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2. 17. 12:52ㆍReview
얼라이브아츠 코모 「벙어리 시인」
- 그는 내 안에 서있었다
글_ MJ
1993년 6월 15일,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보다 더 가까운 날로 와서, 2010년 8월 13일에는?
누군가의 생일이라든지 자신에게 특별한 날이 아니고서야 매일매일을 모두 자신의 머리 속에 담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다. 심지어 어제 11시쯤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조차 기억하기 힘든 요즘, 어떤 날에 있었던 일, 언젠가 내 머리 속에서 순간순간 흘러가는 생각들은 흘러가는 구름처럼 바람처럼 손에 쥐어보지도 못한 채 증발해버리곤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흘러가버리는 시간들 사이에서 길을 잃고 서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수많은 생각의 흐름 속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쓰는 행위이다.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들을 다시 붙잡기 위해서, 사람들은 ‘쓰는’ 행위를 통해서 그 날의 기억에 숨을 불어넣어 하나의 특별한 의미로 재탄생 시킨다. 지난날 사랑했던 그 사람과 함께했던 기억부터 정말 아무것도 아닐지 모르는, 아침에 현관문을 열고 우유를 집어오는 행위까지도 말이다. 필자도 어느 날부터 그냥 하루하루가 이대로 흘러가는 게 너무 억울해서, 그 날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적기 시작했다. 또 언제 그랬는지도 모르는 지난날 입은 내 마음속의 상처들을 어루만져보려고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들은 꽤나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벙어리 시인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차가운 시멘트 벽부터 시작해서 사람들의 얼굴, 아무 이유 없이 그냥 거기에 있었던 테이블까지 하나하나 훑으며 시인은 그것들에게 의미를 부여한다. 시상은 문득 찾아오는 게 아니라 찾아가서 나의 시상이 되어달라 빌어야 한다던 영화 <시>의 한 대사가 떠오르며 영화 속의 미자와 벙어리 시인과 오버랩 되어 보이는 순간이었다.
옛날 신발공장이었던 그 어떤 장식도 없었던 공간이 시인의 몸짓과 어떤 이의 악기소리로 인해 또 다른 세계로 변해갔다. 아무런 의미도 없던 공간이 몸짓과 음악이라는 새로운 울림을 만나 시인의 공간으로 재탄생 한 것이다. 공간과 부딪혀 쓸쓸하고도 공허한 울림이 되었던 악기의 선율과 모노톤의 시인의 모습, 외로움을 넘어서 절망적인 것 같이 보이기까지 했던 시인의 몸짓. 그런 암흑과 같던 분위기에 빠져가다가 시인의 얼굴과 마주했던 그 때,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듯한 모습은 꽤나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나도 그 눈빛처럼 호기심이 생겨 시인이 무엇을 하나 계속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시인이 적은 것은 나의 모습에 대한 시였다. 시인은 한 사람에게만 의미를 부여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것저것, 이 사람 저 사람을 찾아 다니며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때로는 익살스러운, 때로는 슬퍼 보이던 몸짓으로 말이다.
미디어, 사운드, 그리고 몸짓까지, 여러 가지 요소들이 함께 살아 숨쉬는 interactive performance. 하나의 긴장감이 끊어질 때쯤 다른 하나가 다시 내 손에 그 긴장의 끈을 쥐여주고, 그것들이 계속 반복되었다. 시인의 움직임에 집중도가 떨어질 때쯤, 다양하고 새로운 소리는 사람들을 더 극으로 집중할 수 있도록 안내해주었고 그 소리에 집중도가 떨어질 때쯤 하나의 퍼포머 같았던 미디어 아트가 날 다시 시인의 세계로 몰입하도록 도와주었다. 마치 하나의 유기체와도 같았던 여러 가지 요소들이 ‘벙어리 시인’이라는 퍼포먼스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쓰는 행위가 어떤 기억에 대한 구체화의 과정이라고 하면, 이야기를 통한 기억의 나눔은 그 기억의 의미를 팝콘처럼 몇 배로 튀겨내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저자 워크숍에서 만나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1, 이런 것까지도 의미부여를 할 수 있겠구나, 하며 내 우물의 바운더리를 더 넓힐 수 있었던 기회였다.
정말 신기했다. 분명 하나의 공연을 본 것인데 해석하는 방법은 각자가 달랐다. 물론 완전히 달랐던 것은 아니지만, 내 생각의 한계점을 콕콕 집어내 주기도 했고, 퍼포먼스에 대하여 함께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공연을 연출했던 4명의 연출가들도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한 번씩 다 언급되었던 이야기라며 놀라워했다. 대개 뭐든지 혼자 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꽤나 오랜만에 ‘여럿이서 함께 해서’ 좋았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나도 웃고 넘겼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퍼포머의 한 마디. “그래서 벙어리 시인은 누굴까요?” 그 때 손전등을 들고 하나하나 의미를 찾아가던 ‘퍼포머’ 일 수도 있겠고, 다시 그 때의 의미를 떠올리며 하나의 글로 완성해 나가고 있는 지금의 ‘나’일 수도 있겠다. 또 그 때 같은 공간에 앉아서 자신만의 기억으로 재탄생 시키던 ‘A’,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고 자신만의 언어로 다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당신’ 일 수도 있겠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뻔한 이야기지만, 모든 사람의 안에는 벙어리 시인이 존재하지 않을까. 다만 그 존재를 알아차리고, 그 시인과 서로 소통하고 있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이 사람들마다의 차이점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 언젠가부터 ‘쓰는’행위를 통해서 내 안에 숨어있던 시인과 만나 그에 대해 아직 알아가고 있는 과정인 것 같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으로 비유하자면 퍼포먼스를 보며 그릴 소재를 얻고, 그 후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대강의 스케치를 하고, 워크숍을 통해 뚜렷한 윤곽을 잡아냈다. 그리고 이렇게 리뷰를 쓰며 빨간색 노란색 내 나름대로 나의 색을 칠하고 있다. 색들을 칠했으니, 이제는 또 다른 새로운 색을 찾을 수 있게 다른 생각들을 더 찾아봐야겠다.
2010 1126-1127 모인 크리에이티브 스페이스
연출 - 홍은지 / 움직임 - 김바리 / 미디어 - 김지현 / 사운드 - 지미세르
프로듀서 - 최순화 / 그래픽디자인 - 주우미
흘려버린 삶과 희망의 기억들 사이를 걷다
수많은 생각의 흐름 속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쓰는 행위이다. 작가는 쓰는 행위를 통해 찰라적 순간을 포착하고 확장시키며 기록을 남긴다. 글, 영상, 사운드, 몸 등 매체는 달라도 순간을 기록하는 행위는 동일하며, 개인적인 사고와 감정들이 서사를 넘어 새롭게 구조화된 은유적 질서 속에 편입되어 정신적 오솔길을 형성하고, 이것이 다른 이들에게 전달, 공유되는 과정을 그린다.
‘수집’은 과거에 있는 현재적 존재이다. 급속도로 변하고 자기복제를 거듭하는 도시인의 생활 속에서, 스스로가 온전히 보고 듣고 느끼고 있는지 묻는다. ‘그’ 순간에 집중하고 나의 시간으로 온전하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예술가 공동창작에 기반한 인터랙티브 미디어 퍼포먼스
이 작품은 텍스트를 기반으로 연극, 움직임, 사운드 아트, 미디어 아트 등 네 분야에서 파생된 장르적 상상이 만들어가는 은유의 흐름을 시적 텍스트로 재통합하는 인터랙티브 미디어 퍼포먼스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생산한 텍스트는 움직임, 사운드, 미디어로 증폭되고 변주되어, 공간에서 수집되는 순간들에 유기적으로 결합하고 능동적으로 반응하며 라이브 아트로 플레이된다. 가상의 시공간으로 호출된 관객 역시 공연을 따라 움직이며 순간의 수집가가 된다.
*이 작업은 창작과정에 집중해 다양한 전개와 소통방식을 집중적으로 개발하기 위한 아티스트 창작워크숍 “SPARK” 1st (2009, 서울프린지네트워크 주최)에서 출발했다.
작품 내용
벙어리시인은 접혀진 시간 속을 거닌다.
저만치 앞서가며 내달리는 사람들, 흘려버린 순간들
미처 따라오지 못한 영혼을 기다리며
벙어리시인은 그렇게 느릿느릿 걷는다.
벙어리시인은 과거가 되어버린 현재를 수집한다.
사람들의 사적인 기억을 들추어본다.
이제 사람들은 벙어리시인이 된다.
벙어리시인은 모든 것을 회수하고 침잠한다.
- 창작자가 참여하되 벽에 붙은 파리가 되어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참여자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 긍정적 피드백과 잠재력을 높이기 위한 개선점을 듣는 워크숍.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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