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지신은 불완전하게 올라온다-서영란>

2013. 2. 19. 10:36Review

 

예기치 못한 설득의 습격

<지신은 불완전하게 올라온다>

문래예술공장 MAP 선정 예술가 서영란 안무

 

글_김송요

 

<지신은 불완전하게 올라온다>는 일종의 기록이다. 혹은 기록의 재구성이다.

서영란은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춤과 소리를 이야기를 수집한다. 그들은 본인 혹은 당신의 선생께서 무속춤을 추는(추던) 방식, 움직임, 장단 같은 것을 회고하면서 ‘무용’과 ‘음악’이라는 아카데믹한 장르의 정착 이전 그것들이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존재했는지를 들려준다. 근대화 이전 춤과 소리가 가지고 있던, 그야말로 강요되지 않은 생명력이 어떤 모양새였는지를 진술 받은 것이다. 이제는 거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꾼’들은 대수롭지 않은 듯이, 실은 정말 대수로운 순간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가가 직접 녹음한 그들의 음성이 무대 위에서 재생됨과 동시에 거기에서 언급하는 소리와 몸짓은 무대에서 새롭게 구현된다. 어떤 것들은 통으로 되어 있고 어떤 것들은 조각으로 쪼개져 있다.

 

 

춤을 추는 이들, 오래된 신과 닿는 몸짓을 업으로 삼은 이들에게선 공통적으로 들을 수 있는 간증이 있다. 그것은 '정해진 것이 없다'라는 것이다. 박자만 얼추 정해져 있으면 움직임은 거기에서 얼마든 변주를 일으킬 수가 있다는 것이다. 방정맞기도 하고, 서슬 퍼렇기도 한. 시큼덜큼하다가 기름지다가 슴슴하다가 하는. 그 분위기나 맛은 죄다 다르지만, 간곡함과 신명이 살아있는―완결된 것이 아닌, 불완전한 사위. 그러나 그 불완전함이 하늘 높이 껑충 뛰고, 땅 깊숙히 폭삭 꺼지기도 할 수만 있다면, 그것을 신의 몸짓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각각의 이야기는 공교롭게도,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하나의 속삭임으로 결집해 관객을 설득한다.

이들의 진술과 더불어 등장하는 것은 일상의 몇몇 소리들이다. 지하철 열차 안에서 물건 파는 아저씨가 녹음한 판촉 소리, 텔레마케터가 상품을 설명할 때 나오는 고속의 음성 같은 것들이다. 이것 역시 진술과 동등하게 기록되고 수집된다. 평상시에는 무시받거나 소음으로 취급되는 이 소리들은 여기에서 새로운 시각―청각?―으로 포착된다. 텔레마케터의 상품 안내 음성은 속사포 랩처럼 왜곡된다. 지하철 상인의 녹음은 길놀이와 현대음악의 경계를 오르내린다. 그렇게 이 소리들은 마치 어떤 유전인자를 타고난 것처럼 재인식된다.

이 경험은 무대 바깥에서 목격한 일상으로까지 효과적으로 전이된다. 설 연휴 기간, 한국방송의 <안녕하세요>라는 프로그램에 재미있는 사연이 소개됐다. 이 프로그램은 ‘전국 고민 자랑’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의 크고 작은 고민들을 전달한다. 고민 사연을 보낸 주인공의 어머니는 흥이 넘치는 나머지 지하철에서 열차가 가까이 올 때 들리는 안내방송 음악에도 춤을 춘다고 한다. 연극이 끝나고 나서 관객 퇴장 음악이 나오면 무대로 나가서 몸을 흔들기도 한다고 한다. 그래서 생긴 어머니의 별명은 ‘흥 엄마’. 주인공은 ‘흥 엄마’와 함께 돌아다니는 것이 너무나 부끄러운 나머지 TV프로그램에 사연을 접수하기에 이르렀지만, 아니 왠지 이거 전율이 이는 이야기 아닌가. 정말로 혈관에 흥이 흐르는 사람이 있다니. ‘흥 엄마’는 ‘신나는’ 사람이니까, 정말로 신과 제일 가까운 사람일수도 있는 것 아닌가. 심지어 이 아주머니의 학창시절 별명은 '무아지경'이었다고 한다. 일전에 문화방송의 <TV특종 놀라운 세상>에는 <전국노래자랑>의 녹화 현장을 모조리 찾아다니며 객석 맨 앞으로 나가 춤을 추는 것을 여가로 삼는 노년의 부부가 등장한 적 있다. 이들 역시 태초에 신명을 타고난 사람들이 아닐까…… 어느새 이런 표출 모두가 <지신은 불완전하게 올라온다>의 확장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지신은 불완전하게 움직이고, 파편으로 세상 곳곳에 흩어져설랑, 어드메 누군가의 목청이나 어깻죽지에 콕 박혀도 있고, 우묵하게 고여도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어미 배에서 갓 태어난 동물들은 몇 번의 절뚝거림 끝에 껑충 바로 선다.

글쎄 그것은 제 어미를 따라하는 모방의 동작이 아니라, 뱃속에서부터 타고나는 동작이다. 춤과 닮은 것은 바로 그 적응의 시간, 절뚝거리는 동작이다. 그것은 모방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인 것이고 유전적인 것이다. 자연(自然)이 직역 그대로 ‘스스로 그러하다’라는 뜻이라면, 춤도 음악도 결국에는 자연이지 않은가. 땅에 내려온 존재가 흙과 물과 돌과 공기와 —세상과 떠듬더듬 첫마디를 시작하는 것이 춤이고, 소리고, 마침내는 예술이 된 것이 아닐지. <지신은 불완전하게 올라온다>의 성과는 바로 예술의 토양에 뿌려진 씨앗들을 추려내어 휘뚜루마뚜루 볶아 내놓은 것 그 자체다.

뿐만 아니다. 자연, 그 중에서도 두 발로 서서 발바닥으로 땅을 딛기까지가 인간보다도 많이 걸리는 뭍짐승이 있기나 한가. 결국 노년에는 지팡이라는 가짜 다리마저 필요로 하는, 이런 생명들이 어디에 있나. 그런데도 인간은 신을 닮았다고 한다. 신도 걸음마까지 인고의 시간이 있었을까, 잠시 경이로운 상상이 든다. 그러면서 이 공연의 제목을 되새김한다. <지신은 불완전하게 올라온다> 마치, 인간처럼.

 

 

<지신은 불완전하게 올라온다>의 중간중간 ‘이러다 한 번쯤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충동질이 배알을 움직였다. 공연을 볼 때는 한 번도 느낀 적이 없는, 그래 마치 <전국노래자랑>에서나 느낄 법한 꿈틀거림.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독특한 열기다. 그 열기는 보는 사람에게 어깨춤이건 추임새건, 하다못해 박수 치기라도 하게끔 만들고, 새로운 활력을 불러일으킨다. 최초의 ‘예술적인’ 움직임이란 것도 이러다 나온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상상해 본다. 그처럼 이 공연은 굉장히 신성하고 놀라운 한편 고개가 까딱이고 입가가 실룩이게 하는 경험이다.

논리적인 서사 혹은 거기서 비롯된 정답을 찾으려고 한다면 이 공연 시간이 오히려 혼란을 가중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틀림없이 이 탐구영역은 돈오의 찰나가 있어서, 그 번쩍 하는 순간을 잘만 부여잡으면 동아줄보다 질긴 수행의 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막막했던 심봉사, 눈 뜬 뒤처럼 광명이 트일지도 모를 일이다.

 

 

사진출처 : 1,2,3,4,5 팝콘 제공 / 6 옥상훈 제공  

 

 필자_김송요

소개_느낄 수 있는 모든 것에 호기심도 애정도 욕심도 많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에 혹해 대학에서 미술이론을 공부했습니다. 꾸준히 감각의 그릇을 키워서 넉넉한 감정을, 이야기를 고봉으로 담아내고 싶습니다

 

문래예술공장 MAP 선정 예술가 서영란

 "지신은 불완전하게 올라온다."

 

 

 일시 : 2013. 02. 01. (금) 오후 7:00 / 2013. 02. 02. (토) 오후 5:00

 장소 : 문래예술공장 2층 박스씨어터

 안무: 서영란

 소리: 노은실 / 리서치: 서영란, 노은실

 자막: 김보라 /  음향: 이민휘 /  조명:정동욱 /  의상: 서주연, 임영옥

 프로듀서: 성용희 /  웹, 리플렛 : 김보라 /  홍보, 번역: 서주연

 영상촬영: 우승찬 /  사진: 옥상훈

이 작업은 무용사 혹은 예술사 책의 머리에 자리잡고 있을 내용들을 답으로 하는 당연한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소리와 춤이 무대 위로 올라오기 이전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근대화되던 시기의 모습 알거나 기억을 가지고 계신 분들을 만나 인터뷰하였다. 극장 무대가 생기기 시작하던 시절에 춤과 소리를 하시던 분들은 대부분 무당이거나 기생이셨다. 그들로부터 들었던 춤과 소리의 형식은 아주 어이가 없을 만큼 야생적인 자연스러움이었다. 정해진 틀이 없고 즉흥적으로 변할 수 있었던 춤과 소리는 관객과의 유동적인 호흡의 교환, 교감을 가능하게 하였다. 그런데 그 즉흥성, 벌렁벌렁 춤추고, 말하는 것처럼 소리를 할 수 있게 되기까지에는 흔희 미신처럼 여기는 '신을 받는 것'과 절대적으로 관계되어 있었다.

리서치를 통해 알게된 춤과 소리의 형식들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타문화권의 민속 춤, 소리와도 닮은 부분들이 있었는데. 이 또한 결국 관객과의 교감을 결과로 낳는 즉흥이 시작되는 순간 혹은 이전, 신으로 부터 받아온 것이었다. 춤과 소리의 옛 형태에는 모두에게 내재되어 있는 고차원적인 혹은 또 다른 정신의 상태로 우리를 인도하는 열쇠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추적이 어떤 야생적인 개연성을 띠고 무대위의 이미지들을 펼쳐진다. 할머니의 소리는 어느 새 남대문 시장의 아저씨의 옷파는 소리에, 혹은 트로트의 꺽는 소리에 감탄하는 우리의 신경망속에 느닷없이 내재되어 있으므로. 진부한 추적은 당연한 답들을 타고 바깥으로 미끄러져 고속도로 타고 가다 삼천포로 휘-휩쓸려들어간다.

** 내용출처 : 페이스북 이벤트 페이지  "지신은 불완전하게 올라온다."


 

 ****서영란의 공연은 2013 페스티벌 봄에서 다시 공연됩니다. 

 서영란 <지신은 불완전하게 올라온다>

 일시 : 3.28 목 7pm,  3.29 금 7pm

 장소 : 국립극단 소극장 판

 페스티벌 봄 홈페이지 바로가기 >>> http://www.festivalbo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