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사심없는 땐쓰 - 불타는 금요일, 몸이여 나뉘어라!

불타는 금요일, 몸이여 나뉘어라!

私心 없는 땐쓰 (Dancing Kids)

안무/연출_안은미
출연_안은미컴퍼니, 서울 국제고등학교 학생들 

                                                                                                  글_정진삼

나리!
이제부터 내가 본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할거야. 클럽 갔다 온 얘기? 에이, 그럴리가. 준비됐어? 좋아! 뮤지컬 자주하는 연강홀이라고 알아? 그래 거기, 거기였다구. 들은 바가 있어서 내심 기대를 좀 하긴 했지. 안. 은. 미. 검색해 봐. 장난 아니야. 그래, 장난이 아니라는 건 그녀가 무대에 딱 나오는 순간 알았지. 박박머리에 옛날 교복을 입고 힐을 신은 여자가 나오는 거야. 그게 그녀야. 나오자마자 그녀가 추었던 춤, 뭔지 알아? 지지지지 베이베베이비. 소녀시대 <지> 였던 거지! 이 여자, 소녀시대 동작을 음악도 없이 보여주고는 그대로 나가버리더라. 객석 쪽으로. 거참, 포스있네. 자, 이제부터가 시작이야.

날티나는 트레이닝복 차림을 한 노란 머리의 언니 셋, 오빠 다섯이 나오더라구. 무용하던 사람들인데... 헐. 저이들 평소에 난해하고 어려운 춤추던 사람들 맞아? 정말 쩔어, 완전 잘 춰! 언니오빠들의 춤은 H.O.T 에서부터 시작됐어. 첨엔 몰랐지. 노래가 안나왔거든. 신기한 게 극장이 조용하니까 머릿속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더라. 재밌지 않아? 원래 음악이 먼저고 춤이 나중이잖아. 영상으로 가사가 나오는데 낯이 익어. 어디서 많이 본 사회비판인 거야. <열맞춰>더라구. 그리고 S.E.S, 핑클 이렇게 이어가. 옛날 아이돌? 당연히 알지. 우리랑 함께 자라왔는데, 걔네들은 형제자매나 다름없지.

참, 아이돌 노래는 좀 오그라들잖아. 오토튜닝한 보컬에다가 직설적인 노랫말에다가 뭐 그러니까. 근데 이 무대는 좀 달랐어. 춤은 댄서들의 군무로 즐기고, 노래는 문자로 즐기는 재미? 영상으로 전달되는 문자들이 묘한 리듬감을 주더라구. 비트를 만들어내는 게 몸짓이나 소리만이 아니었던 거지. 글자들도 춤을 춘다고 해야 할까. 십대들의 뇌 속을 스크린 속에 마구 쏟아내는 기분?

나리.
곧이어 최신 아이돌의 댄스 본색을 드러내는 무대가 펼쳐졌지. 치마 입은 남자 무용수들이 무대를 활보하더라. 오~ 객석이 슬슬 반응을 보여. 세계적(?)가수 슈퍼주니어의 <쏘리쏘리>야. 손을 비비면서 기우뚱하게 움직이는 댄스! 세계인이라면 모를 리 없잖아? 그러고 보니 십대들의 춤 역사는 아이돌의 역사면서 곧 히트곡의 역사고, 후크송의 역사고, 패션의 역사고, 국민 유행의 역사고, 댄스 학원의 역사고, UCC의 역사고, 미디어의 역사더라구. 이런 게 레알 한국사(史)지. 땐쓰로 먹고산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잖아!

장난스럽게 찰싹찰삭, 카라의 <미스터>가 골반을 때리지. 난쟁이 댄스셔틀이 큰웃음 주며 꾸물꾸물 지나가지. 원더걸스의 <노바디>가 마음을 흔들어 놓더니, 2PM <어게인 앤 어게인>의 아크로바틱 동작이 무대를 흔들어 놓지. <링딩동>, 링딩동 링디기딩 디기딩 디기딩딩딩. 빼놓을 수 없지, 샤이니. 글자로 보니 왜 이렇게 간지럽니, <내꺼하자> 인피니트. 와우, 2ne1의 <내가 제일 잘나가> 에선 정말 볼장 다 보여준다는 느낌이 팍팍. 현아의 파워댄스는 좀 더 부드러운 모습으로 눈앞에서 확확.

참, 아이돌 댄스는 딱딱 맞춰서 추는 군무가 백미잖아. 안은미의 댄서들은 서로 완벽하게 맞지는 않아도 훨씬 더 자유롭고 유연한 느낌으로 다가왔어. 비트에 어울리는 몸짓이라는 게 그렇게 절도만 있는 건 아니잖아. 보여주기 위한 춤이 아니라... 그냥 추기 위한 춤, 존재하기위한 춤? 그래, 아이돌을 무대 위에 그대로 옮겨오니까 거칠고 촌스러운 느낌도 분명 있었는데, 댄서들은 개의치 않고 신나게 추더라. 감 좀 잡은 객석이 점점 끓어오르려는 찰나, 무대 끝, 영상 시작이었어. 아, 근데 이 영상이 진정 대박이야.

나리!
영상 속 주인공들은 모두 십대 아이들이었어. 중딩 아님 고딩이겠지 뭐. 그들은 시골 빼고 어디에나 존재하더라구. 나름 스트릿 댄서들이자 춤 반 몸개그 반의 사랑스런 캐릭터들. 소리가 완전히 소거된 상태여서 오로지 프레임 안에 포착된 몸짓에만 집중할 수 있었지. 하나하나 이름 붙여볼 테니 그냥 듣고 상상해봐.

부담댄스 수줍댄스 과감댄스 막장댄스 돌발댄스 포복절도댄스 깨방정댄스 난리법석댄스... 그래, 얘들의 춤은 대체로 무엇을 추는지 알 수가 없어서 어디서 추는지, 무얼 입고 추는지,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가 그런 게 더 중요해.... 명동가방가게앞댄스 쇼핑몰계단막고댄스 강남역극장앞댄스 혜화로터리댄스 마로니에공원댄스 눈썰매장댄스 스케이트장댄스 교문앞댄스 교문옆댄스 화장실댄스 헌혈버스배경댄스 청계천댄스 서울랜드앞댄스 볼링장댄스 헬스장댄스 교실복도에서나홀로댄스... 진짜 사심 없는 펌핑, 무아지경의 뻣뻣 웨이브... 씨스타따라잡기댄스 머리끄댕이잡고댄스 티아라복고댄스 마초댄스... 근데 하나도 안 야해! 완전 귀여워... 비둘기댄스 오토바이지나가는와중에댄스 털장갑댄스 후드티조여쓰고댄스... 배경은 겨울인데, 추위가 하나도 안 느껴져. 게다가 왜 이렇게 친근하니. 한손에는 핸드폰을 꼭 쥐고, 노스페이스 잠바와 레깅스를 입고 몸을 흔드는 우리의 조카동생들 그 자체였지.

아이들의 춤은 다섯의 둘은 요즘 유행하는 셔플댄스고, 다섯의 하나는 작년에 유행했던 복고댄스야. 나머지는 뭐냐구? 힙합, 브레이크, 재즈, 비보이? 아니아니, 도저히 출처를 알 수없는 ‘막춤’ 이지. 신기한 게 춤을 잘 춘 애들보다는 좀 이상하게 춘 애들이 더 튀었어. 시시함을 거부하는 그들의 무모한 도전이 관객들의 더 큰 호응을 받았지. 그래, 길거리의 무심한 행인들과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하나같이 열심을 다해 추는 모습이 쪼끔 감동적이더라. 근데 실은 주변 사람과 사물의 반응이 짱 웃겨. 계속해서 중심을 방해하는 운동이 돌발적으로 벌어지는데, 중심 캐릭터들이랑 묘하게 잘 어울리는 거야. 주변의 시선에는 아랑곳 않고 일관되게, 혹은 조화롭게 자기의 춤 세계를 구축해나가지. 그래서 그들의 춤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이름하여 “대인배 땐쓰”!!

나리,
‘우리의 이상은 춤추며 흐른다’ 라는 새로운 뜻풀이를 한 오리무중(吾理舞中) 글자가 뒷 벽에 새겨지지. 그리고 무대 위엔 고등학생 아이들이 등장했지. 남자애는 어린이 헌장을 우리말로 하고, 여자애가 이를 영어로 통역했지. 늦게 말하는 남자애 때문에 여자애가 먼저 치고 나왔는데 어찌나 웃기던지. 이어서 오픈 마이크에 스물두명의 같은 학교 아이들이 돌아가며 말하더라구. 그들이 하는 말 하나하나가 어찌나 절실하고 또 코믹하던지. 상(償)으로 베개가 주어지더라. 하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미래의 ‘꿈’ 이 아니라 당장의 ‘잠’ 이겠지.

교복대신 파스텔톤의 형형색색의 복장을 한 아이들이 한명씩 프로댄서들과 짝을 이뤄 자기 무대를 보여줘. 앞서 나왔던 아이돌 댄스와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그들에겐 무엇을 추느냐 보다, 어떻게 추느냐가 중요한 듯 보였어. 매 장면은 굉장히 스피디하고 타이트하게 변해. 일단 이 작품은 양으로 승부하는 컨셉이야. 아이들에겐 질적인 게 별로 안중요해 보였어. 애초부터 그들에겐 가능성이 무한대로 주어졌기에, 뭔가를 구별하고 그 중에 중요한 것만 뽑아낸다는 발상 자체가 우습지. 집중과 종속이 아니라 나열과 확산의 방식으로 매 순간의 다양한 개성들을 보여주었지. 아이들이 무리를 지어 다함께 보여준 춤은 원더걸스의 <비 마이 베이비>였어. 선곡 참 좋더라. 귀엽게 몸을 흔들면서 당신의 애인이 되겠어요~ 라고 싱긋 웃는데... 그 모습이 발랄한 의상과 상큼한 멜로디와 어울려 밝고 환한 에너지를 뿜어내더라구. 구애와 이별, 혹은 자기정체성을 노래해온 아이돌의 곡들은 묘하게도 저의가 의심스러웠는데, 이 순간만큼은 진심이 느껴지더라구.

이 작품은 아이들, 혹은 아이돌에 대해 스스로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게 해주었어. ‘아는’ 관객들은 이 몸짓이 대중문화씬 안에서 만들어진 걸 알 테고, ‘모르는’ 관객들은 안은미가 한 거라고 생각할거야. 그러고 보면, 현대무용에서 아이돌 춤은 뭐 금기 같은 게 아니었을까? 따라해서도 참고해서도 안되는 뭐 그런 거. 근데 실상 아이돌이야말로 아이들에게 춤 선생이잖아. 맘껏 춤추지 못하게 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방안에서, 교실에서, 학원에서 아이들은 아이돌을 따라하며 꾸준히 몸을 움직여 왔던 거지.

맨날 방송에서 가늘고 예쁘기만한 몸을 보다가 건강함 자체인 아이들의 몸을 보니 기분이 참 좋더라. 좁은 화면에서 벗어나 넓은 공공장소에서 대범하게 매혹적인 포즈를 취하는데, 시원시원하더라구. 나리, 왜 자꾸 좋은 것만 얘기 하냐면... 그러니까 나한테 이 무대는 옳고 그름을 논하는 무대라기보다는, 좋고 나쁨을 따라가는 무대였던 거 같아.
 

나리, 

자, 이제 마지막 장면이야.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 무대 위를 가득 채운 아이들은 베개를 터뜨리며 그 안에 있는 노란색 색종이를 풀풀 날리지. 극장 천장에서는 어마어마한 양의 연노랑 종이가루들이 쏟아졌지. 와우, 무대가 터졌다는 느낌? 극장이 폭발하는 느낌!!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환타스틱! 멘탈힐링! 언빌리버블!!

 

아이들이 머리 위로 날리는 베개를 보면서 저게 학사모가 아님을 다행이라고 생각했지. 억압이 사라진 아이들의 에너지가 얼마나 크고 밝을 수 있을까. 밀가루와 계란세례, 폭력이 난무하는 졸업식의 새로운 가능성이 보였지. 답답한 예식이 즐거운 춤판으로 변하면 얼마나 환상적일까.

 

아이들은 이제 무대를 벗어나 관객들을 향하더라구. 세상에, 내려와서 뺨에 뽀뽀를 해주더라. 여자아이에게 받은 뽀뽀에 볼이 발그레 해졌어. 계 탔어!! 아이들은 관객들을 하나둘 이끌고 함께 무대 위로 올라가지. 그리고 본격적으로 연강홀은 댄스홀로 대변신!!

나리, 넌 무대 위에 미친 듯이 춤추고 있을 나를 상상하고 있겠지만... 실은 그러지 않았어. 뭐랄까 몸과 맘이 서로 분리되는 느낌이랄까. 내 맘은 무대 위에 있지만 몸이 객석에 머물러 있다는 느낌... 소외된 기분은 아냐. 앉아있지만 참여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었으니까... 하지만 저기 저편의 에너지가 너무 압도적이어서 선뜻 어울리기가 겁이 나더라.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을 통해 내 몸과 맘이 얼마나 묶여있는지 알게 되었지.

예술가의 행복함을 부러워하는 것, 일반인의 동참을 즐거워하는 것, 부러움과 간절함 사이에서 자기만의 표현방식을 찾지 못해 박수만 치고 있는 내 모습이 어색했지. 노란색은 질투의 색깔이라는데, 내 주변에 흩날리는 연노랑은 어떤 감정의 색일까. 그러고 보면, 내 춤은 어떤 것일까 궁금해. 금요일 밤의 춤? 밀실의 춤? 구애와 유혹의 땐쓰? 뮤직 페스티벌에서 고성에 맞춰 흔드는 헤드뱅잉? 내 춤은 스스로의 것이기 보단 군중 속의 춤, 익명의 춤이었던 거 같아. 땐쓰가 그저 즐기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질문하는 인식론이 될 때는 나는 어떻게 답을 찾아야할까. 아아, 너무 멀리왔나.

나리, 이야기가 또 빗나갔네. 정리할게!! 이 무대는 정말 믿기 어려울 정도로 환상적이었고, 즐거웠고, 상쾌했고, 감동적이었고, 살짝 슬펐어. 자, 무대 위에서 벌어진 사건 외에는 이제 그만 입을 다물어야겠지. 그럼 이번에 하지 못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룰게. 다시 돌아올 순간에는 더욱 더 사심없이 춤출 수 있기를 기대하며. 그럼, 안녕!

 

**사진제공 : 두산아트센터
*** <조상님께 바치는 땐스> 리뷰 바로가기 : http://indienbob.tistory.com/486

공연개요 • 일시 : 2012년 2월 24일(금) ~ 2월 26일(일) • 장소 :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 기획/제작 : 두산아트센터 안은미컴퍼니 • 안무/연출 : 안은미 • 출연 : 안은미 정완영 남현우 전수희 김기범 박시한 정영민 한신애 전지예 • 특별출연 : 서울국제고등학교 학생_김다예 서진희 손나래 심다은 곽경민 정효원 김민지 서주영 유시은 이지수 이지은 최예지 손영준 유은선 손한들 홍다솜 이내원 정설향 이어진 김도혁 이주연 *무브먼트 리서치 2010년 서울문화재단 상주예술단체 육성지원사업으로 두산아트센터와 안은미컴퍼니가 만나 공동으로 기획 프로그램을 개발하였다. 다양한 주제와 소재로 한국 현대무용의 영역을 확장시켜온 안은미는 '무브먼트 리서치'를 공연에 접목했다. 움직임워크숍을 통해 몸과 움직임을 탐구, 지금 이 시대의 사회적 현상에 접근하여 공연으로 발전시켰다. 2011년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에서는 할머니들의 몸짓을, 그 연작 시리즈 <사심 없는 땐쓰>를 통해서는 10대들의 몸짓을 살펴보며 몸과 움직임, 개인과 사회에 대해 새로운 고찰을 시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