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014 괴산페스티벌 - “괴산에서 만납시다.”

2014. 9. 4. 13:51Review

 

2014 괴산페스티벌

 “괴산에서 만납시다.”

 

글_강재영김솔지

 

카라반 사이트

‘처음’은 항상 낯설고 두렵다. 또한 설렌다. 나에게 ‘괴산 페스티벌’은 그런 존재였다. 올해로 4회째가 되는 유기농 음악 축제는 나에게 또 다른 ‘처음’이었다. 직장에 잡혀 자유로이 떠나기 어려운 나이기에, 단순히 페스티발을 즐기는 것만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한 줌의 여행이 되길 바랐다.

그렇기에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안내된 캠핑장 정보는 마치 구름 속에서 얼굴을 내민 한 줄기 빛 같았다. 그것도 공연장 바로 옆! 나는 앞뒤 가리지 않고 즉석에서 전화로 ‘카라반 사이트’를 예약했다. 토할 것 같이 어지러운 하루하루가 저물어 어느덧 금요일 밤이 되었다. 늦게야 집으로 돌아와 못 다한 여행준비에 인터넷을 뒤졌다.

“카라반 사이트니까 준비물은 많이 필요 없겠지?”

그럴 리가. ‘카라반 사이트’는 카라반을 세울 수 있는 장소. 여기에 세울 카라반을 살 돈이면 내 고물차 30대 정도 살 수 있다. 하하하. 하하하하. 왠지 사이트 가격이 싸더라니. 다음날 아침 캠핑장에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환불도 취소도 텐트 대여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단다. 고맙게도 아름다운 선배의 아침잠을 깨워 가며 산악 비박용 2인 텐트와 버너를 빌릴 수 있었고, 우리는 드넓은 카라반 사이트에서 더 가깝고 로맨틱한 밤을, ‘괴산 페스티발’을 기다렸다.

 

 

네 번째 페스티벌

캠핑장과 공연장의 거리는 생각보다 더 가까웠다. 특히 카라반 사이트와 가까워서 리허설하는 소리가 아주 또렷하게 캠핑장으로 흘러들었다. 하지만 이걸로 만족할 수는 없다. 축구장에는 하나 둘 크고 작은 텐트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해가 뉘엿뉘엿 돌아가는 오후 6시, 공연 시작 시간이다. 100m 거리에서 오프닝 멘트가 들려온다. 그리고 “작년까지는 관객으로 온” 김영규씨의 노래가 시작된다. 노래가 시작되자, 페스티발을 모르던 사람들도 속속 축구장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소소한 기획자 사이씨는 조곤조곤 능수능란하게 청중을 불러 세웠다.

 

 

한 걸음에 공연장으로 들어섰다. 마치 가벼운 마법을 부려 축구장에 있던 골대가 무대가 된 것처럼, 낚시배를 연상시키는 가벼운 무대가 세워져있다. 그 주변에는 커피트럭, 솜사탕리어카, 음식과 음료가 줄지어 관람객을 반겨주었다. 앉아 있는 사람, 누운 사람, 개를 괴롭히는 사람, 맥주를 마시며 몸을 흔드는 사람, 제 각기 자리에서, 제 각기 감정으로 페스티벌을 즐기고 있었다.

하현진의 노래가 이어졌다. 사람들은 크게 호응하지 않았다. 앞으로 뛰어나가지도 않았다. 앉은 자리에서 음악을 즐겼다. 북적거리지 않아서 여유롭게 앉은 자리에서 잘 보이고, 잘 들렸기 때문이다. 권나무의 노래가 이어졌다. 김해에서 왔다는 그는 노래 중간에 사투리로 소곤소곤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뉘엿뉘엿 해가 지면서, 공연의 관객과 캠핑장의 캠퍼 두 역할 사이에서 갈등이 몰려왔다. 잠시 캠핑장으로 건너갔다.

 

텐트에서 위댄스 음악에 춤춘 사연

들려오는 노래 소리를 들으며, 고기를 구웠다. 돼지고기 전지 600g, 삼겹살 300g을 구웠다. 고기는 신나게 익어가고, 그 사이 사회사이자 기획자 사이가 무대에 섰다. 지난봄에 알게 된 뮤지션이지만 음악을 듣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흥겨워 신이 난다. 이어서 시와의 차분한 노래가 들려온다. 괴산의 작지만 투박한 산을 느끼며 저녁을 보낸다. 동물원 김창기를 소개하는 말소리가 이어지더니 다시 노래가, 그러더니 위댄스 무대가 시작된다. 아침부터 들뜬 마음으로 내려온 탓에 피로가 몰려와 텐트에 누워 위댄스의 춤을 소리로 들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소리, 위댄스만의 독특한 음색이 몇 곡 이어지고 나는 텐트 안에서 위댄스를 그리며 노래 들었다.

 

 

“나와 함께 춤을 그대와 함께 꿈을”

이러다 다 끝나겠다. 다시 축구장으로 헐레벌떡 뛰어간다. 스카웨이커스가 올랐다. 색소폰, 트럼본 등 다양한 악기가 하나의 리듬에 섞여 흐르고 보컬 정세일은 춤추며 노래한다. 사람들은 그의 동작을 따라하거나, 각자의 방식대로 춤춘다. 캠퍼들, 관객들, 공연을 함께 꾸린 자원봉사자들, 누군가를 따라온 어린 아이들이 함께 춤춘다. 양옆, 앞뒤 사람이 계속 바뀌는 흥겨움 속에, 자던 아이는 잠에서 깨어나 멀뚱멀뚱 앞을 바라본다. 한 손에는 캔 맥주를 들고 빙글빙글 돌며 춤춘다. 발에는 신발이 없다. 인조잔디라도 상관없다. 밟고, 먹고, 뛰고, 그러다 어느새 다른 곡이 시작할 때쯤에 잠을 자기도 한다.

잔잔하게 시작한 페스티벌 분위기가 최고조에 이르고, 야마가타 트윅스터가 무대에 올랐다. 일고여덟 명이 가득 채웠던 무대에 홀로 선 야마가타 트윅스터는 그의 동료, 맥북과 음악을 시작한다. 또 다른, 미칠 것 같은 즐거움이 시작된다. 며칠 전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들었던 ‘신사아파트’, 누군가는 광주 구도청 대로에서 들었던 그 곡이 괴산 어느 축구장에 울려 퍼진다. 그는 무대에서 뛰어내려오더니 우리를 무대 위로 이끌기도 한다. 노란 의상을 벗더니 오렌지색 옷을 입고 뛰던 그는, 또 한 번 탈의하고 다시 노란 옷으로 함께 춤춘다. ‘괴산’에서만은 잊고 싶었던 일상살이의 문제들, 가령 아파트 대출이자나 도시의 미세먼지, 돈만 아는 저질들은 야마가타 트윅스터 노래에 진지하고도 재미난 가사와 몸동작으로 발산되었다. 그렇게 그는 쿨하게, 앵콜곡을 하지 않고 마지막 무대를 마쳤다.

 

작지 않아요, 사이씨

이번 축제 기획자겸 유기농펑크포크가수 ‘사이’를 알게 된 것은 지난 어린이날 즈음이었다. 그는 세월호 사건, 그리고 그 후 예술가들이 일방적으로 공연을 취소당하는 상황에 대해 음악이나 말로서 함께하고자 했던 ‘세월호를 지켜보는 작은 음악가들의 선언’을 기획한 바 있다. 이틀 간 홍대앞 여러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예술가들의 선언을 바라보면서, 나는 처음 이 모임을 만든 사이씨에게 한 가지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는 “작은 음악가”라고 자신과 동료들을 일컬었다. 다른 글에서도 그는 “작은” 이라는 형용사를 사용하였다. 그는 작지 않다.

그는 어느 글에서 게으름에 대한 책을 한 권 내고 싶다고 밝힌 바 있는데, ‘사이’처럼 부지런한 가수도 많지 않을 것이다. 자립적이고, 독립적으로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심지어 페스티벌을 기획하는 그의 활동성은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싫든 좋든 간에 돈에 의한 움직임으로 점철된 많은 사람들보다 큰 가수로 비친다. 내년을 지금부터 기다리게 된다.

 

 필자_강재영

 소개_"노래하기 좋아하는 人間"

 필자_김솔지

 소개_예술과 미학 사이를 오가며 이 사이에 놓인 것들을 말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