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5. 13. 17:26ㆍFeature
- 다리의 봄「다리연극교실」두번째 이야기
글_ 김첨
■ 여섯째 날 : 쉬는 시간
7. 거짓말이 아닌 거짓말을 만들어내는 방법
긴긴 연극의 소개가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을 갖는다. 쉬는 시간 동안 누군가 들어와서는 새사람들을 소개해주겠다고 한다. 문을 열고 들어온 아홉 명의 새 인물들은 작가다. 작가라는 소개를 듣고 관객들 중 누군가는 생각한다, ‘오, 거짓말쟁이잖아?’ 그리고 그 말을 듣기라도 한 듯 아홉 명의 작가들 중에 한 사람이 말한다. “거짓말은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리고는 모두들 극본을 하나씩 꺼내들었다. 하지만 극본을 보여주지는 않은 채, 이게 어떤 이야기를 하는 극본인지 맞춰보라고 말한다.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은 채로 다만 질문하라고 말한다. 아홉 명의 관객들은 각자 질문을 시작한다. “사랑이야기인가요?”, “이야기의 끝은 슬픈가요?”, “주인공은 아버지를 싫어하나요?”, 한참 질문을 던지던 관객들의 머릿속에는 이야기의 형태가 그려졌다. 그리고 이제 (자신에 차서는) 그 답을 말한다. “그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해서 이렇게 되더니 이렇게 끝나는 군요?” 그렇게 아홉 명의 관객이 각자 하나 씩의 이야기를 말하자 아홉 명의 작가들은 빙긋 웃으며 극본을 뒤집어 관객에게 보여준다.
8. 거짓말은 거짓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작가가 들고 있던 극본에는 아무 것도 적혀있지 않았다. 작가들은 이내 사라져버렸고, 놀라서 멍하니 바라보던 관객들의 손에는 어느새 극본이 하나씩 쥐어져있다. 각자가 답이라고 내놓은 이야기가 그대로 적혀있었다.
거짓말은 거짓말이 아니란다.
여섯째 날, 극작가인 서당개와 함께 놀았다. 서당개는 대뜸 우리에게 스무고개를 하자고 했다. 서당개의 손에는 서당개가 썼다는 극본이 들려있었고 우리는 한 사람씩 돌아가며 극본에 대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열 댓 개쯤의 질문이 이루어졌을 때, 머릿속에는 이야기의 흐름이 모두 그려져 있었다. (질문들이 극본의 내용과 척척 맞아 들어가는 것을 아무도 의아해하지 않은 것은 꽤나 신기한 일이었다.) 모두가 대충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을 때 즈음 서당개는 그의 노트를 보여주었고 거기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
아무 것도 없었던 종이에 질문만으로 새 이야기를 만들어내었다. 서로 어떤 이야기라고 공유하지는 않았지만 아마 같은 흐름의 이야기가 그려졌을 것이다. 사실 머릿속에서 나오는 질문들은 새로 만들어진 것들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겪어온 이야기로 인해 ‘이러면 이렇게 되더라해서 질문을 하게 되거나 때로는 ‘이야기가 이렇게 되면 좋겠다.’하는 개인의 소망으로 질문을 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당장 치열하게 상상할 필요가 있지 않고, 비슷한 이야기를 경험으로 가진 ‘보통사람’들의 질문에서는 비슷한 이야기가 나와 버리고 만다. …엥? 그럼 재미없잖아?
하지만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는 여지는, 혼자서 질문을 하는 게 아니라 아홉 명이 하나씩 돌아가며 했다는 점이다. 비슷한 이야기를 경험으로 가졌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조금씩 혹은 대단히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는 이야기이다. 그러면 다른 사람의 질문이 내가 생각하지 못한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게 되어 나는 또 다른 방향을 생각하게 되고, 이야기는 결국 뻔할 뻔 했지만 특별한 모양을 띄게 된다.
그렇지만 이야기는 여전히 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각자가 가지고 있던 경험이 끼워 아귀가 맞는 쪽으로 끼워 맞춰져서 나오는 이야기일 뿐이다. 일어난 적이 없는 가상의 이야기지만, 일어난 것들이 끼워 맞춰진 이야기. 그래서 거짓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이야기를 만드는 놀이는 비슷한 여러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만들어지는 게 신기하고 만들어서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재밌게 만들어야 해!” 하는 보통사람의 욕구에 힘들기도 했다(-). 나의 느낀 점(!) 역시 신기하고 재밌는 놀이였다는 것. 그래서 그런지 설명도 길어졌다.
■ 일곱, 여덟째 날 : 남은 사람 아홉 명
8. 뭐가 더 남았나
쉬는 시간이 끝나고 극의 다음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세 번째 극이다.
아홉 명의 관객들은 벌써 며칠 밤 째, 아홉 명의 배우들을 극을 보고 있다. 이제는 그들이 어떤 연기를 하는 사람이고 어떤 이야기를 하길 좋아하는 배우인지 알 수 있다. 관객들은 이 세 번째 극을 마지막으로 이 공연은 끝이 나는 줄로 있지만 어쩐지 극의 전개는 아직 한참 멀게만 느껴진다. 끝이 나지 않는다. 뭐가 더 남았지?
9. 뭐가 더 남았다, 열 번째 관객
보고 있자니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은 세 번째 극은 어쩐지 익숙한 내용이다. 이내 관객들은 그 것이 앞서 보여준 첫 번째와 두 번째 극의 반복임을 깨닫는다. 다만 조금씩 구체적이게 변하고 조금씩 극적이게 느껴진다. 반복되는 내용의 긴 공연을 보던 관객들은 어느 순간 자신이 관객임을 잊어버리게 된다. 이젠 그 배우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 이였는지, 배우의 말과 움직임이 한 때 내 것은 아니었는지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는 무대로 뛰어들어 그 자신도 연기하기 시작한다.
이제 관객과 배우의 구분이 사라졌다. 다른 이의 개인사정을 이해하기 되었으니 이제는 그것이 나의 개인사정이기도 하다. 각자의 개인사정을 연기하던 (아홉 명의 관객이기도 했던) 아홉 명의 배우는 이제 같은 경험과 이야기를 가지고 함께 연기하게 되었다.
뭐가 더 남았지? 이제 남은 것은 열 번째 관객. 아홉 명의 마지막 극을 보아줄 관객이 남았다.
여덟 번째 날, 이 날은 ‘다리연극교실’의 공식적인 마침이었다(그래서 끝나고 고기가 들어간 국도 다.). 하지만 그다지 깔끔한 느낌은 아니었다. 헤어지는 인사는 “다음 주 화요일에 봐요.”였으니까.
연극교실을 시작할 때 ‘연극교실에 온 이유’를 말하면서 “속내를 털어놓고 싶어서” 같은 말을 했었다. 그리고(혹은 그래서) 우리는 속내를 맘껏 털어놨다. 우리끼리. 해서 우리는 서로의 속내를 잘 알게 되었으나 우리에겐 그 이 후가 필요했다. “속내를 털어놓고 싶다.”라는 말이 가리키는 대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내 속내에 공감을 해주면 좋겠기도 하고, 혹은 내 친구가, 내 애인이, 내 가족이 내 속내를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이제 우리끼리 털어놓은 연극교실은 끝났고, ‘안 우리끼리’인 관객들에게 털어놓는 연극이 남았다. 연극교실이 끝났으니 연극을 해야겠다.
일곱 번째 날에 한 일은 그 동안 늘어놓은 개인사정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각자 글을 한 편 씩 썼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가장 부끄러웠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말’, ‘가장 돌아가고 싶은 순간’…. 글을 쓰고 읽으면서 개인사정들을 정리해 나아갔고(나는 영 탐탁지 않았던 내 개인사정이 이 활동 중에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음 날인 여덟 번째 날에 무대에 서서 보여줄 방식을 정했다. 누군가는 움직이고, 누군가는 노래를 하고, 누군가는 말을 한다. 이제 다들 머리를 싸매고(-) 연극교실의 마지막 극을 준비한다.
모두의 느낌(!)은 과연 우리의 것들이 어떻게 무대에 올라가게 될까?
개인사정은 준비 중입니다. _ 공연이 남음
● 어느새 각자의 손에 쥐어진 극본
곰 _“시간이 흐르고 나면 어떻게 되나요?” _?=!
김첨 _“주인공은 아버지를 싫어하나요?” _석연찮은 결말
백김치 _“무엇이 당신을 행복하게 하나요?”_김치가 익어가요
사람 _“변한 것은 당신인가요?” _스무고개
여울 _“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나요?” _지금 나의 상태는 ver. 2
인과 _“사랑이야기인가요?” _뻔 한 이야기
자라 _“어떻게 모든 게 괜찮은가요?” _zara는 지금 연기하는 중이야
(※ 관객 김첨의 주관적인 질문입니다.)
서울 마포구 동교동 158-2
070 8668 5795
www.scyc.or.kr
'가톨릭청년회관 다리'는 청년 문화의 활성화를 목적으로 재단법인 서울가톨릭청소년회가 운영하는 공간입니다. 공연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청년 복합 문화공간으로 이 시대 청년들의 현실, 위기, 그리고 행복을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통해 품고 지지하려 합니다. 종교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개인사정으로 좀 놀겠습니다.
같이 놀며 창작하는 모두의 연극교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개인사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행복하고 때론 아픕니다. 봄 시즌은 소소한 개인의 이야기를 공동의 이야기로 풀어내 보는 자리입니다.
이는 개인의 이야기가 같은 방향으로 모아져 완성되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참여자 한명 한명의 이야기가 그 자체로 존재하고 그것들이 '연극교실'이라는 공동의 시공간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어디로 흐를지 모르는 방향성과 엇갈림, 마주침 등을 마음 열고 실험해보고 지켜보고자 합니다.
함께하는 연출가, 신재훈
함께하는 극작가, 김덕수
함께하는 배우, 장윤실
* 연극교실은 다리의 여름, 가을, 겨울에도 또 다른 버전으로 계속됩니다.
공연발표회
"개인사정으로 좀 놀겠습니다."
일시 2011년 5월 8일 일요일 저녁 7시
장소 가톨릭청년회관 '다리' 1층 카페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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