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5. 17. 15:57ㆍReview
태초에 테크놀로지가 있었다.
- 오대리 전시&공연
<(특별히) 되는것도 없지만 (딱히) 안되는것도 없다>
글_성지은
세상에는 다양한 예술작품들이 있다. 우리는 그것들을 분류하고 이름붙이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여러 가지 이름이 만들어진다. 미술, 음악, 무용, 그 안에서도 조각, 회화, 전자음악, 클래식, 등등. 가지각색의 작품들 중에는 그 이름에 딱 맞는 것들도 있고, 벗어나는 것들도 있다. 착 달라붙는 핸드메이드 옷 같은 작품은 그것의 이름 하에서 설명(說明)하기가 쉽다. 이름이 작품의 형식이나 내용의 속성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반면, 여러 겹 레이어드 된 난해한 옷차림과 같은 작품은 그 이름으로 작품의 모습을 분명히 밝혀 풀어내는 것은 어렵다. 이름을 들었을 때 연상할 수 있는 모습과 작품의 실제 모습이 간극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름들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들은 종종 우리가 알고 있는 이름으로 붙잡아 두기 어렵다. 2014년 4월 말, 서울 홍익대 앞 서교예술실험센터 지하에서 열린 오대리의 전시와 공연이 바로 그러했다. 그의 전시&공연은 너무나도 새로운 것이었고, 내가 목격한 것을 어떻게든 설명해보려 했지만 도무지 그럴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설명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이러한 미진한 설명조차 없다면 그 작품을 보지 못한 사람은 더욱 더 작품에 대해 감을 잡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은 그러한 의도에서 쓰여진, 2014년 4월 24일 목요일에 행해진 작업에 대한 기록(documentation)이다.
오대리는 노이즈 일렉트로닉 음악을 만들면서 각종 아날로그 장비로 영상도 만드는 전방위 예술가이다. 그가 서교예술실험센터의 <소액多컴> 사업에 선정되어 펼친 작업은 약 일주일 간 센터 지하에서 열린 전시와 공연의 복합물이었다. 일반적으로 ‘전시&공연’이라고 하면 둘 중의 어느 하나가 중심이고 다른 하나는 일종의 이벤트 격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오대리의 전시&공연 <(특별히) 되는것도 없지만 (딱히) 안되는것도 없다>는 이러한 고정관념을 깨부순다. 물론, 매일 저녁 각기 다른 공연이 펼쳐지기 때문에 공연이 중심이고 전시는 그저 비매품 정도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공연장을 찾아 전시를 보고 실제 공연을 보았을 때, 지하 구석구석에 놓인 기괴하고 쓸모를 알 수 없는 강렬한 물건들의 이미지가 공연 속에서 충분히 자기 역할을 해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오대리의 작업에서 ‘전시’라는 시각 예술과 ‘공연’이라는 청각 예술은 대등하게 어우러진 것이다.
전시를 간략히 살펴보자. 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어두운 조명 아래 잡동사니(?!)들이 군데 군데 쌓여있는 것이 보인다. 빈티지샵에서나 볼 수 있는 모니터들,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계들, 전선들이 얽혀있다. 그 중 쌓여있는 모니터들은 미디어아티스트 백남준의 작업처럼 치지직거리는 영상을 내보내고 있다. 신기해하며 둘러보고 있을 즈음 공연이 시작했다. 관객은 적다. 관계자를 제외하고는 나를 포함해서 4~5명 정도. 전방 벽에는 커다란 스크린이 내려와 있고 그 맞은편에서 브이제잉을 하고 있는 오대리의 모니터 속 영상이 빔프로젝터를 통해 스크린에 비춰진다. 그 왼편에는 그날 음악을 담당해줄 Mohani가, 오른편에는 미술을 담당할 정혜원과 권용우가 앉아서 묵묵히 음악을 만들고 그림을 그린다. Mohani가 (아마도) 즉흥적으로 만들어내는 음악은 왼쪽 벽의 커다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다. 정혜원과 권용우가 (역시) 즉흥적으로 그리는 스케치들은 그 장면을 촬영하고 있는 카메라를 통해 오대리가 만드는 영상의 한 가지 소스가 된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오대리는 자신이 기존에 갖고 있던 비쥬얼 소스들과 그곳에서 실시간으로 만들어지는 소스들을 섞어서 하나의 즉흥 영상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즉흥 비쥬얼 연주에 즉흥 오디오 연주를 더해주는 것은 바로 Mohani의 디제잉과 전자기타 연주이다.
이 공연에서 중심이 되는 ‘믹싱(mixing)’이라는 것은 오대리가 꾸준히 몰두하고 실험해 온 것이다. 오대리는 “매우 오랜기간 특정 분야들에 대한 광적인 수집광이자 콜렉터”로 살아오며, 그렇게 집적된 것들, 기록된 것들을 보여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오래된 시간을 담고 있는 집적과 기록을 보여주는 방식은 바로 ‘즉흥’이다. 악기연주와 그림그리기, 그리고 오대리가 모은 아날로그 이미지 이렇게 세 가지 층위의 시공간은 오대리의 낡은 아날로그 모니터 속에서 합쳐지고 변형되어 새로운 종류의 이미지로 탄생한다. 아마도 여기까지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유튜브를 통해 접할 수 있었던 오대리의 영상작업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이 영상이 아날로그 모니터와 연결된 빔프로젝터를 통해 3차원의 공간으로 확장되었다. 사실 빔과 스크린을 통해 어떠한 전자 이미지를 재현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물리적인 일이다. 그것은 사실 일종의 빛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오대리는 빔에서부터 나와 스크린에 닿는 빛에 레이저나 안개를 쏘면서, 즉 그 빛의 흐름을 교란시킴으로써 물질성을 강조했다. 이것은 기존에 노트북 모니터나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서 접했던 오대리의 2차원 영상과는 확연이 다른 것이었다. 사실 오대리가 보여주고자 하는 이미지가 2차원이 아닌 3차원적인 것임을 다시 한 번 주지시키는 것이다. 오대리의 전시&공연에서는 이미지의 물질성뿐만 아니라 음악의 물질성 또한 두드러지게 표현되었다. 마찬가지로 근본을 짚어본다면, 음악, 즉 소리란 결국 공기의 떨림이다. 공중을 메꾸고 있는 입자가 떨린다면, 그 입자와 맞닿아 있는 물체 또한 떨릴 수밖에 없다. 작고 밀폐된 공연장 안에서 앰프(amplifier)를 통해 엄청나게 증폭시킨 이 소리는 결과적으로 압도적인 물리적 존재감을 가졌다. 그것은 곧 공기가 진동하고, 고막이 아프고, 심장과 피부가 떨리게 만들었다.
이 모든 경험의 중심에는 오대리가 갖고 노는 ‘기계들’이 있었다. 워낙 기계를 잘 모르는 나에게 그것은 너무나도 신기한 광경이었다. 이 버튼을 누르면 화면이 빨갛게 되고, 저 버튼을 만지면 다른 채널이 송출되어 겹쳐진다. 마찬가지로 이 버튼을 누르면 낮은 떨림의 소음이 나오고, 저 버튼을 만지면 높은 떨림의 비명이 나온다. 그렇지만 이 모든 기계-중심의 상황에 놓인 한 가지 아이러니가 있었으니, 오대리의 장비들은 모두 아날로그(처럼 보였다는) 점이다. 이것은 고속으로 성장한 테크놀로지의 시대를 사는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점을 시사하기도 했다. 손가락만 몇 번 움직이면 그럴듯한 음악을 뚝딱 만들어낼 수 있고, 눈 앞의 광경을 픽셀로 담은 후 손쉽게 색깔을 보정하거나 얼굴을 홀쭉하게 만드는 등의 변형을 가할 수 있는, 마법과도 같은 테크놀로지의 시대. 하지만 모든 테크놀로지의 기본은 0과 1의 선택, 단순한 이진법이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사람의 손이라는 점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술이나 기계, 디지털과 같은 단어들은 인간이나 아날로그 등의 단어들과 순전히 모순되고 서로 배척하는 관계에만 놓여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기술(技術)로부터 기계(機械)가 나왔으며, 그러한 기계를 통해 디지털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인간의 테크놀로지. 이것이 바로 오대리의 전시&공연에 대한 기록으로서의 이 글이 밝힐 수 있는 한 가지이다. 얼마 안 되는 글로 당시 100분동안 나의 세포가 겪었던 물질적 경험을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 몸이 외마디를 지르며 탄성하고 있었다는 점은 24일 목요일 공연의 단편을 잘 보여줄 것이다. 내 몸을 압도하는 광경과 공간 안에서 눈과 귀는 외치고 있었다.
“태초에 테크놀로지가 있었다...!”
(특별히)되는것도 없지만
(딱히)안되는것도 없다
즉흥 작업을 통해 나오는 묘한 긴장감과 떨림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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