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서러운 어른, 서른. 부르면 짜증나는 이름, 엄마

2010. 2. 8. 04:43Review

 

서른, 엄마.


새로운 도전의 시기 서른, 그리고 부르면 눈물 나는 이름 엄마.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실상은 이렇습니다. 서러운 어른, 서른. 부르면 짜증나는 이름, 엄마. 작품은 말 그대로 이제 갓 서른을 먹은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서러운 어른의 눈물겨운 인간극장이지요. 아니, 인형극장이라고 해야 할까요.



 1시간 반 동안 한 바퀴를 돌아 제자리로 오는 지하철 2호선은 멍하니 앉아 있기 딱 좋은 교통수단이지요. 작가는 2호선 기차의 여정 속에 담긴 역 이름의 사연을 발견해내었습니다.  제일 먼저 배우들이 탑승한 역은 ‘아현’ 역입니다. 알고 보니 ‘아이 고개’ 라는 의미가 있네요. 아현동 하면, 웨딩드레스 샵이 펼쳐진 고개가 떠오릅니다. 쇼윈도를 통해 화려하고 아름다운 드레스를 뽐내던 화려한 거리. 그 곳에서 드레스를 마주하던 예비신부 혹은 아가씨들의 반짝이는 눈빛은 어느 덧 서른, 엄마에겐 한줌의 추억으로 변해버렸습니다. 


 말없이 제 갈 길을 가는 승객들에게 두 명의 이야기꾼들은 말을 건넵니다. 그러고 보니 지하철 열차 칸의 모습을 닮은 무대의 모습은 또 하나의 극장속의 극장을 연상시킵니다. 작은 공간은 교차하고 솟아오른 프레임으로 짜여 있고, 그 프레임은 크기를 자유자재로 변화시키며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사연을 뽑아냅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서른 엄마와 서른하나 아빠의 이야기.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나의 가까운 미래, 혹은 내가 금방 지나쳐온 시간의 주인공들입니다. 그러니까 이건 완전히 우리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렇기에 이 작품은 아시테지 축제의 주인공들인 아동과 청소년들에게는 ‘버라이어티’ 하게 다가갈 수 있는 반면에, 이후의 연령층에겐 (특히 서른 즈음에)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지네요. 

 지하철이 멈추고 한명의 여자가 탑승합니다. 보아하니 아이를 놔두고 집을 나오셨네요. 그리고 한명의 남자와 한명의 아이가 탑승합니다. 보아하니 집 나간 엄마를 찾으러 나오셨네요. 별 말은 없지만, 칭얼대는 아기와 어찌할 줄 모르는 아빠의 표정에서 그 힘겨움이 절로 공감됩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엄마가 집을 나갔을까. 얼마나 괴로웠으면 엄마를 찾아 아빠가 집을 나왔을까. 이제 슬슬 그 가출의 과정이 펼쳐집니다. 


한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여자는 위대한 ‘엄마’ 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고, 남자는 자랑스런 ‘아빠’ 라는 수식어를 받았습니다, 만. 그 행복한 순간과 감동의 만끽도 잠시. 고단하고 처량한 부모의 육아일기가 시작됩니다. 말을 모르는 아기가 자라납니다. 아기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은 한 가지. 우는 것입니다. 엄마도 따라 웁니다. 그리고 아빠도 (속으로)웁니다. 아기 울음소리가 사람을 미치게 만들 줄은 몰랐다고 아빠는 막말을 해댑니다. 그리하여 아빠는 회사로 도피합니다. 뒷걸음질 칠 수 없는 벼랑에 선 엄마는 홀로 집안에서 아기와 맞섭니다. 의지와 실천력 없는 21세기 엄마들에게 모성은 위대한 게 아니라, 위태롭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어코 100일을 버팁니다. 그들에게 백일잔치의 의미는 새롭습니다. 아기가  아니라 부모가 생존한 것에 대해 스스로 감사와 격려를 보냅니다. 아기는 점점 적자생존해 갑니다. 세상에 적응하며, 부모 위에 군림하고, 먹고, 싸고, 놀고, 다시 먹습니다.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헌신’ 을 말 그대로 실천하는 서른 엄마와 서른하나 아빠입니다.



 공연에서는 아기의 모습이 다양한 ‘인형’ 의 모습을 하고 등장합니다. 엄마와 아빠의 모습도 실제 배우 외에 여러 가지 질감의 형태로 제시됩니다.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만약, 실제 아기가 나왔으면 어떠했을까? 생각 만해도 끔찍합니다. 고통과 괴로움의 실체가 바로 ‘아기’ 인데 그것이 사실적으로 재현된다니. ‘인형’ 이라는 오브제로 ‘거리두기’를 해서 망정이지 실제로 무대에서 아기가 운다면 관객들이 어떨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심지어 배우의 입을 빌어 징징대는 아기의 모습을 보고, 인형극이라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과연 연극이었습니다. 소외된 자의 아픔을 이렇게 절절히 표현할 수 있는 장르가 있을까요? 또한, 이처럼 동시대인의 절망을 표현한 작품이 있을까요? 이 작품은 귀엽고 웃기지만, 한편으로는 잔인하고 황당한 비극입니다.


그럼, 네가 나가서 돈 벌래?

그럼, 니가 애 키울래?


 비극의 대사는 이처럼 진부한 듯 하지만, (집안에) 존재하느냐, 마느냐! 와 같이 뜨끔하게 들려옵니다. 바가지를 긁는 부인이나 바가지를 씌우는 남편 모두 속상합니다. 육체적/심리적 고통을 이중으로 받는 자들. 서른하나, 아빠도 슬슬 가여워지기 시작합니다. 그들의 고통과 행복을 쥐락펴락하는 아기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들 사이에 끼어듭니다. 사실, 서로 외로워하고 힘들어 할 새도 없습니다. 아기를 돌볼 시간을 쪼개 싸움을 벌이고, 그 마저도 아기가 깰까봐 눈치 보며 언성을 낮춥니다. 

 결국 분풀이를 감당 못한 여자는 집을 나갔습니다. 남자도 황망히 아기를 안고 집을 나옵니다. 지하철에 탄 그들은 뚝섬역에서 멈칫, 정신을 차립니다. 내리실 곳은 외로운 섬 하나, 뚝하니 떨어져 있는 곳. 그들은 지나온 세월들, 기껏해야 2년 안팎의 시간들을 반추합니다. 그들은 서로 사랑했고, 결혼했고, 임신했습니다. 그간 들어야 했던 친지들의 잔소리는 환청과 같이 그들을 에워쌉니다. 인상적인 것은 코믹하게 등장하는 임신 테스터기. 미혼 커플들에게는 저주와도 같은 상징인 빨간 리본. 그들의 임신에 대한 첫 반응도 부부싸움 감입니다. 나 임신했어.

어떻게 정말, 이냐고 물어볼 수 있지?
어떻게 어뜩하지, 라고 말할 수 있지? 


 그들의 실망과 절망도 잠시 태교로 두근두근 해지기 시작합니다. 아직은 모든 것이 생경한 그들은 오로지 ‘책’ 에 의존해서 뱃속의 새 생명에 대한 준비를 합니다. 예비 엄마의 막말을 빌자면 에일리언 숙주 같은 자신의 몸에서 아기가 자라납니다. 아기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은 한 가지. 배고프다고 발차기. 엄마는 토합니다. 아빠도 따라 토합니다. 으웩으웩. 어느덧 예쁘고 사랑스런 각시는 어디로 갔는지, 풍선처럼 배가 부풀어 오릅니다. 정말로 위대한(?) 모성입니다. 

 그들에게는 태교도 스트레스입니다. 음악을 지나 영어를 지나 수학까지. 좋은 엄마와 아빠가 되려는 그들의 노력은 참으로 가상했군요. 그들의 힘겨운 노력을 뒤로하고 깔리는 음악은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또 하루, 점점 더 멀어져 간다. 청춘은 머물러 있지 않고 계절은 다시 돌아오고… 그렇게 그들은 자신을 점점 잃어 갑니다. 아기가 태어났지만, 이들은 자기 정체성에 혼란을 느낍니다. ‘나’ 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는데, 책임질 ‘나’ 도 하나뿐인데, 나와 닮은 ‘나’ 가 세상에 또 나오다니….


 그들은 허무와 외로움 속에서 ‘나’ 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기 시작합니다. 9년 전, 10년 전 20년 전 그리고 30년 전. 그들은 그들이 창조한 ‘나’를 보면서, 난 어떤 아기였을까? 라고 생각합니다. “서른 엄마”와 “서른하나 아빠”는 그렇게 “한살 나” 와 대면합니다. 작은 촛불처럼 세상을 조금씩만 밝히던 시절. 누군가의 헌신으로 여지껏 세상을 비비고 살아왔던 자신을 발견하지요. 그들은 마음이 쉬는 곳, 당집이 있는 산, 당산역에 내립니다. 한강이 펼쳐지고, 한강이 눈에 비친 아기를 들여다 봅니다. 엄마와 아빠는 내릴 때는 한 가족이 됩니다. 당산에서 한 정거장을 지났으니 합정, 합친 가정이란 뜻인가요. 

 생각보다 이야기는 싱겁게 끝납니다. 싱거운 맛. 이 맛이야말로 아직 세상의 단맛, 쓴맛, 매운맛을 보지 못한 아기의 입맛이겠지요. 우리의 서른 부부들이 피와 땀, 눈물, 콧물의 맛을 느낄 만큼 힘든 순간을 지나고 지나면, 그제야 그 싱거움은 세상살이의 간을 제대로 맞추어 가리라 생각됩니다. 서러운 어른의 눈물겨운 여행기. 아시테지 축제에 엄마손 붙들고 극장을 찾은 아이가 영문도 모르게 엄마의 눈물을 발견하게 되는 소중한 체험. <서른, 엄마>는 2월에 국립극장 별오름 극장에서 다시 만나볼 수 있다고 합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신혼부부들, 예비부부들에게 강력 추천하는 바입니다.



‘어색한’ 서른과 모호한 ‘엄마’가 만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떠나는 짧은 여행이야기
달과아이 극단 <서른, 엄마>

"낯설어서 서른,
 설익어서 서른,
 서러워서 서른....."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것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일까"
 부모가 되면 누구나, 의젓한 가장으로서의 부성과 희생적이고 아름다운 모성이 철철 넘칠 것 같지만, 불안감에 신경질로 대하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아이에게 협박과 남들은 다 잘하는데 나만 좋은 부모 못 되는 것 같아 답 답하고 괴롭기도 하다.
 서른에 부모가 된 두 사람의 모습을 통해 누군가를 잘 키워내는 부모이기 전에, 자신에 대해 잘 이해하고 그래서 타인인 아이도 이해하고자 노력하며, 동등한 인간으로 서로 만나는 것부터 시작하는 의미로서의 육아, 더 나아가 인간 사이의 소통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자 한다.

작/연출-이래은
배우-이미라, 이종무
인형/소품/무대-스테이지픽션, 의상-시원, 음악감독-심은용

* 2010년 2월 3일~2월 12일 / 국립극장 별오름극장

글 | 정진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