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소통을 위한 다채로운 연극 축제, 제7회 2인극 페스티벌

2009. 4. 10. 08:0907-08' 인디언밥

너와 나의 소통을 위한 다채로운 연극 축제, 제7회 2인극 페스티벌

  • 인하연
  • 조회수 586 / 2007.11.15

11월 8일부터 오는 12월 2일(일)까지 대학로 동숭무대 소극장에서 열리는 제7회 2인극 페스티벌.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이번 2인극 페스티벌 역시 참신한 작품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작년까지는 최대한 다양하게 소재를 발굴하기도 하고 특정 국가의 작품을 다루거나 전통성의 현재화를 내세우기도 했었는데, 올해에는 다양한 해외 작품들을 우리 정서에 맞게 재탄생시켜서 과연 ‘경계와 소통’의 의미가 무엇일지 생각해보는 시간으로 마련했다고 한다.

이러한 취지에 따라 준비된 총 6개의 작품들은 A팀과 B팀으로 각각 3작품씩 나누어서 A팀은 11월 8일부터 11월 18일까지, B팀은 11월 22일부터 12월 2일까지 공연될 예정이다. 그 중에서 현재 공연되고 있는 A팀의 작품들은 세종씨어터컴퍼니 혼의 <바(Bar) 스토리>, 극단 바람풀의 <나락>, 극단 청춘오월당의 <오필리어의 은밀한 사랑이야기>이다. 이는 중간에 무대 전환을 위한 10분간의 휴식시간 두 번을 포함해서 3시간 30분간 연속 공연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먼저 에드워드 올비의 <동물원 이야기>를 번안한 작품 <바 스토리>는 원작의 남자 인물을 여자로, 배경인 공원을 에어로빅장으로 바꾸어 현대인의 소통과 소외의 문제를 다뤘다. 같은 공간에 있는 비슷한 나이의 여성들. 그러나 결코 공통점은 없어 보이며 우연이 없다면 대화할 여지도 없을 것 같은 두 인물의 소통이 묘하게 이뤄지고 만다. 처음 두 사람의 소통을 위해 청소부는 뻔뻔한 아줌마스러움으로 우아한 사모님의 거부를 넘어버린다. 동물원에 갔다 온 이야기를 해준다면서 계속 대화를 이끌어 가지만 결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하지 않고 ‘질문’만을 했던 그녀는 결국 이전까지의 우스꽝스러움을 버리고 섬뜩한 자신의 속내를 상대에게 표현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를 듣고,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이해하려고 하기도 하고, 작은 바 하나를 두고 자신만이 소유하기 위해 싸우기도 한다. 모든 것을 안정되게 소유하는 것 같아 보이던 한 여성은 결국 자신의 허무함이나 불안을 감추고 눈길을 피해버린 사람이었을 뿐이고, 쉽게 어떤 삶의 주체도 될 수 없었던 고립된 한 여성은 뒤틀리고 섬뜩한 존재의 불안을 결국 표출했다. 이처럼 본질적인 주제는 어렵지만,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면서 느리지 않은 속도로 긴장과 완화의 구조를 치밀하게 구성했기 때문에 몰입해서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더불어 인물의 움직임 중에 사각형의 틀만 남긴 서늘한 창문과 거울을 이동시킨다거나 강렬한 조명과 음향의 변화와 함께 동물적인 본성을 움직임으로 표현하기도 했는데, 평범한 공간과 물체 혹은 육체까지도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들게 만들어 다층적인 세계를 표현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두 번째로 아사다 지로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연극 <나락>은 현대인으로서 지니는 허망한 삶의 의미를 좇아가는, 한 편의 재미있는 추리극이었다. 이 작품은 한평생 회사의 구석 한 자리에서 정체해 있던 능력 없는 회사원이 엘리베이터 사고로 죽게 된 이후,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회사 내 사람들의 대화로 구성됐다. 그에 따라 회사라는 폐쇄된 사회에서 은밀히 이루어지는, 즉 공공연한 비밀을 만들어 가는 대화들을 예리하게 다루었다. 가장 큰 특징은 두 인물만이 등장하는 다른 작품들과 달리, 두 사람의 ‘관계성’을 다양하게 제시하면서 총 8인을 등장시키고 빠른 무대전환과 시청각적 요소를 사용하여 크지 않은 규모의 2인극이라는 것을 잊을 수 있을 만큼 꽉 찬 효과를 준다는 점이다. 두 배우는 각각 네 역할씩 맡아서 하는 셈인데 젊은 여사원부터 회사의 가장 높은 간부까지 특징을 잘 잡아 캐릭터를 살리고 변신하는 모습이 놀라웠다.

또한 엘리베이터의 층이 올라가는 것처럼, 회사의 좀더 높은 위치의 사람들을 보여주는 구성을 해서 시간이 갈수록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며 긴장감도 높아지는 강렬한 구성을 선택했던 것도 특징이었다. 그렇지만 전개가 빠르고 섬세한 연출은 좋았어도, 굳이 뒤에 나타나는 인물일수록 드러나는 비밀이 충격적이라든가 더욱 본질적인 잘못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효과적인 구성만큼 내용 면에서도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었다.

 

마지막으로 윌리엄 세익스피어의 <햄릿>을 재구성한 <오필리어의 은밀한 사랑 이야기>는 무엇보다 두 주인공의 사랑으로 가득한 낙원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아름다운 무대가 인상적이었다. 오필리어와 햄릿 두 인물은 무대의 좌우 절반 정도 차지한 채로 극의 거의 대부분을 이어가는데, 그들 각각의 공간은 무대 구성이라든지 동선의 사용에 있어 완전히 둘로 대칭되어 나뉘어 있지는 않았다. 즉 그들만의, 하나의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여러 층위의 시간과 움직임으로 반복해서 채우고 있다는 느낌이다. 또한 이 작품은 <햄릿>에서 오필리어와 햄릿의 사랑이 비극적인 운명으로 흐르는 과정을 집중적으로 다뤘는데, 서로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하는 형식이 주를 이뤘다. 여기서 ‘편지’는 두 사람의 거리감을 전제로 하는 상징물이라고 볼 수도 있을 텐데, 물론 전달되는 대상이 있기는 하지만 혼자 써야 하기 때문에 고독이나 그리움, 절망 등이 좀더 부각되어 표현됐던 것 같다. 다만 다소 낭독하기 힘든 시어였던 이유 때문인지, 배우가 대사를 소화하는 부분에서 어려움이 느껴져서 위태로운 부분도 있었다.

광기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욕망으로 불타오르는 오필리어와 역시 사랑에 대한 갈구로 가득 찬 햄릿. 그들은 편지로 비밀스러운 사랑을 진행하며, 관능적인 움직임으로 격정적인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데 두 인물의 캐릭터 중 한쪽이 너무 강렬하게 형상화되어 극의 주도권이 치우친 감이 있고 행동이 배제된 채 계속 비슷한 패턴으로 극이 진행되는 것이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더불어 너무나 유명한 <햄릿>에 종속적이면서도 독립적인 작품이 되었어야 했는데, 수용의 입장에서 그 접점을 찾기는 꽤 어려운 작업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에서, 소설의 실험적인 시점 이론 중 ‘2인칭 시점’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는 얼핏 부자연스러운 뒤틀림으로 인식될 수도 있는 성격을 띠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의 존재는 의외로 작품의 세계를 확장하는 열린 성향을 부여한다. ‘나’는 혼자이지만, ‘너’가 등장할 경우 ‘나와 너’라는 복수의 관계가 성립한다. 그리고 그것이 지정하는 대상은 성별, 계급, 인종 등 이분법적인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존재하게 되며 나아가 환상과 현실까지도 모호해지는 묘한 특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이번 2인극 페스티벌을 지켜보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각기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세 작품 모두 두 사람의 ‘관계성’에 많은 부분 초점이 맞춰졌다. 또한 작품들의 형식인 ‘2인극’이라는 틀이 인물의 제한이 인간의 관계성을 표현하는 데 제약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다 명확하게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데 효과적이었다는 점이 놀라웠다. 결국 2인극은 단순히 작은 체구의 연극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는 가장 근본적으로 연극, 그리고 소통을 전제로 해야 하는 모든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기발한 실험성을 지니는 동시에 가장 근원적이고 깊은 상징성을 지니는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보충설명

* 공연정보
공연제목 : 제7회 2인극 페스티벌 ‘경계와 소통’
공연기간 : A팀 - 2007년 11월 8일(목)~11월 18일(일)
B팀 - 2007년 11월 22일(목)~12월 2일(일)
공연장소 : 동숭무대 소극장
공연시간 : 월~금요일 오후 6시, 토요일 오후 3시/7시, 일요일 오후 3시
문의 : 02)3676-3676

* 사진출처 : 2-in.cyworld.com

필자소개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편집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