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밥 9월 레터] 다른 데서 본 공연

2017. 9. 30. 21:15Letter

 

다른 데서 본 공연

 

8월 말부터 잠시 저의 거처는 상하이가 되었습니다. 편의점 도시락과 포장해다 먹는 2위안—340원—짜리 찐빵으로 점심을 때우는 일과 사이사이로 공연을 많이 보았습니다. 바쁜 일을 제쳐두고 ‘편지에 적어야지’ 같은 변명을 혼잣말로 되뇌면서요.

 

첫 번째로 본 것은 한국과 동일한 프로덕션이 참여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였습니다. 공연이 열린 곳은 같이 간 친구들과 '아무리 여기가 뭐든 크고 번쩍이는 인민광장이라지만 이 건물은 그야말로 불시착한 UFO 같다'고 말했을 정도로 휘황찬란한 상하이대극장이었습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뮤지컬 스타가 캐스팅되었고 몇몇 팬들이 아이돌 콘서트장에서 착용하는 것과 같은, 불이 들어오는 머리띠를 착용하고 인증샷을 찍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공연을 보고 나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같이 본 영국인 친구가 ‘어떤 부분은 빅토리아 시대인 것 같은데 어떤 부분은 전혀 아니다, 고증이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고 말한 것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중세부터 근대까지 특정 시기를 배경으로 한 외국 작품을 보면서 고증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더라고요.

 

두 번째로 본 공연은 다리오 포의 희곡을 중국의 스타 연출가 멍징휘가 각색한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사고사>였고, 세 번째는 폴란드 극단인 염소의 노래가 음악으로 변주한 리어왕 <리어의 노래>였습니다. 중국 연극계에 대해 아는 바가 적어서 멍징휘의 이름 역시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베이징프린지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이었습니다. 아직도 풀지 못한 의문은 그가 여러 축제를 기획하고 큰 극장에서 공연을 하는 중년 연출가인 동시에 중국의 젊은 문화 소비층이 좋아하는 아이콘이라는 설명이었는데, 그렇다면 그는 과연 한국의 누구와 비견할 수 있는 것일까, 무한도전 나온 뒤 혁오밴드 같은 건가 궁금하기만 할 따름입니다. 얼른 의문을 풀어줄 현지인 친구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 <리어의 노래>는 몇 해 전 에든버러프린지페스티벌에서 공연된 레퍼토리로 <리어왕>의 골자를 열한 개의 노래로 만들어 신체언어와 악기, 목소리를 고루 사용해 연주하는 공연이었습니다. 연극 극장이 아닌 상하이음악당에서 공연하여 너른 울림통을 채우는 메아리를 들을 수 있었지요.

 

그 뒤로도 여러 편의 공연을 봤습니다. 대만 출신의 영화감독이자 연출가인 라이셩촨이 윤색한, 골도니 원작의 <두 주인을 모시는 하인>, 일본에서 온 부토 공연, 상해활극예술센터에서 열린 스티븐 킹의 <미저리> 번안극, 쑹메이링을 주인공으로 한 <The Banquet>과 이 공연을 보고 나오는 길에 같은 극장 2층에서 공연하고 있던 작품의 스태프가 혹시 내일 시간이 있으면 표를 주겠다고 해서 보게 된 <Fight Me Now>, 맥도나 원작의 <리논의 미인>을 대학원생들이 공연한 것, 학생들이 올린 창작극 등이었습니다. 조조를 떠나 유비를 향해 천리길을 떠나고 오관을 격파하는 관우를 주인공으로 한 경극 공연도 보았습니다. 어떤 공연은 여성 캐릭터의 멜랑꼴리에 굳이 트라우마를 전사로 덧입혔고 어떤 공연은 삼대에 걸쳐 운영되는 서점 이야기를 할아버지와 아버지, 아들을 통해서만 풀고 여성은 조력자나 방해꾼으로 등장시키기도 했지만, 예기치 못했던 연출이나 관객의 반응을 맞닥뜨리며 재미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한참 공연을 찾아다니던 9월 초 왕낙용 배우를 만났습니다. (알아보자마자 손을 떨면서 그가 출연했던 <신조협려>—그는 2006년 버전의 곽정을 연기했습니다—를 중국에서 어떻게 발음하는지 다급히 찾아보았던 것은 뒷이야기입니다.) 왕낙용 배우는 상해희극학원에서 뮤지컬을 가르치고 있는데, 학생들이 영어로도 연기와 노래를 할 수 있게 커리큘럼을 구성해서 브로드웨이 오디션을 볼 수 있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중국 뮤지컬 시장은 수입한 대형 프로덕션으로 채워져 있고, 자체 레파토리를 기획하고 있지만 아직은 시작 단계라고 합니다. <빨래>처럼 장기 공연되는 창작 뮤지컬이 있는 한국, <테니스의 왕자 뮤지컬>처럼 자체 컨텐츠—이 경우엔 만화—를 뮤지컬로 만드는 데 성공한 일본이 롤모델이라는 기사를 읽은 것이 기억났습니다. 왕낙용 배우는 중국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이 갖는 어려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단언할 수 없는 개인적 견해이기는 하지만, 중국에서는 여전히 지역을 기반으로 구전되는 형태의 스토리텔링이 힘을 갖고 있고, 상상이 가닿기 힘든 소재는 이것이 중국에서 벌어진 이야기가 아니라는 근거를 극중에서 명확히 제시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서유기와 홍루몽과 요재지이의 나라에서 들을 줄 몰랐던 이야기입니다만 아마도 납득 가능한 상상력의 종류가 다른 것이겠지요. 그는 이를테면 <맘마미아>를 공연한다고 할 때 중국에서는 한 사람이 여러 명과 비슷한 시기에 연인 혹은 그 비슷한 관계였다가 딸의 결혼식을 앞두고 친부를 찾는 이야기가 애초에 성립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지는지라, 만약 배경을 중국으로 바꾸게 되면 반발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킬 앤 하이드> 역시 다른 맥락이지만 마찬가지로 중국인에게 친숙하지 않은 이야기라서 서양 복식과 배경을 사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이어 들으면서 퍼뜩 깨달았습니다. 제게 익숙한, 그리고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익숙하게 쓰고 있는 ‘가상의 어느— 서양’ 무대미술은 그저 상징적인 것일 따름이고, 그렇기에 ‘서양’ 문화권 사람에겐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걸요. 그렇다면 상하이에서 뮤지컬을 배워 브로드웨이에 진출하게 될 배우들은 어떤 경험을 하게 되는 걸까요? 그 이야기도 들을 기회가 온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열심히 공연을 보러 다녔음에도 여전히 알 수 없는 것과 궁금한 것투성이입니다. 아직 독립예술을 거의 접하지 못했고 작은 극장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상하이에서 크게 활성화되지 않은 영역이라고 하지만 적어도 몇몇은 찾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연극을, 미술을, 여러 예술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어디서 무엇을 즐기는지도 궁금합니다. 그러고 보면 여러 편의 공연을 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다름 아닌 상하이희극학원 학생 공연의 커튼콜이었습니다. 배우들이 인사를 마치고 자리에 그대로 서서 ‘우리의 스태프를 소개합니다’ 외치곤 연출이나 극작가는 물론이고 조명과 음향 오퍼레이터, 객석감독까지 참여한 모두의 이름을 소리 높여 부르면 관객들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박수를 쳤습니다. 다음 달엔 또 어떤 공연을 보게 될까요? 틀림없이 궁금한 게 늘어나 버리겠지만, 또 주절주절 편지에 속삭거릴 생각을 하면 그것도 퍽 신나는 일입니다.

 

2017년 9월 27일

인디언밥 필자

김 송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