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우물쭈물 꿈꾸는 움직임 - ④ 무대에서 날개를 펴고

2011. 9. 30. 12:09Feature

우물쭈물 꿈꾸는 움직임
- ④ 무대에서 날개를 펴고

 

 

글_ 김혜정



진정성으로 서로를 껴안다


프로필 촬영 작업이 끝날 무렵 공연 연습의 무게도 더해졌다. 오디션 후 공연 연습을 처음 시작할 때 연출 감독은 연습 막바지에는 많이 힘들어질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연습 초반에는 이해되지 않던 그 말이 연습이 후반으로 갈수록 마음에 와 닿기 시작했다. 우리는 매주 4일을 연습을 했고, 그래도 연습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껴 연습 날짜를 더 잡기도 했다. 연습 시간이 늘어나고 안무가 정해지면서 긴장감이 더해졌지만 한편으로는 무용수들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연습에 빠지게 되는 경우도 생기고, 서운한 감정을 갖는 사람도 생겼다. 급기야는 모두가 함께 끝까지 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얘기까지 나왔다. 하지만 안무가인 허 웅 선생님의 결정은 모두가 함께 간다는 것이었다. 연습이 끝난 후 뒤풀이 자리에서 허 웅 선생님은 우리를 처음 무용수로 뽑았을 때의 마음과 고민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선택에 대한 강한 믿음을 보여주었다. 어린 시절의 외로움과 좌절, 그리고 지금 공연을 만들어가면서 느낌을 모두 내려 놓았을 때 우리 팀 모두 그 진정성에 마음이 움직였다. 그날 밤 신촌 선술집의 야외 테이블에서 우리는 시원한 공기를 맞으며 아리랑 아트홀 무대에 섰던 그 설렘과 서로를 향한 믿음을 떠올렸고 다시 한번 그 결속력으로 서로의 손을 붙잡았다. 그날 이후 우리들의 호흡을 더 뜨거워지고, 움직임은 더 커지며 하나의 의미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신선한 바람이 감쌀 무렵 우리의 공연은 조금씩 다가왔다. 그리고 나도 생애 최초로 날개를 펼친 나비의 날개가 작은 공기의 파장에 파르르 떨리듯 설레고 조심스럽게 그 바람을 느끼기 시작했다.

 

 



첫 공연의 부담감

 

허 웅 선생님의 안무는 언제나 감성을 자극하고 끌어 낸다. 그것은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몽환적이고, 때로는 후련하다. 두 달 간 춤을 추면서 어느 날은 문득 뜨거운 것이 심장 한 켠에 안기는 느낌이었다가, 또 어느 날은 그 뜨거움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감성과 내 몸이 하나가 되어 움직이도록 하는 일만 남았다.

첫 번째 공연은 서교예술실험센터 1층에서 열린 쇼케이스였다. 허 웅 선생님의 ‘I’m the Alice- Part2 가식이 첫 순서이고, 석수정 선생님의 햄릿 게임이 두 번째 순서이다. 늘 연습시간과 연습실이 달라서 햄릿 게임은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리허설에서 보니 두 팀의 공연 색깔이 확실히 다르다. 조용하고 선이 부드러운 우리 작품에 비하면 햄릿 게임은 격렬한 동작과 함께 힘이 느껴진다. 현대 사회의 폭력성과 인간의 소외가 섬뜩할 정도로 호소력있게 다가온다. 두 번째 팀의 힘이 넘치는 팀워크에 조금 주눅이 들지만, 그래도 내겐 우리의 삶과 이야기가 녹아있는 작품이 애틋하게 느껴졌다.

 

 



두 번의 리허설에도 긴장감은 그리 크지 않았다. 공연을 하기로 한 1층이 그리 크지도 않고, 익숙한 장소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실제 공연은 그렇지 않았다. 좁은 1층을 꽉 채운 관객에, 무대와 객석의 거리는 한 걸음도 되지 않았다. 게다가 내 안무는 공연의 문을 여는 인트로였다. 첫 음악이 나오는 순간, 그리 예리한 눈매를 가지지 않은 사람이라도 내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음은 쉽게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공연이 끝난 것인지 모르게 15분의 공연이 끝이 났고, 다음날 문래예술공장에서의 공연이 두려워졌다. 무대 한 가운데서 혼자서 내 다리로 내 몸을 안정감있게 지탱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혹은 그것은 내 몸을 물리적으로 지탱해야 하는 걱정이 아니라 공연의 인트로를 실수없이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었는지도 모른다.


 

일곱 명의 앨리스, 나와 너의 이야기

 

다음 날 문래예술공장 박스씨어터. 아침부터 댄스플로어를 깔고 덧마루를 깔고 좌석을 배치하며 우리가 설 공연장을 준비했다. 그리고 2달 전 오디션을 봤던 그 장소에 이제 무용수가 되어 서 있다. 드레스 리허설까지 마치고 공연을 앞둔 시간, 쇼케이스 때처럼 다리가 떨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나는 분장실에서도 계속 몸을 움직이고 동작을 연습했다. 분장실의 공기는 설렘과 흥분이 공존했고 공연이 가까워 올수록 긴장감이 더해만 갔다. 눈을 감고 그 동안의 여정을 떠올린다. 처음 우물쭈물 꿈꾸는 움직임이라는 프로그램에 참가신청서를 낼 때의 두근거림, 오리엔테이션의 설렘, 함께 다독이며 힘들고 행복한 시간을 함께 했던 사람들, 연습실의 열기와 땀 내음. 그리고 춤을 추면서 다시 꺼내 보아야 했던 아픔, 그리움의 감정들, 춤을 추면서 갖고 싶었던 자유로움과 평온함. 이제는 내 모든 감각이 무대 위에서 내 방식의 길을 찾아 움직이도록 할 차례이다.




공연 전 인터뷰 영상이 끝나고 스크린 막이 닫혔다
. 나는 무대 가운데 홀로 서 있다. 푸른 색 조명이 들어 오고 나는 날개를 펼치듯 세상을 향한 몸짓을 시작한다. 스스로 이상한 나라에 존재하고 있다고 자신을 가두고 있던 앨리스가 세상의 문을 열고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과 살아가기 위해 가져야 했던 가식들. 하지만 가식이 없어도 내가 존재함을, 진정한 본연의 나로 살아있음을 알게 되는 그 이야기 속에 나는 하나의 가식을 표현한다. 그것은 극중 앨리스만의 가식이 아니라 나의 가식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내려놓고 싶은 표현이기도 했다. 사랑 앞에서 어려지지 못하고 이성으로 나를 옭아맸던 날들, 상대방에 나를 맞추며 행복하다고 느꼈던 거짓됨, 사회적 역할에 따라 정해진 삶을 살았던 답답함을 던져 버리기라도 하듯이 춤을 추었다. 문득 상대 무용수를 바라보고 대칭된 동작을 하는 순간에 마치 거울 속의 나를 어루만지는 느낌이 들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각자의 가식을 털어 놓고, 각자의 이야기가 담긴 춤을 추었던 우리는 모두 무대 위에서 비슷한 감성에 빠졌을 것이다. 우리 각자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캐릭터이면서, 또 우리가 살아가며 만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면서, 또 한 인간이 쓰고 있는 가면이면서, 춤을 추는 내가 현실에서 나를 포장하는 가식이기도 했다. 그리고 본연의 모습 그대로 스스로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앨리스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 ‘우리를 보여주고 싶었다.


 

이제, 현실에서 날아 오를 거야

 

공연이 끝나고, 80여 일간의 우리의 여정도 끝이 났다. 내게는 한 여름 밤의 꿈 같은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한 순간의 소동이 아니라 긴 여운이 남는 뭉클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꿈은 나의 현실을 바꿔 놓았다. 나의 감정, 나의 몸을 응시하고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부정하고 싶었던 나의 감정과 감추고 싶었던 나의 몸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 그래서 이제는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를 사랑하는 것이 다른 이를 사랑할 수 있는 첫걸음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말이 이제는 몸으로 느껴진다.


 

나는 언제나 날개를 갖고 싶었다.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별칭을 만들라고 했을 때 날개라고 이름을 붙인 이유도 그랬다. 세상에 만든 경계와 벽을 넘어 꿈이 아닌 현실에서 날아 오르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을 열고, 감정을 표현하고, 춤을 추면서 알게 되었다. 그 경계와 벽은 세상이 만든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든 틀이었다. 내가 만든 경계 안에서 나는 여기까지라고 선을 그었고, 내가 만든 나의 이미지 안에서 가식으로 포장한 채 세상과 만나고 있었다. 그토록 갖고 싶었던 날개는 실은 오래 전 내 몸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다만 그 날개를 꺼내고 펼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오래 전 내 몸 속에 살던 날개가 두근거린다. 이제 그 동안 묶어 두었던 날개를 현실에서도 활짝 펼치려 한다. 나의 날개짓이 푸른 바람이 되어 내 몸을 휘감아 돈다.

 



똥자루 무용단 - 우물쭈물 꿈꾸는 움직임

우물쭈물 꿈꾸는 움직임은 도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무언가에 도전하고 싶지만 우물쭈물 망설이는 성인을 대상으로 하여, 현대무용을 알아가면서 벅참을 느끼도록 한다.

cafe.naver.com/dance2011

 


필자소개 _김혜정(우물쭈물 꿈꾸는 움직임 참가자)

존재론을 넘어선 관계론을 지향하며 세상과의 소통을 꿈 꿉니다.
하지만 너무 쉬운 소통을 경계하며 관계의 진정성에 가치를 둡니다.
중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만남과 소통이 있는 배움을 만들어가는 중 입니다.
지금은 무용공연 프로젝트에 참가하여 몸으로 소통하는 법을 익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