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2. 12. 23:38ㆍReview
그가 문래동에서 본 것
- 문래일기展 (새나라 자동차 프로젝트) 리뷰
글_성지은
1780년 조선시대 실학자였던 박지원은 중국 청나라로 긴 여행길을 떠났다. 그는 그곳에서 여러 도시들을 방문하며 보고 듣고 겪은 것들을 <열하일기>로 남겼고, 이는 박지원이 중국의 선진문물을 보고 실학을 꿈꾸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330년이 지난 2013년 1월, 한국의 미술작가 홍원석은 문래예술공장에서 <문래일기>라는 전시를 연다. <열하일기>에 대한 오마주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작가가 밝히고 있듯이, <문래일기>는 문래 지역을 탐방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열하일기>를 베끼기만 한 것은 아니다. 홍원석 작가의 <문래일기>는 <열하일기>의 형식에서부터 출발하여 문제의식을 확장시킨다. 이는 허구와 사실이 뒤섞여 “문래동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의 정치, 사회, 문화적 맥락을 포착한 내(작가의) 삶의 여행기”이다.
“현재 문래동은 철공소 노동자, 예술가, 지역 주민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 잠재된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정부는 재개발 사업을 본격 추진하기에 앞서 문래동 지역의 철공소와 예술가 작업실 이전을 종용하기 위해 두 명의 인물을 발탁했다. 한때 비밀리에 남북의 가교 역할을 하며 택시기사로 맹활약을 펼쳤으나 지금은 일선에서 은퇴한 60대 ‘박지원’과 시골에서 무료로 택시운전을 하며 손님과 대화를 나눈 영상으로 하루아침에 커뮤니티 아티스트가 된 젊은 30대 ‘박지원’이 문래예술공장 MAP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는데...”
<문래일기>가 다루고 있는 상황은 전적으로 가상인 것도 또는 실제인 것도 아니다. (무엇이 진짜고 거짓인지 구분하는 것이 재미있을 수도 있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 작가는 허구와 사실을 교묘하게 엮어 문래예술공장 1층의 스튜디오 안에 펼쳐 놓는다. 스러져 가는 듯한 철공소들이 모여 있는 회색빛의 동네, 역시 회색빛인 예술공장 안에서는 커뮤니티 아티스트이자 택시운전사였던 박지원이 겪은 내용이 영상으로, 그리고 설치로 전시되어 있었다.
영상 <문래일기>의 이야기는 매우 간단하다. 시골에서 택시운전을 하던 박지원은 얼결에 문래예술공장의 MAP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 그의 임무는 또 다른 택시기사인 60대 ‘박지원’과 함께 일하며 문래동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그의 진짜 임무는 따로 있었으니, 그것은 문래동 지역을 재개발할 수 있도록 지역 철공소와 예술가들이 이전하도록 부추기는 것이었다. 젊은 박지원은 난생처음 도시에서 살게 되면서 “일하는 사람들의 외모부터가 다르”고 “각종 소음”이 난무하는 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그러나 동시에 “문래동 58번지 2가에서 3가 쪽을 걸어 다녔는데... 재미난 구석이 많았다”며 동네에 정을 붙이기도 한다. 그렇게 철공소 직원들, 예술가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는 자신이 “지금 내 본분은 잃고 여기 문래동 사람들 지켜보는 재미에 빠진 것” 같다며 비밀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지 걱정하기 시작한다. 결국 문래동과 동네 사람들에게 푹 빠져버린 젊은 박지원은 “아무래도 이 일은 나에게 맞지 않는 것 같다”며 옛날처럼 시골의 평범한 택시기사로 돌아갈까 고민을 한다. 그러던 중 문래예술공장 앞에서 갑작스런 차 사고가 나고, 결국 젊은 박지원은 2012년 12월 19일 사망하게 된다.
전시장에는 이러한 내용을 보여주는 영상이 차 사고 장면의 재현과 함께 전시되고 있다. 차는 전복되어 있고 영상 속에서 젊은 박지원이 내내 입고 다녔던 가죽잠바와 청바지는 박지원의 죽음을 보여주듯 놓여 있다. 수사를 위해 둘러놓은 경찰 테이프와 한 켠에 놓인 두 박지원의 증거 자료들은 젊은 박지원의 죽음이 실제로 일어났고 아직도 그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자료들로 미루어, 당시 젊은 박지원과 함께 있었던 늙은 박지원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래일기展> 전시 모습
<문래일기>는 이렇게 영상과 설치의 두 가지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 작품을 지탱하는 것은 영상을 만드는데 들었던 몇 달이라는 시간과 문래동이라는 공간, 그리고 이를 씨실과 날실삼아 작가가 만들어낸 신문기사, 두 박지원의 일기와 기록들, 박지원 사망(살인?) 사건을 다룬 기사 등이다. 이 많은 것들이 이루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 즉 ‘문래일기’라고 부를 수 있는 사건 안에는 2012년 한국 문래동의 여러 모습들이 담겨져 있다. 도시와 시골의 빈부격차, 동네 재개발을 둘러싼 이해관계, 박정희 정권을 둘러싼 30대와 60대의 갈등, 예술가와 동네의 관계 맺음, 문래동 커뮤니티라는 특수한 공간 등이다. 전시장에 놓인 리플렛을 읽고, 사건 장면을 보고, 영상을 보면서 우리는 철공소와 예술가들이 공존하는 가난한 동네, 문래동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그러나 <문래일기(새나라 자동차 프로젝트)>는 일회적인 지역 연계 미술 프로젝트라기보다는 홍원석 작가가 지금까지 진행했던 일련의 지역 프로젝트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문래예술공장 근처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솜씨에서 열리는 회화 전시인 <새나라 자동차 프로젝트展>을 찾아가 봐야 한다. 전시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문래일기>와 <새나라 자동차 프로젝트>는 쌍으로 이루어진 전시와도 같다. 그러나 ‘이루어져’ 있다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을런지 모른다. 두 전시가 단순히 병렬관계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회화 전시는 홍원석 작가의 <문래일기>를 이해하는 데에 바탕이 되는 작가의 작업세계의 가장 기초적인 부분을 보여주고 있다.
▲ 복합문화공간 솜씨
▲ 홍원석, <아트택시>, 2011
▲ 홍원석, <파주>, 2012
자동차를 모티브로 하는 회화 작업들에서도 볼 수 있듯이 홍원석 작가의 여러 작품들은 ‘자동차’를 중심으로 엮인다. 자동차는 지나가는 사람도 차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길을 달리며 여러 풍경들을 관망한다. 그것은 고요하기도 하고 어수선하기도 하다. 자동차 앞 유리로 내다본 회화적 가상 공간들은 곧 이어 ‘아트택시 프로젝트’에서 보이는 실제 공간들로 이어진다. 작가는 청주, 제주도에 이어 서울에서 무료로 택시 운행을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사람들은 작가가 모는 ‘아트택시’를 타고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가면서 작가와 이야기를 나눈다. 그렇게 해서 모인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그 지역 주민들의 말과 모습을 담게 되었고, 작가는 ‘자동차’를 매개로 하는 커뮤니티 아티스트가 되었다. <문래일기> 역시 ‘자동차’에서부터 출발한다. 젊은 박지원은 평범한 택시기사였으나 단번에 커뮤니티 아티스트가 된다. 이전에 자동차를 타고 보았던 동네 풍경들, 자동차에 달린 카메라에 비친 동네 사람들의 모습은 이번에는 자동차를 타고 다녔던 박지원의 눈에 비친 문래동의 풍경으로 바뀌었다. 결국 작가는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며 익숙한 곳과 낯선 곳을 찾는 경험에 비유된다.
이렇게 <문래일기> 전시를 보았을 때 우리는 어떤 것이 실재이고 어떤 것이 가상인지 헷갈리게 된다. 홍원석은 작가이면서도 택시 운전을 했고, 박지원은 택시 기사였지만 작가로 활동했다. 영상 속 문래동 사람들은 모두 실제로 존재하는 모습 그대로였고, 박지원/홍원석이 그들을 만났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또한 늙은 박지원은 실제로는 홍원석 작가의 아버지로 택시기사였다. 젊은 박지원이 쓴 일기와 홍원석이 만든 영상은 박지원이 경험한 것이자 홍원석이 느낀 것일지도 모른다. 그 둘은 한데 뒤섞여 구별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눈 앞에 펼쳐지는 한 편의 허구적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진짜와 가짜를 분간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사실 홍원석 작가의 작업을 처음 접한 사람, 특히 <문래일기>만 본 사람에게는 다소 불편한 사실이 될 수 있다. 모든 것을 그대로 믿을 수도, 부정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이해를 위해 친절하게 리플렛이 준비되어 있지만 사실 리플렛 역시 허구와 사실이 뒤섞여 있어 마찬가지로 애매모호해질 뿐이다. 그러나 동시에 실재와 가상의 분간할 수 없음은 작품에 묘한 분위기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적 사실들이 마냥 거짓이라고 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하루 아침에 대박 아티스트가 되는 것, 정부가 비밀리에 여론을 조장하는 것,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의문사를 당하는 것 모두 있음직하다.
이렇게 홍원석 작가는 문래 동네에서 본 것을 이야기로 그려내고, 그것을 영상과 설치에 담았다. 단순히 본 것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그대로 카메라로 찍는 기존의 작업에서 벗어난 작업 방식은 작가가 많은 동네들을 돌아다니며 동네의 모습을 기록한 작업의 끝이자,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새로운 작업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 이는 작가의 눈과 직관에 비친 문래동의 모습을 전달하며, 문래동의 또 하나의 모습을 만들어 간다. 허구적 사실의 기록을 통해 동네는 새로운 의미를 얻고 기대받게 될 것이다.
소개_ 삶은 춤추듯이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감각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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