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9. 24. 09:19ㆍReview
인생이라는 이름의 사운드트랙 A면
- 조아라의 <사이코시스-커튼을 여세요>
글_정진삼
한 여름밤의 작은 극장에서 보내온 테이프를 하나 듣는다. A면은 젊은 여자의 죽음. B면은 늙은 여자의 삶이다. 먼저 A면을 플레이 한다. “한 영혼의 1인 교향곡” 이라고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는, 배우이자 연출가 조아라의 목소리다. (플레이 ▶)
“새벽 4시 48분. 정신이 온전하게 돌아오는 때,
난 한 시간 12분 동안 제정신이 들어. 그 순간이 지나면 다시 맛이 가.
조각난 꼭두각시. 괴상망측한 병신...”
조아라가 선택한 노트note는 27세에 요절한 영국의 극작가 사라케인의 유작, <4.48 사이코시스 (4.48 Psychosis)>다. 이 작품은 주인공이 경험한 죽음에 대한 기억을 풀어낸 1인칭의 극이다. 경험으로서의 죽음, 그리고 죽음의 기억이란 말이 낯설다. 살아서는 도저히 전할 수 없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리하여 작가인 사라케인은 자살이란 확증으로, 배우인 조아라는 지인 예술가의 죽음을 곁에서 겪고 난 후의 간접 증언으로 이를 전하고자 했다.
이 작품은 2년 전에 벌어진 충격적인 개인사와 더불어, 정신병원에서 의사와 환자로서의 나, 그리고 나와 나의 분열적인 대화 그리고 나의 연극적 독백 등 크게 네개의 부분으로 구성된다. 희곡에는 구체적인 스토리 대신 내뱉고 탄식하고 울고 욕하며 비명을 지르는 여성의 구어체 대사가 가득 들이차 있다. 엄밀히 말하면 이 작품은 우울증을 앓고 있는 환자의 병상일지이며, ‘죽어가는 자’ 의 자기고백인 셈이다.
조아라는 - 판소리의 장르가 그러하듯 - 수많은 ‘나’ 를 연기한다. 죽음 앞에서 신음하는 ‘나’ 외에도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비정상의 ‘나’ 의 모습이 펼쳐진다. 자신의 ‘병신같음’ 을 체감하는 ‘나’ 는 주변 사람들에게 또다시 굴욕적인 ‘나’ 로 취급당한다. 욕망을 불허 하는 삶, 여성이 아닌 삶, 존재성이 사라져가는 삶은 ‘나’ 의 ‘나됨’ 을 포기하게 만드는 이유들이다. 그렇게 '나'는 사회로부터 죽음을 독촉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대 중앙에 선 조아라는 최대한 몸을 좁히고, 껌벅거리는 큰 눈으로 관객들을 살피면서 인간의 두려움과 자괴감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한편, 그녀는 자책하는 대사들을 선언적으로 내뱉으며 세상에 대한 공포와 절망, 수치심을 연기했다. 한껏 쪼그라든 자아는 점점 내면으로 응축해가며 인간의 파멸을 예고하고 있었다.
미리 녹음된 목소리로 또 하나의 조아라가 무대 위 조아라와 묻고 다그치고 답하기를 계속한다. 질문하는 역할은 다시 관객에게도 넘어온다. 관객들은 프로젝션에 의해 배우의 몸에 새겨진 자막들을 따라 읽게 되는데, 관객의 비수같은 말은 배우의 몸에 꽂혀 그 신체에 여러 상흔을 남긴다.
그 다음 장면에서 관객들은 ‘비로소’ 소리꾼 조아라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폭발한다’ ‘헤매인다’ ‘난도질한다’ ‘쑤셔넣는다’ ‘흔들린다’ 등의 대사들은 그대로 진양조 장단의 곡조가 되어, 몸에 새겨진 슬픔과 분노를 절절하게 표현한다. 곧바로 이어받은 곡조에 휘모리 장단이 더해진다. 현대 구어체의 말이 우리네 한(恨)을 담은 노래로 이어지는 지점도 일품이지만, 절창하던 판소리가 무아지경의 테크노로 변이되는 짜릿함도 대단하다. 배우에서 소리꾼으로, 종국에는 무당(巫堂)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무대 위에 펼쳐졌으며, 현대에서 전통으로, 말에서 노래로, 흐느낌에서 절규로 다시 비트로 환원되는 ‘음악적 실험’ 들이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몸과 말의 결합체인 판소리가 주된 형식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작품을 이끌어가는 것은 오히려 디지털 미디어인 ‘사운드 아트’ 의 효과였다. 판소리에서 ‘북’ 을 쳤던 고수가 담당했던 효과를 이제는 컴퓨터를 잡은 사운드 아티스트가 도맡은 셈이다.
조아라와 협업한 윤제호는 입체적이고 역동적인 소리환경을 구성하여, 한 사람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도록 했고, 서로 다른 음색과 빠르기로 말-소리의 다양함을 보여주었다. 일반적인 (혹은 사회적인) 가청 범위를 벗어나 그간 들리지 않았었던 고통의 비명들이 사운드 디자인을 통해 그로테스크한 괴물의 목소리로 우리 귀를 파고들었다. 이는 죽음을 시각적으로만, 막연한 통증으로만 상기하는 관객들에게 제시된, 새로운 감각체험의 방식이었다.
마지막 장면은 심연을 향해 돌진해가면서 폭발시켰던 감정들, 충돌에 의해 조각난 자아들의 파편을 수습하는 과정이다. 조아라는 관객들 사이를 누비며 왜 살아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되묻는다. 관객들은 “사랑을 위해”, “꿈을 위해”, “너를 위해”, “자유를 위해”, “마음의 평화를 위해”, “후회하지 않기 위해” 등등의 이유들을 대면서, 그녀의 몸에 다양한 색깔을 입혀주었다. 제법 길었던 장면이었기에 무대 위의 호소와 절규에 숨죽였던 관객들은 그러한 해소의 시간을 통해 복잡해진 감정을 추스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고통의 무게로 범벅된 죽음을 벗어제끼며 홀가분한 미소로 마지막을 당부했다. 손 없고, 입 없는 자가 우리에게 보내는 간절한 한 마디였다. “커튼을 여세요.”
사지(死地)로 내몰린 타인의 고통이나 추함을 무대 위에 올렸을 때, 그것은 누군가를 구경거리로 만드는 것이나 약자의 흉내내기가 아니라 통렬한 공감으로 이어져야만 하는 것. 그리하여 무대 위에서 쏟아낸 엄청난 에너지, 고통스런 열정은 관객체험에 고스란히 반영된다는 것. 이것이 절규와 한숨으로 완성한 이 작품의 미덕이자, 온전한 의도라 할수 있겠다.
사회성 짙은 작품들에 꼬박 출석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배우이자 소리꾼' 인 조아라는 그녀만이 할 수 있는 - 텍스트적 재구성과 사운드적 재구성을 거쳐 - 사라케인의 자전적 희곡을 다원적인 몸말-퍼포먼스로 알차게 수행해냈다. “한 여름밤의 작은 극장” 이라는 로맨틱한 축제의 타이틀이 무상하게 이 극+음악은 반드시 볼륨을 높여 들어야 하는 진중함과 중량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나는, 이 장르를 데스-판-소리(사운드)로 명명하겠다. 플레이는 여기까지다. ■
한 여름 밤의 작은 극장에서 보내온 테이프를 뒤집어 튼다. 죽음은 희망과 분노를 오가는 것이라는 답을 이어받아, ‘삶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으로 다시 돌아간다. 고로 B면은 배우 고명희는 “손순례 여사를 소개합니다” 라는 낭랑한 목소리로 들려오는 삶의 찬가이다.
(이어서 계속)
* 본문 사진제공_국립극단 ** 내용출처_ 국립극단 홈페이지 (바로가기 >>> http://www.ntck.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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