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0. 28. 13:56ㆍReview
모더니즘을 생각한다 : 자립음악생산자모임컴필레이션VOL1
글_ Floyd K
문예사조로서의 모더니즘에 대해 잠깐 생각해 보자. 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 전통적 생의 양식이 제국주의-전쟁으로 황폐화 된 후 인간의 상실감을 그린 문예사조로 보통 이해된다. 물론 그 연원은 더 거슬러 올라가 초창기 자본주의 발전사에 있어서 기존의 농업기반 사회에서 산업기반 사회로의 이행에 따른 인간의 변화를 묘사한 사조라 생각해도 된다. 모더니즘의 지반 아래에서 흐르는 것은 상실, 도시, 내던져짐이다. 전통적이라 믿고 있던 것들로부터 분리되어진 인간은 결여에 대한 향수(nostalgia)에 시달린다. 하지만 모더니즘은 이러한 자연으로의 회귀를 거부하고 그저 파편화 된, 잘리워진 인간의 삶을 보여주려 한다.
그런데 야간에 수렵을 하며 살던 인간들에게 농사가 도입되었을 때 그 농사짓는 삶이야말로 모더니티가 아니었을까? 집단적으로 성교를 하고 공동육아를 하던 인간들에게 가부장제의 도입은 근본적인 결여와 상실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았을까? 이런 개소리를 하는 이유는 모더니즘은 상대적이라는 것,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모더니즘은 미숙아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령, 서울 출신의 인간이 시골에서 며칠 지내다 서울역에 도착해 매연을 맡으며 푸근함을 느끼는 것. 그것은 기존 전통과의 분리와 결여로 드러나는 옛 모더니즘에 대항하는 새 모더니즘일 것이다. 그들에게 고향은 매연 가득하고 쓰레기와 악취 나는 것들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분리 해 나가는 공간-도시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어떤 모더니즘도 아침을 깨우는 건설현장 드릴소리와 신도림역의 사투에 대해 정감과 애틋함을 가지고 시도 한 것은 없었다. 그런 면에서 아직까지 현대인의 모더니즘은 구축된 바 없으며, 살아 본 적 없는 농촌, 만나 본 적 없는 인간에 대한 회귀를 그저 삐걱거리는 언어로 핥고 있을 뿐이다. 그 어떠한 모더니즘이 아무리 건강 할 지라도 그것이 상처들과 틈으로서 스스로의 결여를 끊임없이 선언하는 순간 그것은 어떠한 회귀지점을 지시하며, 설령 그 회귀지점에의 도달을 거부하고 자신이 자라온 뿌리-도시문명을 받아들이려 하지만 그것은 충만한 몸짓이 되지 못한다.
자립음악생산자모임컴필레이션VOL1
이 앨범은 (가칭)자립음악생산자모임에 소속되어있는 예술가들의 몸짓을 담고 있다. 기본적인 스펙은 씨디 한 장에 종이껍데기와 A4속지.
Track 001. 404 - 밤
기계적인 비트와 함께 시작되고 끝난다. 그것이 전부이다. 어떠한 이면이나 서정이 없이 건조하게 축적된 트랙은 적막한 기타의 까랑거림이 가득하다. 외롭고 단조로우며 그 이면에는 아무것도 없다. 앨범의 서막을 세련되고 건조하게 연다. 갓 가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서 있는 느낌.
Track 002. 한받 - 사랑의 빵먹어요
이 앨범에 실린 곡 중 서정성에서 두 번째의 자리를 차지한다. 리듬은 기타의 스트로크를 제외하면 단조로운 기계음이 조화로이 퍼져나간다. 빵집에 와서 아저씨 아줌마가 만든 사랑의 빵을 먹으라고 선동한다. 아줌마는 문경출신. 남/여의 사랑이나 외로움의 찬연한 슬픔 같은거 없다. 노동 같은 리듬, 리듬 같은 노동속에 꽃핀 빵을 먹는다면 우리는 이미 사랑.
Track 003. 하헌진 - 새로운낮, 새로운나
블루스 기타리스트 하헌진이 iPhone 4를 이용해 녹음하였다. 기계적 조악함(?)과 달리 악기와 보컬이 매주 세련되게 잘 구별되어 있어 듣는이를 놀라게 한다. 기존의 블루스가 연인의 사랑, 혼자라는 처연함, 인생의 괴로움 등을 남한반도의 기상으로 노래해 왔다면 하헌진은 그러한 과거의 옛 중력에서 벗어나 원단(original)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새로운낮, 새로운나는 술 먹다 다음 날 일어나서 생수 한 잔 뱃속에 우겨넣고 몸의 가득 찬 긴장을 여유로이 푸는 듯, 잉여로움이 한껏 묻어나는 블루스 트랙이다. 어제와 오늘, 기존의 나와 또 다른 나의 대비는 뭔가 새롭고 신선한 것 혹은 반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어제의 나는 어제의 나였고 오늘의 나는 오늘의 나. 오늘은 어제와 다르니 오늘의 나도 어제와는 다른 나. 그 나가 무엇이며 무엇이 되어야 하고 이러한 나가 있기위한 시간에 대한 반성, 잡념이 없다. 흥얼거리고 진득한 블루스처럼 굳이 미간의 주름을 찌푸리지 않는 하헌진의 블루스 트랙은 자립음악생산자모임의 시도를 파악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이 땅의 블루스가 어디까지 뻗을 수 있는가를 가늠해보고자 한다면 필청.
Track 004. 회기동단편선 - 칼루이스(live)
홍대 김동률, 회기동단편선의 칼루이스(live)는 미려한 핑거링 속에서 즐거이 퍼져나간다. 메세지 전달을 위한 보조로서의 기타가 아닌 기타의 흐름에 내던져지기 위한 보컬이 인상적이다. 이는 단순히 칼루이스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회기동단편선의 공연 전반을 아우르는 분위기라 할 수 있다.
비 오는 날 사람들과 예보가 틀리는 기상청 뒷다마를 까는데, 폭우를 헤치며 우렁차게 나아가는 아저씨의 뒷모습이 칼루이스 같다는 이야기. 아티스트 이름답게 단편(短篇小說)이 가져야 할 이야기의 완결성과 빈 여운이 저릿하다. 라이브 버전보다는 스튜디오 버전을 통해 침묵과 이야기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면 더욱 아름다이 즐길 수 있을 것.
근데 칼루이스는 흑인이자나. 왜 금발인거야?!
Track 005. Yamagata Tweakster - 당신은나를보면빙글싱글징글
이 곡을 들으며 당신이 Pet Shop Boys를 생각하거나 90년대 중-후반의 Low-Fi를 생각한다면 매우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다. 머리를 쓸어 올리며 상반신을 앞뒤로 흔들기에 좋은 즐겁고 기쁜 곡이다. 당신이 나를 보면 빙글빙글 돌기를 원하지만, 화자가 당신을 보고 빙글빙글 돌고 있다는 느낌. 비트의 짜임이 미려하고 보컬로서 얹는 솜씨가 세련되어있다.
불행이도 보컬은 비트에 짓눌려 깨져나가는 것이 싱그럽고 젊다는 내용과 묘한 뒤틀림을 일으킨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싱그러운 너와 나는 또 다시 반복되지 않는다.
Track 006. Murmur's Loom - OneWeek (TuesdayandWednesday)
트랙명이 오타가 아니다. 앨범 속지에 적혀있는 그대로다.
다른 아티스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최고의 곡. Pinback의 Lolo, Yo La Tengo의 Tears are in your eyes처럼 서정과 침묵과 매끄러운 진행이 엄청나다. 그리고 여기에는 일주일간의 환희와 웃음과 소리의 기표들이 표현하는 관계들 속에 즐거이 미끄러진다.
과장되지 않은 연주 속에 멤버들에 대한 믿음과 탄탄함이 느껴진다. Groove가 있다. 더욱이 인간의 목소리를 이런 도구(직접 들어보시면 압니다)로서 사용하고 그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것은 곡을 매만지는 이의 세심한 노력이 느껴지게 한다. 아무 일도 없이 웃음과 수다와 탄식 속에 지나간 일주일.
Track 007. NoControl - 754
기타는 타악기이고 음악은 실연(實演)이다. 그래서 punk와 album은 늘 조화하기 힘든 무엇이다.
앨범으로 담기 위해 좀 더 세심한 분리가 이루어졌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지만 그렇다 한들 그들을 어찌 담아낼 수 있을 것인가.
Track 008. 밤섬해적단 - 국민의명령
국민의 명령이라는 주체도 없고 조악하기 그지없는 언어를 호출해대는 인간들을 보며 밤섬해적단은 어떠한 배알 꼴림을 느꼈던 것일까? 네깟 것들이 국민의 명령을 참칭한다면 세계를 파괴하고 모든 오물을 네 아가리에 쑤시겠다는 밤섬의 정언명법도 국민의 명령이다.
그들은 토악질 하지 않는다. 그저 조금 지겹고, 그러기에는 아직 많이 신날뿐이다. 정규앨범으로 보여주었듯이 그들은 열심히 자립하고 있다. 언제나 놀랍고 경이로운 것은 기타와 베이스, 이 두개의 악기만으로 이런 꽉 찬 음악을 보여준다는 것. 이것은 그들의 연주뿐만 아니라 멤버간의 호흡이 어떠한가를 짐작케 한다.
Track 009. 폐허 - 칼바람
노래 제목답게 찢는다. 침착하게도 기타는 고유의 멜로디를 잊지 않고 잘 따라가고 있다. 6분 40초라는 구성이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청자가 배음으로 깔리는 기타소리에 짓눌려 산듯하고 스케일이 큰 솔로를 행여나 놓칠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라이브로 만난다면 굉장한 맛을 낼 곡임을 의심치 않는다. 보컬의 그로울링도 날이 잘 서 있다. 실제 폐허보다 이들이 더 폐허 같다.
Track 010. DahamPark - TwitTwitTwit
노이즈 아티스트 박다함 선생의 TwitTwitTwit.
할 말이 없다.
이런 작업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가령 집에 들어오는 인터넷 선과 컴퓨터 사이에 장치를 하나 물려놓고 인터넷 브라우저에서 트위터를 띄워놓은 후 그 사이에 오가는 신호들을 수치화한다. 다음 그 수치화된 데이터를 정렬하여 배음으로 깔리게 하고 여러 믹싱장치를 이용해 소리를 뽑아내는 것일까?
극단적인 음악분야이기에 처음 듣는 이들로서는 당혹스러움을 피할 길이 없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자립을 향한 몸부림이다. 이 음악을 들음으로서 세상의 편견과 자신의 편협한 두뇌 옆에 붙어있는 좌/우측의 단백질 덩어리가 강제하는 편견에서 자립을 시도해보자.
앨범은 도시를 깨우는 단조로는 비트에서 시작해 도시를 다루고 있다. 거기에는 어떠한 이면이나 신비, 회귀의 감정은 없다. 단조로운 리듬. 사랑 없는 서정. 그들이 GS건설의 철거위기에 놓인 두리반에서 인연을 가지고 계속 음악을 한다는 것은 이러한 모더니즘의 배경에 무엇이 있는가를 짐작케 한다. 오래 전 부터 기다린 미래는 없다. 기계음과 폭력사이에 신음하고 24시간 불야성인 홍대에 남겨진 신비는 없다. 자본의 쾌락 속에 살을 섞어가며 제정신을 차리기 위한 광기를 이해하는 것을 누가 어려워하는가? 여기서 서정을 노래하는 것은 기만이다. 청춘의 방향 없는 화살시위와 덧없음을 노래하는 것은 기만이다.
기실, 모더니즘은 그래야 하지 않았을까. 아침에 일어나 공사장의 포크레인 소리에 하루의 활력을 느끼고, 반지하 방을 나올 때 풍겨오는 쓰레기 국물 냄새와 비둘기가 쪼아 먹는 간밤의 토사물에서 인간의 흔적을 확인하는 것. 그리하여 우리의 위대한 선배, 술에 취해 버스에 로드킬을 당했던 모더니즘의 친구 김수영 시인이 요강, 망건, 장죽, 종묘상, 구리개 약방, 곰보, 애꾸, 애 못 낳는 여자, 무식쟁이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여러분이 자유롭게 씽얼롱 하셔도 됩니다"라고 하는지 "여러분이 자유롭게 씨발롬 하셔도 됩니다"하는 건지 모를 회기동 단편선의 뇌까림처럼. 잘리워진 우리가 어떻게 도시에서 웃으며 살아가는지, 그 무수한 반동에 대해 앨범은 보여주고 있다.
Floyd K
먹는거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아름다운 여인, 문학, 사소한 욕망, 음악, 정치와 관련된 농담을 잘 합니다.
학부에서 철학을 전공한 후 대학원도 갔지만 때려치웠습니다.
현재 혼자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 같습니다.
맞춤법을 준수하지 않습니다.
twitter_ @picot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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