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세월호를 지켜보는 작은 음악가들의 선언

2014. 5. 18. 19:55Review

 

음악이 할 수 있는 일

세월호를 지켜보는 작은 음악가들의 선언

 

글_정은호

 

사태가 터졌을 때 나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도서관에서 시집을 읽고 있었다. 아마 그렇게 기억한다. 공적으로 가장 이슈가 되었던, ‘사태’라고 명명하기에도 윤리적으로 옳지 않을 세월호의 침몰이 일어났을 때도, 나는 나의 가장 사적인 취미를 즐기고 있었다. 그들은 나와 전혀 다른 공간에 위에서 죽어갔으며, 나와 전혀 다른 시간 속에서 감금되었다. 그것이 나는 참을 수 없게 슬펐다. 고통에 무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슬펐다. 그들의 죽음이 나는 고통스럽지 않았다. 고통스러울 수 없었다. 내가 그 배에 타고 있지 않는 이상, 나는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내가 느낀 고통이란, 그 이해의 불가능성에서 비롯되고 있었다. 당시, 사태는 나의 상상 이상으로 거대했고, 나는 고작 개인에 불과했다고 생각했었다. 개인이기에 가질 수 있는 용기를 조금이나마 알게 된 건 음악가들의 시위를 본 후일 것이다.

 

 

단원고등학교의 교사였던 故 최혜정씨는 나의 동문이었다. 학교의 건물 안에는 작은 임시분향소가 마련되었다. 분향소 옆에는 바로 편의점이 있었고, 편의점 안의 TV에서는 세월호 사태에 대해서 보도가 24시간 지속되고 있었다. 그 안에서 많은 이들이 배가 고파 삼각 김밥을 사먹었다. 그 임시분향소를 찾았을 때도 나는 쉽게 실감하지 못했다. 한때 나는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경험한 이의 전사(前史)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 그의 이야기를 듣고 느꼈던 상실에 대한 이해는, 향을 피우면서도 쉽게 와 닿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 자체가 힘겨웠다. 그들이 겪었던 절망적인 상황을 생각하고, 같이 절망적이 되는 일은, 그 자체로 두렵다. 나는 그 감정에서 회피하기 위해 무감해졌는지도 모른다. 안산의 분향소에 간 지인은, 분향소에서 슬픈 크게 노래를 틀어주는 것에 분노했다고 내게 말했다. 그들은 슬픔을 자신에게 강요하고 있었다고 했다. 일렬로 줄을 맞추어 꽃을 놓는 일도 -분향소 안의 질서 유지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겠지만-, 어찌 죽은 이들에 대한 예우가 구획되고 통제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분노’라는 정서는 대체로 이성을 마비시킨다. 지나치게 분노해도 모자랄 일이 이번 사태겠지만, 분노라는 감정에도 조절은 필요하다. 결국 많은 국민들의 분노는, ‘추모’라는 형태의 강요를 낳았다. 많은 가수들의 콘서트가 중지되었고, 앨범 발매가 무기한 연기되었다. 화살은 엉뚱한 곳에 날아와 꽂혔다. 슬픔이 언제든 분노가 될 수 있다는 걸, 이번 사태로 나는 조금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시국에 대해, 음악가들은 홍대에 모여 작은 시위를 열었다.

 

 

‘세월호를 지켜보는 작은 음악가들의 선언’은, 엉뚱한 분노의 궤적에 대해 음악가들의 소신을 말하는 시위였다. 배가 침몰하고 있음에도 단 한명도 더 구하지 못한 무능력한 정부의 대처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한 선장의 직무유기만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사태에 대해 아무런 사유 없이 무조건적으로 분노하는 국민들에게도 그들은 할 말이 있었다. 예술이 생계를 유지하는 도구인 음악가들에게, 콘서트를 연기하거나 앨범 발매를 정지한다는 것은, 일시적인 해고상태에 가깝다. 음악이라는 행위에 유희라는 요소가 크다는 이유로 분노한 국민의 정서는 그들에게 필요 이상의 윤리를 지키기를 요구했다. 그렇다면 이런 불합리한 공격에 음악가들은 어떤 방식으로 대처해야 하는가. 결국 그들이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은, 음악이다. ‘선언’이 ‘음악’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 그들의 소신을 잘 보여준다. 5/11, 일요일. 홍대 인근을 돌아다니며 음악가들의 거리공연을 지켜보았다. 총 86개 팀의 뮤지션이 참가 의사를 밝혔다고 했다. 많은 이들이 좋지 않은 기기들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노래를 불렀다. 나이 또한 고등학생부터 중년까지 다양했다. 역 앞에서 마이크 없이 기타 하나만을 들고 노래하는 이들도 많았다. 거리와 소음과 섞여든 노래는, 잡음이 많아 더 인상적이었고, 절절했다. 그들 모두가 당당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세월호 사태와 관련하여 그가 진행하는 팟캐스트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번 방송은 그냥 포기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제가 하는 일을 지금 이 상황을 위해서 더 잘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며 그것이 저에게 주어진 과제이자 임무라고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처음 ‘세월호에 대한 작은 음악가들의 선언’의 리뷰를 쓸 수 있겠냐는 청탁을 받았을 때 나는 이 문장을 떠올렸다. 내가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보다, 이 상황에서 그 일을 묵묵히 맡아내는 일이 더욱 올바른 추모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음악가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음악가들은 음악을 멈출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지금 이 상황에서 그들에게는, ‘음악을 하지 않는 것’보다, ‘음악을 계속해서 해나가는 것’이 더 어려운 결정이며, 그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추모이기 때문이다. 음악을 멈추는 순간 음악은 죽는다. 음악이 가지는 유희성과 애도가 가지는 침묵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그저 음악을 중지하는 것으로 충돌을 없애는 것 보다는, 음악을 계속해서 해나가며 음악이 가지는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 음악가들이 할 수 있는 작은 선언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은 그렇게 했다. 그것은 놀랍고 용기 있는 결정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음악가들이 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잊지 않는 것이다. 시간은 흐르고 역사는 계속 뒤로 물러난다. 천안함 사태가 그랬고, 최근의 부산외대 사태가 그랬다. 언젠가 그것들은 잊혀질 것이며, 언론에서 이토록 자주 언급되기는 힘들 것이다. 무감하게 그 사태의 고통을 지나치는 것보다는, 함께 아파하는 것을 택하는 것이 더 어려우며, 그렇기에 그것은 더 나은 결정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함께 아파하는 것이 가능한가. 음악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것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 바로 음악가들일 것이다. 음악가들은 음악을 통해 그들을 잊지 않을 것을 선언했다.

‘계속 가만히 있으라 변하는 건 없을 것이다.’ ‘세월호를 지켜보는 작은 음악가들의 선언’ 속에서 한 음악가는 이런 문구를 앞에 적어 놓았다. 가만히 있는 다면 변하는 것은 없다. 물론, 시위를 한다고 해도 크게 변하는 것은 없다. 하지만 더 나아질 것이다. 내가 그들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한다고 이 세상이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잊지 않겠다는 말은 변화의 차원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이것은 윤리에 대한 얘기다. 더 올바른 세계라는 게 존재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잊지 않는 것이야말로 그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될 거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세월호를 지켜보는 작은 음악가의 선언’에서 많은 음악가들이 그러했듯, 많은 이들에게 들려주는 그들의 음악이야말로 그 길에 큰 힘이 되어줄 거라고 생각한다.

 

 

  필자_정은호

  소개_ 시를 공부하고 있다. 무엇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없으나 미래에도 계속 시를 쓰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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