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2. 9. 12:53ㆍReview
어떤 소년들의 세계에서 보통의 어른이 되는 일의 어려움에 대하여
영화 <범죄소년>
글_이솔
강이관 감독의 <범죄소년>은 지구와 동갑내기 여자친구 새롬이 아무도 없는 방에서 마음을 확인하는 하이틴 로맨스 영화 같은 장면으로 시작된다. 두 아이는 진지하게 자신의 처지를 털어놓으면서 ‘난 너 좋다’, ‘사랑해’ 같은 뻔한 언어들로 서로의 호감을 교환한다. 10대 소년 소녀의 풋풋한 고백과 사랑의 몸짓. 이 진지하고 귀여운 장면은 평범한 삶 속에 자리한 특별한 순간처럼 보인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이 첫 장면이야말로 당사자들의 입장에서는 결코 그들이 선택한 바 없었던 ‘특별한’ 삶 속에서 그나마 그 나이 또래들이 겪는 작은 평범함에 도달할 수 있었던 순간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 이혼 가정의 자녀인 새롬은 모친과 부친을 오가며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고, 중학생인 지구는 당뇨를 앓고 있어 운신조차 어려운 외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아가고 있다. 보호자 역할을 수행해야 할 할아버지를 지구가 홀로 돌보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더해, 지구는 같이 어울리던 아이들과 함께 불법가택침입죄와 폭행죄를 저지른 후 1년 동안 소년원에 수감되고 만다.
▲ 영화 <범죄소년> 중 한 장면, 출처 네이버 영화
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범죄소년’이라는 단어는 마치 비정한 10대 갱스터 사회의 일원이라도 지칭하는 것처럼 자못 거창하게 들리지만, 사실 ‘14세 이상 19세 미만의 소년으로서 형벌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해 형사책임을 지는 자’라는 의미를 지닌 단순한 법정용어다. 주인공인 지구가 작은 불운과 몇 가지 나쁜 선택을 통해 ‘범죄소년’이라는 타이틀을 획득한 것처럼, ‘범죄소년’으로 불리는 데에 그렇게 끔찍한 범죄적 사건을 동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소년원에 들어간 지구의 삶은 우리가 상상하는 냉엄하고 가차 없는 계도의 삶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소년원 재소자들의 일상은 기숙학교 학생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철없는 ‘범죄 소년’들은 수업을 듣고, 당번을 나누어 청소를 하고, 밥을 먹고, 운동을 함께 한다. 그렇게 1년이 흘러가고, 외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된 지구에게 오래 전에 집을 나가 기억도 나지 않는 엄마가 나타남에 따라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지구의 어머니인 ‘효승’은 십대 때 잠시 만난 남자와의 불장난으로 지구를 임신했고,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견디지 못해 아들을 남기고 가출했다. 그럴싸한 교육을 받은 적도, 번듯한 직업을 가진 적도 없는 이 덜 자란 어른이 일으키는 문제에 더해, 지구의 귀에는 소년원에 수감된 후로 만나지 못한 여자친구 새롬의 문제가 들려온다.
효승과 지구, 새롬에게는 물론 문제가 있다. 이를테면 주인공인 지구는 충동적이고 부주의하다. 새롬의 삶에 그가 끼친 피해나, 충분히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있었음에도 그가 저질렀던 폭행 사건을 생각해 보자. 효승은 한 자리에서 성실하게 삶을 꾸려나가는 방법을 알지 못하고, 철새처럼 이 사람 저 사람의 호의를 빌어 비굴하게 살아간다. 게다가 효승은 그녀 특유의 철없음과 무책임함으로 자신이 낳은 아들을 14년동안 열악한 상태에 방치하기까지 했다. 문제적 소년 소녀들은 쉽게 ‘범죄소년’이 되고, 어른이 되어도 그 이름 아래 드리워진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사회에 돌이킬 수 없는 해를 끼치는 암적인 존재라기보다는 대체로 무해한 부적응자들이다. 오히려 그들이 제대로 된 ‘정상적인 성인’이 되지 못하는 것은 사회가 단순한 격리 조치를 취하거나,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소년들 앞에 냉담한 현실을 가감 없이 들이대는 것 이상의 호의를 베풀어 준 적이 없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세 사람은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원하지만 언제나 임시적인 거처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낡은 모텔의 달방, 주유소 직원 숙소, 그도 아니면 미용실 원장이나 술집 마담의 집에 식모살이를 하듯이 얹혀 사는 것. 부모가 자식과 함께 살아가며, 서로를 보듬고 생육하는 공간으로서의 ‘집’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가족 공동체의 꿈은 계속해서 부서진다. 필연적으로 그들은 영화 내내 이합집산을 번복한다. 집이 없는 이 ‘소년’들은 성장하지 못하고, 생물학적인 ‘부모’가 된 이후에도 사회적 부모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
▲ 영화 <범죄소년> 중 한 장면, 출처 네이버 영화
이 영화의 ‘악당’들은 사실 악인이 아니다. 그들은 용인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의 이기심과 무관심으로 아주 조금씩 ‘범죄소년’들을 자신들의 삶 밖으로 밀어내면서 가해자의 위치에 놓이지 않기 위해 스스로에게 변명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손을 잡고 끝까지 건너갈 수 없는 성긴 호의의 징검다리들은 끊임없이 이 사회에서 ‘부적응자’들을 배제시킨다. 이를테면 처음에 지구에게 소년원 수감 선고를 내렸던 판사의 태도를 보자. 다정한 보호자의 언어를 구사하는 이 여성 고위 공직자는 기실 사고를 친 ‘불량 소년’들의 ‘말썽’에 결코 관대하지 않다. 판사는 아픈 외할아버지를 홀로 내버려두고 소년원에 들어갈 수 없는 지구의 처지를 고려하여 판결을 내리지도 않는다. 누군가의 삶에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판결임에도, 판사가 휘두르는 봉에 매달린 정의가 미치는 범위는 법정이라는 작은 공간일 뿐 세상은 아니다. 소년원 선생님의 따뜻한 배려와 호의가 머무르는 범위 역시 소년원에 한정되어 있을 뿐이다.
다시 지구와 떨어져 살게 된 효승이 지구와 함께 하는 삶을 잠시 꿈꿀 때, 그녀는 부동산 벽에 붙은 집 광고를 보고 부동산 주인에게 두 명이 살 수 있을 만한 집의 가격을 묻는다. 반색하며 효승을 응대하던 그는 언제 들어올 수 있을 지 모른다는 효승의 말에 시간을 낭비했다는 듯이 돌아선다. 사회가 원하는 방향으로 훈련된 ‘정상-어른’이 아니라면 그들이 머물 공간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것 조차 허가할 수 없다는 듯이. 실제로 번듯한 직업과 정기적인 수입, 일정량의 저축 등으로 이루어진 ‘정상적인 성인들의 삶’에 편입되어 살아가지 않는 이상은 월셋방 하나도 얻기 힘든 세상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므로. 그러나 미숙한 어른과 아이 한 명이 가족을 이룰 수 있는 공간 하나도 내어주지 못하는 인색한 사회가, 과연 범죄로부터 동떨어진 무결한 것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 영화 <범죄소년> 중 한 장면, 출처 네이버 영화
<범죄소년>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제작된 ‘인권영화’지만 드러내 놓고 교훈적이거나 맹렬히 사회비판적인 시선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강이관 감독은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섣부른 가치 판단을 유보한 채, 조심스러운 태도로 그들의 삶과 세상의 형태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대상에 대한 깊은 관찰에 기반한 이러한 태도를 반영하듯, 영화의 얼개를 짜는 핵심적인 사건들 사이에 놓인 여백들에는 논픽션 다큐멘터리처럼 인간적이고 사소한 일화들이 채워진다. 무심한 듯 여린 중학생 소년을 연기하는 서영주와 함께, ‘철없는 소녀’와 ‘이상한 여자’사이의 다소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나드는 이정현의 섬세한 연기 덕택에 영화가 그려내는 삶은 진실성을 획득한다. 조역 배우들의 앙상블 역시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완벽한 합을 자랑한다.
<범죄소년>은 그들을 성장시켜 줄 수 없는 사회에 놓인 주인공들의 현실을 저마다의 작은 물음으로 바꾸어 관객에게 던지는 영화다. 그들이 꾸는 작은 꿈들이 실현되는 날은 요원할 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그 끝에 절망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부디 아니길, 조금의 온화함이 그 후일담에 자리하기를 바라게 된다.
필자_이솔 소개_영화보는 사람 |
범죄소년(Juvenile Offender, 2012) 감독_강이관 출연_이정현(효승), 서영주(장지구)
시놉시스 세상은 나를 ‘범죄소년’이라고 합니다. 보호관찰중인 범죄소년 장지구(서영주)는 죽음을 앞두고 있는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의 유일한 희망은 낙천적이고 귀여운 여자친구뿐. 나쁜 친구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빈집털이에 가담한 지구는 절도죄로 체포되고 그를 구제해 줄 가족이 없다는 이유로 1년 동안 소년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 있는 동안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지구.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고 생각한 그 때, 죽은 줄만 알았던 엄마가 나타납니다. 엄마와의 만남 이후로 지구는 행복을 찾은 것 같았지만 곧, 충격적인 삶의 파란이 찾아옵니다. 17살에 아이를 버린 나는 나쁜 엄마입니다. 17살에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아버지 집에 버리고 도망치듯 살아온 장효승(이정현). 소년원에 있다는 아들 소식을 듣고 몇 번을 망설였지만 용기를 내어 만남에 응하게 됩니다. 그녀는 마치 운명처럼, 범죄소년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아들을 데려오게 됩니다. 거짓된 삶으로 아들에게 잘 살아왔음을 증명하고 싶지만 그녀의 거짓말은 얼마 지나지 않아 들통이 납니다. 그렇게 불안한 생활을 이어가던 그녀는 아들인 지구의 여자친구가 16살의 나이에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후 두 사람의 삶에 파란이 찾아옵니다. 13년 만에 만난 범죄소년과 문제적 엄마, 둘 사이에 숨겨진 진실이 곧 밝혀집니다. *** 내용출처 : 네이버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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