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014 서울프린지페스티벌 - 일상연극단 오당춤 <방물관/밖물관>

2014. 9. 2. 13:57Review

 

2014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외로운 사람들한테 ‘왜 하필 박물관이냐?’고 묻지 마라

일상연극단 오당춤 <방물관/밖물관>

글_안태훈

 

그대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 견디는 일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 정호승 時,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中

 

비 오는 날이면, 언제나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박물관 휴식의자에 앉아 오늘도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박물관의 공기와 적막이 주는 공간감이기도 하며 또는 항상 전시관에 앉아있는 예쁜 전시담당자에게 거는 말 한마디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기다림은 외로움을 덜어주지 않는다. 나만의 것이지 나와 네가 함께 공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제도, 오늘도, 또 내일도 반복될 그들의 외로움은 시간과 공간의 맥락에서 떨어져 나와 매끈한 유리관에 갇혀있는 전시물들의 처지와 다르지 않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지만, 어느 누구도 그들이 오래전부터 간직해오고 있는 절대적 외로움에 말 걸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 2014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참가작 <방물관/밖물관> 포스터

 

인위적 공간에 풀어져 나오는 자연스러운 외로움

<방물관/밖물관>은 사실 캐릭터 설명만으로도 충분히 상상해볼 수 있는 일상극이다. 40년 역사교사 생활을 은퇴하고 박물관에 나와 전시해설을 다니는 선생님. 남편으로부터 외로움을 위로받지 못해 박물관에 나와 은제 위스키 병에 담아온 소주를 마시며 처연히 고려청자 찻잔을 응시하는 여성. 45년째 자신을 짝을 찾지 못하고 오늘도 박물관에서 괜찮은 사람이 없나 두리번거리는 올드미스. 직업이 없어 시간 죽이러 온 백수. 사업에 실패하고 자신에게 유일하게 남은 도자기 하나를 신문지에 싸고 박물관을 어슬렁거리는 남자. 따분한 전시관 경비생활을 몰래 가지고 다니는 술 한 모금으로 덜어내는 박물관 경비. 허공을 응시하며 정해진 시간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젊은 전시담당 여성 직원과 그녀에게 말거는 것이 행복인 복학생 남자. 그들의 대화는 마치 안톤 체홉의 희곡과 닮아있다. 대화의 표면은 캐릭터와 캐릭터 간을 왔다 갔다 하지만, 결국 대화의 본질은 각자의 외로운 처지에 대한 자기고백과 성찰이다. 그 언어의 결이 어떤 캐릭터에선 눈물로 또 다른 캐릭터에선 담담한 자기한탄과 침묵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이 연극이 흥미로운 것은, 연극이 설정하는 공간과 그들 처지의 닮음이다. 시공간적 맥락이 제거된 채 생명력을 잃고 전시 대상 그 자체가 돼버린 박물들처럼, 그들의 일상 또한 나 자신의 근원적 외로움을 해결할 수 있는 다양한 맥락들로부터 격리된 채 점점 외로움의 깊은 바다로 침잠해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박물관은 그 자체로 캐릭터들의 외로움을 전경화하는 설정이자 무대 공간이다. 그래서일까? 박물관이라고 얘기하면서도 무대 공간에는 아무런 전시 대상들이 없다. 다만, 그 텅 빈 공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등장인물 각자의 외로움을 상징하는 술병, 휴대용 마이크와 스피커, 연애편지 등으로 채워진다. 관객 눈에 들어오는 빈 공간과 무형의 고려 유물들이 캐릭터들 각자가 유물들을 보며 투사한 외로움의 구체적 대상으로 환원되는 것이다. 환원은 외로움의 개별성을 잘 드러낸다. 개별적이기에 그들의 외로움은 닮아 있지만 연대할 수 없고, 결국 오늘도 그들은 공연한 시선으로 박물관에서 자신의 외로움을 쓸쓸히 흘려보내고 있다.

 

 

들의 연극을 이해해 주고픈 마음: 하루하루 외로움을 견디는 사람들

<방물관/밖물관>은 서울시극단 시민연극교실 3기에서 만난 인연들이 만든 작품이다. 당연히 공연하는 배우들과 그들이 창조한 캐릭터 사이의 거리는 매우 밀접하게 붙어있다. 전문 연극인들이 아니기에, 연극의 기능적인 측면들은 투박하다. 대화와 동선, 음향과 조명처리는 매끄럽지 못하고, 이야기의 흐름은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는다. 각자의 처지를 관객에게 일갈하고 싶은 성급한 마음들이 빚어낸 자연스러운 결과이리라.

그러나 이 연극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싶지 않은 이유는 프린지 페스티벌이 추구하는 ‘아마추어리즘’을 훌륭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세련되지 않기에 오히려 명확하고, 가공되지 않았기에 그만큼 건강하다. 솔직하게 각자가 처한 생활 속 외로움을 연극으로 형상화함으로써, 객석에 있는 관객 또한 일상 속에서 개별적으로 당면하고 있는 외로움의 단면들을 꺼내보게 된다. 그들이 박물관을 찾는 이유와 내가 도서관이나 카페를 찾는 이유의 결을 맞춰보는 것이다. 아마추어리즘이 갖는 솔직함의 매력이 이 연극의 본질이다. 매끄럽고 재밌지만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 박물관 연극보다는 포장하거나 덧붙이지 않고 각각의 외로움이 지닌 쓰고 떫은맛들을 맛보게 해주는 것이 더 낫지 않은가?

그래서 이들에게 왜 박물관이냐고 묻지 않으려 한다. “박물관을 대상으로 삼은 것 치곤 공간적 상징성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이야기의 빈틈이 너무 많다” 등의 일반적이고 상투적 평가보다는 “그래요. 더하지 말고 딱 이정도 수위로 솔직하게 만드느라 고생했습니다.”라고 토닥여주고 싶은, 그런 연극이다.

 

 필자_안태훈

 소개_'잘' 쓰진 못하지만 '글' 쓰고 싶다고 떠들고 다니는, 연극 리뷰하나 제대로 '못' 쓰지만 언젠간 오만가지 것들에 대해 '다' 쓰는 경지에 오르고 싶어 하는 천-둥-벌-거-숭-이.

 

 

일상연극단 ‘오당춤’

<방물관/밖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