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예술가엄마의 공연일기 <메메>

2013. 11. 12. 13:44Review

예술가엄마의 공연일기 - 은유은새엄마/임오선 배우의 춤리뷰

 

나, 그, 그녀의 몸짓.

베이비댄스 <메메>

2013년 SIDANCE, 아우라코 댄스시어터

 

글_임오선

 

 

대한민국에서 엄마가 된다는 것.

예비맘, 전업맘, 워킹맘, 슈퍼맘, 외동맘, 다둥맘, 알파맘, 베타맘, 사커맘, 헬리콥터맘. 이 수많은 타이틀 중에 하나를 취하는 것. 대학원에서 연극을 공부하던 중 임신을 하여 예비맘이 되었다가, 아이를 낳고 직장에 복귀하여 워킹맘이 됐고, 사이 둘째를 임신하고 출산하여 현재 다둥맘, 전업맘이 되었다.

독립된 여성에서 애 둘 딸린 엄마가 되는 소위 ‘마더 쇼크’를 극복하는 데까지 4년여가 걸린 것 같다. 우울하고, 실망하고, 분노하고. 가장 견딜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소외감이었다. 카페에서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며 대화할 수 없고, 영화관이나 극장에서 문화예술을 관람할 수 없으며, 육아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환경에서 작업을 할 수가 없다. 결국 동지를 찾아 나섰다. 선배 엄마들과 의기투합하여 아기와 엄마를 위한 연극놀이 프로그램을 하고, 영유아 연극을 관람하고 작업에 참여하기도 하며 엄마라는 역할에 대하여 예술적으로 소통하고자 했다.

그러다 만나게 된 아우라코 댄스 시어터의 ‘메메’. ‘댄스 시어터.’에서 약간 멈짓한다. 연극보다 상징적으로 느껴지는 무용극에서 교감하지 못해 한없이 의미 없는 몸짓이 되어버린 적이 있기 때문에. 그러나 다음 순간, ‘꼭 봐야겠다.’고 다짐한다. 4살만의 이상한 논리로 엄마를 이기려 하는 첫째 딸과, 무한한 육체적 에너지를 내뿜어 감당하기 벅찬 둘째 아들을 위해서. 게다가 참여형태의 공연이란다. 그래, 우리 한 번 몸으로 소통해 보자.

애 둘을 데리고 공연시간에 늦지 않게 예술의 전당까지 가는 길은 험난하다. 어느새 첫째 아이는 핸드폰으로 뽀로로를 보고 있고 둘째 아이는 카시트를 탈출하여 내 품에 안겨 있다. 차에서 내려 36개월 딸은 유모차에 태우고 10개월 아들은 아기띠로 멘 다음 극장에 간다. 도착하자마자 큰 애 쉬를 누이고 작은 애 기저귀를 갈고. 수유실이 마련되어있지 않아 화장실에서 수유를 한다. 한 숨 돌릴 새도 없이 열려진 문으로 애 둘을 건사하며 들어간다.

 

 

따뜻한 조명, 하얗고 매끄러운 바닥, 빨간 방석, 이국적인 외모의 무용수들과 악사. 갑자기 시간과 공간이 단절되었다. 아이들이 울거나 보챌까봐 노심초사하던 나의 마음이 서서히 가라앉는다. 현실과 다른 낯설음이 오히려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이윽고 조용한 악기 소리와 함께 무용수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들의 움직임은 익숙하면서 세련되었다. 아이들의 몸짓을 예술적으로 정련한 느낌이다. 무대에는 아기와 예술가가 공존한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는 종횡무진 무대 위를 뛰어다니고, 이제 막 배밀이를 시작한 아기는 엎드려서 공연을 본다. 무용수와 상관없이 다른 아이에게 관심이 있는 아이들도 있고, 시작부터 끝까지 엄마 품에서 떠나지 않는 아이도 있다. 무용수들은 그런 아이들에게 잔잔한 물결처럼 다가간다. 아이들과 닿을듯 말듯, 거울인듯 아닌듯, 아이들의 몸짓에서 영감을 받아 그들만의 몸짓을 만든다.

  

 

어느 순간 악기 소리는 좀 더 활기차지고, 무용수들의 움직임도 보다 동적으로 변했다. 우리에게 ‘이제 너희가 이 무대의 주인이야’ 하고 무언으로 이야기한다. 나는 자연스럽게 아이를 데리고 무대 중앙으로 향했다. 그러나 자아가 발달한 큰 애는 나서길 꺼려한다. 기다려 줄 것인가, 이끌어 줄 것인가. 잠시 고민했다. 무용수들의 의도를 알아챈 나의 움직임은 자연스러웠으나, 아이에게는 낯설음이었다. 작은 애는 이미 엄마와는 상관없이 여기저기 기어다니며 사람들과 만난다. 또래 아기도 만나고 그 부모도 만나고 무용수도 만나고. 나는 큰 애를 남기고 작은 애를 따라 움직인다.

한 밤중에 바닷가에서 들리는 원주민의 노래와 같은 음악에 맞추어 아기와 함께 사람들을 만난다. 큰 애는 엄마를 향해 한 걸음, 그리고 뒷걸음, 또 다시 앞을 향해 한 걸음, 그리고 뒷걸음치며 자기만의 방식과 속도로 무대로 나오고 있었다. 무용수가 교감하려 하자 화들짝 숨다가 살며시 손을 내민다. 큰 애가 내민 손과 그녀의 몸짓을 본다. 몸짓만 남자 내가 엄마라는 사실, 그와 그녀가 아이라는 사실이 사라지고, 우리는 그저 하나의 존재로 남았다.

 

 

 

그동안 ‘좋은 엄마’가 되려고 애쓰던 내 모습이 물결처럼 밀려왔다 사라진다. 무대 위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아이들을 보니 이제껏 나를 옭아매고 있었던 게 아이들이었는지 나자신이었는지 헷갈린다. 나와 나의 아이들을 그저 하나의 존재로 인식한 최초의 순간. 생경한 경험이었다.

공연은 서서히 마무리되었다. 시작이 그러했듯이. 그리고 이제, 무대 밖을 나오면 다시 일상이 나를 기다릴 것이다. 오늘 나는 오랜만에 촉촉한 예술의 단비를 맞은 기분이다. 작업하는 친구들이 부러웠고, 애가 둘이고 직장도 있는 내가 작업을 할 수 있을까 늘 두려웠는데. 관극, 만으로도 삶이 풍요로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아기를 위한 문화예술. 혹자는 그것이 과도한 교육열이 낳은 사치라고 비뚤어진 시선으로 이야기한다. 나는 그런 프로그램이 순수하게 아기만을 위해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기를 대하는 예술가의 태도, 아기를 위한 마음. 그것이 엄마에게 전해져 육아의 피로로 인해 아이를 제대로 보지 못했던 엄마의 마음을 움직인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기가 행복하다. 그래서 감사하고, 응원한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다 좋은 작업을 해주기를!

 

 

*사진_1=jin3/ 2.3.4.5.6 = SIDANCE 사무국 제공 / 7=초생달 / 8=시댄스 홈페이지

**서울세계무용축제 시댄스 홈페이지 바로가기 ---> http://www.sidance.org

 필자_임오선

 소개_4살 은새, 2살 은유의 엄마. 연극원 연기과 아동청소년극 전공수료. 연극놀이 리더. 

       놀이와 연극과 예술과 교육의 경계에 머무르고자 노력중~     

 

 

 

 공연소개 <메-메 Me-Me>

 Me 는 '우리’라는 핀란드어로, <메-메>는 예술가와 관객 모두가 ‘우리’가 되어 완성하는 공연이다. <메-메>에서 무용수들은 아이들의 움직임과 충동을 그려낸다. 그 모습을 통해 반복 불가능하고 즉흥적인 안무 패턴을 만들어 낸다. 아이는 마치 퍼포머와 같다. 배우인 동시에 관람자이다. 때로는 이끌어가고 때로는 참여하며, 또 관찰하기도 한다. 이 공연의 의미는 존재한다는 것, 공유한다는 것, 주고 받는다는 것, 공통된 순간을 다 함께 있는 그대로 즐긴다는 것이다. 이것은 복잡성 속의 단순함이다. 어른들에게는 한 가지 룰이 있다. 공연 중에는 말을 하지 않는 것. 정 필요하다면 비언어적인 소통만 있으면 된다. *관람 연령 36개월 이하  

 

 단체소개 _아우라코 댄스 시어터

 2006년 창단된 아우라코 댄스 시터어는 독창적이고 시각적인 무용 단체이다. 다양한 예술장르를 따뜻한 유머와 평온한 분위기, 침묵과 융합시키면서 유럽 전역에서 그 독창성을 널리 인정받고 있다. 그들은 극장과 축제는 물론미술관, 유치원, 요양원, 정원 등 다양한 장소에서 공연할 뿐만 아니라 유아와 어린이, 일반 성인과 노인 등 전 연령층을 관객으로 한다. 아우라코 댄스 시어터는 헬싱키의 비영리예술협회인 쿠쿨쿠리트(Kuukulkurit)의 지원을 받고 있다.

 

 안무가 소개_

파비 아우라 Päivi Aura

무용과 예술교육에 관한 공부를 계속해오다 1996년 이후 어린이 무용 및 연극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998년 핀란드 연극아카데미 커뮤니티 댄스 과정을 마치고 교육무용에 관한 논문으로 핀란드 이위베스퀼레 대학교에서 체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핀란드 뿐만 아니라 여러 유럽 국가에서 안무가, 무용수, 연출자, 교육자 및 컨설턴트로 활동했다.

1982년 탄시아우라(TanssiAura) 댄스스튜디오를 연 데 이어 1990년 타르야 사라(Tarja Sara)와 함께 파비 아우라 무용학교의 공동설립자 및 공동 교장직을 맡았다. 2006년에는 아우라코 댄스 시어터를 창립, 계속해서 어린이공연을 제작, 안무, 연출하고 있다. 핀란드 내외의 여러 단체와 협업하고 있으며 2004년부터는 *EU와도 다양한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EU프로젝트 소개 : 2009-2014년 작은 사이즈, 큰 시민 /  2010-2012년 부모 되기 및 교육, 문화, 예술 /  2004-2005년 글리터버드 – 유아를 위한 예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