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밥6월 레터] 희한한 시대

2015. 6. 22. 09:15Letter

 

희한한 시대

 

어제 만난 친구가 그런 말을 했어

눈과 귀를 닫고 입을 막으면 행복할거야

너는 톱니바퀴 속 작고 작은 부품

정말 아무것도 아니지

사랑에 정복당할 시간도 없는

희한한 시대에서 열심히 사는구나

- 옥상달빛 <희한한 시대> 중에서

 

 

지난달 말에 발표한 ‘옥상달빛’ 의 신곡을 요새 무한-반복으로 듣고 있습니다. 가사에 보면 ‘행복’ 이란 말이 나옵니다만, 실상 역설적인 표현이겠지요. 한편으로 시대적 아픔에 대해 외면했던 우리에게 경고하는 노래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희한한 시대에서 당황하며 또 한편으로 방황하고 있는 ‘우리’ 의 모습이 연상됩니다. 이 앨범에는 ‘자기소멸’ 을 노래하는 <내가 사라졌으면 좋겠어> 라는 곡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앞선 곡과 묘하게 어울리면서, 삶의 방향도 혹은 존재의 희망도 찾을 수 없는 ‘지금, 여기’ 를 담담히 고하고 있습니다.

‘옥상달빛’ 이 그간 불러왔던 노래들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 정서가 일관되게 나타납니다. 아마도 일말의 긍정이나 낭만의 면모였겠지요. 이번 앨범에도 그 문장은 여지없이 떠오릅니다만 어조의 차이랄까요, 달관이 아니라 비관이 떠오르고, 상념이 아니라 체념이 따라옵니다. '사는 것'과 '행복' 에 대해 회의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지요. 현실을 외면하지 못하겠다는 가수의 의식이 엿보입니다. 락킹과 래핑이 '힙한 음악상품' 으로 자기 진로를 결정할 때, 외려 이들은 그와는 결별한 것이지요.      

따지고 보면, 낭낭한 음성은 아름다운 사운드를 만들어 줄 수는 있어도, 시대의 리얼리티를 드러내는 데는 무리가 있겠지요. 따라서 목소리를 바꿀 수 없기에, 이들은 노랫말을 바꾸었습니다. '나와 너' 라는 소우주가 여지없이 등장하지만, 이제 이들은 동시대 '타자' 의 고통받는 삶에 눈길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곡들은 반(反)서정 혹은 반(反)낭만으로써의 발라드이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면 과연 '서정(抒情)' 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의문이 듭니다. 설명에 의하면, 서정은 사람의 내면과 일상, 그리고 자연을 바탕으로 한 '아름다움' 을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도시에서 작은 부속처럼 겨우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서정' 의 방식은 온당할까요. 과연, 예전처럼 우리의 마음을 움직일수 있을까요.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그런 의미에서 ‘서정’ 은 예술을 구동하는 하나의 메카니즘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서정을 넘어서는 단계가 필요하다는 말이지요.

그리하여 어떤 예술가들은 아름다움 대신 자연, 일상, 내면의 일그러짐과 추함을 증언하기 시작했습니다. 옥상달빛의 앨범에는 "세월호 이후에 낭만적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다포(多抛) 세대에게 사랑은 합당한 것일까?” 하는 고민들이 역력히 묻어납니다. 들을 때마다 시대에 대한 공감과 노랫말에 대한 묘한 반감이 각각 교차하는 특이한(?) 경험을 전해줍니다. 청자를 심난하게 만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노래지요.

 

그래도 세상 한 가운데

어차피 혼자 걸어가야만 한다면

눈 뜨고 잘 듣고 목소릴 내보면

그럼 지금보다 나아지겠지

그리고는 천천히 살아가는 거지.

- 옥상달빛 <희한한 시대> 중에서

 

서정을 가장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예술가가 이를 수용하지 않고, 비판적 성찰을 이어가면서 새로운 길을 모색할 때, 또 다른 예술의 지평이 열리는 것이겠지요. 6월 레터는 추천곡을 전해드리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이번 달 주제는 “희한한 시대” 입니다. ‘서정’ 을 마냥 속편하게 전할 수 없는, 드물고 신기한 시대라고 풀이해도 되겠지요.

 

2015년 6월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편집위원

정진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