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한여름밤의 작은 극장 + 조아라<수궁가가 조아라>

2014. 9. 4. 11:39Review

 

한여름밤의 작은 극장

그리 소란스럽지 않은 축제의 풍경

+ 조아라<수궁가가 조아라>

 

_짝지영

0.

작년여름 지인들의 SNS로 몇 개의 글들이 올라왔다. 여름밤 국립극단에서 작은 공연들이 벌어진다는 소식. 소소하지만 궁금증을 일으키는 공연사진들. 스쳐지나간 몇 가지 키워드들은 낯선 의문과 호기심을 남기며 점차 잊혀져 갔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여름. ‘한 여름 밤의 작은 극장’ 을 찾아갔다.

아직 해가 쨍쨍한 팔월 중순. 일찍 극장공연의 예매표가 동났다는 이야기에 마음을 졸이며 바쁜 걸음으로 극장을 찾았다. 공연시간 한참 전이었지만, 주말이라 하기엔 한산한 풍경이었다. 행사를 준비하는 몇 명의 스태프들과 연습을 끝내고 숨을 돌리는 배우들. 건너편에서 바쁜 호흡으로 돌고 있는 서울역과 상반되는 풍경이 휴식중인 ‘극장’ 만이 가질 수 있는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초록빛 인조잔디와 빨간 건물이 해를 받아 청량하게 빛났다. 다만 극장 왼편에 주욱 늘어선 아기자기한 공연 안내판과 마당에 설치된 야외 공연장이 이전에 방문했을 때와는 다른 공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호기심과 기대감이 들었지만 한편으론, 독립예술가들과 국립극단의 조합이 아리송하기도 했다. 국립극단이라는 장소와 독립예술가들의 – 적어도 나의 선입견 안에서는, 그리고 표면적으로 - 이질적인 만남이 어떻게 그려질까.

 

 

1.

3일 동안 벌어진 이 작은 축제는 14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진 국립극단 곳곳에서, 24개의 공연들이 제각기 올라갔다. 여타 축제들에 비해 비교적 짧은 기간, 작은 장소에서 많은 공연들이었다. 그들은 독립예술가들이었고, 그 수만큼의 공연이었으며, 그것은 모두 그들 자신의 이야기로 꾸며졌다.

공연시간이 가까워지자 아이의 손을 잡은 어른들이 하나, 둘 국립극단 마당을 들어서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초록색 인조잔디를 거침없이 달리며 활기를 뿜어냈다. 마당의 한 켠엔 공연예술서적을 판매하는 부스가 열렸고, 공연이름을 크고 아기자기하게 써놓은 팻말을 든 스태프들이 나타났다.

다양하게 꾸려진 장소만큼 공연도 실내공연, 야외공연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우연히 만난 지인은 3일간 펼쳐지는 작은 공연들을 만나기 위해 손수 타임테이블까지 마련해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모든 공연은 무료로 진행되었고, 예매는 사전에 이메일로 접수받는 방식이었다. 티켓오픈 시간이 되자 관객들은 사전 예매자들과 사전 예매를 하지 못한 사람들로 나뉘어 줄을 섰다. 인터넷 예매시스템이 잘 갖춰져 공연시작 전 우아하게 표를 뽑아들던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스태프와 관객들은 머리를 맞대고 예매 리스트를 함께 확인하며 쑥스럽지만 정겨운 미소를 주고 받았다. 아이들은 어디선가 가져온 비눗방울을 날리며 국립극단 마당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 풍경들은 소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아주 평범하게. 지금 생각해 보면 평범한 풍경이 아닌데, 정말이지 아주 평범한 그리고 자연스러운 그림이었다. 국립극단 마당에서 비눗방울을 날리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이라니... 

 

 

2.

백성희장민호 극장에서 배우 조아라의 <수궁가가 조아라> 공연이 펼쳐졌다. 무대 위에까지 올라온 객석은 소극장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커다란 큐빅 하나가 무대 가운데 자리잡고 있었고, 그 옆으로 작은 키의 세트들이 곳곳에 설치되었다. 무대 중앙에 보이는 ‘구명 토선생’ 이라는 현수막은 수궁가를 익히 들어온 관객들에게 의뭉스러운 느낌을 자아내었다.

이내 무대 뒤에서 길 놀음을 하면서 앙증맞은 토끼의상을 입은 배우 조아라와 고수 노해현이 등장한다. 자라의 거짓말에 속아 수국에서 간을 떼일 뻔 했으나 기지를 발휘해 구사일생으로 돌아온 ‘구명’ 토끼의 이야기를 들으러 온 동물들과 인사를 나누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자칫 다들 아는 수궁가가 뭐 다르겠느냐 하겠지만 ‘수궁가가 조아라’는 발랄하고 유쾌한 이름만큼 ‘그저 그런’ 수궁가와 다른 몇 가지가 있었다. 소리꾼과 고수가 이끌어가는 기존의 판소리 형식을 취했지만, 잘 들여다보면 ‘몸’ 과 ‘말’ 로 이루어진 공연이었다. 토끼, 자라, 용왕을 넘나드는 배우는 보다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연기를 했고, 소리와 노래를 더했다. 또한 등장인물인 자라의 충성과 토끼의 기지로 표현되는 고전적 양면성을 살짝 비튼 현대적 해석도 덧붙였다.

 

▲<수궁가가 조아라> 공연사진. (사진=남지우)

 

작품속에 등장하는 토끼는 위험한 세상에서 열심히 살아도 인정받지 못하고 두려워하며 살던 인물이다. 그는 자라의 꾀임에 빠져 지금 ‘이 세상’과는 다른 ‘저 세상’인 수국으로 향하지만 ‘그 세상’ 또한 다르지 않았고, 여전히 세상은 그에게 모진 곳이었다. ‘구명 토선생’ 은 꾀를 부리는 얄밉고 영민한 토끼가 아닌, 모진 일을 당해 딱하고, 그저 살아 돌아온 것이 다행인 왜소한 토끼였던 것이다. 원작의 수궁가 속의 충정심 높은 ‘자라’ 는 그저 수국의 말단 직원인 ‘아무나’ 였고, 식솔들을 위해 토끼를 속이고 잡아올 수 밖에 없었던 소시민으로 그려졌다. 그 외에도 용왕은 위엄있고 권위 있는 인물이 아닌, 병들고 유약하며 어딘지 아둔해 보이는 인물로 묘사되었다.

적절한 현대의 말로 맛을 살린 <수궁가가 조아라> 는 물 흐르듯이 관객참여를 이끌어 내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갔다. 도입부 부터 흥미롭게 관객의 관심을 유도하고, 중간중간 객석과의 호흡을 이어가며, 자연스럽게 흥을 주고 받는 판소리의 형식을 살려 공연에 몰입을 더해주었다. 마지막 장면 또한 인상적이다. 원작 <수궁가>에서 토끼는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만나지만 특유의 기지를 발휘해 어려움에서 벗어나 “....잘먹고 잘 살았다더라~” 하는 끝을 보여준다. 이에 반해 자라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조아라의 수궁가는 인물간의 관계를 회복시켜 따뜻한 그림을 그려내었다. 대립되는 인물인 토끼와 자라가 서로의 사정을 불쌍히 여기고 함께 꾀를 내어 토끼의 똥을 간이라고 속이고 용왕에게 가져다 주는 것이다. 물론 그 이후는 모른다. 용왕이 토끼똥을 의심없이 먹었는지, 용왕의 병이 나았는지, 자라는 잘 살고 있을지. 하지만 구명 토선생이 주는 메세지는 확실했고, 그것은 관객들에게 색다른 감동을 전해주었다. “이 험한 세상 살아갈 재주 다 있으니 세상 꼴 내 꼴 잘 살펴보고 다 같이 살아가는 건 어떻소?”

 

▲<수궁가가 조아라> 공연사진. (사진=남지우)

 

3.

극장공연이 끝난 후에도 국립극단 곳곳은 공연이 한창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마당 한 켠에 털썩 주저앉아 공연을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옹기종기 모여 맑은 표정으로 배우의 움직임과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아이와 어른들은 밤에 마실에 나온 동네 사람들 같았다.

야외공연은 무선마이크나 큰 음향효과 없이 조용히 진행되었다. 잘 안들릴텐데... 라는 쓸데없는 오지랖과 함께 이런저런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아까 말이야 극장이 넓어서 잘 안들리지 않았어? 왜 무선마이크를 쓰지 않은거야 요즘 다들 쓰는데. 조명이나 음향도 더 화려하게 했으면 공연이 풍성하고 좋았을꺼야... 하지만 많은 장치들이 비어있던 자리만큼 배우와 관객은 박자를 마추며 서로의 호흡에 더 귀를 기울일 수 있었던 건 아닐까...

“한 여름밤의 작은극장” 이라는 타이틀에 어울리는 작고 어린 관객들이 많았다. 이들은 누구보다 자유로웠고 솔직했다. 흥미로운 순간에는 크게 몰입하고, 생각하는 순간에는 자신의 걸음만큼 멀어지기도 했다. 극장 안팎에서 그들의 자연스러운 반응을 제재하지 않았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없는, 관객이 끼어들어도 무너지지 않는, 돌이켜보니 아주 탄탄하고 충실한 예술적 순간이었다. 다양한 무대장치들과 빈틈없이 멋지게 짜여진 연출은 없었다. 허나 그곳엔 배우가 있었다. 국립극단이 그 무거운 이름을 내려놓고 하나의 ‘공간’ 으로 그 자리에 있었다. 최소한의 울타리로써 국립극단이 자리했고, 자신들의 색을 뿜어내는 이야기꾼 겸 배우 겸 독립예술가가 그곳에 우뚝 서 있었다.

 

 

4.

바쁜 호흡. 가볍고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져 있는 입맛처럼 나의 내면도 더 화려하고 다양하게 눈과 귀를 자극하는 풍성한 장치들에 길들여져 있었던 건 아닐까. 조미료를 뺀 진짜 공연이 주는 순간의 진실과 감동을 어느새 잊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경계가 무너졌다. 편견과 오해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작은 극장에서 자신만의 무대를 그리며 이야기 하나로 공간을 꽉 채우는 큰 배우. 그리고 이야기속에 자연스레 스며드는 관객들. 국립극단과 독립예술가라는 이질적인 두 만남은 의외의 멋진 마리아주(mariage)를 그려냈다. 앞으로도 이런 멋진 만남들이 지속되길 바라는 마음과 더불어 미래의 관객들을 위해 내놓는 정성스러운 공연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독립예술가들이 만드는 그리 소란스럽지 않은 축제. 내년의 풍경이 아스라히 그러져지는 축제. 한 여름 밤의 작은 극장. 이 소박한 여름잔치가 앞으로도 관객과 함께 알차게 여물어가길 바란다.

 

 필자_짝지영

 소개_‘느리고 천천히 살고싶다’와 ‘좀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다’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아둥바둥대는 중. 관객일때 가장 즐거운 사람. 시큰둥하고 미지근 하게 오래도록 즐겁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