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9. 4. 12:58ㆍReview
인천시 부평구 갈산동 421-1, 콜트․콜택전시회
김민승
ⓒ 전진경
벽화 속 기타를 둘러맨 낙타의 표정은 호기롭기도 하고 처연하기도 하다. 실내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금연’ 대신 ‘금연따위’라는 표지도 그려져 있다. 굽이진 낙타의 등은 두 개의 산등성이가 되었다. 보잘 것 없는 텐트 하나가 그 굴곡의 한 봉우리를 마치 점령이라도 하듯 세워져 있다.
전진경은 이곳 콜트․콜텍 공장을 스쾃(squat)하면서 마련한 작업실 벽면을 <여기 짐 좀 풀게요.>라는 작품으로 채워놓았다. 쉽지 않았던 스쾃 과정을 거치면서도 낙타의 여유를 드러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이 여유는 이들의 여정이 즉흥적이거나 일시적이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당찬 발걸음을 내딛으리라는 희망을 느끼게 한다.
인천시 부평구 갈산동 421-1. 이곳은 2007년 7월 노동자들이 부당해고된 뒤 2008년 1월부터 폐쇄된 콜트․콜텍 공장이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이 빈 공장을 떠나지 못한 채 2000일 동안 투쟁을 지속해왔다. 지난 2월 23일, 대법원은 정리해고가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회사측은 법도 무시한 채 5월 31일 노동자들에게 2차 해고를 통보했다. 콜트․콜텍은 애초에 경영악화를 이유로 노동자들을 정리해고 했지만 이 회사는 세계 기타 시장을 30% 가량 점유하고 있으며 차입금 의존도 0%의 건실한 회사로 성장했다. 회사가 이들을 정리해고한 이유는 간단하다. 오랫동안 함께 해오며 성장의 주역 노릇을 한 노동자들 대신 값싼 인건비에, 노조도 없는 해외 공장을 세우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투쟁에 동참하는 의미로 성효숙, 전진경, 정윤희, 상덕, 황승미, 등의 입주작가가 점거에 들어갔으며, 총 19명의 작가와 그룹 빨간뻔데기, 약손을 가진 사람들 등이 함께 참여하는 <인천시 부평구 갈산동 421-1 콜트콜텍전시회>를 7월 15일부터 30일까지 열게 된 것이다.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는 한낮에 방문했지만 콜트․콜텍 공장 안은 고요한 어둠이 감돌았다. 이 어둠은 열악했을 작업장의 조건을 떠오르게 하는 동시에, 오래도록 가동이 중지된 공장에 쌓인 세월의 더께를 실감케 했다. 이들은 가동이 멈추었을 때 함께 멈춘 달력과 시계들을 여기저기서 가져와 한 벽에 모아두고, 6년 동안 쌓인 먼지를 긁어모아서 ‘안녕하세요’라는 글자를 바닥에 만들기도 했다. 공장 안의 시간은 멈추었지만 여전히 또 다른 방식으로 시간은 흐르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끝’을 알리는 해고 통보가 투쟁과 연대의 ‘시작’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끝과 시작의 교묘한 겹침은 <지속가능하지 않을 장소특정적 종합사유지>라는 제목의 배은영 ․ 김욱 2인전으로 이어진다. 전진경의 작업실 옆방인 이들 2인전의 공간으로 들어서면 캐비닛과 안전모, 환풍기 등을 흙으로 채우고 그곳에 화초를 심어놓은 것들이 눈에 띈다. 끝나버린 공장, 을씨년스러운 사무실은 화초라는 새로운 시작의 텃밭이 되어버린 셈이다. 이 사무실 텃밭 안쪽에 딸린 작은 방으로 들어서면 김욱 작가가 몇 년 전부터 추진해오고 있는 작업 <어쩌다보니 아마도의 나라> 프로젝트를 볼 수 있다. 이곳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작품상호부조예약증명서약서’들은 소유의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품게 만든다. ‘어쩌다보니’와 ‘아마도’가 의미하는 카오스와 불확정성은 소유라는 명목으로 긋는 경계선들에 본격적으로 의문을 제기하고 그 허상을 짚어준다.
ⓒ 김민승
화초 심기가 공장 공간의 내적 의미를 변주시킴으로써 장소특정적인 작업을 이루어냈다면, 전진경의 작업은 공장 공간의 외적 특성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장소특정성을 구현하였다. <멋진 걸 보여줄게_빈 공간을 달라>는 공장에 버려져 있던 환풍기 철조 구조물을 액자로 삼아 죽은 노인과 갓 태어난 아이를 전시한 작품이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두 개의 비슷한 공간이 마주 보고 있으며 각 공간의 가운데 바닥에 관처럼 생긴 구조물이 하나씩 놓여 있다. 한쪽은 죽음을, 그리고 다른 한쪽은 탄생의 그림으로 채워져 있는데, 이 역시 끝에서 움트는 새로운 시작이라는 의미를 떠올리게 한다. 또 한 명의 터줏대감 성효숙의 작품 <진혼>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작업화 22켤레를 꽃으로 장식하여 모아둔 것이다. 22명의 사회적 타살, 그리고 노동의 문제가 낡은 신발을 통해 가슴으로 전해진다. 먼지가 뽀얗게 쌓인 계단을 지나 2층으로 올라서면 푸르죽죽한 조명이 어둡게 비추는 황량한 방에 들어서게 된다. 정윤희는 이 방 군데군데에 콜트 작업복을 걸어놓았고 그 위로 영상이 스치듯 투사하게 만들었다. 조명 때문에 마치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듯 보이는 작업복들은 폐쇄된 공장 안을 유령처럼 맴돌 수밖에 없는 콜트콜텍 노동자들을 나타내는 것이리라. 정윤희는 콜트콜텍 노동자 3인인 방종운·심자섭·이인근 씨와 함께 콜트 투쟁사를 연대기식으로 설치하기도 했다. 공장 3층 전체를 채운 빨간뻔데기의 작업은 마치 되돌아나가는 길을 찾기 위해 나무에 리본을 묶어놓는 것처럼 공간을 활용했다. 즉 3층의 작업들을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면 그것들이 전체적으로 하나의 지향점을 향해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는 말이다. 커다란 빈 방에 덩그러니 놓인 의자, 삭막한 공간 안에 생뚱맞게 놓여있는 신선한 과일, 바닥의 먼지를 긁어모아 만든 먼지 산, 천장에서부터 늘어진 채 거미줄처럼 엉겨있던 전선들. 각각의 작업은 관람객들에게 특별한 행위를 하도록 요구한다. 과일을 먹어본다든지, 음악을 들으며 거울에 비친 나를 들여다본다든지, 작은 구멍을 통해 저 너머에 놓여있는 인형을 바라본다든지. 이 행위들은 모두 흑백 정지영상과도 같은 이 공간을 컬러풀하게 살아있는 장면으로 만들어준다. 그리고 이들을 차례로 따라가다가 보면 3층의 마지막 출입구 문에 적혀 있는 이 시를 만나게 된다.
ⓒ 김민승
3층 전시에서 우리가 볼 수 있었던 것들은 모두 가동이 중지된 시점 이후에도 이 공장을 지키고 있던 것들이다. 혹은 가동이 중지되었기 때문에 비로소 보이게 된 것들일 수도 있다. 관객들은 휑한 3층 전시장에 간간이 놓여있는 이들 작업들을 마치 퍼즐 조각들을 하나씩 맞추듯 만난다. 그리고 마지막 출입문에 다다르면 이 퍼즐 조각들이 단순히 버려진 공장과 흘러간 시간, 박탈당한 사람들로만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된다. “사실은 가까운 당신”, 이것은 이들 전시가 보여주는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다. 이것은 우리를 조금 움찔하게 만들고, 문을 닫기 전에 다시 뒤돌아 이전의 퍼즐 조각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조각이다. 그 불편함을 안고 올라선 4층은 다른 층에 비해 유달리 밝았다. 창문을 막아두었던 가리개를 뜯어서 <코끼리>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 김민승
이 광경을 보면서 지난겨울 반FTA 집회의 물대포와 촛불을 떠올린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니리라고 본다. 물대포는 버려진 공장 안에서 코끼리가 되었다. 무고한 사람들을 겨눈 총구에 꽃을 꽂아본 사람도 있다지만 그래도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총을 아예 꽃으로 바꿔버린다면? 그것은 아마도 가장 적극적인 의미의 공격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코끼리가 되어버린 물대포와 촛불은 어찌 보면 가장 적극적인 의미의 저항일 수 있다.
작가 상덕은 일단 코끼리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떠올리고 나서, 재료를 모으고 가리개를 뜯어서 만들자는 계획을 세운 것이 아니다. 4층에 올라섰을 때 외부의 모든 빛을 인위적으로 막은 채 형광등 불빛에만 의존하여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을 노동자들을 떠올리며 우선 창문의 가리개 구조물들을 뜯어냈다고 한다. 무엇을 만들지는 그 이후에 떠올린 것이다. 다른 작가들의 작업도 이러한 전개 과정을 거친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이 과정은 콜트․콜텍전 전체에서 느껴지는 묘한 이끌림을 설명해줄 수 있을 듯하다. 바로 참여 작가들이 이 공간에 대해 가지는 절실한 무언가가 먼저 이들의 작업을 이끌었기 때문이 아닐까? 작가의 닫힌 내면에만 머무르다가 억지로 끄집어낸 무언가를 환경과 조합하는 과정이기보다는, 일단 환경과 세상, 사람을 둘러보면서 그 와중에 자연스럽게 자신의 내면과 만나게 되는 과정, 그것이 콜트․콜텍 전시회를 이끌었고 관람객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 가장 중요한 요소이지 않았을까?
그런 점에서, 콜트 ․ 콜텍 전시회의 의미를 가장 집약적으로 설명해주는 개념은 장소특정성(site-specificity)일 것이다. 장소특정적 미술의 ‘장소’는 결국 맥락을 의미한다. 왜 하필 그 공간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반영이 있지 않은 채 단지 장소만 미술관 이외의 공간인 것은 장소특정적 작업으로 불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이 움켜잡은 절실한 맥락은 반짝거림이나 완성도 등의 일반적인 가치로는 재단할 수 없는, 그 자체로 작품을 이루어낼 수 있는 고유의 가치인 셈이다.
공식적인 전시는 한참 전인 7월 30일에 끝났지만 여전히 이들의 스쾃은 지속되고 있다. 인천시 부평구 갈산동 421-1, 궁금하신 분들은 지금이라도 한 번 방문해 보시길. ■
김민승 _ 지독한 왼손잡이 글쟁이입니다. 연극은 보는 것보다 만드는 게 더 좋지만 게을러서 결국 둘 다 잘 안 합니다. @minsk_im |
부평구 갈산동 421-1콜트콜텍展 2012_0715 ▶ 2012_0725초대일시 / 2012_0715_일요일_03:00pm 참여작가 김강김윤환_김수연_김성건_김욱_류우종_박정신_백경신 빨간뻔데기_성효숙_상덕_신혜원_약손을 가진 사람들_이대일 이윤정_이훈희_음정희_정혜원_전진경_정윤희_전미영_황승미 관람시간 / 10:00am~10:00p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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