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01호 아인슈타인이 있다> ‘호모루덴스 컴퍼니’+‘코끼리들이 웃는다’

2014. 8. 25. 12:22Review

 

<201호 아인슈타인이 있다>

우리는 그들이 되었다

 ‘호모루덴스 컴퍼니’+‘코끼리들이 웃는다’

 

글_채

 

▲ <201호 아인슈타인이 있다> 공연사진, 서울변방연극제(2014), 사진=남지우

 

찾아가다 - 아인슈타인이 있다는 201호

제16회 서울변방연극제의 공간은 어느 곳 하나 평범한 곳이 없었지만, <201호 아인슈타인이 있다>의 장소는 유독 그랬다. 이동시간이 빠듯했지만, 회 당 몇 명 되지 않는 관람인원에 선정된 나는 책임감을 가지고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도착한 어느 빌라 앞, 로비 아닌 로비에서 관객들은 의무적으로 짐을 맡기고 입장을 기다렸다. 그리고 한 명 씩 입장을 시작했다.

 현관에 들어서면 어둠 속에서 초록빛으로 은은하게 발광하는 UFO가 떠다닌다. 분명 생명체가 나와 같은 공간 안에 있는데 몇 명인지는 도통 알 수 없었다. 얼떨결에 입으로 들어오는 녹색 물질을 받아먹고 또 다른 공간으로 들어갔다. 큰 창이 있는 평범한 방에서 나머지 다 섯 명을 기다리는 시간. 잠시 판타지에 젖었던 나는 제정신을 차려가고 있었다. 주인 없는 낮선 방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두리번거리는 것뿐이었다.

 방문 밖에서 낯익은 '땡~ 옴~' 소리에 이어 다음 관객이 방으로 들어왔다. 여자도 나처럼 눈으로 방을 한 번 훑고서 책상 근처에 앉는다. 그녀는 이 방 또한 관람이 허가된 연출적 공간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서랍을 열어보고 책상위에 놓인 노트를 꼼꼼히 읽어 내려가는 그녀의 대담함에 잠시 여자도 공연의 일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201호 아인슈타인이 있다> 공연 영상캡쳐, 서울변방연극제(2014), 영상=이성욱

 

길들여지다 – 그들의 방식에 익숙해지는 시간

 한 명의 외계인이 정적을 깨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릴리 오브 다 갓 다(?)" 그녀는 도통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모니터의 전원을 켠다. 우주를 배경으로 부유하는 알파벳 사이에서 나의 이름을 발견했다. 비록 영어고, 표기법도 틀렸지만 그들의 언어로 썼으면 못 알아 봤을 테니 이해하기로 한다. 여하튼 무언가의 서막이 올랐으며 그곳에 이름까지 올린 나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묘한 부담감을 느꼈다.

 안 그래도 비좁은 방 안으로 두 명의 외계인이 더 들어온다. 천연덕스럽게 우리를 바라보던 그들은 녹색 혓바닥을 길게 빼고 손을 흔든다. 어느새 우리 모두는 그들을 따라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아까 받아먹은 녹색 캐러멜이 효력을 발휘하는 듯 했다. 나의 혓바닥도 그들과 같다는 걸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노트를 살피던 그녀의 혓바닥도 녹색으로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곧 그들이 교감을 위해 손가락 끝을 이용한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 <201호 아인슈타인이 있다> 공연 영상캡쳐, 서울변방연극제(2014), 영상=이성욱

 

잠시 말을 잊다 - "릴리오브 다 갓다“

서로가 소통할 수 있는 언어가 없으니,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 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주의 깊게 살피는 것 밖에 없었다. 무엇을 가리키는지, 억양은 어떤지 자연스럽게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라고는 그저 '릴리오브 다 갓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그마저도 내뱉지 않는다. 

방문이 열리면, 그 방문의 절반 높이도 되지 않는 문을 든 외계인이 다리를 벌리고 선다. 그녀의 가랑이 사이에서 난쟁이로 다시 태어난 우리는 익숙한 게임 음악과 함께 출발지점에 자리했다. 짧은 다리로 종종거리며 싱크대 밑 찬장에 들어가고, 발매트의 4분의1 크기에 여섯 명이 올라설 수 있을 만큼 우리는 작아졌다. 그리고 나서야 우리는 아인슈타인 방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방은 아주 좁았지만, 작아진(가까워진) 우리에게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침대 위에 벌거벗은 남자가 잠들어 있었다. 잠시 후 깨어난 남자는 우리를 보고 화들짝 놀란다. 그는 벗은 몸을 가리고자 노력하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마치 온몸의 근육이 아직은 어색한 사람처럼 두 곳의 주요 부위를 동시에 가릴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진다. 우리는 결국 무방비한 상태의 그를 지켜본 죄로 처분을 기다리며 침대에 빼곡히 눕게 되었다. 문 밖에서 한바탕 덜커덩 거리는 소리가 났다. 다시 돌아온 그들은 무언가로 우리의 머리를 쓸기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나무 주걱 같았다.

  

  ▲ <201호 아인슈타인이 있다> 공연 영상캡쳐(上,下), 서울변방연극제(2014), 영상=이성욱

 

익숙한 공간, 낯선 사고

이렇게 <201호...>에는 어느 것 하나 낮선 물건이 없었다. 낮선 사용법이 있을 뿐이다. 색소 가득한 녹색 캐러멜은 우리를 그들과 같이 만들어 주었으며, 외계인이 수평으로 들고 빙빙 돌던 대걸레는 피해야 하는 장애물이었다. 공연이 벌어지는 장소는 극장보다도 친숙한 공간인 ‘집’이다. 하지만 ‘낯선 사람의 집’이라는 맥락과 ‘응접실’, ‘침실’, ‘거실’ 등에 가지는 보편적인 인상들이 뒤얽혀 감정의 층위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또 다른 방, 한 외계인이 슬픔 가득한 본인의 얼굴을 샘물에 비추어 보는 듯, 변기통을 부여잡고 바닥에 주저앉아 있다. 천천히 일어난 그녀는 끝없이 서로를 반사하는 거울 속에서 슬픈 자신과, 기쁜 자신을 발견하고, 양쪽을 오가며 들은 이야기를 전한다. 스피커 너머로 절정을 향해 가는 아리아가 타일에 부딪혀 더욱 깊은 울림을 만들 때, 우리는 피할 곳 없는 좁은 화장실에서 쏟아지는 물을 온몸으로 맞았다.

신나는 음악과 함께 미션을 수행하는 사이, 현관벨 소리가 들렸다. "좋은 말씀 전하러 왔습니다!" 모두가 함께 요란스러운 장난을 치다가 걸린 사람들처럼 화들짝 놀라 현관을 바라본다. 연출된 상황인지 해프닝인지 알 수는 없지만, 상황을 수습하고 돌아온 외계인의 그저 덤덤하게 미션을 진행시켰다. ‘사건’은 이곳이 일상 속의 ‘201호임’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뻔뻔한 상상력으로 응접실 바로 옆 침실까지의 거리를 ‘산 넘고 물 건너’는 거리로 바꾸어 놓는다. 

 

 ▲ <201호 아인슈타인이 있다> 공연 영상캡쳐(上,下), 서울변방연극제(2014), 영상=이성욱

 

고백

자기 전 침대에 누워 이불을 가슴께까지 끌어 올리고, 나는 마치 걸음을 걷듯이 두 다리를 번갈아 가며 허우적거린다. 드레스 자락 잡듯이 이불을 움켜쥐고서 '꿈'이라는 파티 장으로 떠난다. 창피한 고백이지만 나는 어렸을 적 종종 이런 상상을 했었다. 누군가의 집에서 벌어진 <201호...>는 이렇듯 어릴 적 집안 곳곳에서 품었던 공상 들을 상기시킨다. ‘호모 루덴스 컴퍼니’와 ‘코끼리들이 웃는다’의 집에 대한 망상의 고백을 들으며 문득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에 대답이라도 해 주는 듯, 현관을 나서기 전에 녹색 외계인 가면을 씌워준다. ‘우리’는 ‘그들’ 이 되었다. ■  

 

 ▲ <201호 아인슈타인이 있다> 공연 영상캡쳐, 서울변방연극제(2014), 영상=이성욱

 

필자_채민

 소개_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가치를 믿습니다. 아직 부족하지만, 시간을 가지고 충분히 고민하고 싶습니다.

  작품소개

<201호, 아인슈타인이 있다>는 ‘집’이라는 개인 공간에서 관객과 특별한 만남을 준비한다. 공연장은 누군가의 집이다. 집은 관객들에게 보통 공간으로서의 ‘친숙함’과 공연장에 방문하는 타인의 공간으로의 ‘낯설음’을 동시에 가진 장소이다. 개인 ‘집’의 방문을 통해, 관객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동시에 관객을 허구적인 이야기 속 인물로 이끌어내 극적인 체험을 하게 한다. 허구 속 ‘지구를 떠나고 싶은 사람들의 모임’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다양한 ‘인간의 조건’들을 사유케한다.

새로운 방식의 커뮤니티 작업을 하는 ‘코끼리들이 웃는다’의 이진엽과 움직임을 통해 도시의 이면을 탐색하는 ‘호모루덴스’의 남긍호, 서현성이 만나 함께 협업하는 작품이다. 2007년 호모루덴스가 종묘공원에서 어르신들을 위한 작업을 했던 ‘오늘같은 날’을 함께 작업했던 남긍호, 서현성, 이진엽 세사람의 협업이 2014년에는 공원에서 집으로 옮겨온다. 사적 공간이라는 물리적이고 심리적으로 긴밀한 환경에서 관객과 공연자간의 새로운 거리두기 실험을 통해 최소한의 간극, 간극의 무너짐 그리고 간극을 다시 세우는 작업을 시도한다. 공연장인 집이 작은 관계로 1회에 6명만 참여 가능하며 사전예약해야한다.

  공연내용

지구를 떠나고 싶은 사람들의 모임. 허무맹랑 사기단, 소행성 c201을 소개한다. 벌거벗은 왕의 투명 옷처럼 행성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시 못하지만 지구보다 살만하다고 우기는 사기단. 그 곳을 갈 수 있는 자격은 황당한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과연 그들은 지구를 떠날 수 있을 것인가?

 

  단체소개

  호모루덴스 컴퍼니(Homoludens Company)는 1999년 창단한 마임공연단체로 남긍호를 주축으로 활동하고 있다. 호모루덴스란 사회학자 J.호이징어가 명명한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뜻으로 극단의 모토가 되고 있다. 마임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배우의 새로운 신체 움직임과 그 가능성의 발견을 통해 동시대 공연예술 안에서 관객과 만나는 다양한 소통방식을 탐구하며, 기존의 연극공연과 차별성 있는 대안적인 공연을 추구한다. 주요 작품으로 <오늘같은 날>, <로빈크루스 섬>, <블릭>, <개구리들의 댄스파티>등이 있으며, 프랑스 샬롱거리극축제, 미모스 마임축제 등에서 다양한 활동을 선보이고 있다.

코리끼들이 웃는다(Elephants Laugh)는 2009년 창단한 장소특정형 커뮤니티 공연예술단체로서, 이진엽을 주축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양한 관객과 소통하는 다양한 방법론 찾기 위해 지속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 공연장이 아닌 일상 공간에서 예술을 찾지 않는 사람들과 그들의 삶을 나누며 소통하면서 그들의 일상이 예술과 연결될 수 있는 예술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 <입정동 바람, 바람.>, <Global Rivers Project 를를를>, <동동>, <동네 박물관 시리즈1 청계>, <동네 박물관 시리즈2 원곡동>, <광장에서 띵가띵가>, <놀이사용설명서>, <예쑬 보부상 안산시민시장편>, <동네 박물관 시리즈 3 두 도시 주물 이야기> 등이 있다. 

 *** 내용 출처_ 서울변방연극제 홈페이지  www.mtfestiv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