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주한독일문화원-놀공연구소의 게임 <Being Faust: Enter Mephisto>무적핑크의 웹툰 <조선왕조실톡>

2014. 12. 24. 08:29Review

 

즐길 때, 한계는 없어진다

- 주한독일문화원-놀공연구소의 게임 <Being Faust: Enter Mephisto>와

무적핑크의 웹툰 <조선왕조실톡>에 대하여

 

글_안태훈

클래식은 위대하다. 옛 사람들의 발견과 성찰이,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도 의미를 시사(示唆)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대하다는 의미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바로 오늘의 소통 방식에 따라 가공·변형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얼마든지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잠재력, 창작자들이 오래도록 그 클래식을 소재로 삼고 수용자들이 그 클래식을 향유하는 것이 바로 위대함의 완성이다.

물론 가공·변형에 따라 원전의 맛이 완전히 살기란 정말 어렵다. 손을 댐으로써, 손댄 사람의 가치나 철학이 투영되고, 그것이 원전의 정수를 희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전의 참맛을 본 사람들이 느끼기엔, 혹여나 사람들이 가공·변형한 ‘거기까지만’ 향유하는 것을 안타까워 할 수 있다. 특히, 그 가공 방식이 그들에게 낯설 때 이런 안타까움은 더욱 커진다. 예를 들면 게임이나 웹툰(고우영, 신문수 선생의 만화가 아닌 만화들)같은 방식으로 유통될 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에서 리뷰할 주한독일문화원과 놀공연구소가 제작한 게임 <Being Faust: Enter Mephisto>(이하, 빙 파우스트)와 웹툰 작가 무적핑크의 네이버 연재 신작 <조선왕조실톡>은 그분들께 좀 시시할 수 있다. 애들 장난같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연계와 웹툰계에서 클래식을 변주하며 사람들의 많은 사랑을 받은(혹은 받을) 작품들이기에, 필자는 변변찮은 직관으로 두 작품을 리뷰해 본다. 게임과 웹툰, 서로 다른 두 가지 이야기 방식이지만, 두 작품은 서로 닮은 매력과 문제제기들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한독일문화원+놀공의 협력프로젝트, <빙 프로젝트> (사진출처_공연의 홍보이미지 유투브 영상캡쳐)

 

한계를 명료히 밝힘으로써 오늘의 소통방식을 입다

대형 서점 입구 목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민음사 전집’의 말끔한 위용을 보면, ‘그래 언젠가 저걸 다 읽어 보리라’는 포부가 생기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저 어려운 책들이 ‘인간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책이라고 그러는데, 사실 나는 책에 별로 흥미도 없고, 있다 해도 저 어려운 고전을 읽을 엄두가 차마 나지 않는다면?

<빙 파우스트>와 <조선왕조실톡>은 이런 사람들에게 아주 제격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두 작품 모두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설정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그 가공하는 방식에 정서적으로 동의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이다. <빙 파우스트>는 게임이 끝나고 ‘이 게임은 사람들이 <파우스트>라는 위대한 고전에 관심을 가졌으면’하는 의도로 제작됐다고 밝힌다. <조선왕조실톡>은 더 간결한데, 웹툰 제작과정에서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명확히 밝히고, “그리하였다고 한다”라는 맺음말로 끝냄으로써 독자들이 그 자리에서 털고 가게 만든다. 즐기자는 의미로 말이다.

<빙 파우스트> 게임방식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친구를 팔아 돈을 인출하여 그 돈으로 내가 원하는 삶의 가치들이 담긴 문장들을 쇼핑몰에서 구입한다. 문장을 많이 찾을수록 나의 욕망 만족도는 더욱 높아지며, 돈이 다 떨어지면 또 다른 친구를 팔아서 문장을 더더욱 많이 산다. 쇼핑몰 맨 앞에는 거래 상황과 통계가 실시간으로 집계·중계된다.

▲국립극장 로비에 설치된 <빙 파우스트>의 무대(上), 게임진행(下) (사진출처_독일문화원 홈페이지)

흥미로운 지점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들의 게임 몰입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이다. 처음에 참가자들은 굉장히 진지하다. 내가 원하는 가치 6개를 찾아 우선순위를 매기는 고심과, 친구를 팔 때 보이는 망설임. 하지만 문장을 하나하나 맞춰나가면서 얻는 재미와, 욕망 만족도가 높아졌다는 메시지 앞에서 고심과 망설임은 온전히 사라진다. 얼른 친구를 팔아서 인출기에서 돈을 뽑고 계속 욕망만족도를 높여가며 흡족해하는 얼굴들은, 게임에 참여한 ‘애나 어른이나’ 똑같이 보여주는 모습이다.

<조선왕조실톡>은 오늘날 한국사람 대부분이 사용하는 카카오톡의 ‘의사소통 양태’를 가져 온다. ‘만약 조선의 왕들과 그 관계자들이 카카오톡으로 서로 소통한다면?’이라는 설정은 큰 줄기의 역사적 사실들뿐만 아니라, 실록에 세세히 적힌 왕과 왕실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각색 구성할 수 있게 만드는 기제다. ‘고기 덕후’ 세종과 ‘귀여운 동물’에 열광하는 성종의 모습을 보면, “나나 왕이나 같은 사람이로군”이라는 동질감은 물론, 역사 학습에 대한 부담감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자유로워질 수 있다. 거기에 무적핑크의 시크하면서 담담한 문체는 ‘빵 터질 수밖에 없는’ <조선왕조실톡> 스토리텔링 방식의 완성이다. 이제 연재 3회째를 맞이했지만, 그녀의 감성이 환유할 ‘고전과 이 시대의 연결점 드러내기’가 기대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완벽을 위한 몇가지 문제제기

게임과 웹툰이지만, 그러나 <빙 파우스트>와 <조선왕조실톡>에도 우려와 해결해야 할 지점은 있다. 자칫 ‘시시하고 원전의 본질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작품이다’는 평가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성은 무엇일까?

<빙 파우스트>의 경우는 원전의 싯구들이 해체·진열됨으로써 원전이 가진 ‘시적 아름다움의 음미’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게임에 참여한 사람의 관점에 따라, <파우스트>의 싯구가 이렇게 혹은 저렇게 읽힐 수 있는데, 어떻게 하나의 ‘정답’으로 한정시킬 수 있냐는 의문이 그것이다. 더불어 <파우스트>의 수많은 대사들 중 ‘주최 측은 어떤 기준으로 대사들을 선택, 나열 했는지’ 그 이유를 참여자는 제공받지 못한다. ‘왜 하필이면 이 문장들이 전시 돼 있을까?“라는 궁금증을 해소하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Being Faust'라는 게임의 타이틀을 몇몇 당사자는 체험하지 못할 수도, 받아들이길 거부할 수도 있다. 이는 ’게임을 위한 소재 선택‘이라는 오해로 이어져, 놀공연구소가 지향하는 ’원전에 대한 참여자들의 관심 자극‘ 성공이 아니라 그냥 ’게임 한판 했다‘로 그칠 수 있는 불안한 가능성이 있다.

▲웹툰<조선왕조실톡>이 수행되는 공간, 웹/스마트폰 화면

<조선왕조실톡>은 연재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좀 덜하지만, 비슷한 맥락이다. 실제 사실과 작가가 덧붙인 것을 끝에 밝히지만, 혹여나 기록된 사실 그 자체를 작가의 입맛에 따라 각색함으로써 역사적 사실이 왜곡·변질 될 수 있다는 문제제기가 그것이다. 작가가 그 전에 다뤘던 동화와 영화는 충분히 작가 성향과 시각에 따라 자유롭게 패러디할 수 있지만, 역사는 그러면 위험하다는 우려가 상존한다.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불거지고 있는 논란이 이를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에 대한 깊은 공부의 흔적이 만화에 잘 드러나지 않으면, 만화는 역사에 대한 패러디가 아니라 작가의 장난에 대한 결과물 정도로 그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하지만 해답은 그 안에 있다

그러나 <빙 파우스트>와 <조선왕조실톡>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내적으로 가지고 있다. 바로 그들이 애초에 설정한 한계를 게임에 참여한, 웹툰을 감상하는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을 더욱 활성화시킴으로써 지워나가는 것이다.

<빙 파우스트>에서 가장 인상 깊은 지점은 ‘나는 못 맞추는데, 저 사람은 맞추거나 혹은 그 반대의 상황이 아주 명확하게 드러난다’는데 있다.

#9607

포르키아스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외쳤느니라.

몇 번이고 맘껏 뛰어도 좋지만 날려고는 하지 마라.

자유롭게 날 수는 없단다.

그러자 자상한 아버지도 타일렀느니라.

대지에 탄력이 있어서 널 솟구치게 하는 거란다.

 

이 문장 앞에서,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자유’에 관한 싯구인 것 같았다. 하지만 입력했더니 해당 문장이 아니란다. ‘왜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며 다른 문장들을 살펴보고 있는데, 아빠의 스마트폰을 가지고 이리저리 다니던 한 꼬마 친구가 이 문장 앞에 멈춰섰다. 그 친구가 낮지만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한자씩 읽더니 아빠에게 ”가족!“라고 외치고, 넘버를 입력하니까 ”아빠 맞았어“하며 신나게 웃는 것 아니겠는가? 흐뭇해하는 아빠와 또 다른 것을 맞추려 이리저리 분주히 돌아다니는 꼬마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기특한 마음은 물론, ‘어떻게 저것을 가족이라고 생각했을까?’라는 호기심이 생겼다. 현황판에 실시간으로 게임 상황이 집계되고, 또 사회자가 있으므로 혹시나 게임이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 시간이 제공되면 꼭 물어봐야겠다고 기대했다. 하지만, 주최 측에게 시간의 여유가 없었는지 그런 기회를 주어지지 않았다.

원전에 대한 관심을 자극하는 것이 게임의 목적이라면, 우리가 ‘문학’을 향유하는 가치를 한번쯤 돌이켜 봤으면 한다. 바로 나 스스로 깨닫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다른 사람과 대화를 통해 공유하고, 나누고, 들어봄으로써 그 가치는 더욱 배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그것이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가지는 클래식이라면, 이 대화의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다.

참가자간 소통의 시간을 더욱 넉넉히 두는 것이 필요하다. 게임이 끝나고 누가 가장 많은 만족을 느꼈는지, 오늘의 게임 활동을 통해 사람들은 어떤 가치를 가장 우선시 했는가를 정리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문장이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는지, 오답률과 정답률이 높았던 문장과 낮았던 문장은 무엇이며 왜 그랬는지, 참가자들이 게임을 하면서 왜 이 문장의 답은 ‘그 가치’인지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게임 런타임의 압박 때문에 공유의 장을 풍족히 마련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겠으나, 이미 게임을 충분히 즐긴 사람들은 내적으로 이 시간을 충분히 즐길 마음의 여유가 있다. 실시간으로 축적되는 데이터 집계라는 가장 큰 무기를 그냥 넘겨버리지 않았으면 한다.

 

▲웹툰<조선왕조실톡>이 수행되는 공간, sns상의 공간 (스마트폰 화면캡쳐)

무적핑크의 <조선왕조실톡> 또한 마찬가지다. 댓글 문화를 더욱 활성화시켜야 한다. 사실 댓글 문화에 좋은 기억이 없는 본인으로서는, 댓글들을 확인하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이 웹툰의 댓글들을 보니 그 수준이 상당한 것들이 다수 있다. 예를 들어 3화의 성종 이야기에서, 댓글들은 성종 임금의 역사적 평가에 대해 자신들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개진하면서 세종에 버금가는 ‘태평성대’를 이룩한 임금이 아니냐는 소통이 이뤄지고 있었다. 백성들을 위해 자신을 절제하면서 경국대전이라는 법제를 완성한 왕이기 때문이다. 이런 댓글들을 통해 보면, 수용자들이 단순히 성종의 일화에 재미를 느끼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담론을 건전하게 확대·재생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웹툰은 이런 움직임을 자극할 수 있도록, 한 왕에 대한 만화를 일회성으로 다루고 마는 것이 아니라, 여러 회를 두고 입체적으로 조망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역사적 평가 논란이 많은 왕에 대해 시간적 여유를 두고 무적 핑크의 감성으로 과감히 다룰 수 있기를 기대한다. 웹툰만 보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수용자들이 그 왕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하는 것, 그것이 웹툰 스스로가 설정하는 한계점을 자연스럽게 넘어설 수 있는 길이다.

창작에 대한 ‘다양성을 존중’하는 환경에 대해 새삼 생각해 본다. 한계와 개선점들 앞에서 ‘그것 뿐’이라고 평가 절하하기 보단, 사람들이 즐기고 기뻐하는 모습에서 작품의 발전 가능성을 찾고, 모자란 부분이 더욱 나아지도록 ‘따뜻한 조언과 처방’을 내려주는 환경 정착에 대해서 말이다. 항상 그래야 한다고 가르쳐 주시던 분들이, 현장에선 그러지 않을때… 씁쓸하다.

*주한독일문화원 웹페이지 바로가기 >>>http://www.goethe.de/ins/kr/seo/prj/fau/fot/koindex.htm 

**조선왕조실톡 sns 페이지 바로가기 >>> https://www.facebook.com/ChosuntTalk

 필자_안태훈

 소개_남에게 인정받으려 급급하기 보단, 스스로 당당할 수 있는 글을 쓰자고 요즘 다짐하고 있다. 모바일 글쓰기 연습이 여간 녹록지 않다.

 

 

▲<빙 파우스트-엔터메피스토> 내용소개 (사진출처_시계문화페스티벌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