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불순물> 작가 OTAKI와의 인터뷰

2013. 11. 26. 14:45Review


<불순물> 작가 OTAKI와의 인터뷰



인터뷰 및 정리_ 성지은

 


지난 10월 <불순물>이라는 한 만화책이 출판되었습니다. 온라인 만화잡지 <쾅> (홈페이지 http://www.quang.co.kr/)에서 연재되었던 것을 묶어 단행본으로 만든 것입니다. 지난 11월 9일 오후 홍대의 모 카페에서 작가 OTAKI를 만나 작품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힙합에서부터 만화, 그리고 삶에서부터 초현실까지 아우르는 넓은 이야기였습니다. 


<>에서는 언제부터 연재하셨어요?

 

작년 4-5월부터 연재했어요한 1년 3-4개월 걸렸네요.

 

책이 예뻐요. 만드는 과정은 어땠나요?

 

책은 원래 이것보다 더 거창하게 만들려고 했어요. 맨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계획이었어요. 제가 힙합을 좋아하는데, 힙합문화에서 이야기하는 딥한 것, 베이스, 그런 거 좋아하거든요. 그런 얘기를 하다가 여기에 적당량의 쇠를 넣자, 그렇게 하면 읽을 때 적당한 무게감이 들 것 같다고 했고, 책 표지는 동판을 떠서 음각을 새기려고 했었어요. 그게 비싸기도 했지만, 그거에서 쓸 수 있는 종이와 가능한 제본방식이 없어서 취소됐어요. 그리고 원래는 양장본으로 만들 생각도 없었어요. 그런데 동판이 안 되고, 그 다음에 다른 것으로 해 볼까 했는데 그것도 안 되고. 그러다 아저씨가 양장으로 하라고 하셨죠. 결국 하려고 했던 게 다 안 돼서 제일 하기 싫었던 것으로 만든 거에요.

 

책 옆면도 올블랙 컨셉이라서, 블랙으로 치고 금색 펄로 친 다음 칼질을 해서 재단면이 딱 떨어지게 만든 거에요. 내지도 이 종이 안 쓰려고 했었어요. 이게 검은색으로 보이지만 검은 종이를 대 보면 검은색이 아니에요. 이게 질감이 하도 안 맞아서 안 쓰려고 했는데, 원래 쓰려고 했던 종이가 안 된다고 하고 아저씨가 쓰다 남은 거라고 싸게 해주겠다고 하셨어요. (웃음)


 

 


이야기는 원래 계획하신 대로 진행된 건가요?

 

아니에요. 처음에 계획은 다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만화를 해 본 사람이 아니어서 기본적으로 자신감이 없었어요. 이거 전에 애들하고 스터디 겸 해서 하나 그렸었는데, 그 때 나는 창작이란 걸 못하겠다고 생각했어요. 항상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같이 하는 애들한테 이 정도의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잖아요. ‘그래도 신작을 해야 할 텐데, 할 수 있을까...’ 이런 저런 발악을 하고 있었어요.

제 주위에 음악 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그 친구들하고 저희 집에서 자다가 얘기를 하는데 그 상황이 초현실적이었어요. 친구들하고 24살 즈음 만났는데, 그 때는 모두 음악을 잘 했어요. 그런데 지금 음악하는 친구는 두 명밖에 없고 다들 어려워요. 그 전에도 어려웠지만, 지금은 어려움이 당연한 것이 되었고 심지어 어려움이 좀 초현실적으로 넘어갔더라구요. 그 상황에서 LP 디깅하는 친구가 해 준 말이 있었어요. 그게 바로 제가 했던 생각과 똑같은데, 다른 사람을 통해서 딱 제 안으로 들어오는 경험이었어요. 그 때 이 작품이 확 나왔어요.

 

처음부터 책을 만들려고 계획하셨나요?

 

아뇨. 책은 얻어 걸린 거에요. 시놉 만들고 나서 콘텐츠진흥원 지원 신청을 했는데 됐죠. 기적이었어요. 다양화 기반 조성을 위한 만화잡지 연재 지원인데, 잡지사에 잡지 원고료를 지원하는 거에요. 요즘 우리나라 지원 체계에서 개인 지원이 다 없어졌어요. 개인도 사업자가 있어야 하고. 그래서 개인으로 지원을 못해요. 이상한 체계인데, 아무튼 됐어요. 저 말고 다른 곳은 다 대기업이었거든요. 면접 볼 때 진짜 암울했어요. 심사위원이 자네는 왜 예술만화를 그리나?’라고 물어보고. (웃음)


책 주인공과 작가님이 비슷한 느낌이 들어요. 작가님도 창작을 잘 할 수 있을까, 하다가 돌파하신 거잖아요. 자전적인 얘기인가요?

 

그건 아니에요. 주인공을 모델로 삼은 건 아무도 없는데, 감흥을 얻은 건 제 친구 otakhee에요. 자전적인 얘기는 없고, 정서 같은 경우 제가 고된 상황을 좋아해요. 고된 영화나 힘든 주인공들을 좋아해요. (웃음) 해 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인데... 잘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열심히 해서 나온 거죠.

 

지난 여름에 언더 힙합하는 사람들을 만났었는데, 그 때의 분위기가 <불순물> 주인공의 상황과 많이 겹쳐졌어요. 주인공이 계속 나는 강하다, 할 수 있다그러잖아요. 그리고 자기 속으로 빠지는 것을 막으려고 친구들 만나서 웃으면서 떠드는 상황이 비슷한 것 같았어요.

 

저는 이걸 하면서도 힙합을 생각하며 그린 것...도 있겠네요. 어쨌든, 힙합은 완전 기술이거든요. 영감을 받아서 만들거나 취해서 만들 수 있는 음악 장르하고 완전히 달라요. 힙합은 완전히 보여주고 증명하는 거에요. 자기가 증명 못하면 그 사람은 병신 되는 거고. 힙합은 노래를 만들 때도 되게 테크니컬하거든요. 랩을 쓰는 것도 비트를 찍는 것도 샘플을 쓰는 것도. 저도 작업을 대하는 입장에서 보여주고 증명하는 것이 중요해요. 저 자신에게 보여주고 증명해내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못 넘어가는 것이 크거든요. 그래서 이거 할 때도, 엄청 그런 건 아니겠지만, 힙합적인 게 있는 것 같아요.




원래 힙합을 하셨어요? 만화는 언제부터 그리셨나요?

 

만화는 한 지 2년 되었어요. 원래 한국예술종합학교 애니메이션과 나왔어요. 3 때 서클 친구들이 한예종이란 곳이 수능 안 봐도 되고 석고데생도 안 해도 된대, 하더라구요. 그래서 애들끼리 한예종 가자고 했어요. 그 때 이애림씨라고 윙크, 나인에 연재하는 분이 한예종 애니과 학생이었어요. 그 분한테 편지 한 번 보내보자고 해서 보냈는데 답장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여름방학 시작되기 전에 고감도란 학원이 있는데 거기 가자고 해서 갔어요. 그런데 석고 데생하라며, 얘처럼 해야 홍대갈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처음에는 좀 재미있다가 지루해졌어요. 데생을 보통 4b 연필로 하잖아요. 그냥 콩테로 했다가 침 바르면 똑같지, 해서 하다가 혼나고. (웃음)

 

그림은 중고등학교 때 좋아해서 계속 그리고 미술학원만 안 다녔어요. 대학 들어가고 나서 1년 휴학해서 스타크래프트 대회 나갔어요. 제가 오락, 스타크래프트를 되게 좋아해서 심각하게 했거든요. 그리고 군대 가서 고민을 되게 많이 했어요. 나가면 뭘 해야 하나. 그 때 음악하자고 결심하고 뭘 해야 힙합을 할 수 있나 자료조사 다 했어요. 그 때 만난 친구들하고 하자센터에서 같이 힙합을 했어요. 공연도 많이 했었어요. 제일 크게 했던 공연이, 당시 이명박이 시청을 경찰 버스로 두른 적이 있거든요. 그 전날 전국에서 농민들이 모였는데, 상암 쪽에서 뭐를 했었어요. 그 때 같이 하는 애가 인권에 관심이 많아서 거기에서 공연했는데 깜짝 놀랐죠. 사람이 너무 많고 무서운 분위기이고. (웃음) 지금도 음악은 만드는데 전 제가 되게 잘한다고 생각해요.

 

음악 활동은 안 하세요?

 

항상 그게 문제인데, 씬이 되게 재미없어요. 사람들은 만나거든요. 그런데 다들 생각은 비슷해요. 씬이 재미가 없다. 그래서 새로운 씬을 만들어보고 싶다거나, 엘에이에 가고 싶다, 고 하죠. (웃음) 살아가고 있는 곳에 재미있는 씬이 없으니까 허무한 거 있어요. 그래서 , -리 그림 그려야겠다. 도저히 안 되겠다. 여기에서 더 이상 하면 돌아올 수 없겠다.’ 해서 빨리 그림 그렸죠.

 

그렇게 나오게 된 책이군요.

아까 힙합이 되게 기술이라고 하셨죠. 완벽주의여야 힙합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불순물>도 그런 느낌이 들어요. 한 컷 한 컷이 다른 만화에 비해서 공들였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래서 미술작품을 대하는 마음가짐으로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면 모두 대충은 다 계획해 놓을 것 같아요. 제 그림은 이렇게 그리고 싶어서 그린 게 아니라, 자신감이 없어서 이런 터치가 나와요. 만약 그림 실력이 좋아진다면 단순해지고 싶거든요. 저 자신으로 꽉 채우고 싶지 않고. 그런데 이 공간, 비어있음을 감당을 못 하겠는 거에요. 그래서 뭐가 자꾸 들어가고. 뒤로 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많이 버리게 되었죠. 해소가 되었달까, 미니멀하게 되었어요. 할 때마다 항상 이거는 해선 안 되겠다, 그런 게 하나씩 생겼어요.

제 그림을 보고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한다면 정보량이 많아서인 것 같아요. 요새는 정보량이 많은 시대가 아니잖아요. 미니멀하고 빨리빨리 가는 시대이고. 정보량이 많은 것을 오랜만에 봐서 놀라는 거지, 잘 그린 그림은 아니고. 뒤로 갈수록 자연스럽게 덜어낼 수 있었어요. 앞 부분하고 뒤 부분 그림체가 다르고. 그래서 욕먹죠. 한 책에서 이렇게 그림체가 달라지면 어떡하냐고. (웃음)

 

잘 그리고 못 그리고를 떠나서 엄청 노력을 하신 거잖아요. 완벽주의거나 작업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완벽주의보다는 조바심인 것 같아요. 힙합도 그렇지만, 진짜 잘 하는 사람들은 별로 술 안 마셔요. 사람 안 만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거든요. 저는 혼자서 자기 그림을 하도 많이 보고, 많이 듣고 그러니까. 예전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들은 윤종신 말이 인상 깊었어요. 유희열이 015b 때는 윤종신이 진짜 미성이었는데 지금은 탁해졌다고 하니까, 윤종신이 자기는 두 번 다시 이 발성을 해 본 적이 없다고 했어요. 그 때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쫄아있어서 나온 발성이래요. 저도 그래요. 초반에 , 잘 해야지이런 것이 나로 꽉 차 있어서, 쫄아서 한 것 같고, 뒤로 갈수록 제 본인의 발성이 나온 것 같아요. 이런 그림을 다시 그릴 수는 있겠지만, 제 인생에 두 번 다시 이런 상태로 돌아가고 싶진 않아요. 쫄면서 뭔가 하고 싶진 않죠.

 




책으로 들어가 볼게요불순물이라는 제목은 어떻게 지으셨어요?

 

제가 선택을 잘 못해요선택을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무기력한 열정이니까. (웃음) ‘오타키도 친구가 쓰고 있는 것을 보고 감흥을 받아서 쓰게 된 거고제목도남의 눈을 많이 의식하다보니까 딱 듣기에 좋은 거 없나 하다가없어요있어도 선택을 못하니까 없거든요그런데 음악하는 친구, otakhee 앨범 트랙리스트 보다가 불순물이 영어로 적혀 있더라구요그게 간지가 나요이거랑 후보가 열 몇 개 되었어요붙여놓고 보니까 딱 맞더라구요친구가 전화했어요. ‘나도 불순물이란 트랙 만든 적 있는데!’ ‘그래?’ 거짓말했어요. (웃음)


처음 볼 때는 주인공 이름도 안 나오지만 당연히 한국이겠지, 하고 봤거든요. 그런데 장면 세부를 보고 일본스럽다고 생각했어요. 자동차 운전석도 왼쪽에 있더라구요.

 

어디에 속해있다는 걸 구체적으로 한정짓고 싶지 않아서, 이름도 안 쓴다거나 애매모호하게 하긴 했어요. 일본은 엄청 좋아해요. 그런데 한 번도 안 가봤어요. 일본의 정서가 좋아요. 일본 글도 좋구요. 제가 속해 있는 걸 잘 못해서, 학교에 적응을 잘 못했어요. 고등학교 때 좀 심했거든요. 그래서 도서관에 가서 일본소설 엄청 찾아 읽고 그랬어요. 그렇게 일본 영화도 많이 보고 일본 힙합도 진짜 좋아하고. 근데 방사능 때문에 가고 싶진 않아요. (웃음)

 

그러고 보니 책 끝 부분은 방사능의 이미지네요.

 

이 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친구 여러 명의 어려움에 대한 초현실적인 자세들하고 일본 쓰나미에요. 2011년에 쓰나미가 왔을 때 엄청 인상 깊었거든요. 그 사진을 날짜별로 다 모아놨어요. 하루, 이틀, 열흘, 한달, 일주년, 삼주년... 항상 이것을 그려보고 싶단 생각이 있었는데, 전에 들었던 친구의 말하고 이거가 딱 붙었어요. 두 개가 딱 붙어서 공간이 생기니까 바로 되더라구요. 애들이 제 얘기를 듣고 나서 만화 볼 때마다 쓰나미 언제 오냐고, 쓰나미, 물어봐요. 아직 안 왔냐고, (웃음) 다음에 오는 거냐고, 하고 봤는데 쓰나미가 안 와 (웃음)

암튼 일본 진짜 좋아해요.

 

<불순물>에서 주인공의 삶에 변화를 주게 되는 계기가 아저씨와의 만남이죠. 작가님은 이 아저씨의 역할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처음에 관찰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블록버스터나 헐리웃 영화는 보고 싶다는 감정도 잘 안 들지만, 보면 별로 재미가 없고 공포영화도 감흥이 없어요. 저를 제일 살 떨리게 하는 거는 현실의 리얼한 부분이 확 오는 것이에요. 그런 부분에서 저의 창작을 하는 자세에 단어를 던져 준 것이 영화 <자전거를 탄 소년>이었어요. 처음에 봤을 때는 잘 몰랐어요. 그런데 여자친구가 그 결말이 정말 놀랍다고 하는 거에요. 그래서 생각해보니까 너무 놀라운 거죠. 그렇게 생각만 하다가 이동진 기자가 유희열의 라디오천국에서 윤리적인 카메라라는 얘기를 해요. 그 단어들이 제 생각들, 그리고 하고 싶은 것들을 딱딱딱딱 짚어주더라구요. ‘, 그래 이번에는 이렇게 해 보고 싶다. 관찰하고 싶고, 잘 지켜보고 싶고, 끼어들고 싶지 않고.’ 그런 생각을 가지고 시작을 했어요. 애들한테 얘기했죠. ‘나 이번에 윤리적인 카메라야.’

 

<불순물>이 별로 길지 않은 작품이고 오래하지도 않았는데, 어느 순간 인물이 자기가 만들어간다는 걸 경험했어요. 제가 상황을 만들거나 뭘 해도 안 되요. 그건 진짜 놀라웠어요. 감독이나 작가들이 좋은 인물만 있으면 작품이 굴러간다고 말하죠. 그걸 중간부터 짧게 느꼈어요. 사실 이렇게 자세하게 많이 그리고 싶지 않았거든요.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그려야만 할 것 같더라구요, 이 인물들은. 100페이지 정도 그렸을 때부터 주인공에 대해서 알게 되고, 그러면서 그림이 변하기 시작해요. 사실 더 미니멀하게 그리고 싶었는데 이렇게 그리게 되었어요.

 

결말도 처음에는 생각해 놓은 게 있었어요. 그런데 하다가 중간에 제가 쾅을 하면서 안 좋은 인간이 되어갔어요. 2월에 친구들이랑 네팔과 인도 여행을 갔어요. 거기에서도 실수를 많이 했어요. 마지막에 리쉬케시란 도시에서 10일정도 있었는데 5일 정도 지나니까 여유가 생기더라구요. 계속 같은 곳 산책하고 같은 곳 멍하니 앉아있고 보고있고. 그러다보니까 생각을 하게 되면서 작품생각을 하게 되고. 그 때 책을 읽고 싶었는데 책이 없어서 핸드폰 어플로 받아놓은 성경을 읽었어요. 그러면서 , 되게 내가 감사하구나. 말도 안 되는 기회를 얻게 돼서 모든 것이 감사하구나.’라는 걸 놓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주인공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자기 삶의 감사함을 인식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아저씨가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있진 않았어요. 주인공의 여자친구 같은 다른 인물도 있었는데 명확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뺐어요. 이 아저씨한테 미안하지만 주인공이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걸로... 활용하진 않았어요. (웃음)

 

이 아저씨가 나중에 사라지잖아요. 성경 이야기도 하셨지만, 저는 이 존재가 신 같은 느낌이었어요. 모든 것을 관장하는 신은 아니고, 사람이 살다가 아무 개연성도 없는데 생기는 일이 있잖아요. 저 사람을 만난 건 행운이야, 이 일이 일어난 건 아무 이유도 없지만 다 이유가 있었어, 같은. 그래서 이 책이 계속 꿈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든다는 느낌도 들어요.

 

상황을 많이 생각해요. <자전거를 탄 소년>을 보고, 그리고 이동진 기자가 했던 말 때문에 관찰하고 지켜보는 것이 저한테는 중요한 방식이라고 생각해서 아저씨와 주인공이 어떻게 될까 많이 지켜봤거든요. 여기에도 다른 상황이 있었는데,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전체적으로 생각한 것은 이래요. 아저씨가 선의를 가지고 왔는데 얘는 그 순간에 알아차리지 못하고 자기 자신만 바라보죠. 그러다 자신이 선의를 베풀 기회를 한 번 놓치고, 집에 가서 알게 되어서 자기도 보답을 하려고 갔는데 놓친 기회가 마지막 기회였던 거죠. 그리고나서 아저씨가 죽었든 안 죽었든지 간에, 고민을 하다가, 마지막에는 감사함을 느끼게끔 하고 싶었어요.

 

그 감사함이 자기가 이미 갖고 있는 것들까지 포함하는 건가요?

 

어쨌든 주인공의 시선이 자기 자신한테만 있다가 최소한 이 아저씨에 대해서는 밖을 볼 수 있는 상황까지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감사함까지는 아니더라도, 이것이 시선이 자기 자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작이면 좋겠다고. 사실 이 뒤로 더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시간이 될까, 힘든데? 그런 생각도 하고. (웃음) 모르겠어요. 더 그렸어야 되는 거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어요.

 




책을 만드신 것은 처음이죠? 완성하고 나니까 어떠셨어요?

 

아무 느낌이 없더라구요. ‘이래도 되나. 후련해야 되는 거 아니야. 책 나왔는데도 아무 느낌도 없고. 기뻐야 되는 거 아닌가.’ 그랬어요. 제가 책 만드는 내내 아무 감정이 없어서 디자인 해 주는 친구들이 힘들었대요. 자기가 해서 보여주면 좋다고는 하는데 내가 뭘 잘못하고 있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하더라구요.

 

사실 이걸 하면서 더 적극적으로 해 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지금까지 해 오던 것이 있어서 확 바꿀 수가 없었어요. 그러니까 미친듯이 딴 게 하고 싶더라구요. 이거는 아쉬움이 너무 많고. 그래서 정말 아무 느낌이 없었던 건지.... 지금도 느낌이 없어요. (웃음)

 

만화의 앞과 뒤에 안톤 체호프의 <공포> 구절들을 인용하셨잖아요.

유령이 무서운 건 사실이지만 그러나 현실도 무섭습니다.”

내 눈에는 사방이 컴컴해보여요.”

 

체호프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구요. 체호프 단편선을 읽고 너무 놀랐었어요. 제가 하던 생각이 활자로 적혀 있으니까 놀랍더라구요. 이 부분도 그렇고, 문장들, 단어들도 놀랍고. 이 소설이 되게 몽환적인데 제가 사이키델릭한 것, 초현실 좋아하거든요. 그것이 여태까지의 제 인생이었던 것 같아요. 너무 이해할 수가 없더라구요, 삶을. 항상 상황이 컴컴해요 (웃음) 뭘 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왜 사는 건지도 모르겠고. 혼자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냥 무기력하게 살아요.

 

어떻게 보면 사방이 컴컴하니까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제가 호기심하고 조바심이 많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열정적인 조바심은 아니구요, 무기력한 조바심이에요 (웃음) 호기심도 많아서 궁금한 것들은 항상 건드리긴 건드리는데 좀 하다가 보면 기회가 망가진다거나.. 그런 순간이 오면 저는 멈추죠 (웃음) 제 기준에서는 꾸준히 한 게 없어요.


음악도, 만화도, 작가님 기준이 너무 완벽한 게 아닌가요!

 

완벽주의가 뭔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남들 눈을 너무 많이 의식하는 것 같아요. 항상 저의 최선을 찾고 그 정도를 보여주고 싶어하고. 제가 알고 있는 게 옳은 게 아니지만 저는 항상 최선을 찾으려고 하거든요. 애들은 최선을 찾지 말고 버리라고 그런 얘기를 많이 하죠. 그래서 제가 참 조급한 거죠. 이렇게 하면 안 되겠다, 라는 건 알게 되거든요. 그런데 주변에 증명하고 싶으니까 항상 조급하고. (웃음) 그런 것들이 완벽주의로 만드는 것 같아요.

 




앞으로 <>에서는 다른 작품을 연재하실 계획이세요?

 

이번에 만화잡지 만들거든요. 지금은 거기에 들어갈 것을 하고 있구요. <> 같은 경우 중간에 기로가 몇 번 있었어요. 처음의 비전을 지금은 감당을 못하잖아요, 시기가 많이 변해서. 그래서 한 명은 진지하게 하자고 하는데 저하고 다른 한 명은 귀찮다고, 작업만 하고 싶다고 하고. 그러다보니까 진전도 안 되고 모임도 타이트하지 못하게 되더라구요. 할 일도 많아지고 돈에 관계된 일도 많이 생기니까 힘들더라구요. 잡지도 처음에는 이게 감당이 안 될 것 같아서 되도 걱정이라고 했어요. 할 일이 너무 많아요. 그런데 됐으니까 안 하면 법적으로 큰일나는 거에요.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그런데, WIN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있죠. 거기에서 A, B팀이 처음에는 소속감도 없다가 점점 팀으로서 짜릿한 순간을 맞으면서 발전하잖아요. 우리도 팀으로서 짜릿한 순간을 맞보면 작업에 좋은 순간이겠다, 해서 다시 즐겁게 하고 있어요. 일단 마감이 12월 말이라 빡세고 힘들어요.

 

노는 것뿐만 아니라 일적으로도 마음 맞는 사람 만나기가 힘든데, 좋은 친구들이네요.

 

저희들한테는 <>이 즐거움이에요. 저희는 술담배도 안 하고, 음담패설도 안 하고 야식시켜먹으면서 스타만 하며 놀았어요. 그러다가 졸업하면 어떻게 하지, 하다가 만든 거였거든요. 만화 잡지나 만들어볼까. 계속 만나려고. 저희로서는 <>이 제일 즐거운 놀이에요. 계속 그랬으면 좋겠고, 그래서 다른 걸 하려면 진지하게 해 보자고 해요. 이게 아니면 만날 일이 없어요. 서로의 끈이 없어지기 때문에 그래서 미친 듯이 잡고 있어요. 이거 놓치면 혼자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너무 외로워지니까요




BULSUNMUL OTAKI


"나는 아마 태어나면서부터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할 놈이었던 모양입니다.

당신이 무엇인가를 이해한다면... 그렇다면 당신에게 축하를 드리지요.

내 눈에는 사방이 컴컴해 보여요."


                                             from 공포 by Anton paviovich Chekhov



한 청년은 암흑 같은 순간을 작가는 조심스럽게 지켜봅니다.

제삼자의 시선을 유지하며, 그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그대로 옮겨 놓으려 노력합니다.

섬세하게 그려진 그림은 청년의 심정을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한 도구이지만, 그 자체로도 미학적인 성취를 달성합니다.



작품은 Graphic Novel의 3단 6컷 페이지 구성법을 적극적으로 빌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Long Take 기법을 연상시키는 연출법을 통해

작가가 단순히 형식을 위해서 빌려온 것이 아니라 인물의 감정 흐름을 표현하는 최적의 구성을 고민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삶이라는 것엔 그 어떤 희망도 허락될 것 같지 않지만, 청년의 마음속에 감사함이라는 작은 변화가 시작되는 것을 봅니다.

그것이 희망이 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청년에겐 다른 곳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작은 시작이 될 것입니다.


<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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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aki> 블로그 realotaki.tumbl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