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9. 30. 12:01ㆍFeature
우물쭈물 꿈꾸는 움직임
- ③ 내 몸에 말을 걸다
‘가식’을 주제로 춤을 추는 동안 나는 얼마나 내 본연의 모습에 가까워졌을까. 나는 얼마나 나를 인정하고 바라보게 되었을까.
공연을 앞두고 우리에게는 프로필 사진 촬영이라는 새로운 과제가 주어졌다. 이제는 정말 무용수가 되는 것일까. 프로필 사진 작업의 첫 번째는 ‘타인에게 보여지고 싶은 나의 모습’을 적어서 사진가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누구나 자신이 지향하는 이미지가 있기 마련이다. 물론 나 역시 그렇다. 아마 그 이미지에는 내가 추구하는 가치관이 담겨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과 함께 내가 포장하고 싶은 가식도 덮여 있을 것이다. 내가 적어 보낸 내용은 이런 내용이었다.
타인에 대한 공감과 삶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한 지성과 현명함을 가진 사람. 하지만 타인과의 비교 우위에서 자신을 평가하지 않고 가지는 자존감과 포용력을 가진 사람. 옳은 일에 물러서지 않는 당당함을 가진 사람.
프로필 사진에 담고 싶은 이미지를 쓰라고 했는데, 쓰고 보니 이건 내가 보여지고 싶은 이미지라기 보다는 내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이었다. 혹은 내게 부족한 것, 내가 갖고 싶은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보면 결국 인간이 추구하고 갈구하는 이미지는 그것의 결핍으로 인한 반작용은 아닐까. 이로써 내게 ‘강인한 지성’이라는 또 다른 가식을 추가하게 되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
프로필 사진 작업의 두 번째는 의상을 정하는 것이었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참가자가 이런 작업은 처음이기 때문에 프로필 사진 촬영은 설레면서도 어색한 작업이었다. 의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평소 가지고 있는 옷들을 가져와 보이거나, 사진을 찍어 사진가에게 보내면 불합격이라는 답이 돌아오기 일쑤였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가져오는 옷들은 평소 자신의 이미지와 생활에 맞는 굳어진 이미지만 만들어 줄 뿐이었다.
프로필 촬영에서 나는 나의 틀을 깨고 싶었다. 나의 틀을 깨고 싶다는 생각은 어느새 나를‘파격적’인 것에 몰두하게 했다. 평소 모습이 아닌 파격적인 모습으로 보이고 싶다는 생각에 다소 노출이 심한 옷을 찾아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옷을 보러 갔을 때 나는 아무리 야한 옷을 입어도 전혀 야하지 않았고 너무나 몹시 어색한 느낌이었다. 그런 어색하고 불편한 느낌으로 카메라 앞에 설 수는 없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그리고 내가 왜 야한 옷을 입고 섹시한 이미지로 파격 변신을 하려고 하는가 의문을 갖게 되었다. 애초 내가 생각한 이미지는 행동하는 지성과 내면의 현명함을 원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내가 섹시한 이미지의 컨셉을 잡고 있었을까. 그건 여전히 내 몸을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내 몸의 빈약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섹시한 이미지를 덧씌우고 억지로 만들어내려고 하고 있었다. 전혀 섹시하지 않은 몸에서 섹시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려고 하니, 몸과 옷이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춤을 추면서 어느 정도 몸을 바라보고 응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도 아직은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나를 인정하면서도 기존의 나의 틀을 깰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그것이 꼭 노출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나는 건조하고 빈약한 나의 몸을 그대로 인정하고 카메라 앞에 서기로 했다. 그 동안 사람들 앞에서 몸을 드러내지 않았던, 곧고 단정한 움직임만을 보였던 내가 지금의 나의 몸을 그대로 인정하고 카메라 앞에서 내 몸의 움직임을 그대로 보이는 것 만으로도 내게는 큰 파격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나의 내면을 드러내는 사진이 될 거라 믿었다. 이렇게 사진 컨셉을 고민하며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돌아보고 성찰하는 기회가 되었다.
촬영 스튜디오는 나와 같은 일반인에게 익숙한 곳은 아니다. 강한 조명과 장비, 카메라 렌즈 앞에 홀로 서는 것은 무대에 서는 경험과는 어색하고 낯선 경험이었다. 하지만 촬영에 앞서 나의 짐을 어느 정도 내려 놓아서인지, 사진가의 조언 덕분인지 처음에는 경직되고 불편하던 내가 묘한 떨림과 즐거움을 느끼며 촬영을 할 수 있었다. 따뜻한 빛의 조명은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주었고 나는 아무런 시선도 느끼지 못하고, 나만의 시간과 공간에서 음악에 맞춰 나의 감성과 나의 움직임을 따라갈 수 있었다. 그것은 내 감각이 내 방식의 길을 찾게 두면서 느끼는 아주 몽환적이면서도 환상적인 경험이었다. 그리고 나의 몸을 이제는 좀 더 솔직하게 들여다 보게 되었음을, 나의 가식과 틀을 벗고 진정한 나에게 내가 말을 걸고 있음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똥자루 무용단 - 우물쭈물 꿈꾸는 움직임
우물쭈물 꿈꾸는 움직임은 도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무언가에 도전하고 싶지만 우물쭈물 망설이는 성인을 대상으로 하여, 현대무용을 알아가면서 벅참을 느끼도록 한다.
cafe.naver.com/dance2011
필자소개 _김혜정(우물쭈물 꿈꾸는 움직임 참가자)
존재론을 넘어선 관계론을 지향하며 세상과의 소통을 꿈 꿉니다.
하지만 너무 쉬운 소통을 경계하며 관계의 진정성에 가치를 둡니다.
중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만남과 소통이 있는 배움을 만들어가는 중 입니다.
지금은 무용공연 프로젝트에 참가하여 몸으로 소통하는 법을 익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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