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9. 10. 10:10ㆍReview
안 좋을 때 들으면 더 안 좋은 무엇
<런닝머신 타는 남자의 연애갱생 프로젝트>
공상집단 뚱딴지 Playunit Ddongdanji
글_유햅쌀
불면증에 시달리는 한 회사원을 만나기 전날, 헤어진 옛 그에게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자니…?”
혹시라도 거리를 걷다가 그와 마주친다면 시원하게 욕 한바가지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한심하게 전화통화가 달가운 것을 보니 난 아직 이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나 봅니다. 그의 얼굴도, 목소리도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순간 잊고 싶었던 모든 것이 떠올랐어요. 별다른 이유 없이-물론 이유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만나 ‘추억 팔이’를 시작해야 했습니다. 현재도, 미래도 아닌 과거만을 나누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지요.
당신 말처럼 “생각 때문에 최초의 질문을 잊어버리고” 당신처럼 ‘불면증’에 시달리며 당신의 일상처럼 눈뜨고 물마시고 세수 하고 신문 읽고 아침 먹고 양치하고 옷 입고 밖으로 나가는 보통의 무엇으로 돌아왔습니다. 익숙했던 그는 여전히 내 곁에 없었어요. 대신 잔업과 월요일만이 메아리처럼 몰려옵니다.
런닝머신 타는 당신은 (아마도) 승무원이었을 ‘민정’이라는 여인과 길고 긴 오랜 연애 끝에 헤어짐을 맞이했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나야 늘 떠나지. 떠나는 게 내 직업이니까” 외치고 그렇게 가버렸나 봐요. 춤추고 웃으며 떠나는 여러 명의 ‘민정’이는 당신을 더 피곤하게 만듭니다. 떠나간 그녀에게 전화를 할까 말까 깊은 고뇌의 수렁에 빠지고 말지요.
그러고 보면 그도 나와 같아요. 그는 나를 잠시 놓아두겠다고 하더니 진짜 놓아버리더라고요. 물론 서로 이별한 시간이 다르니 이별의 온도는 다르겠지만, 아무튼 당신과 나는 비슷한 문제와 사실을 맞이했습니다. 님의 문제는 불면증, 월요일 아침-그러니까 그의 말에 따르면 1674번 째 월요일 더하기 이별 후 두 번 째 월요일. 할 일 없는 주말. 그리고 오랜 연애 끝에 이별을 맞이했고 반복되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고 4년 간 회사를 다니고 있다는 사실. 메아리처럼 후유증이 몰려옵니다.
회사원인 님에게 어쩌면 “선물은 할부로 사는 게 아니었”고, “주말에 쌓인 업무가” 오다가 미사일처럼 영업 2팀으로 넘어갔다가, “되…되…되돌아 온” 그 후유증 같은 일상을 버티는 것은 오로지 점심시간뿐일지도 몰라요.
의자 4개와 탁자 2개 단출한 살림살이 속에서 헤어짐을 맞은 당신은 ‘문제’와 ‘사실’이라는 두 명의 내면과 함께합니다. 이들 세 남자-사실은 한 남자일 것입니다-는 후유증에 대해, 메아리에 대해 끊임없이 중얼거립니다.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사실인지, 사실이 문제인지 문제인 것이 사실인지 모를 애매한 상태에서 중얼 중얼 중얼 중얼 중얼 말하다 보면 어느 새 메아리처럼 질문에 질문에 질문에 이르다가 이별한 현실에 다다르게 됩니다. 단지 그녀가 없을 뿐인데. 집도 회사도 단조롭기만 하네요. 의자가 침대가 됐다가 식탁이 됐다가 싱크대가 됐다가 하는 그 간소한 무대 속에서 당신과 사실, 문제 두 남자, 총 세 남자-한 남자의 이별 후유증은 짙어져만 갑니다. 당신의 패턴화 된 삶은 무미건조하다 못해 바스러질 것만 같았어요.
수면유도제를 먹어야 간신히 잠이 드는 당신. 결국 헬스를 하기로 결심합니다. 할 일 없는 주말, 운동이나 하기로 마음먹은 것이지요. 런닝머신 위에서 뛰고 뛰고 또 뛰면 생각을 멈출 수 있을까요? 그렇게 당신과 문제와 사실 세 남자는 연애 갱생 프로젝트에 돌입하게 된 것이죠.
그런데 좀처럼 문제는 해결 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무슨 생각해?”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없습니다. 다만 “왔으면 떠나야 하는 데 떠나질 않는다”라는 대답만이 메아리처럼 남아요.
문제는 님의 후유증이 오직 님만의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회사 내에서 만년 대리를 맡고 있는 눈치 없는 직장 동료는 입사 몇 년 차인데도 아침 운동 동작을 외우지를 못했어요. 게다가 회사 동료들은 그를 무시하기만 하니 외롭기만 하고요. 당신을 피곤하게 만드는 직장 상사의 아내는 또 어떤가요. 영문과를 나온 본인이 있으니 유학 같은 건 필요 없다고 해도 아내는 자꾸만 아이들 해외 조기 유학을 보내야겠다고 보챕니다. 임직원들마저도 편치는 않습니다. 유명한 위에 분 누군가를 사적으로 만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느냐 아니냐를 두고, 노처녀인데다 여성스럽지 않다는 이유로, 타사와 끊임없이 제품 경쟁에서 이겨야 해서 옴팡지게 스트레스를 받나 봅니다. 하루 온종일 다투기만 하던걸요. 음. 그러니까 우리들에게도 당신처럼 사실과 문제가 충돌할 때 생기는 온갖 질문들이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나 봐요.
이들의 일상 후유증은 회사 신제품 PT 자리에서도 자꾸만 맴돕니다. 런닝머신 타는 남자, 당신이 야심차게 준비한 신제품, ‘나아질 수 있다! 힐링워터!’
이 제품이 출시되면 무엇이 좋을까 묻는 윗선들의 질문에, 님은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나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아프고 모두가 병들었습니다.”
“그럼 대체 자네는 누가 힐링해주나?”
“전 괜찮습니다…!”
네? 당신이 괜찮다고요? 뭐든지 꾸준히 노력하면 되니까 런닝머신도 꾸준히 노력해서 타면 되니까 괜찮아질 수 있다고요? “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 런닝머신 타는 당신을 보니 괜찮지가 않은 것 같아요. ‘힐링워터’ 그깟 것 마신다고 이 후유증이 치유가 되나요.
무대 한복판에 어느 순간 딱 놓인 런닝머신 속도가 빨라질수록 당신의 감정은 폭발하더군요. 그 폭발하는 감정이 그 순간뿐이란 걸 잘 알아요. 미친 듯이 뛰고 또 뛰면서도 당신의 문제와 사실 때문에 괴로워하던 당신을 보니 편치가 않더라고요. 나도 사실 아직도 괜찮지가 않아요. 그러니까 당신처럼 옛 그에게 전화를 할까 말까 고민하고, 또 당신 동료들처럼 밥보다 스트레스를 더 많이 먹고 사는 그런 처지거든요. 물론 나도 괜찮은 척 태연한 척 했지만 구남친으로부터 “자니…?” 전화를 받은 이후로는 중얼 중얼 중얼 메아리만 돌아와요.
아마도 런닝머신에서 지쳐 넘어진 당신은 아무렇지 않은 척 일상으로 돌아올 테고, 그래도 메아리는 한동안 끝나지 않을 테지요. 운동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당신은 런닝머신이 점점 느려지다가 멈출 때처럼 점점 나아 질 거라고 믿겠지만 말이죠.
아. 모르겠어요.
힐링워터를 마시면 우리는 그 메아리에서 해방될 수 있는 걸까요.
당신, 아니 당신들, 그리고 저에게. 이 노래 한 곡 바칩니다.
형돈이와 대준이가 부릅니다. <안좋을 때 들으면 더 안좋은 노래>
아참, 그리고.
당신에게서 받은 질문이 아직도 메아리처럼 돌아와. 늘 똑같은 일상처럼.
“김밥은 옆구리가 터져도 김밥이란 말이지. 근데 내 옆구리가 터지면 난 더 이상 내가 아니란 말이지. 왜 그런 줄 알아?”
****사진제공 : 서울프린지페스티벌
필자_유햅쌀 소개_시트콤같은인생살이를위해, 재미진무언가를찾습니다. 인간은유희적동물이니까요. |
서울프린지페스티벌 - 런닝머신 타는 남자의 연애갱생 프로젝트 THE LOVE-RELIANCE PROJECT OF MAN RIDING A TREADMILL 공상집단 뚱딴지 Playunit Ddongdanji 제작진 : 황이선, 김태진, 현창조, 이소희, 송계생, 김묘진 출연진 : 이우진, 한상훈, 윤광희, 박영기, 김형섭, 안영주
기획의도 넘어져 우는 아이에게 사람들이 묻는다. "괜찮니?" 아이는 그제서야 울음을 터트린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잘 넘어지지도 않지만) 넘어진다고 해서 주저 앉아 있을 수 없을뿐더러 울 시간 조차 없다. 툭툭 털어 주변을 둘러봐도 아무도 없다. 창피함이 앞선다. 그럴 때, 누군가 마음을 다해 묻는다. "괜찮아요?"라고. 이미 괜찮지 않을 때 묻는 이상한 질문이지만, 모두들 의례적으로 똑같은 대답만 한다. "네, 괜찮아요."라고. 공상집단 뚱딴지는 <런닝머신 타는 남자의 연애갱생 프로젝트>라는 긴 제목의 이번 공연이 "넘어진 우리에게 괜찮은 질문과 답이 되길" 바라고 있다. 시놉시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회사는 4년 차, 연애는 4년 동안 했다. 무엇이든지 꾸준히 오래해야 한다는 것이 신조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할 수 있다'는 말이 먼지처럼 쌓이더니 결국 구름만해져 남자의 주변을 서성거린다. '사랑한다'는 말은 메아리처럼 되돌아오더니 사랑했던 그 여자, 결국 메아리처럼 사라져갔다. 사람들은 그에게 괜찮냐고 묻는다. 괜찮다는 대답 대신, 그는 운동을 시작한다. '나아지고 싶다'는 마음으로. 아마도 결국 그는 나아질 것이다. 이 남자가 올라간 런닝머신이 시간이 지나면 분명히 멈추는 것처럼.
공상집단 뚱딴지 - 홈페이지 : http://www.facebook.com/ddongs21
공상집단 '뚱딴지'는 연극성을 담고 있는 과감한 이야기를 토대로 하여 실험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모색하는 연극단체이다. 이들은 "풍부한 연극성을 지닌 이야기 속에서 실험성과 대중성이라는 상충적 요소가 서로를 영리하게 보완한다면 기존에 없던, 전혀 새로운 연극의 탄생이 가능하다"고 굳게 믿고 있다. 대본 속에 숨겨진 '연극다움'을 발견해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매 공연마다 꼼꼼한 분석 작업을 거치는 것은 물론이다. 공상집단 '뚱딴지'는 창단 원년부터 현재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해서 '연극답고, 뚱딴지스러운'라는 언어로 관객과 소통한다는 계획이며, 이러한 고민이 결국 뚱딴지만의 차별화된 공연전략이 될 것이다.
2008. <너 때문에 산다>봄작가 겨울무대 <다음역> 2009. <거리의 사자>, <아름다운 답>, <언니들> 2인극 페스티벌 <칼슘의 맛> 2010. 서울 프린지페스티벌 <어머니>, <안녕, 피투성이 벌레들아>, 2인극 페스티벌 <팩토리 왈츠> 2011. <고령화 가족>, 여성연출가전 <리어왕>, 100 페스티벌 <바람이 들려준 이야기> 2012. <앵콜, 고령화가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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