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아름다운 동행 - 단막극페스티벌

2013. 2. 20. 11:53Review

 

<미안합니다, 잊고 있었어요. 다시 미안하지 않게, 기억 하겠습니다.>

재능교육 해고노동자와 대학로 연극인이 함께하는 단막극 페스티벌

"아름다운 동행" 리뷰

 

_시티약국

 

대선의 충격은 컸다. 朴당선인, 며칠 뒤면 現태통령이 될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였다. 대선 이후로 애청하던 시사프로그램 손석희의 시선집중도 끊었고, 시사인과 한겨레21도 데면데면 읽었다. 대신 황금어장 라디오스타와 신화방송, 무한도전과 같은 예능프로그램에 폭 빠졌고, 현실에서 연애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 로맨틱 드라마를 빼놓지 않고 보았다. 내가 두 달여 동안 정치이야기에 귀를 막아버리고, 단편적인 웃음으로 도피하고 있을 때, 누군가는 현실을 더 직시하면서 앞으로 더 나아가고 있었다. 축제이지만, 웃고 즐길 수만은 없는 축제였던 ‘재능교육 해고노동자와 대학로 연극인이 함께하는 단막극페스티벌’.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66인의 연극인이 보여준 무대에 대한 것이고, 앞으로 더 많은 비극을 보게 될지도 모를 우리를 위한 희미한 ‘희망’ 에 대한 것이다.

 

 

이여진 작가와 김제민연출이 만든 연극 <살인자의 수트케이스를 열면> 은 사측의 폭력을 감당해내야 했던 여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아무도 그 고통을 보아주지 않았을 때, 어떻게 삶을 견뎌낼 수 있었는지를 잔혹한 상상이 결합된 형태로 풀어낸다. 극 중 그녀는 본연의 자신을 죽이고 노인의 평온함을 찾았지만, 끝없는 환청에 시달린다. 살아있는 개인은 결코 본연의 자신을 스스로 유기할 수 없다. 자기 자신을 부당한 외부의 폭력으로 인해 버리게 되었다면 이는 결코 개인의 책임이어서는 안 된다. <살인자의 수트케이스를 열면> 은 스스로를 죽여야만 살 수 있는 노동자를 만드는 잘못된 세상을 꼬집으며. 재능교육 사태를 고발하고 있다.

 

 

작가 오세혁과 연출 김한내가 함께한 <한밤의 천막극장 르포>는 보다 위로와 공감의 방식으로 재능사태에 접근한다.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분들이 거리위에 집-천막에서 느꼈을 공포와 두려움을 극적인 방식으로 무겁지 않게 접근하면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이 연극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연민과 동정의 시선이 아니라, 이입의 시점으로 재능사태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연민과 동정은 시들해 질 수 있지만, 누군가와 같은 입장에서 경험을 보여주는 것은 느낄 수 있는 ‘힘’을 보태는 능동적인 작업이 된다.

재능교육 사태에 대해서 다른 고발이나 공감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 작품도 있다. 가장 눈에 띄었던 작품은 김슬기 작, 부새롬 연출의 1인극 <이건 노래가 아니래요> 이다. 페스티벌의 의도를 모르고 보았다면, 연극에서 재능교육을 연상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소속사 대표 ‘김갑중’ 이 불후의명곡 칼퇴근하고 만나요를 부르는 ‘이겨을’을 착취하는 것에서 명확한 은유를 읽어낼 수 있다. 비단 재능교육 박 회장 뿐만 아니라, 이 땅에 많은 악덕 사장·회장들이 김갑중을 닮아있기 때문에 수많은 연상 작용이 가능하다. <이건 노래가 아니래요>에서 이겨을은 힘들어도 웃는다. 월급을 떼여도 웃고, 거리에서 노래를 한다. 칼퇴근을 노래하는 이겨을에게 미래는 없을 것이다. 해서 맑고 광대 같은 웃음은 관객들에게 슬프기만 하다. 이 작품을 보면서 현진건의 소설 <운수좋은날>을 떠올렸다. 김첨지의 아내가 먹고 싶다고 했던 ‘설렁탕’을 사왔지만 아내가 죽어있었던 것처럼, 이겨을에게 언젠가는 다가올 행운조차 비극의 전초가 될 서글픈 예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 세 작품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재능교육 사태를 엿보았다면, 이제 남은 질문은 이제 무엇을 할 것 인가이다. 정소정 작가와 윤한솔 연출이 만든 <비밀친구>는 보통의 우리와 가장 닮은 주인공 상훈을 통해 불합리한 현실 앞에서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묻고 있다. 어렸을 때 한번은 스쳤을 재능교육 선생님을 추억하는 것에서 연극은 시작된다. 상훈은 커서 보통의 어른처럼 살기위해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직장에 다닌다. 그리고 눈을 뜬 어느 날 아침, 자신의 손으로 정리해고를 해야 하는 역할을 하기위해 회사에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갈등에 놓인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이 직장을 그만두면 또 취업난에 놓이게 될 테고, 위태한 삶조차 퍽퍽해진다. 그렇지만 내 손으로 정확히 표현하면 윗선의 지시를 따른 정리해고를 할 수 는 없다. 놓인 선택이 만만치 않다. <비밀친구>에서 본 일말의 희망이라면, 정리해고는 옳지 않다는 상훈의 용기 낸 목소리 일 것이다. 그렇다하더라도 현실은 크게 바뀌지 않지만.

 

 

타인의 고통이 자신과 아무런 관련도 없을 때, 그 고통은 내 것처럼 아프지 않다. 그러한 고통은 무감해지기 쉽거니와 때로는 오락거리로 회자되기도 한다. 타인이 얼마나 더 크게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 보여주면 줄수록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좇는다. 모두가 불합리한 상황이라고 받아들이는 폭력으로 인한 개인의 고통도 예외는 아니다. 얼마나 아픈 지, 그래서 어떤 극한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는 지 증명한 후에야 사람들은 그들을 본다. 그때서야 우리는 알게 되는 것이다. 이 와중에, 연극이 있다는 건 정말 다행인 일이다. 66명의 연극인이 혜화동성당 종탑에 오른 그녀들의 이야기를 고발의 방식 혹은 공감의 방식으로, 또 다른 것은 빗대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집중하게 만들었다. <아름다운 동행>은 타인의 고통을 그들의 존재방식인 연극으로, 실천적 행동으로 풀어냈다.

<아름다운 동행>을 곱씹는 글을 쓰는 과정은, 치열하게 누군가의 손을 잡았어야 했을 시간을 허송세월로 만든 나를 반성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재능교육 사태를 꼼꼼히 알아봐 주기를, 그리고 후원이든 따듯한 응원이 되었든 그들을 잊지 말자는 뚜렷한 기억이 되었기를 바라본다. 부당한 현실과 싸우고 있는 재능교육 사태 해고 노동자를 비롯한 수많은 노동자들을 연민하거나 동정할 시간조차 우리에겐 없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아마도 지금 닥쳐있는 보통의 현실이 일하는 우리들 모두에게 녹록치 않기 때문이리라. 그러니 앞만 보지 말고, 옆을 보자. 옆을 잘 살피고, 손 내미는 일만이라도 잘 해낸다면 스러지지 않고 살아낼 수 있다. 적어도 그런 작은 희망은, 있지 않겠는가.

 

사진제공 : 드림아트펀드

  필자_씨티약국 

  소개_ 도시에서 건강하게 잘 살기위해서 자가치료제 개발중인 과년한 시골처자. 무상 토익 운동을 진행 중에 있으며 세상을 원망하기 전에 나부터 잘하기위해 꾸준히 행동하고, 글을 쓸 예정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