 있다 한들 브리튼을 과연 구출할 수 있을까. 이 연극이 현실의 풍경과 겹쳐지면서 내게 남긴 질문이다.
PROJECT BIGBOY
프로젝트 빅보이는 독립예술가들의 지속적인 창작 활동을 돕고자 마련된 차세대 예술가 발굴 육성 프로젝트 입니다. 지난 3년간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 발표된 소극장 공연들 중에서 지금 시대에 관한 독창적인 시선을 작품을 찾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 <두더지들>, <브리튼을 구출해라>,<십이분의 일> 세 작품이 선정되었고 '동시대성'을 키워드로 한데 묶어 총 6주간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독립예술축제 서울프린지페스티벌과 아트 인큐베이터 두산아트센터가 소개하는 첫 번째 프로젝트 빅보이들로부터 우리 연극의 미래와 가능성을 점쳐보시기 바랍니다.
서울프린지네트워크 www.seoulfringe.net
두산아트센터 www.doosanartcenter.com
양손프로젝트&상상만발극장 <십이분의 일> 9.24(목)~10.2(금)
집단 움틈 <브리튼을 구출해라!> 10.8(목)~10.18(일)
극단 시우 <두더지들> 10.22(목)~11.1(일)
티켓| 일반 20,000 할인 15,000 (서울프린지네트워크, 두산아트센터 회원)
장소| 두산아트센터 Space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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