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8. 10. 17:58ㆍReview
몸이 불안해지는 계절, 문득 거울을 보듯
연극 <불안의 몸>
김지영, 황은후 공동창작
글_유혜영
1.
끈적끈적한 날이었다. 극장은 초행길이었다. 낮은 높이의 비슷한 철공소들이 죽 늘어선 문래동 길은 갈수록 헷갈리고, 얼굴부터 온몸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영등포역에서부터 걸어 겨우 도착한 공연장은 주변의 많은 공장 사이에 동그란 간판을 야무지게 내밀고 있었다. 휘어지고 녹이 슨 우편함 여럿이 나란히 붙어있는 입구, 좁은 계단을 두세 바퀴 돌아 올라가면 딱 한두 명 왔다 갔다 할만한 넓이의 길쭉한 ‘로비’. 근대를 배경으로 한 사진이나 영화에 나올 법한 풍경이다. 한쪽으로 늘어선 싱크대와 수납장들도 꽤 나이가 들어 보였다. 그 위에 철 프레임의 오래된 창문들이 활짝 열려 있었다.
몸 곳곳에 들어찬 땀을 식혀 줄 ‘구원의 에어컨’은 공연장 안에 있었다. 공연장은 20~25명 정도가 빽빽이 들어갈 수 있을만한 초소형의 블랙박스다. 촘촘히 앉아있는 우리에게 객석담당 스태프는 손짓과 함께 ‘옆으로 조금 더’, ‘조금 더’를 요청한다. 마치 모두 모여 단체사진 찍을 준비를 하는 것 같다. 공연장의 공기는 그만큼 친밀하다. 객석에 앉은 다른 스태프(공연관계자들과 친한 그냥 관객일 수도 있다!)가 안쪽 벽에 달린 문을 열고 공연을 시작해달라고 말하자 곧 암전된다. 철공소 골목에 슬그머니 섞여든 외관, 뜨거운 바깥 공기와 가까스로 분리된 아늑함, 소수의 관객이 조밀하게 모여 앉아 무대를 향해 앉은 공연장은 우리끼리 서로의 속마음을 들춰보며 킥킥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불안의 몸>은 그런 이야기다. 어쩐지 실제 공연보다 훨씬 진지한 분위기를 풍기는 제목은 아쉽다.
2.
연극의 원작은 소설가 김애란의 『큐티클』이라는 작품이다. 소설은 외모관리를 통해 얻는 자기확신과 위안, 뒤따르는 과시욕구과 허영 심리를 28살 여자 주인공의 하루를 통해 그려낸다. 작가 특유의 세밀하면서도 정확한 심리묘사, 현실과 허영의 간극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오브제들이 눈에 들어오는 작품이다.
공동으로 각색과 연출까지 맡아 연극을 만든 두 배우(김지영, 황은후)는 그런 원작의 내용을 영리하게 요리했다. 우선 그들은 주인공의 외모적 확신이 위기를 맞을 때마다 느꼈을 감정, 즉 불안감을 핵심 콘셉트로 건져 올린다. 그리고 그 불안의 원인이 되는 외모를 ‘몸’이라는 하나의 물질로 객관화한다. 심사숙고의 과정을 거치고 집을 나올 때의 자신감도 잠시, 눈앞은 물론 기억 속에도 존재하는 다수의 비교군들에 의해 끊임없이 초조해하며 눈치를 보게 되는 우리의 몸. 그 몸이 느끼는 ‘자기확신과 위안, 뒤따르는’ 긴장감을 몸으로 표현한다. ‘불안감’에 집중하기 위해, 원작에서 주인공이 찾아가는 친한 친구와의 일화는 삭제했다. 대신 그 자리에 주인공의 꿈을 새롭게 배치한다. 그녀는 요즘 계속 같은 꿈을 꾼다.
공연은 주인공의 꿈으로 열리고, 또 닫힌다. 꿈은 인물의 무의식적 심리상태를 드러내는 거울로서 가장 자연스러운 장치 중 하나다. 소설에는 없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꿈이 공연의 시작과 끝에 자리 잡은 것은 몸이 겪는 감정이 작품의 핵심이라는 것을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다. 또한 그 ‘불안’의 상태가 끝나지 않고 순환될 것을 의미한다. 꿈속에서 그녀는 커다란 캐리어와 함께 의자에 앉아 공항에서 대기 중이다. 어딘가로 떠나는 것은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매일 아침 집을 나서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말이다. 그런 그녀에게 설레는 마음과 동시에 불안감이 엄습한다. 약간의 망설임 끝에 가방을 열어 확인해보니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헉! 암전 상태에서 켜진 하나의 플래시 불빛은 배우의 얼굴과 가방을 왕래하다 젖혀진 가방 속을 비추며 멈춘다.
그녀 내면의 시선이 머무는 순서에 따라 불빛이 움직이고, 객석의 시선도 그 빛을 따른다. 한 줄기 불빛의 사용은 어두운 꿈속이라는 설정과 함께 사고의 이동,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는 심리까지 동시에 시각화해냈다. 관객은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발화되는 그녀의 속마음을 이렇듯 공연 내내 따라다닌다. 플래시와 같은 시각장치, 대사, 그리고 주인공의 내면을 연기하는 두 배우의 몸을 따라서. 여러 형태로 표현되는 언어를 경험하는 것은 소설과 다른 연극이 가진 재미 중 하나다.
3.
두 배우는 ‘네이비’색의 ‘와이드 팬츠’에 허리까지 오는 ‘숏’한 길이감의 ‘스트라이프 탑’을 똑같이 입었다. 높은 ‘힐’을 신고 ‘클러치’를 들었다. 그리고 춤을 춘다.
“이런저런 곁눈질과 시행착오 끝에 가까스로 얻게 된 한 줌의 취향,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고 있다는 데서 오는 여유, 그러나 원하지 않는 것 역시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식의 까다로움.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의심을 버리자 쇼핑에 자신감이 붙었다”
세련된 옷차림에 한껏 자심감이 오른 표정과 포즈로 객석을 응시하는 두 배우는 마치 백화점 광고의 모델들 같다. 그들은 소설가 김애란의 문장을 그대로 대사에 옮긴다. 현대인의 자기도취와 부풀려진 망상을 말끔하게 정돈한 문장들은 그 자체가 워낙 ‘주옥’같아서 초반 배우들의 움직임은 오히려 대사를 보조하는 역할에 머문다.
그러다 말을 멈춘 배우들은 머리카락부터 종아리까지 서서히 자신의 몸 부분부분을 짚어 확인해나간다. 머리카락, 눈, 입술, 목에서부터 가슴, 배와 옆구리, 그리고 엉덩이부터 종아리까지. 양손을 모아 정성스럽게 하나하나 순서를 밟아 나가던 손짓은 점점 속도를 더한다. 한 호흡에 몸 전체를 쓸어 내리는 데까지 빨라지는 움직임은 하나의 춤이 된다. 그 단순한 동작은 공연 전체를 통틀어 ‘몸의 불안’이라는 모티브를 가장 효과적으로 시각화한다. 배우들은 이 맘쯤이 되면 원하지 않아도 자꾸 보고 또 보게 되는 우리 몸의 특정 부위들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또한, 의심이 한번 시작되면 순식간에 몸 전체로 퍼져나가는 속성을 속도감으로 포착해냈다. 몸이 불안을 느낀다는 사실, 그 상태와 성질을 한꺼번에 담아내는 움직임은 인상적이다.
움직임을 하며 배우들은 본인의 몸이 아니라 서로를 바라본다. 거울을 보는 설정임과 동시에 내 몸을 훑어보는 ‘다른 눈’의 강한 존재감이 느껴진다. 우리의 몸은 나의, 그리고 타인의 시선에 사로잡혀있다. ‘불안’은 그 시선들을 의식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움직임은 주인공이 ‘몸 관리’를 위해 ‘다른 건 몰라도’ 지켜야 할 수십 가지 조건들을 배울 때, 그리고 친구의 결혼식 사진 촬영 전 화장실에 들렀을 때 두어 번 더 반복된다. 사람 많은 명동거리를 거쳐 결혼식장에 이르니 어느새 주인공의 겨드랑이에는 땀이 배어 있고, 그것을 들키지 않으려 팔을 옆구리에 딱 붙인 채 친구들에게 인사를 한다. 김지영 배우는 주인공의 외면을, 황은후 배우는 그 내면을 연기한다. 둘은 같은 것을 보고 다른 말을 한다. 실제로 우리는 타인과 나의 몸을 비교하며, 얼마나 자주 이러한 자아분열을 경험해왔던가. 머리카락부터 종아리까지 몸은 또 다시 초조해진다.
4.
그 ‘사로잡힌’ 몸을 위로하는 것은 네일아트다. 눈에 잘 띄지 않고 그래서 특별한 개성을 드러내기도 쉽지 않은 작고 작은 부위인 손톱은, 성실한 자기관리와 깔끔한 이미지 창출을 위한 모든 것으로 탈바꿈한다. 도대체 손톱이 뭐라고. 우리의 몸이 겪는 불안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도리어 깨닫게 하는 대목이다. 김지영 배우는 손톱에 사로잡힌 주인공의 마음을 시각화하기 위해 검은색 사각의 얼굴 크기만 한 프레임을 사용한다. 이 작은 소품은 주인공의 망막에 커다랗게 맺혀있을 ‘손톱들’을 비추며 관객들의 집중력 또한 같은 곳으로 유도한다. ‘다들’ 손톱관리를 하고 있다. 김지영 배우는 마침내 그 프레임 안에 고개를 집어넣는다. 목에 검정색 틀 하나 걸었을 뿐인데, 그 효과는 정확하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배우의 표정은 우리의 몸의 얼굴이다. 황은후 배우가 구사한 나무라는 듯 당당한 네일샵 직원의 화술은 실제 우리가 만났던 ‘언니들’과 높은 싱크로율을 보이며 객석에 깨알 같은 웃음을 일으킨다. 배우들의 상상력으로 먼지떨이만큼 커진 손톱 브러시는 주인공의 온몸을 터치하고, 그녀는 어린아이처럼 팔 벌려 그 행복감을 만끽한다. 우리는 손끝에 닿는 세밀한 터치가 온몸의 만족감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본다. 그 만족감이란 몸이 관리되고 있다는, 더욱 그럴듯해 보일 것이라는 안도감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기 혼자만의 위안이다. 결혼식장, 짐짓 손가락으로 머리를 쓸어내리고 손등을 들어 올려봐도 누구 하나 시선 주지 않는다. 우리는 허무해진다. 그날 밤, 주인공은 또 다시 같은 꿈을 꾼다.
두 배우의 뻔뻔스러운 표정과 움직임에서 발산되는 에너지는 공연시간 45분 동안 시종 유쾌하다. 배우들은 무용의 뛰어난 테크닉을 선보이거나, 화려한 영상 또는 최첨단의 장치를 사용하지 않았다. 오직 배우의 몸과 상상력, 중립적인 소품들이 만들어낸 연극성으로 시청각적 즐거움을 창조한다. 그런 의미에서 네일샵의 사실적인 무대장치는 오히려 아쉬웠다.
5.
옷과 액세서리는 물론 체형과 혈색까지 관리된 외모가, 각자의 삶의 질을 반영하는 중요한 기호가 되는 요즘, 미처 다 준비되지 못한 우리 ‘몸’의 ‘불안’에 대해 상기해보는 것은 신선하다. 한 여름, 어느 때보다 몸이 불안해지는 계절이기에 더욱 공감할 수 있었다. 하나의 감각을 포착하여 원작의 스토리에 과감한 강약을 부여한 각색도 적절했다. 그리고 그 감각을 다양한 연극 놀이로 풀어낸 시도도 재미있었다. 특히 다락방 같은 공연장의 분위기, 무대의 규모와 적절하게 어우러진 놀이의 효과는 빛을 발했다.
연극에서 집어낸 ‘불안’의 속성이 지극히 보편적임에도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관객들은 실제 배우들의 나이와도 유사한 20대 후반 한 여성의 허영과 가식, 백조 같은 우아함 밑에 숨겨진 안쓰러운 발길질을 들여다본다. 성별과 연령을 불문하고 거의 매일 반복되는 우리의 모습이다. 나만 그런 줄 알았던, 나도 의식하지 못했던 그 친밀한 단상들이 어쩐지 애정 어린 웃음을 짓게 한다. 연민 또는 자조가 섞인 웃음을. 공연은 그렇게 마무리 된다.
등산을 가고자 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등산복을 사는 것이라는 뼈 있는 유머가 있다. 외모에 대한 집착과 ‘불안’은 현대인이 겪고 있는 안타까운 질병이다. 연극은 일상에 은밀히 침잠하고 있는 현대적 현상 하나를 수면위로 끄집어 냈다. 그러나 너도나도 비슷하다는 것을 확인하며 위안을 얻고 끝내기에는 그 현상 자체에 씁쓸한 지점들이 있다. ‘도대체 우리의 몸은 왜 불안한 걸까?’, ‘무엇이 우리를 진정으로 안도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주제적 고민들이 더 심화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외면 뒤에 숨겨진 본질적 질문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제시되었다면, 그리고 그에 대한 창작자 본인의 진지한 고민들이 드러났다면 작품에 새로운 깊이를 더할 수 있었을 것이다. ■
*사진제공 _ 김지영
**문래동 QDA스튜디오 블로그 바로가기 >>> http://blog.daum.net/ironworksplay
***철공소에 핀 극장 관련 기사 바로가기 >>> "공간에 부드럽게 스미는 법"
필자_유혜영 소개_연극을 공부하기 시작한 새내기입니다. 공연장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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