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극단 달나라 동백꽃 “희곡을 들려줘” 팟캐스트

2012. 1. 9. 15:54Review


극단 달나라 동백꽃
 “희곡을 들려줘” 
팟캐스트 리뷰 

글_정진삼
 


▲ 달나라동백꽃 팟캐스트 로고 (캡쳐_아이튠즈)  


1. 여긴 어디? 니넨 누구? 

  신생극단이 팟캐스트를 통해 희곡을 들려줍니다. 무대 위 작품 상연 외에도, 웹에서 자기 콘텐츠를 계발하여 제시한 것이지요. 작년 11월, 첫 선을 보인 이래로 격주 업데이트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에 논할 대상은 ‘공연’ 이 아니라 팟캐스트를 시도한 ‘기획’입니다. 본 리뷰 역시 틈틈이 방안에서 듣고 쓴 것입니다. 그간 관람시간에 맞춰 대학로로, 홍대로 극장을 찾아 헐레벌떡 뛰어갔던 시절을 생각하면, 이렇게 속편한 만남은 처음입니다. (리뷰쓰기는 별개입니다만)    
 
  아이튠즈에서 이 팟캐스트를 발견하고는 여러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이건 뭐지? 이걸 왜? 재미있을까? 오래갈까? 등등. 짧은 시간에, 회의적이고도 부정적인 의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 셈입니다. 팟캐스트를 들어보고 나서 이러한 관심(?)을 가졌던 스스로에게 다시 되물었습니다. 왜 이렇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을까? 
 
  자문자답하자면 아마도 연극이 가진 특성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를테면, 지금, 여기에서만 일어나야 한다는 것, 유행을 타지 말아야 한다는 점, 첨단기술의 혜택을 거부해야 한다는 생각, 기록이 아니라 기억으로만 남아야 한다는 의식 등등. 결국 다 비슷한 말입니다. 연극은 시대변화를 뛰어넘는 무언가를 추구해야 한다는 일종의 ‘정신’ 같은 것이지요. 팟캐스트에 대한 마뜩찮은 첫 인상은 변화에 대한 막연한 우려와 순수에 대한 묘한 집착에서 비롯된 듯 합니다. 
 
  본 리뷰는 스테이지가 아닌, 스튜디오에서 보내온 연극에 관한 팟캐스트를 접하기 전, 그리고 접한 후에 들었던 의문과 단상들에 대해 정리하는 방식으로 풀어보겠습니다. 항상 한국연극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감히 젊은 극단에게 물어보지 못한 것들 ...일 수도 있고, 항상 팟캐스트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죽은 잡스에게 미처 물어보지 못한 것들 ...일 수도 있겠네요. (정답 같은 것은 없습니다만...) 


2. 이건 뭐지?  

  팟캐스트(Podcast)란 Apple의 mp3 플레이어인 아이팟(iPod)과 방송(Broadcast)이 결합된 신조어입니다.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팟캐스트는 MP3 디지털포맷으로, 인터넷을 통해 배포되는 라디오 방송 형식의 프로그램을 뜻한다고 합니다. 디지털로 녹음해 인터넷에서 개인 오디오 플레이어로 다운받는 경로로 이루어져 있지요. 자신이 원하는 디지털 미디어 플레이어를 통해 원하는 대로 즐길 수 있습니다.   
 
  아이폰의 보급과 함께 아이튠즈의 사용이 필수적이 되고, 그 중에 소설가 김영하의 <책읽는 시간>, 김어준 총수의 <나는 꼼수다> 등의 팟캐스트가 인기를 끌면서, 서비스의 국내 보급은 최고조를 갱신하고 있습니다. (가카의 라디오방송도 팟캐스트에 있을 정도이지요)
 
  팟캐스트가 매력적인 점은 전문 방송인이 아닌 일반 사용자가 스스로 콘텐츠를 생산한다(UCC)는 데에 있겠지요. 예술가가 자발적으로 예술활동을 진행해 나가는 것처럼 팟캐스터들은 의미있는 기획물들을 일반 대중들에게 제공하게 됩니다. 21세기적 가내수공예품이라고 할 수 있지요. 물론 개인 라디오 방송은 인터넷의 보급 당시부터 있었지만, 지금의 팟캐스트환경은 훨씬 더 양질의 ‘플랫폼’ 과 ‘콘텐츠’ 그리고 ‘사운드’ 를 확충한 셈입니다. 

 


▲ 인기예술 팟캐스트 순위 목록 (캡쳐_아이튠즈)
 


  잠깐, 연극계의 이야기를 해 볼까요. 여기는 유행에 조금 둔감한 곳입니다. 연극에서는 동시대적 담론이 뒤늦게 편입되는 편인데, 그 이유를 따져보면 보다 본질적이고, 원론적인 상황을 다루어 왔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피니언 리더로서의 기능을 못해서 무능해 보이기도 하지요) 

  팟캐스트와 연극의 만남은 의외로 느껴집니다만, 잘 들여다보면 이 둘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관객의 시각적 ‘스펙타클’ 보다는, 상상적 ‘체험’을 지향한다는 점, 사람의 ‘말’ 로 이루어진다는 점, 그리고 (나꼼수에서도 말하 듯) 배우들, 혹은 광대들의 놀이와 그 놀음을 기꺼워하는 청중들이 있다는 점입니다. 도식적으로 보면 극장은 스마트폰이 되고, 비주얼은 사운드가 되고, 디테일은 배우들의 전-신체적 표현에서 목소리, 화술, 음향효과 등으로 생략, 압축됨으로써 ‘호환’ 되는 것이지요. (그러고 보면 스마트폰은 손 안에 든 ‘극장’ 이지요. 시간과 공간을 압축하고, 그 안에서 끊임없이 ‘쇼’ 를 재생해내니까요. 굳이 극장에 갈 필요가 없지요. 그런 점에서 돌과 벽돌로 만들어진 꿈쩍없는 ‘극장’ 은 어디로든 움직이는 가벼운 ‘스마트폰’ 과 라이벌 관계일 수도 있겠네요)    


3. 이걸 왜 해? 

  희곡을 읽지 않는 시대의 성찰은 대중들에 대한 원망이 아닌 창작자와 공급자의 반성이 먼저겠지요. 전방적인 문학 위기 시대에 그 마저도 변방으로 밀려난 ‘희곡’ 들의 존재감 없음, 자구책 없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달나라 동백꽃’ 은 아예 관객들의 귓가에 희곡을 들려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 발상과 용기가 가상합니다. (희곡읽기가 아닌 희곡 듣기는 아주 어린 세대들에겐 낯간지러운 체험일수도 있습니다만, 라디오 드라마의 추억이 있는 세대들에겐 실상 반갑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가 만나게 되는 희곡들은 나름대로 선별된 한국의 현대 희곡들입니다. 달나라 동백꽃 극단은 그들의 네트워크(혹은 인맥)을 이용하여 현역 극작가들에게 허락을 맡고, 배우들과 관계자들을 출동시켜 배역을 나누어서 스튜디오 버전의 독회를 개최합니다. 극단이라면 어디나 가지고 있을 법한 자원들(연습실, 배우들, 대본)을 재조합했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어느 정도 검증된 희곡과 훈련된 배우들, 그리고 용이한 접근성들을 갖춘 탄탄한 기획인 셈이지요. 



▲ 팟캐스트에서 소개한 극작가들의 희곡집 (윤영선, 박근형, 박상현)


  미디어 아티스트 후지하타 마사키는 작품과 기획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작품은 일종의 구조, 일종의 완성품으로서 마치 상자 속에 든 오브제처럼 보고 체험하는 것이라면, 기획은 특정한 결과를 얻기 위해 시작하는 활동으로, 과정이 중요하게 되는 것이라고 한답니다. 
 
  이들이 팟캐스트 안에서 유난스레 깔깔대고, 즐거워하고, 심지어 훌쩍이는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실제 무대 위에서 할 수 없는 ‘연극 만들기’ 의 과정들이 편집이나 검열없이 생생하게 전달되는 것이지요. 누군가에게 관찰당하고 있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고, 너무 잘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놓여나자, 배우들은 색다르고 편안한 숨소리를 들려줍니다. 물론, 아슬아슬 조마조마의 상태로 관극해왔던 관객들의 긴장도 사라지지요. 만만해서 참 좋습니다. 엄청난 작품을 짠, 하고 내놓아 관객들을 헉, 하게 만드는 대신, 서로 희희낙낙하는 소소함을 선사하는 게 이 기획의 미덕이지요.  
 
  그런 점에서 팟캐스트의 또 다른 주인공은 ‘스튜디오 놀이’ 에 멋지게 적응한 배우들입니다. 좋은 스토리에는 좋은 스토리텔러가 필요하다는 점을 새삼 떠올리게 되는 것이지요. 편집과 증폭이라는 미디어적 혜택을 보지 못하는 연극 배우는 스스로 존재감을 발하지 못하면 왜소해지고, 초라해질 수밖에 없는 ‘외로운’ 자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좋은 스토리와 캐릭터의 옷을 입을 때, 그 무엇보다 진실하고 강력한 매체가 된다는 점을 생각하게 되었지요. 


4. 과연 재미있을까? 

  작품들에 대하서 살펴보겠습니다. 격주로 업데이트 되는 이들의 팟캐스트 목록에는 현재까지 다섯 작품이 실려 있습니다. 

<차력사와 아코디언> 작가 장우재  / <여행> 작가 윤영선 / <고요> 작가 고재귀 
<청춘예찬> 작가 박근형 / <자객열전> 작가 박상현 
  
  목록을 보면 연극 매니아라면 누구나 알만한 희곡도 있고, 상을 받아 유명해진 작품도 있지요. (그러고 보니 모두 남성작가들의 작품이네요) 참, 배우들의 연기가 어땠는지, 희곡의 짜임새가 어떤지, 낭독의 완성도가 어떠했는지는 다루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개인적으로 재밌었던 희곡도 있었고, 심드렁한 희곡도 있었습니다만, 대체로 그들과 같이 웃고, 또 같이 숙연해졌습니다.(그러니 여러분이 직접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흐름을 끊기도 하지만, 중간중간 진행자가 들려주는 연극의 뒷얘기나 해설도 흥미롭습니다. 작품의 입체적인 이해를 도와준다고나 할까요. 연극이라는 장르가 얼마나 ‘인간’ 적인지 실감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이들의 팟캐스트에는 연극적인 것과 이야기적인 것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무대 위에서는 연극성이 서사성을 압도하기 마련이지요. 관객들은 커다란 이야기의 흐름도 쫓지만, 순간순간의 재미와 역동적인 모습에 빠져들게 되는 것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팟캐스트 상에서는 서사성이 두드러집니다. 캐릭터의 성격과 말투, 그들이 들려주는 자기 사연이 청자의 집중을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기억에 남은 부분을 더듬어 봅니다. <자객열전>에서는 근엄한 애국자의 모습이 아닌 능청스러운 백범 김구 선생님이 웃음을 주었고, <여행>에서는 작고한 윤영선 작가의 어린아이와 같은 미소를 떠오르게 했으며, 아직 관람을 하지 못한 <차력사와 아코디언>은 실제 공연이 어땠는지 궁금하게 해줍니다. <청춘예찬>의 막장 캐릭터들이 내뿜는 날선 대사들도 여전했구요. 



▲ <고요>와 <차력사와 아코디언>의 공연포스터 
  
 
  가장 큰 울림을 주었던 작품은 고재귀 작가의 <고요> 였습니다. 몇 년 전에 실제로 봤던 연극이었지요. 어려운 이웃들과 가난한 삶의 모습이 구질구질해서 부러 외면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시각장애인 안마사의 낙천적인 말들이 너무 비현실적이고 공허하게 느껴졌었더랍니다. 그러나 이번에 다시 들은 안마사의 말들은, 묘하게도 한마디 한마디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힘겨운 현실이 눈에 밟히지 않는 ‘그’ 만이 세상을 긍정할 수 있었고, 가진 게 별로 없는 ‘그’ 가 해주는 ‘안마’ 나 우스개 ‘말’ 들이 얼마나 주위를 행복하게 위무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된 것이지요. 뒤늦게 발견한 리얼리티가 <고요>라는 작품을 의미있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우연찮게도 <청춘예찬>에서 가장 공감했던 캐릭터도 두 눈을 잃어버린 여자 안마사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보이지 않는’ 팟캐스트라는 매체에서 가장 큰 진정성을 얻게 되었나 봅니다. ‘보이지 않는’ 이라는 말은 보이지는 않지만 ‘어딘가에 있는’ 존재들을 일깨워줍니다. 암중모색하고 있는 젊은 창작자들, 연극이 보고 싶지만 극장을 찾을 수 없는 관객들... 이들은 ‘극장’ 에서는 소외되어 있지만, 팟캐스트를 통해서 이러한 결핍감을 채워나갈 수 있는 것이지요. 
 

5. 오래갈 수 있을까? 
 
  연극의 팟캐스트. 이것이 새로운 시도일지, 텍스트로의 후퇴일지 여러분도 함께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팟캐스트화 되어버린 희곡은 그 자체로 만족하여 스스로 왜소한 존재로 남겨질 수도 있고, 극장 안에 참여한 사람들만 소통했던 과거와는 다르게 극장 밖의 사람들에게 연극의 매력을 전해줄 수도 있습니다. 늘 옳다고 생각되는 관객들의 선택과 판단이 실천적인 영역으로도 이어지길 바랄뿐. 
 
  어쨌든 스튜디오 시스템을 지향하는 온라인상에서 이들 공연예술가들은 주눅 들거나, 뒤쳐지지 않고 대중들과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직접 만들었습니다. 접근성이 어려운 순수 예술의 장벽을 낮춰보고자 하는 바람직한 의도로 읽혀집니다. 앞으로 연극의 “고전 명작” 다시보기 코너도 선보인다고 하니 기대해봅니다. 젊은 극단의 “묻” 지마 시“도” 가 양질의 희곡들을 만날 수 있는 길 하나를 만든 것에 박수를 보냅니다. 엄연히 이 팟캐스트는 재능있는 연극 창작자들이 만들어낸 행복의 공공재인 것입니다.  
  
  아마도 이 시대 위기의 연극이 오래갈 수 있는 방법은, 그 과정과 완성에 참여한 모든 이들의 행복지수를 높이면 되지 않을까, 그래서 누구라도 다시 연극하고 싶다고 만드는 게 유일한 방법은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인기나 순위에 상관없이 즐겁게 만들고, 즐기며 한다는 점이 이들에게 가장 부러운 점입니다. 물론, 듣는 사람도 재미있구요. 아,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새로운 팟캐스트가 올라왔네요. 기다리던 편지처럼 두근두근 합니다. 극단 ‘달나라 동백꽃의 “희곡을 들려줘” 여러분도 한번 귀 기울여 들어 보시길!! 

극단 달나라 동백꽃 팟캐스트 http://itunes.apple.com/kr/podcast/id478914738 



▲ 극단 달나라 동백꽃의 녹음현장 (사진=etion)



 ▶ 극단 “달나라동백꽃” 에 대하여 
 달나라에 동백꽃을 심자! 는 구호를 가지고, 2011년 8월 연출 부새롬, 작가 김은성, 배우 이수현, 배선희, 강기둥, 장인섭, 김민경이 함께 창단한 극단입니다. 이들은 배우의 경계를 허물고, 모두가 연극창작자라는 입장에서 작업을 지향합니다. <시동라사><순우삼촌> 등으로 일찍이 실력을 인정받은 극작가와 무대미술을 전공한 연출가, 그리고 다재다능한 배우들을 갖춘 ‘달나라 동백꽃’ 은 창단공연을 시작으로 2012년에 여러 작품으로 관객들과 만난다고 합니다. 2012년 2월 23일에서 3월 4일까지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달나라연속극> 공연이 예정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