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두 번째 암페어가 느끼게 한 것들 - AMAFAIR Vol.2

2014. 6. 8. 01:38Review

 

AMAFAIR Vol.2 (2014, @무대륙)

두 번째 암페어가 느끼게 한 것들

 

글_김솔지

 

전기밀착시대와 전자음악

전기 수요의 막대한 증가. 전기는 현대 도시생활자에게 물과 공기와 비슷한 요소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필수적이다. 심지어 전기전자는 도시생활에 본질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전기 친화적인(electricity friendly) 삶은 우리의 예술, 특히 예술 행위에도 자연스럽게 새로운 양상을 만들어냈다. 그 가운데 가장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다층적으로 두드러진 것이 바로 전자음악이다.

 

전자음악은 실험과 대중성을 오가는 장르이다. 전자음악의 역사를 보자면, 1874년, 뮤지컬 텔레그래프라는 최초의 전자 악기가 생김과 동시에 전자사운드를 두고 클래식 음악계와 대중음악계는 핑퐁처럼 영향력을 주고받았다. 1920년대 소음과 전자기술의 조합을 시도한 ‘전자시’를 발표하며 에드가 바레즈가 전자 악기의 개발을 주장하고 케이지-슈토크하우젠 등이 전자적 사운드로 작품을 써내면서, 그리고 1960년대 테이프 루핑과 시퀀싱을 이용한 미니멀리즘 음악이 흥행하면서 클래식 음악은 아방가르드의 선봉에 섰다. 그런가하면 한편에서는 전자음악을 대중화시켰다. 1965년경 신시사이저가 시중에 상품으로 등장하면서 프로그레시브 록밴드에서는 신시사이저라는 악기를 밴드의 기본편성으로 정착시켰다. 그리고 1980년대 이후 팝 음악계는 전자 기타 소리가 점차 사라지면서 전자음의 홍수가 밀려왔다. 1980년대 시카고 디트로이트의 지하클럽에서 은밀하게 소비되던 시퀀싱을 통해 프레이즈를 일정한 패턴으로 반복하는 이른바 테크노 음악이 서서히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대중음악계에서는 일렉트로닉 음악, 또는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결합된 팝 음악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된다. (김여항, 제1회 암페어 리뷰 ‘전자 음악 페어: 암페어(AMFAIR)’에서 발췌)

 

날로 “전기는 삶의 더 커다란 조직화를 허용했으며 시간과 계절의 자연적 리듬을 빼앗아”가고 있지만, 오히려 아티스트들은 “미묘하고 활기찬 유체”인 전기를 통해서 리듬을 만들어낸다. 디지털 시대, 우리는 종종 실내 무대에, 전기를 끌어다가, 전자 악기와 전자화된 목소리로 음악을 만들어내고 즐기고 있다. 아날로그적인 것으로 모든 게 이루어지던 시절에 주로 실외에서, 가벼운 악기를 가지고, 탁 트인 목소리로 음악을 주고받았던 것과 유사하다. 이렇듯 전자음악은 시대적인 흐름상 한편으로는 익숙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기에는 아직 낯설고 어려운 장르다.

위키백과에서만 찾아보더라도 전자음악 세부 장르가 다양하게 나눠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처럼 전자음악에 친숙하지 않은 감상자는 음악을 듣다가 그 음악이 전자음악이라서 전자음악에 관심 가지기는 쉬울 수 있지만, 전자음악의 울타리를 열고 그 안을 들여다보기에는 어려운 면이 있다. 심지어 ‘전자’라는 말로 다양한 층위의, 범위의 음악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또한 전자음악은 위 인용문에서도 언급하듯이 ‘대중성’과 ‘실험성’이라 는 두 개의 극 사이에서 끊임없이 ‘생산’되고 있는 음악이다. 게다가 대중성의 축에서도 대중성과 실험성 사이를 오가기도 하고, 반대로 실험성의 축에서 실험성과 대중성을 오간다. 이러한 전자음악의 ‘독특한 친숙함’은 국내유일 전자음악 페어, 암페어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국내 유일 전자음악 페어 ‘암페어AMFAIR’ vol.2

5월 24일 토요일, 제2회 암페어가 무대륙에서 열렸다. 전류측정단위 암페어(ampere)와 박람회(fair)를 의미하는 이름 그대로, ‘암페어(Amfair)’는 전자음악 공연과 마켓이 결합된 형태다. 올해 역시 영기획의 기획과 무대륙의 후원으로 무대륙에서 진행됐다. 제1회 암페어가 “한국 전자 음악 신에 속한 모든 이를 모으”려는 취지를 세운데 이어, 올해 암페어는 날로 등장하는 새로운 세대들을 소개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기획자 하박국은 “2014년 초반에 음반을 발표한, 레이블이나 크루에 속하지 않고 담담하게 자신의 음악을 만들고 활동하는 이들을 조망하고 싶은 마음”을 기획의도로 설명했다.

 

전자 악기가 내는 소리와 울림을 즐기는 순간. 방해를 주지 않는 한에서, 자유로운 포즈로 음악을 듣는 순간.

전자음악가의 움직임에 따라 모든 게 흔들거린 그 순간들…. 두 번째 암페어

 

3시부터 10시 30분까지 한 팀에서 다른 팀으로 계속 차례를 넘기며 이어진 공연은 ‘테이블 옮기기’라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클래식이나 밴드 공연이라면 한 팀에서 다른 팀으로 바뀌는 시간이 5분 남짓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암페어에서는 각 팀당 교체 시간을 최소화하고자 미리 세팅된 테이블을 교체하는 방식으로 무대 전환이 이루어졌다. 악기를 테이블 위에 미리 세팅해두고 전기선만 꼽는 것이 바로 전자음악 라이브에서 느끼는 묘미일지 싶다. 짧은 틈이지만 관람객은 지하무대를 벗어나 뜰로, 무대륙 밖으로 자유롭게 다닐 수도 있었다. 원한다면 무대륙 카페에서 간단한 요깃거리를 하거나 방금 막 공연을 끝낸 팀과 이야기를 나눌 수도, 음반을 구입할 수도 있었다.

잠시 휴식을 즐기고 다시 무대로 들어오면 카펫에 다리를 쭉 뻗고 앉거나, 서거나, 벽에 기대거나, 의자에 걸터앉을 수 있었다. 사람이 많아서 움직일 공간이 매우 적어지는 때를 제외하면 대체로 마음에 드는 자세로 음악을 들을 수 있었던 거다. 전자음악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감상자들은 핸드폰을 진동으로 해주라거나 꺼주라는 안내를 받는 대신, 사진 찍고 녹화하고 궁금한 것을 검색하고 SNS에 공유하면서 전자음악을 느꼈다. 어떤 이는 스피커 옆에 몸을 웅크렸고, 어떤 이는 함께 온 친구와 이야기를, 또 다른 이는 비트에 맞춰 몸을 흔들며 레코딩했다. 모든 주의를 음악에 집중해야하는 강요받은 예의를 차리지 않고 그저 즐기고 나누는 시간이었다. 전자음의 선을 따라가며, 그 주변에 흩어진 점들을 발산시키는 움직임이 계속 이어졌다.

 

사뭇 다른 듀오 전자음악가: 큐메오 프로젝트(Cumeo Project)와 시어스(sears)

 

큐메오 프로젝트cumeo project

 

스무 개가 넘는 많은 팀들 중에 내가 본 3시간(3:30~6:30) 동안 인상 깊었던 두 듀오 큐메오 프로젝트와 시어스에 대해 간략히 얘기해보려 한다. 영기획 텀블러에 따르면, 큐메오 프로젝트는 유명 음악 블로거들의 모임 사이트인 Hype machine에 몇 곡이 블로깅 될 정도로 글로벌한 인지도가 있는 팀이다. 이번 가을에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MIGZ’ 페스티벌에도 초청되었다고 한다. 무대륙 무대에 있을 때는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지만, 등장부터 예사로워 보이지는 않았다. 그들 음악에는 그들만의 형식이 있었다. 음악을 구성하는 형식뿐만 아니라 무대를 이루는 모든 형식에 있어서 완성도를 겸비한 팀이었다. 음악, 뒷편의 미디어 월(media wall), 그들의 호흡은 하나로 이어져있었다.

이 팀을 보면서 ‘지금 이 음악을 듣는 이들과 함께 느끼는 즐거움이 이곳 서울이라는 도시에 사는 이들과 어떻게 연결돼 있으며, 그들과 어떤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전자음악이 주는 호흡, 끊임없는 움직임, 화려한 디지털 이미지는 전기밀착시대의 대도시적 삶의 한 단면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 아닐까.

큐메오 프로젝트가 도시가 가진 디지털적 특성을 마음껏 느끼게 했다면, 시어스는 백남준의 미디어아트가 추구했던 것처럼 전자음악을 통해서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돋우었다. Mohani와 Sam Lim으로 이루어진 시어스는 전자음악으로 도시에서 상상할 수 있는 바깥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듯했다. 그들의 음악과 행동은 매우 감성적이고 모호했다. 단서를 찾던 나는 그들로부터 이 문장을 얻었다. “침묵의 쪼개짐과 같이 메아리가 부딪혀 돌아오는 곳에서 그대가 그대 선 길이 다소 소음에 차 있는 것처럼 느껴져 움직일 때…(where the echo rebounds, like a splinter of silence, when you make a movement because you can feel that the way you were standing was a little too noisy…)” 릴케의 문장이었다.

이들은 구부정한 자세로 연주했고 내 시선은 테이블에 놓인 책에 있었다. 마침내 Sam Lim은 책을 들고 테이블 아래로 더 구부정하게 몸을 구부리더니, 한 페이지를 열어 마이크에 대고 목소리를 냈다. 나는 그들의 음악과 관련된 책이겠거니 했는데, 사실 악보에 가까운 것 같았다. 그들은 Sima Kim이나 HBR, 또 앞서 말한 큐메오 프로젝트처럼 다수의 감성을 흔들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대신 그들은 느리게, 전자음악을 통해서 그들 내부에 있는 감성을 표현하는데 집중하는 것처럼 보였다.

  

시어스sears

 

세 번째를 기다리며

이번 암페어가 새로운 세대의 다양한 전자음악이 부딪치는 공간으로 채워진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 적절했다. 첫 번째는 국내 전자음악 신의 상황을 볼 때 그렇다. 기획자는 2012년 12월부터 2013년 11월까지 발매된 한국 전자음악 음반은 총 57장, 그 중 피지컬 음반은 총 29장, 그리고 100장 넘게 팔린 음반은 5장 정도일 거라고 말한 바 있다. 두 번째는 모두를 만나게 했던 ‘최초의 암페어’ 다음 단계로 새로운 세대들의 만남의 장이 됐다는 점에서도 알맞았다. ‘이로’ 역시 이번 암페어 리뷰 「있었던 일, 일어날 일」에서 “나의 장르와 가장 구체적으로 연결된 사람들만의 현장”이라고 얘기하며 이번 암페어의 의미를 언급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새로운 세대와의 만남을 통해서 소비자를 더 만들어내고 다루어질 채널들을 넓히고자 했던 결과로서의 목표도 이루기 위해서는 그들만의 리그에서 벗어나 조금 더 친절한 가이드 역할 역시 필요했다. 물론 암페어 텀블러에는 자세한 안내와 아티스트 소개가 있을 뿐만 아니라 사운드클라우드를 통해서 음원도 듣도록 돼 있었다. #amfair로 올라온 트위터와 리뷰도 올라와 있었다. 그들은 정말 효율적으로 정보를 제시해주고, 아티스트와 관객 내지는 소비자를 이어주고 있었지만, 무대륙 현장에서는 아티스트 이름을 알아듣는 것도 상당히 주의를 필요로 할 만큼 전자음악신에 속한 이와 그 밖에서 이번 행사를 ‘객’으로 참여한 이들 사이에는 이해도에서 적지 않은 차이가 날 수 있었다. 아는 만큼 즐기고, 구입하면 될 일이지만, ‘기획의 틀에서 힌트를 한 두 개만 더 던져주었으면 어떻게 됐을까?’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영기획 웹사이트를 들어가면 영기획이 하는 일은 다음과 같이 소개돼 있다.  

회기동 단편선과 무키무키만만수의 소스를 일렉트로닉 음악가가 새로 만드는 리믹스 컴피티션, 서울 일렉트로닉 시티Seoul Electronic City와 한국 1세대 일렉트로닉 음악을 현재 활동하고 있는 일렉트로닉 음악가가 재해석하고 끊어진 한국 일렉트로닉 음악 씬의 고리를 다시 잇고 미래를 모색하는 리본RE:BORN 프로젝트, 다미라트Damirat와 매 달 마지막주 토요일 무대륙에서 클럽 밖의 일렉트로닉 음악 라이브 WATMM, 자립음악하고 생산조합, 비싼트로피와 총 51개 팀이 모이는 언더그라운드 음악 씬의 가장 큰 축제 51+ 페스티벌, 숨어있는 언더그라운드 음악가를 인터뷰, 공연, 컴필레이션 음반으로 씬에 소개하는 NEW WACK MUSIC 캠페인, 국내 최초의 전자 음악 페어인 암페어AMFAIR

 

이처럼 국내 일렉트로닉 음악씬, 언더그라운드 음악씬을 해석, 연결, 모색하는 값진 활동의 맥락에 암페어가 자리해있다는 점을 볼 때, 제3회 암페어에서는 단순한 ‘마찰’에서 더 나아가 전자음악을 조금 더 쥐어주길 바라며, 전기밀착시대에 전자음악이 나아갈 방향이라는 고민을 가지고 기다려본다.

 

참고문헌과 웹사이트

질 존스, 『빛의 제국: 에디슨 테슬라 웨스팅하우스 그리고 전류전쟁』, 이충환 역, 양문, 2006

김여항, 「전자 음악 페어: 암페어(AMFAIR)」, 미학과 뉴스레터 2013년 11월 제8호

이로, 「일어날 일, 있었던 일」, (http://www.sangsangmadang.com/webzine/ColumnView.asp?seq=7820) KT&G 상상마당 웹진

위키피디아 ‘전자음악’ (2014년 6월 5일 검색) (http://ko.wikipedia.org/wiki/%EC%A0%84%EC%9E%90_%EC%9D%8C%EC%95%85)

암페어 텀블러 http://amfair.tumblr.com/

영기획 웹사이트 http://younggiftedwack.com/

큐메오 프로젝트 텀블러 http://thecumeoproject.tumblr.com/

시어스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pages/sears/299670760355?fref=ts

 

 필자_김솔지

 소개_ 예술과 미학 사이를 오가며 이 사이에 놓인 것들을 말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