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3. 19. 12:44ㆍReview
<봉주열차> 퍼포먼스 _ 졸라 웨이팅 포유!
글_ 리경
나는 지난 3월 10일 토요일 ‘봉주열차’를 탔습니다. 작년 여름엔가 술자리에서 처음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 후 대중교통 이동시 상당 시간을 인디밴드 음악 대신 남자 넷의 골방 토크를 들으며 다녔어요. 계절이 지나가고 해가 바뀌는 사이 많은 정치적 사건이 나의 일상 대화의 소재로 침투하였고, 나는 네 남자와 알 수 없는 친근감까지 느끼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단 말이지요. 어떤 사건이 있고 변화가 생겼고, 그 원인을 생각해보고 싶어졌지요. 그래서 나는 ‘봉주열차’에 탔어요. 반은 사심으로, 반은 분석을 위해(라며) 말입니다. 그럼 ‘봉주열차’ 이야기를 해볼까요. 나는 봉주열차가 하나의 공연으로 이해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정해진 공간에서 창작 구성원과 관객이 특정 시간 동안 함께 있잖아요. 그러니 봉주열차를 공연 프레임으로 보겠다고 미리 밟힙니다요. 우선 공연 개요는 이래요.
연출: 나꼼수 측
배우: 나꼼수 3인방, 참여한 모든 사람, 홍성지역 주민, 도로 경찰관
공연비: 3만원 (왕복 열차비, 식사+간식비, 기념품비, 배우와 사진 촬영 및 사인받기 및 신체접촉비)
관람인원: 감으로 추정컨대 최대 천 명
공연시간: 오전 10시 20분에서 저녁 6시까지
아침에 용산역에서 모였는데 잠시 밖에 나갔다가 3인방을 봤어요. 때는 이때다 가까이 다가갔죠. 셋이 이런 저런 짧은 이야기를 나누더라구요. 거리가 있어서 이야기는 엿듣지 못했어요.
홍성역에 도착해 도보로 홍성 교도소까지 걸었어요. 트럭에 3인방 타고 앞장서면 (봉의원 아내 송지영씨는 트럭에서 인사하고 다른 차로 이동했어요) 그 뒤를 참가자들이 함께 걸어갔죠. 걷기 불편한 사람들은 준비된 관광버스를 타고 이동하기도 했어요.
나꼼수 3인방이 면회를 하는 동안 홍성교도소 옆 공터에서 사람들이 모여 있었어요. 물론 좀 떨어져서 담배피고 먹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죠. 이 때 가카쇼도 있었어요. 가카는 정말 깨알같이 많은 스토리를 가졌어요.
기차 안에서 칸 마다 짧은 미니 토크가 있었어요. 세 명의 인사와 김교수의 조현오가 등장하였어요. 내가 있었던 칸에서 마지막 멘트는 “다들 방앗간에서 가서 X까” 였답니다.
이 날 기차가 컨셉이다 보니 은하철도999 철이와 메텔 언니들이 등장했죠. 주기자가 철이 옷으로 갈아입어서 기차에 한 바탕 난리가 났었어요. 어떤 언니가 끌어안는 것도 봤.....
<봉주열차>는 공연으로서 진행의 큰 흐름만 있고 정해진 대사나 구체적으로 약속된 행위가 없는 퍼포먼스였어요. 그 날 봉주열차에 오른 모두가 실시간 일어나는 상황 속에서 했던 말이 대사이고, 한 행동이 행위라고 할까요. 그날 참여한 모두가 배우이자 동시에 관객이었으니까요. 그건 그래요. 공연 내용을 공유하고 있으니 거기에 맞는 연기가 있었겠죠. 나는 김총수를 좋아하는 발랄한 이십 대 여자이면서 리뷰에 어떤 내용을 실을까 호시탐탐 머리를 굴리고 앉아있는 인디언밥 필진 역할을 했어요. 다들 나처럼 각자 역할이 있었을 거예요. 아 좀 시크한 여자로 갈 걸 그랬나 하는 아쉬움도 남네요. 다음에는 캐릭터 연구를 더 해갈까 봐요. 크크.
공연 장소가 기차 안, 역, 거리, 교도소 옆 공터로 비고정적이고 이동 때 줄 맞춰 가는 게 아니니 각자 보고 싶은 데를 보잖아요. 어느 공간에 머무를 때도 각자가 있고 싶은 데 있죠. 모두가 그러니 자연히 여기저기서 예상 밖에 누군가의 말을 듣게 되거나 행위를 보게 되죠. 각자가 정해진 큰 틀 안에서 자유롭게 있으니 서로가 의도대로 또 의도치 않게 영향을 주게 되더라구요. 상호 주체이며 동시에 대상이 되는 거죠. 물론 대상화가 가장 많이 된 건 나꼼수 3인방이었어요. 참여자들이 가장 시선을 주고 싶어했으니까요. 근데 그도 그나마 기차미니토크쇼 때나 홍성교도소 도보이동 트럭쇼 때를 제외하면 셋이 흩어져 있고 어디서 나타날지 몰라 많은 시간을 본 것은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배우와 관객으로서 물리적 마찰 비중은 참여자 모두에게 고르게 나눠졌네요. 아 배우 외에 공간, 시간, 소리, 조도 등 공연의 다른 요소들끼리의 관계 역시 하나로 통일되거나 통제되지 않고 여러 방향으로 시시각각 교류가 일어났어요. 그걸 느끼는 건 꽤나 즐거웠답니다. 특히 아침 기차와 오후 기차는 참 달랐어요. 네. 결론적으로 기차타고 밥 먹고 수다 떨고 걷고 웃고 소리 지르고 졸고, 하여간 잘 놀았죠.
<봉주열차> 공연에 배우이자 관객으로서 나는 무척 열린 마음으로 있었어요.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이 그랬던 거 같아요. 의무감으로 온 사람은 거의 없었을테니까요. 그래서 배우의 역할까지 수행하는 능동적인 의미에 관객 참여가 일어났죠. <봉주열차> 공연에 이런 참여가 일어난 것은 물론 <나꼼수> 방송에서 발생한 것이지요. 그럼 이제 <봉주열차>를 더 이해하기 위해 <나꼼수> 이야기를 해봐야 겠네요. <나꼼수>는 어떻게 청자로 하여금 마음의 문을 열게 만들었을까요.
나는 <나꼼수>에 관심이 쏠린 건 팟 캐스트라는 새로운 매체의 영향도 크지만 그것 이상으로 나꼼수 4인방이 모여서 ‘졸라’ ‘즐겁게’ ‘떠들기’ 때문이라고 봐요. 왜 사람들 모여서 즐겁게 놀고 있으면 겉으로 티를 내든 안 내든 일단 관심 가잖아요. 그러고 보니 그 넷이 한 회당 박장대소만 몇 번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봉도사가 빠진 이후로도 봉도사 웃음은 계속 삽입하고 있죠) 그것도 좀 크게 웃어야지요. 크게 소리내어 웃는 게 예의 범주에서 벗어난다고 무의식적으로 학습 받은 거 같은데, 세상에 귀가 떨어지겠어요. 예의 차리는 억압이 없어요. 이런 대상들을 향한 관심은 내가 별로 안 즐거운 상태라면 더 가겠죠. 음 쟤네는 뭐가 그렇게 즐거워서 자지러지는 거지. 졸라 낄낄대네. (사이) 나도 즐겁고 싶은데 씨바. 그리고는 일단 들어보는 거예요. 근데 말이죠. 듣다보면 뭔가 이상해요. 넷의 캐릭터가요. 흔히 깬다고 하죠. 다시 말해 기대했던 이미지 밖의 뭐가 나오는 거예요. - 그 다음 정봉주 의원. 전 국회의원이라는 데 당최 무게 잡을 줄을 몰라요. 진지함으로 오분 이상 이야기를 - 그 다음 주진우 기자. 소위 앙마기자죠. 불의를 보면 불끈해서 감정 격해지고 한 번 물은 거에는 악착같이 - 마지막으로 김용민 교수. 시사평론가래요. 근데 먹보에 화장실 들락날락하며 X싼 경험담을 늘어놓아요.
- 일단 김어준 총수. ‘딴지’ ‘일보’ ‘총수’라는 안 어울리는 세 단어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타이틀에서부터
뭔가 느껴지죠. 논리적이고 분석적이고 시원하게 할 말하고 정리 잘하는 예언의 왕이죠. 해박한 지식인
냄새가 나요. 근데 욕하는 거하며 시시껄렁해요. 미남인데 전인권 헤어스타일에 덥수룩한 수염.
딱 털보 어느님이죠.
끌고 나가지를 않아요. 게다가 BBK 저격수라는 정의에 찬 정치인이 자기 자랑을 엄청 쏟아내는 데 그
내용하며 초딩 같아요.
달려드는 기자인데 수줍고 부끄러워해요. 나쁜 인간을 때려주고 싶어하는 터프함 이면에는 누나들이
좋아하는 말랑한 부드러움이 있죠.
목사님 아들인 게 무색하게 X까를 시작으로 수도 없는 욕과 성대모사를 일삼죠. 근데 또 한편 옆집 아저씨
처럼 수수하잖아요.
청자들은 이런 캐릭터에 익숙해지면서 점점 재미를 느끼게 되요. 더불어 사회적 가면을 쓴 이미지로 고정되지 않고 자연인 자체의 모습이 더해지면서 입체적인 캐릭터로 자리 잡게 되요. 언론인, 정치인, 기자, 교수인 누가 아니고 그냥 청자와 같은 ‘한 사람’ 같은 거죠. 그리고 이에 더해 청자의 마음을 더욱 열리게 하는 건,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는 내가 알아먹겠는 거지요. 정치에 문외한이었던 사람들조차 회를 거듭할수록 무슨 말인지 감이 오고 이해가 되기 시작해요. 일상에서 나누든 말처럼 이야기하고 전문적인 용어는 배제 되요. 정보가 쏟아지거나 배경지식이 필요하면 여러 차례 맥락을 설명해요. 사람이 누군가의 말을 듣고 이해가 가기 시작하면 상대와 교감이 생기잖아요. <나꼼수> 청자들은 그런 교감을 시작으로 시간이 지나면 <나꼼수>에 소속감을 느끼게 되요. 이 과정에서 의식적으로 정리하지 않더라도 화자의 소통의지를 전달받고 청자로서 배려 받는다는 느낌을 갖게 되지요. 또 하나, 나는 찾아볼 시간도 여력도 없는 정치판 돌아가는 이야기들을 알려주죠. 내용의 진실 허위 여부를 떠나 정치에 관한 지적 호기심을 졸라 자극해요. 그리고 김총수가 정치적 억압에 무기력함을 느끼는 사람들을 향해 날리죠. 쫄지마 씨바.
이런 과정을 거쳐 듣는 나에게는 일종의 해소가 일어나요. 왜냐면 듣는 사람은 자기 마음속에 자기도 몰랐던 무언가가 건드려지는 느낌을 받거든요. 그동안 필요했지만 부재했던 터치를 통해 쌓인 스트레스가 슬슬 꿈틀거려요. 그리고 거기에는 이제껏 왜 몰랐냐라는 비난도, 그럼 이제 더 알아보라는 숙제도, 알았으면 이렇게 행동을 하라는 지시도 없어요. 들어보고 관심 있으면 같이 즐기자 라는 태도죠. 같이 낄낄대자. 같이 까자. 같이 극복하자. 꼼꼼하게 깨알 같이.
저 쪽이 나를 존중해오면 나도 저쪽을 수용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싶어지죠. <봉주열차> 공연은 그런 자발적 참여가 상당히 발현된 경우의 공연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자발적으로 참여한 개인들의 모임은 아니 즐거울 수 없지요. 공연장이 그런 공간이 되면 너무 신나겠지요. 나와 어느 부분을 (그것이 취향이든 사상이든 직업이든 뭐든) 공유하는 사람들이 특정 장소에 모여서, 함께 어떤 감정을 나누고 있다는 경험은 일상의 의무 공간에서는 맛 볼 수 없는 무엇이 있죠. 공연이 이런 맛있는 경험을 준다면 너무 좋을 거 같아요.
요즘 세상이 워낙에 흉흉하잖아요. 소통하기 뻑뻑하고요. 나와 내 주변 사람들, 내가 보는 사람들은 돈 벌어야하고 경쟁해야하고 입 다물어야하는 일상에 노출되어 있답니다. 뭉칠 자유, 표현할 자유, 놀 자유는 봉도사처럼 교도소에 수감상태지요. 나는 공연이라는 방식이 억압받는 답답함, 교감하고 싶은 인간의 근본적 욕구를 거세당한 무력감을 해소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기본 사람들이 공연장에 갈 때는 다른 곳보다 마음을 열 준비를 하고 가잖아요. 마음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소통이 일어나는, 그래서 내 속에 눌린 무엇이 표현되는 공간을 지금의 관객은 기대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것이 누르는 자들을 향한 눌린 자들의 저항이 될 수 있겠죠.
김총수는 특정 정치인을 향해 “졸라 웨이팅 포유!”를 날렸지요. 그 정치인이 누군지는 말 안할게요. 혹시 모르잖아요. 난 벌금 낼 돈도 없고 감옥은 더더군다나 무서워서...... 나는 김총수가 이 말을 날린 대상과의 관계처럼 싸우고자 하는 전투력을 담은 건 아니에요. 같이 놀고 싶어서, 내가 혼자가 아니고 또 내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이며 관객으로 함께 즐기는 시간을 뜨겁게 기대하며 (활짝 웃음 이모티콘) 대사 갑니다요.
오늘도 밤낮없이 소통을 고민하는 창작자님들이여,
졸라 웨이팅 포유!
*사진촬영
photo = yangchigi (위에서 1,4,5,6)
photo = pippifatal (위에서 2,3)
필자소개
리경_ queen0225@ymail.com "맥락있는 대화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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