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히라타 오리자의 <현대구어 연극론>

2013. 2. 2. 23:00Review

 

책 리뷰 "히라타 오리자의 현대구어 연극론"

연극을 시작하는 이들의 지침서 

글_오세혁 

 

▲ 히라타 오리자의 현대구어 연극론 책 표지

  

1.

 연극이란 무엇일까

내 연극이란 무엇일까

 

책의 첫 시작에서 밝혔듯, 이 책은 <연극>에 관한 책이 아니다. <히라타 오리자의 연극>에 관한 책이다. 이 책에는 히라타 오리자의 거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 히라타 오리자의 희곡, 히라타 오리자의 연출, 히라타 오리자의 연극언어, 히라타 오리자의 극단 경영, 히라타 오리자의 워크숍까지 그가 연극작업을 하면서 경험하고 사색했던 모든 것이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다. 한마디로 <히라타 오리자 사용 지침서>라고나 할까.

나 또한 걸판이라는 극단의 창단멤버로 올해 9년째를 맞는다. 9년동안 온갖 작품을 만들었고 온갖 갈등이 있었으며 온갖 문제에 시달렸다. 10년째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온갖 고민을 하던 차에 이 책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그야말로 온갖 문제에 대한 온갖 경험담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입을 벌리고 침을 흘리면서 나와 걸판이 쏙쏙 빼먹을 구절들에 형광펜을 칠해나갔다. 그리고 그 부분만을 되풀이해서 읽고, 타이핑하고, 페이스북에 올리고, 단원들에게 카카오톡으로 전송했다. 친한 연극인들을 만날 때마다 이 책을 꼭 읽으라고 추천했다. 특히 나처럼 일찍부터 극단을 만들어서 좌충우돌과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아등바등 활동하는 젊은 연극인들에게 말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리뷰를 써야 하는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리뷰를 쓸 자신이 없다. 이 책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그저 내가 침을 흘리면서 형광펜을 칠해나갔던 구절구절들을 소개하면서 아직 책을 안 읽은 사람들을 유혹하고 싶다.

 

 ▲ 저자 히라타 오리자는 그의 책 인사말에서 특별히 한국의 '젊은' 독자들을 호명하고 있다.

  

2.

  그렇다면, 예술은, 연극은 무엇을 전달하면 좋단 말인가?

는 무엇 하나 전달해야 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연극이 인간을, 세계를 직접적으로 그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히라타 오리자는 인간이 사회나 세계나 인간 자신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을 불가능하다라는 확고한 생각으로 연극을 만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에서 <무엇을 전달> 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가 바라보는 인간과 세상, 정확히 말하자면 자기 눈에 비치는 인간과 세상을 그대로 그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세계는 모든 관객들이 이해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히라타 오리자가 이해하는 세계의 모습이다. 관객들은 극장에 와서 <무엇을 전달> 받지 않는다. <히라타 오리자의 눈에 비친 인간과 사회와 세계>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자신의 눈에 비친 인간과 사회와 세계의 모습>과 비교해본다. 창작자의 세계와 관객의 세계가 1대1로 극장에서 만나는 것. 이것이 히라타 오리자의 연극이다.

 

  (슬픈 장면이라면) 희곡작가는 배우가 어떻게 연기하든지 간에 슬프게 보이도록 희곡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희곡작가는 그렇게 명확함을 지닌 희곡을 써야 한다. 이렇게 되면 배우는 슬픔을 표현해야 하는 의무로부터 해방된다. 희곡이 그리는 세계가 완벽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배우는 애써 희로애락을 표현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기가 팍 죽는 대목이다. 나도 희곡작가다. 내가 썼던 작품들을 돌이켜본다. 웃긴 대사를 써도 웃기지 않고 슬픈 대사를 써도 슬프지 않았던 이유를 찾았다. 내 희곡 속에 담긴 세계가 웃긴 세계가 아니고 슬픈 세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희로애락이 너끈히 담길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우선이었는데 그럭저럭 대사와 상황으로만 만들어놓고 배우가 어떻게든 표현해주겠지라는 맘편한 생각을 가졌던 것을 떠올려본다.

 

  나는 지금까지 기회 있을 때마다 배우는 내게 장기판의 말에 지나지 않는다 라는 도발적인 발언을 계속해왔고, 이 발언은 예상대로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뒷통수를 때린다. 내 뒷통수와 상관없이 계속 이야기를 해나간다. 극단이라는 것은 집단이기에 틀림없이 위계질서와 권력이 만들어진다고. 극단의 경우는 어쩔 수 없이 연출가에게 권력이 집중될 수 밖에 없다고. 눈 앞에 뻔히 보이는 권력관계를 눈가림한 채 배우가 무대의 주인공이다. 이 작품은 당신만이 연기할 수 있다 라는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부패를 막기 위한 여러 시스템을 만들어낸다. <청년단은 히라타오리자의 희곡을 상연하는 것을 목적으로 모인 집단이다>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히라타 오리자는 희곡을 제대로 써낼 의무가 있고, 배우들은 히라타 오리자의 희곡을 제대로 표현해낼 의무가 있다. 연극의 세계는 작가가 만들어내고, 배우는 그 세계 안에서 뛰어 놀면 된다. 서로가 서로의 역할을 명확히 인식한다. 그렇기에 서로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서로와 서로는 1대1로 대등하게 만난다. 희곡이라는 장기판을 잘 펼쳐주면, 그 장기판 안에서 말들이 훌륭하게 뛰어노는 것. 이것이 히라타 오리자가 생각하는 극단의 모습이다. 장기판은 장기판을 만들 사람이 만들고 장기말은 장기말을 할 사람이 하는것, 장기판과 장기말이 대등하게 인정받는 것. 이것이 히라타 오리자의 극단 청년단이 나아가려는 방향이다.

 

  시간뿐만 아니라 공간을 공유하는 일은 극단이라는 제도에 있어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시간만을 공유하게 되면 부득이하게 분업을 하게 된다. 그리고 집단의 구성워은 전체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공간을 공유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늘상 얼굴을 마주 대하고 경험을 공유하게 된다.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기 위해 그는 어떻게 하였는가? 코마바아고라극장이라는 활동 거점을 만들어버렸다. 1층이 분장실과 티켓부스, 2~3층이 극장, 4층이 사무실, 5층은연습실, 옥상은 무대를 만드는 곳이다. 모든 연습과 제작과 공연과 기획이 이 한곳에서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청년단의 단원들은 이 곳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연극작업을 할 수 있다. 이 속에서 단원들이 공유하는 시간과 공간의 힘은 작품속에 압도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러한 공간을 만들었을까. 부럽기만 하다)

 

▲ 4월의 내한 예정인 히라타 오리자의 로봇연극 <사요나라>, 사진출처 = 대전 예술의 전당 홈페이지

 

3.

 앞에서 얘기를 못 했는데, 이 책은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는 히라타 오리자의 연극론에 대해 이야기하고, 2부는 히라타 오리자가 해왔던 연극작업과 워크숍에 대해 이야기한다. 문제는 1부만 이야기하고 있는데도 지면이 모자르다는 것이다. 나는 정말로 많은 연극인들이 이 책을 읽기를 바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극단을 새롭게 만들어서 시작하는 젊은 연극인들이 이 책을 꼭 읽기를 바란다. 우리가 연극과 극단활동을 해나가면서 필수적으로 겪어야 하는 고민과 갈등과 문제점들의 해답을 어쩌면 이 책에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책 속에는 연극소년 히라타 오리자가 연극청년 히라타 오리자를 지나 본인만의 연극세계를 이루어낸 히라타 오리자가 되기까지의 고민과 갈등과 문제점들에 대한 해결과정이 총출동하기 때문이다.

극단 걸판의 10년을 어떻게 펼쳐나갈 것인가? 우리는 이 책을 다 같이 강독하는 것으로 시작하려고 한다. 물론 이 책은 <히라타 오리자의 연극론> 임으로 우리는 <그의 연극론>을 차근차근 살피고 살펴서 <걸판의 연극론>을 만들어 낼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와 닿았던 대목을 소개하겠다. 분명 나와 우리 극단에 벌어질 가장 힘든 상황인 동시에 가장 되풀이 될 상황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이 대목을 되풀이해서 읽으며 힘을 내겠다. 그리고 다시 일어서겠다. 

 

   <연극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이상, 이 잔혹한 작업에 함께 할 의지가 있는 사람하고만 나는 연극을 만들어가고 싶다.달리 말하자면, 아무리 극단을 민주적으로 운영해보아도 극단원들은 아주 어이없는 이유로 극단을 그만둔다. 아니, 어이없는 이유라고 생각하는 건 극단 주재자 입장이고, 본인들의 입장에서는 그 어느 것도 연극보다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하면 극단원들이 오래 있어줄까 하는 걱정은 해봤자 정말 소용이 없는 것 같다. 배우를 아무리 중요하게 여겨도 그들은 임신이나 결혼, 출산이나 중절로, 또 범죄를 저지르거나 실종되거나 하여 연습실을 떠나간다. 우리는 늘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연극을 만들고 있다.

  이런 의문에 관해서 나는 아직 답을 못 찾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불안정함에 말할 수 없는 매력을 느끼고 있기도 하다. 배우를 장기의 말처럼 사용하는 나는 언젠가 배우로부터 배신을 당할 것이다. 아니, 지금도 조금씩 배신당하고 있다. 그래도 좋다. 그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당연하다. 나 대신 누가 책임을 져준단 말인가.

   연극의 이 잔혹함, 위험함, 신조차도 두려워 않는 무도함. 나는 필시 거기에서 큰 매력을 느끼며 연극을 게속 해나가고 있는 것이리라.

 

▲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중인 히라타 오리자. 그는 한국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해외연출가이다.

출처 = 서울국제공연예술제 블로그

 

 필자_오세혁

 소개_정의로운 천하극단 걸판에서 작가,연출,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히라타 오리자의 현대구어 연극론>(연극과 인간, 2012)

 

  

 저자 : 히라타 오리자 (1962년 도쿄출생)

 극작가, 연출가 /  극단 세이넨단(청년단) 주재

 대표작 : <도쿄노트>, <서울시민>5부작, <과학하는 마음>시리즈 등


  번역자 :  성기웅, 이성곤

  성기웅은 극단 제12언어스튜디오를 이끌고 있는 극작가 겸 연출가이다. 대학시절 일본 도쿄에서 교환 유학생으로 지내며 배운 일본어어를 바탕으로 일본 희곡을 번역해서 소개하거나 일본과의 합작연극 작업에 참여해오고 있다. 특히 히라타 오리자의 희곡 <과학하는 마음> 시리즈를 번역-연출하고 한일 합작연극 <서울노트>의 통번역을 맡는 등 히라타 오리자 및 그의 극단과 깊이 교류하고 있다.

  이성곤은 연극학자, 연극평론가이다. 2005년 <감시와 상품화된 기억과 처벌에 관한 연극> 이라는 글로 연극평론을 시작한 이래 <1990년대 북한 희곡에 투영된 '자본주의 황색바람'>,<고전 속의 실험 - 극단 린코군의 현대노가쿠집시리브>,<전후 일본연극에서 아베코보의 의의> 등의 평론과 논문을 썼다. 지금은 일본 오사카 대학문학연구과 박사과정에서 일본의 근현대 연극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이 대학의 교수로 재직중인 히라타 오리자의 강의조교를 맡는 등 그의 활동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다.

 번역자 소개 <히라타 오리자의 현대구어 연극론>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