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인간을 위한 영상, 자유를 향한 연대 - 「제 15회 인천인권영화제」

2011. 1. 3. 15:55Review


인간을 위한 영상, 자유를 향한 연대 - 「제 15회 인천인권영화제」

글_ 조형석



 

수수께끼 하나.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그 존재마저 잊고 사는 이들도 있다. 또는 자신에게 조금만 피해가 와도 곧잘 이 말을 내뱉곤 한다.

 

수수께끼 둘.
12월 10일은 이것을 기념으로 한 날이다.

 

수수께끼 셋.
우리주변에 이것을 보장받지 못한 채로 사는 사람이 무척 많다. 이주 노동자, 성적 소수자, 강제 이주자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까지.

 

불편한 진실에 우리는 얼마나 똑바로 쳐다볼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얼마만큼 인지하고 책임감을 가지고 살고 있을까.

 

 

'인권[人權, human rights]' 사전적 정의로 인간이 인간답게 존재하기 위한 보편적인 인간의 모든 정치·경제·사회·문화적 권리 및 지위와 자격을 총칭하는 말이다. 즉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이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81개 국가 이상에서 고문을 비롯한 잔혹하고 처참한 비인도적 대우를 범하고 있으며, 적어도 23개국의 국가에서 여성을, 15개 국가에서 이주민들을, 14개 국가에서 소수집단을 차별하는 법을 가지고 있다.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적용되는 것이 ‘인권’일 지언데, 무엇이 그들의 인권을 박탈하였을까. 다름과 차별? 물론 다름과 차별은 계급을 나눴고,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낳았으며 많은 부조리적 행위들의 근원이 된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구별짓기'와 '아비투스'의 개념으로 계급의 형성과 유지를 설명하여 사회구조를 분석하기도 했다. 반면 긍정적인 부분으로 본다면 타사 제품과의 차별과 다른 상상력 등 경쟁심을 유발하여 인류의 발전에 공헌을 하기도 했다. 다시 말하자면, 사회의 밑바탕에는 평등의 권리와 다름과 차별이라는 이름이 공존한다. 유럽에서는 18세기 ‘프랑스 혁명’이후로 많은 평등사상이 유포 되었고, 현대에 들어서면서 평등을 위협하는 특수 존재자들(흔히 범죄자들)을 다름과 차별의 이름으로 제한적으로 인권을 박탈하였다. 그렇다면 다름과 차별이라는 이유로 인권의 박탈을 받는 이들은 모두가 잘못한 사람들일까. 우리 주변에 다른 피부색(적어도 백인을 제외하고)과 다른 언어를 쓰고 우리가 하지 않으려 하는 힘든 단순 노동을 하는 이들 무엇을 잘 못 했길래 그들을 차별하는가. 어떠한 이유보다 한국사회에 그들에 대한 우리의 시선이 사람과 사람을 구별 짓게 만들었고, 그들을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만들었다...

 


집을 나와 주안으로 가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이주노동자의 인권자체가 한국에서는 마치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르듯이 말하길 껄끄러워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고, 그 불편한 진실을 바라본다는 것만으로, 내가 왜 감히 그들의 인생을 불편하다고 할 수 있겠냐. 라는 반문의 꼬리를 물며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나 스스로를 참으로 부끄럽게 여기며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주안으로 가는 동안 열차 내에서 발목이 접힌 채 제대로 걷지 못하며 구원의 종이를 재빠르게 내려놓고 다시 종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또는 조금 부끄러웠다는 듯이, 또는 자신의 처지를 몰라주는 이들을 원망하는 듯한 눈빛으로 다음 칸으로 이동하는 아저씨를 만났고, 주안역 8번 출구에서는 11월의 매서운 칼바람이 손을 주머니로 넣게 되는 와중에 발가락이 없는 아주머니가 자신의 발을 그 차가운 대리석 위에 내놓고 그 앞에 담배 값도 안 되어 보이는 돈이 담긴 붉은 바구니 하나를 두고 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일까. 아님 인권영화제라는 이름의 안경이 이미 내 눈에 씌어져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사실을 본 걸까.

 

그들을 지나칠 때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찰나의 순간 가슴이 저밈을 느끼거나 이렇게 공평하지 못한 사회를 향해 삿대질을 하거나 또는 내 삶이 지나치게 풍요로웠다는 부처님 같은 깨달음을 얻는 거 뿐 이였다. 그저 자본주의의 굴레에서 진정 사람을 위하는 휴머니즘 가득한 사회를 꿈꾸는 사회학도일 뿐 이였다. 어찌 보면 순간 그들을 돕지 않았냐고 비난받을 만 하다고 생각도 들었다. 많은 생각이 교차하였고, 학생인 본분을 뒤로한 채 비정규직 노동자가 된 필자에게 한없이 가혹한 세상이 심어준 의식이 아니라고 강력히 고개를 흔들면서 '영화공간 주안'으로 향했다.

 

 


고생이 건너가 달러를 올다[Payback Comes with Hard Work]
김선주, 정슬아 | 2010 | 34분 19초 | 다큐 | 한국



07시에 일어나서 08시 20분에 출근을 하고, 5시 30분에 일이 끝나거나, 잔업이 있으면 6시까지도 일을 하는 베트남 이주노동자 '펑'과 '둥', '친'을 감독 '김선주'가 따라다니며 그들의 일상을 그려낸 작품이다. 학생 '김선주'의 앳된 목소리와 더불어 늘 웃으면서 활동하는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을 보다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어려움, 절망, 고된 생활, 현대판 노예라는 이름 등을 과감히 떨쳐준다. 고된 작업에도 웃으면서 일하고, 한글 공부도 쉬지 않고 열심히 하며, 친구들과 늘 웃으며 어울리는 그들의 모습에 조금만 부족해도 늘 인상을 찌푸리기 십상인 현대인들에게 경각심마저 준다. 긍정적인 사고로 사는 그들의 숙소 달력에 이런 글귀가 적혀져있다.

 

 

올다가 무슨 뜻이지? 라고 잠시 생각했는데 온다를 잘못 적은 것이다. '열심히 고생하고 일하면 달러가 온다', '고생 끝에 낙이 온 다', '인내는 쓰나 열매는 달다' 뜻이 같다. 반노예상태에서 한국사장님들이 제때 돈을 주지도 않는데, 왜 이 먼 한국까지 와서 일을 하냐는 질문에 '펑'은 베트남에서는 돈을 많이 못 번다 라고 말한다. 막연한 두려움이 앞서지만 한국에서 돈을 많이 벌어서 나중에 한국에 관광을 올 거라는 '펑'의 삼촌의 말이 가슴 찡하게 다가온다. 이 힘든 세상에서(그것도 한국에서) 타지에 나와 궂은 노역과 온갖 불평등에 불만이 많고 인상도 쓸법하지만 그들은 단 한 번도 인상을 쓰거나 한국인을 욕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인과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그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이질감을 느끼던 감독'김선주'가 친구가 되가는 모습이 훈훈하기만 하다.

 

 

형들의 이야기[Our Brothers Story]
로빈 | 2010 | 12분 | 다큐 | 한국


방글라데시나 필리핀에서 한국에 먼저 일하러 온 형들의 이야기를 작은 카메라에 담담하게 담아냈다. 그 어떤 미화도 보이지 않는다. 추운 겨울 창고 비슷한 곳에서 문풍지와 스티로폼으로 스며드는 찬바람을 막으며 방안에서도 두꺼운 옷을 입고 티비를 보고 있는 형들에게 묻는다.

"한국에 와서 언제가 제일 좋았어요?"

"맨 날 일만 하는데 뭐가 행복해. 한국에서 좋았던 적은 없어. 항상 힘들어. 사장들 욕 많이 해"

일만하는 사람들이라 인생에 재미를 느낄 시간이 없다는 그들. 아주 짧은 시간동안 그들이 한국에 있었던 시간동안 잠시나만 이라도 행복할 틈을 느끼지 못한 거에 대해서 오히려 내가 더 미안해 졌다. 한국 사람도 '사람'이고 잡혀가는 친구도 '사람'인데 왜 같은 대접을 받지 못하냐고 하소연 하는 모습에 맥이 풀리고 만다. 그들의 눈빛은 담담하고 차갑기만 하다. 그들에게 작은 소망은 그저 자신과 같은 이주노동자들이 합법적으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세상을 사는 것이다. 12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같은 이주노동자 '로빈'이 담은 이 영상에서 느낄 수 있던 건 그들의 자유로울 수 없는 삶과 니힐리즘이 담긴 그들의 눈동자였다.

 

 

내 인생 한국에서[Hidupku di negri ginseng] 
임론 로시아디 | 2010 | 20분 | 모큐멘터리 | 한국


두 명의 인도네시안 외국인 노동자를 비교한 작품이다. 2달째 월급도 못 받고 심하게 열악한 컨테이너 환경에서 숙식을 하는 불행한 노동자와 많은 월급을 꼬박꼬박 받으며 친구들과 여가시간도 보내는 행복한 노동자를 20분 동안 모큐멘터리 형식으로 담아냈다. 한국에 두 노동자는 같은 희망을 안고 왔지만 그들의 노동과 생활공간은 너무나 극단적이다. 'MWTV'로 부터 미디어 교육을 받은 임롬 '로시아디(Imron Rosyadi)'가 감독을 맡아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그의 소망을 두 노동자를 비교함으로 담아냈다.

 
영화가 끝나고서는 '임론 로시아디'와 그의 영상에 출연한 배우들을 무대에 마련된 자리에 앉아 간단한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고 웃음꽃도 많이 피어났다. 내 양 옆으로 앉은 파키스탄 노동자들과 그 곳에 있던 모든 이주노동자들과 그들의 친구들에게 이것은 그들의 축제였고 기념적인 일이였다. 사진도 서로 찍어주고 농담도 건 내며 즐거워 하는 그들과 이주민 미디어 교실을 통해 자신들에게 하나의 목소리를 내게 해준 선생님들께 감사의 뜻을 전하며 다음번에도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감독 '임론'의 어설픈 한국말과 풋풋한 미소가 인상 깊었다.

 


그렇다.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불편한 시각도 불편한 진실도 나에게 비롯한 것 이였을 뿐, 그들은 전혀 불편하지 않는 오히려 때 묻지 않는 노동자였다. 즐겁게 일하고 싶고, 한국인들과 친구가 되고 싶고,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나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었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어 한참동안 벽에 붙은 포스터를 바라보아야만 했다.

 

얼마 전 한국에서는 G20의 열기로 가득 찼었던 적이 있다. 서울 곳곳에는 서울G20 정상회의 개최를 축하하는 많은 광고물이 나돌았고 무엇보다 한국에 대한 전 세계의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는 일명 한국의 브랜드화 전략을 내세운 많은 희망문구들도 보였다. 물론 G20을 개최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자랑스럽고 감격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실상 우리의 삶에서 우리가 쓰고 있는 이 작은 종이스푼하나, 종이컵 하나가 누구의 손에서 만들어 졌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떠한 대접을 받는지 생각한다면 우리가 정작 힘써야 할 한국의 이미지는 우리나라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에 대한 시선이 아니겠는가.



예전에 TV에서 이런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서구 이방인이 다가와 길을 물었을 때와, 동남아시아계열 이방인이 다가와 길을 물었을 때의 차이. 결과는 당신이 생각한 바로 그대로였다. 물론 방송에서 프로그램을 위한 의도적 편집이 있었음을 전제로 하지만 대부분의 인식이 결코 크게 다르지 않음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비겁하고 이중적인 사람 이였음을 깨닫는다. 한국 사람은 아사아인인가 유럽인인가. 혹은 미국인인가?

 

물론 근대 이후의 국제 교류와 정치적, 외교적인 문제들이 얽히고 설켰기 때문에 함부로 단순화 하여 우리가 서구 국가들(특히 미국)과 친하다는 이유로 위 실험을 입증하는 것은 무척이나 억지스러운 부부이겠다. 아! 물론 서구적 미를 추구하는 사회적 풍토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으리라. 하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핵심은 국가를 떠나 사람 대 사람으로 그들과 우리가 다른 점이 뭐가 있을까라는 점이다. 동남아시아사람이라는 이유하나로 그들이 기본적 인권이외의 대접을 받았다면 우리의 잘못이 분명하다. 외국에 나가 한번쯤은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인종차별을 당해본 적(물론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이 있을 것이다. 혹시 지금 우리도 받아봤던 그 서러움을 우리는 똑같이 그들에게 주고 있지 않는가. 아시아를 외치면서 지리적 근접보다 오히려 저 바다 건너 있는 이들을 닮고 싶어 하는 이율배반적 모습이야 말로 진정한 불편한 진실이 아닐까 싶다. 불편한 진실은 그들에게 있지 않았음을 깨닫는 것. 불편한 진실은 우리가 만들어낸 우리의 진실일 뿐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있다. 과거 우리가 부자가 되고 싶어 해외로 나가서 서러운 노동생활을 해왔듯이 이들 역시 부자가 되고 싶고 행복해 지고 싶어 이번에는 우리나라로 왔다. 조금만 바꾸어 생각한다면, 아니, 우리가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만 한다면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냉대보다 따뜻함으로 변하지 않을까 한다. 지구 어느 곳에 있는 그 누구의 인권보다 바로 내 이웃, 나와 조금 다른 피부와 다른 언어를 쓰는 그들의 인권, 더불어 길거리에서 추운날 구걸에 지쳐 쓰러져 가는 모든 이들을 잠시나마 생각하는 어느 때보다 훈훈한 겨울이었으면 싶다.

 

 

인간을 위한 영상, 자유를 향한 연대
제 15회 인천인권영화제
2010 1125-1128 영화공간주안

inhuriff.org


필자소개

조형석.
잘하는 건 없고 부족함만 가득한 부끄러운 사람입니다. 아! 잘하는 거 하나 있네요. 신도림역에서 1등하는 거. 출입문이 열리자마자 튀어나가는 필자는 스스로 뿌듯해 합니다. 아싸! 오늘도 1등! 뭐 맨날은 아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