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6. 18. 03:48ㆍFeature
유하 (流河, 흐르는 강물처럼)
글_김지인
그랬다. 결혼은 서른 넘어서 할 거라고.
그랬다. 결혼은 하더라도 아이는 낳지 않고 여행을 다니며 살 거라고.
그러나 내 나이 서른 둘, 벌써 내 앞엔 4개월이 된 아들이 잠을 자고 있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결혼을 했지만, 아이를 갖는 것은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남편과 함께 평생 여행만 하면서 살 거라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힘주어 말했고, 비슷한 해에 결혼한 친구들이 아이를 낳았을 때도 곧 아이에게 발이 묶일 그들의 인생이 조금은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연출가 레프 도진의 작품 <바냐 아저씨> 배우들과
결혼한 지 3년쯤 되던 어느 날, 친한 언니의 남편이 출연한 공연을 보러 갔다가 공연장에 함께 나온 언니와 그 아들을 보게 되었다. 엄마를 보며 쌩긋쌩긋 웃는 그 아이가 그날따라 어찌나 예쁘던지, 남편과 나를 닮은 아이 하나 남기고 세상을 떠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조금은 충동적인 생각을 하던 그날. 그날 이후로 우리의 삶은 달라졌다.
임신을 하고 보낸 10개월(예정일을 꽉 채우고 다음날 새벽에 나왔으니 진짜 10개월이다.)을 대수롭지 않게 보내버렸다. 나는 흔히들 말하는 ‘워커 홀릭’에 가깝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기 때문에 일하는 대부분의 순간이 행복함에도 하루 중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평균 12~14시간 정도임을 생각하면 그렇게 바람직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직업의 특성상 공연 일은 밤 늦게까지 일이 많고, 주말에도 자주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임신한 여자에게 쉽지 않은 환경이었고, (공연장에서 일한다는 건 일반 직장인들과 비슷한 시간에 일을 시작해서, 공연하는 사람들과 같은 시간에 일을 끝내야 하는 일종의 투 잡을 뛰는 것과 같다.)
임신한 여자 티를 내는 것이 싫어 출산 일주일 전 회사를 쉬기 전까지 임신하지 않은 것처럼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태교는 어차피 봐야 하는 공연을 보는 것으로, 운동은 겨우 퇴근 후 15분 정도 걷거나, 주말에 백화점이나 마트를 도는 것으로 대신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토비손(태명, 닌텐도 Wii의 남편 아바타 이름인 ‘아나토비’에서 ‘토비’를 따고, 아이슬란드 식으로 아빠 이름에 ‘son’을 붙여서 ‘토비손’이 되었다)이었던 아들에게 참으로 미안하다. 이렇게 예쁜 아들이 자라나고 있던 그 소중한 시간들을 내 욕심으로만 살지 않았어야 했는데 말이다.
힘들었지만 빠르게 10개월이 지나가고, 2012년 2월 21일 새벽 5시 49분 ‘토비손’은 ‘유하(남편이 지은 이름이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라고 ‘흐르는 강물처럼’이란 뜻을 담았다.)’가 되었다. 유하는 3.89kg으로 아주 크게 태어났다. ‘신의 선물’이라는 무통 주사를 맞을 겨를도 없이, 어떠한 의학의 힘을 빌리지 않고 나는 아들을 낳았다. 포크레인이 배 위로 지나간 것 같았다던 친구의 말처럼, 콧구멍에서 수박이 나오는 것 같다는 어떤 이의 적절한 비유처럼, 진통 시간은 비교적 짧은 5시간이었지만, 정말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그 시간을 나는 기절과 고통을 수없이 반복하며 보냈다.
▲ 태어나자마자, 유하
“그래도 뱃속에 있을 때가 젤 편하다.”고 출산 보름 전에 엄마가 말씀하셨지만, 무려 18kg이나 증가한 몸무게로 뒤뚱뒤뚱 걷던 나는 그래도 아이가 나오면 몸이 무겁진 않으니까 살만 할거라 생각했다. 임신과 출산 과정 중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들은 보냈으리라 믿었던 나의 기대는 병실로 돌아가면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출산의 고통에 대해서는 적절한 비유들도 그렇게 많던데 왜 산후 조리 과정에 대해서는 아무도 그럴싸한 말들을 만들어내지 않은 걸까. 아기가 4kg 가까운 무게로 나왔음에도 3kg 밖에 빠지지 않은 몸무게, 새로운 기능을 하기 시작하며 통증을 부르는 두 가슴과 제대로 앉지도 설 수도 없게 미치도록 아팠던 회음부, 성공적인 모유 수유를 위해 4시간 간격으로 먹어야만 하는 미역국, 1시간마다 아직 나오지도 않는 젖을 먹으며 울어대는 신생아. 이 모든 것들은 상상의 영역 밖에 있던 것들이었다.
그렇게 병원에서 3일, 산후조리원에서 2주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첫 날, 나는 눈물로 밤을 보냈다. 출산 후 2달 정도까지는 혼자서 살림하며 아이를 키우기 어렵다는 말에 오전 10시에 출근하여 오후 7시에 퇴근하는 산후도우미를 불렀다. 엄마나 어머님이 함께 지내셨다면 조금 덜 힘들었겠지만, 그럴 수 없는 사정으로 산후도우미가 퇴근한 오후 7시부터 남편이 집에 오는 오후 11시 전까지는 내가 혼자서 아이를 봐야 했다. 지금이야 4시간은 별 것 아니지만, 태어난 지 2주 밖에 되지 않은 신생아와 출산한 지 2주 밖에 되지 않았던 내가 단둘이 보내야 했던 첫 4시간은 절대 서로에게 만족을 줄 수 없었던, 고통 그 자체였다.
▲ 생후19일째 되던 날 유하 (태어날 때부터 머리 숱이 남들보다 월등히 많아 성숙미가 넘쳤다)
눈물로 시작되었지만 동시에 너무나 행복했던 우리의 동거는 얼마 전 100일을 맞이하였다. 길고도 짧았던 100일은 나의 회복을 기다린 시간이기도 했고, 이 작은 생명이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보냈던 시간이기도 했으며, 우리가 만나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기도 했다.
120일이 되어가는 유하는 이제는 엄마 얼굴을 보며 웃어도 주고, 옹알이로 제법 말 같은 소리를 하며 대화하기도 한다. 자고, 먹고, 싸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던 이 아기는 누워있는 게 싫어 안아달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머리 위에 달린 개구리 인형의 다리를 붙잡고 소리 내어 웃기도 하고, 안고 돌아다니다 잠깐 걸음을 멈추기라도 하면 다시 움직이라고 끙끙대기도 하며, 자신의 호불호를 분명하게 표현하기 시작한다. 하루가 다르다는 말을 실감하게끔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아이에게 매 순간이 얼마나 중요한 지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행복해진 아이와의 시간들은 출산휴가가 끝이 남에 따라 더욱더 소중해지고 있다.
▲처음 개구리 다리를 잡던 날
▲100일 사진 찍던 날
(분명히 남자들이 결정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3개월의 출산 휴가(기본 3개월에 나는 연차를 끌어다 써서 4개월을 받았다)는 이제 끝이 나고, 지난 금요일 나는 회사에 컴백하게 되었다. 공연하는 다른 사람들은 스케쥴이 불규칙해서 아이와 함께 보낼 시간들이 생긴다던데, 불행하게도 공연장은 일반 회사 일과 공연 일을 모두 한꺼번에 하는지라 복직한 나에게 과연 아이와 함께 할 시간이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두 눈을 반짝반짝 함께 있어달라고 말하는 듯한 아이를 떼어놓고 출근하며 처음으로 내가 하는 일이 행복하지 않았다. 평일도 주말도 휴가도 없이 바쁘기만 할 테지만 부족한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선 지금보다 훨씬 부지런을 떨어야만 할 것 같다. ■
필자소개_ 인디언밥에서는 문화예술계에서 종사하는 여러 엄마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기 위해 이번 달에는 극장 공연기획팀에 있는 김지인님의 글을 싣습니다. 이 글을 쓴 유하엄마는 연극원을 졸업한 후 문화다움, 명랑씨어터 수박을 거쳐 현재는 LG아트센터에서 7년 째 근무 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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