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예술가의 생존전략 - 부산지역 문화정보지 보일라가 살아가는 법

2009. 4. 10. 14:30Feature

부산지역 문화정보지 보일라가 살아가는 법

  • 강선제
  • 조회수 1451 / 2007.07.10


독립하되 고립되지 말기,
반하지 않았다면 취재하지 말기,

문화잡지 보일라 58호 준비 중

보일라 58호를 준비 중에 독립예술 웹진 ‘인디언밥’의 원고 청탁을 받았다. 글을 써보려고 계산해보니 2002년 6월에 창간한 보일라는 저번 달로 5년이 되었다. 어이쿠, 그럼 나도 오년이나 늙었단 말이구나. 월간지를 만들다보면 한 달이 후딱 지나간다. 기획하고 취재하고 편집하고 발송하면 지금이 몇 월이더라 하게 된다. 사실 몇 월보다 몇 호로 세월을 계산할 때도 많다. 창간 1주년 때도 3주년 때도, 지역신문의 기사로 알게 될 정도였으니까. 10주년 때는 혹은 100호가 되면 인터뷰했던 사람들 정기구독자들 모두 모아놓고 한판 거하게 놀 수 있게 되길 바래본다.


부산에서 발행되는 보일라

보일라를 부산에서 발행하고 있다고 하면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애초 보일라는 부산의 젊은 문화예술인을 소개하고 공간과 활동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졌음에도, 전체 배부처의 50%를 서울이 차지하고 있어서 이런 오해를 받기도 한다. 젊은 문화예술인들이 지역을 버리고 서울로 향하는 것은 지역의 문화예술 기반이 약해서다. 약한 기반은 변화와 발전의 인재마저 서울로 뺏기고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는다. 문화예술인들이 자신의 지역에서 활동하고 인정받아 그 영역이 전국으로 확대하는 것이 보일라가 바라는 바며, 보일라 역시 그런 과정으로 배부처를 늘려왔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건 듣기좋은 평가이고 매체의 특성상 변화와 발전을 쫓다보니 지역을 가리지 않고 취재를 하게 되고 반응이 오는 곳에 배부를 하게 되니 배부 비율이 서울로 늘어난 것이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부산의 독자들은 타 지역의 활동가들과 공간에 대한 소식을 접하여 좋을지는 모르나, 한정된 지면에 부산의 소식이 줄어드는 것은 애초의 목표에서 벗어나 지역을 소외시키는 기존의 매체로 방향 전환되고 있다는 혐의를 스스로 지우기 힘들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많은 부산의 문화예술인이 요구한다. 부산소식을 더 실어달라고. 보일라는 부산잡지가 아니냐고.

하지만, 지역잡지의 정체성과 문화잡지의 정체성 사이에서 특별한 고민을 하고 있지는 않다. 부산문화잡지에서 부산을 지운 순간은, 의도한 것이 아니라 내용을 따라 간 것이고, 여전히 부산에서 발행되고 지역의 변화와 발전은 몸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무슨 돈으로 왜 만드나 보일라

창간호를 찍을 때, 전세금 오백만원을 털었다. 이후 보일라는 다른 일로 자금을 마련해서 찍는다. 광고도 후원도 없다. 일반적인 잡지 운영에서 멀어져도 한참을 멀어졌다. 창간호부터 필진을 자처하던 친구는 술자리에서 경제적으로 실패한 보일라라는 말을 했다. 지역에서 지역잡지가 광고를 딴다는 것은 학연과 인맥을 동원하지 않고서는 힘든 일이다. 중앙으로 집중된 것은 비단 문화예술만은 아니다. 지역의 종합병원의 광고를 따기 위해 정치에 뜻을 둔 원장님을 만나 인터뷰 요구를 받은 적도 있고, 지역 백화점의 광고를 따기 위해 그 백화점 일대를 패션문화의 거리라는 주제로 기획을 부탁받은 적도 있다. 물론 보일라 초기의 일이고, 문화잡지를 단지 매체로만 활용하려는 사람들만 만나 온 것일 수도 있다. 보일라가 1년을 넘겼을 때는, 선거를 대비해 각종 단체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 단체에 영문도 모르고 이름을 올리거나 불려다니는 수고스러움을 겪었다. 돈과 교환되는 가치를 보일라가 가진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이라는 보기 좋은 떡밥으로 이용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2004년도쯤에는, 한국에 무가 잡지들이 넘쳐났다. 이동통신사들이 홍보용으로 쏟아 내놓은 Na, Kai, TTL등은 젊은 예술인을 소개하고 그것이 트랜드가 되었다. 그러나 그 잡지들은 어느 한순간 모두 사라졌다. 대자본이 발을 뺀 자리엔 잡지폐간만 남았다.

경제적으로 실패했다는 친구의 말은 사실인 거 같다. 보일라엔 아직도 광고나 후원이 없고, 지역에서 타협하지 않는 것은 경제적으로 철저하게 소외되는 결과를 남겼으니 말이다. 그러나 젊은 문화예술인을 소개하고 공간과 활동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보일라의 창간목표가 유지 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고, 이런 이유로 벌어서라도 보일라를 낼 수 있다면, 경제적 실패는 무엇이 기준인가 라는 질문을 돌려주고 싶다.

개인적으로 보일라 발행의 이유를 물을 때면 다음의 이야기를 하곤 한다. 미대를 다닐 때, 학생의 그림을 교수가 훔쳐서 전시를 하는 사건이 있었고, 학교게시판에 사건을 폭로했으나 돌아오는 것은 학교 측의 명예훼손 협박과 선배들의 침묵이었다. 얼마 전, 미술대전 미협 선거관련으로 금품을 받은 104분이 생각나지 않는가.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예술계의 비리는 젊은 문화예술인들의 발목을 잡는다. 줄을 서야하고 돈이 든다. 물론 작업은 개인의 영역이므로 구석에서 열심히 준비하고 어느 날 짠하고 데뷔하면 된다는 정글의 법칙을 내세울 수도 있다. 보일라는 돈 없고 줄 설 줄 모르는 젊은 예술가들을 소개해서 데뷔를 도와주고 싶다. 젊은 예술가들이 활동하는 공간을 소개하고 싶다. 성과를 거두고 있는 젊은 문화예술인들을 소개해서 자극을 주고 싶다. 밑에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움직임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그들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이런 정보공유는 젊은 문화예술인들에게 서로를 알리고 활동을 공유하며 다양한 시도들의 밑거름이 된다.





보일라 뿌리기

창간호 보일라는 138페이지의 소책자였다. 목표는 지하철에 뿌려대는 거였지만, 순진하게도 부산시민의 공간 지하철에 부산시민을 위한 문화지를 뿌려보겠다는 의도는 월 100만원을 내놓으라는 은밀한 거래에서 깨졌다. 그래서 6호까지 총판을 통해 서점에만 뿌렸다. 서점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7호부터 보일라 판형을 타블로이드지로 키우고 윤전인쇄로 찍어 서점과 영화관 각 대학에 배부했다. 미국에서 날라와 편집장이 된 서진군은 LA Weekly지를 모델로 생활문화정보지로의 변화를 꾀했다. 타블로이드 신문 형태의 보일라는 30호까지 유지되었고, 편집장을 돌려받은 나는 갑자기 범람한 기업형 무료일간신문들과의 차별과 작품이 제대로 사는 종이질과 크기를 원했고 다시 A4 판형의 잡지형태로 돌아왔다. 잡지형태로 찍으면서 발행부수가 줄었고, 불특성 다수가 오가는 공간에서 문화예술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배부처로 정비했다. 현재 지역보다는 서울이 그런 공간이 활발히 늘어나고 있고, 정해진 부수보다 배부처가 늘어남으로서 A4판형에서 좀 더 찍을 수 있는 B5판형으로 바꾸었다.

무가 잡지는 책을 만드는 것이 끝이 아니라, 배부를 하는 것이 마무리다. 서울과 부산의 차이는 배부처의 차이였다. 밀어 넣느냐 넣어 달라고 요구하느냐. 밀어넣은 배부처에서 종이 쓰레기 취급을 받기도 하고, 기업형 서점에 배부한다는 이유로 지역 서점에서 배부를 거부당하기도 했다. 3천원 택배비를 지불해주십사 부탁했다가 거절당하기 일쑤고, 지역축제에 뿌려달라는 요구에 응했다가 다음해엔 축제 측에 협찬을 한 기업형 무료일간신문에게 역시 종이 쓰레기 취급을 당했다. 그럴때면 유연하지 못해서 인연을 끊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발행횟수가 늘어날수록 배부처도 늘어난다. 가장 아쉬운 점은 더 많이 더 많은 곳에 배부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그리고 그럴수록 배부에 신경을 쓰고 보일라의 목적을 이해하는 곳에 보일라를 배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고, 무가지이면서 배부처를 가리는 모순을 가지게 된다.

보일라로 살아남기

문화 예술인들을 인터뷰하면 전업작가냐고 꼭 물어본다. 젊은 작가들은 대부분 전업작가를 꿈꾼다. 보일라를 만드는 나도 전업으로 잡지를 만들 날을 꿈꾼다. 왜 농담처럼 문화예술인들이 문화예술을 누리지 못한다고 마찬가지로 문화잡지를 만들면서 만들기 전보다 문화예술을 더 누리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돈 버는 일은 족쇄로 컴퓨터 앞 은둔형 외톨이로 만들어 버리기 일쑤니까. 하지만 돈벌이 때문에 보일라에 소홀해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은 몇 번의 경험으로 족하다. 생활의 조율은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열정을 잃지 않기 위해 스트레스를 피하고, 발행을 유지하기 위해 밥벌이에 게을러지면 안된다. 보일라로 살아남기 위한 지침을 세워야 한다. 독립하되 고립되지 말기. 원치 않는 곳에 불려 다니지 말기. 반하지 않았다면 취재하지 말기. 온전히 보일라만의 기사로 남기기. 젊은 문화예술인들을 만나기. 현장에서 멀어지지 말기. 나머지는 그때그때 바꿀 수 있는 유연함을 가지기.

보일라 사람들

보일라를 만드는 사람들은 참 많다. 사무실 밖에서 보일라의 지면을 채우는 사람들은 모두 생업이 따로 있다. 원고료 한 푼 없는 일에 당연하게 시간을 할애하는 사람들. 이건 지금까지 또 앞으로 보일라가 유지되는 가장 큰 힘이다. 찾아서 지면에 실어야 하는 젊은 작가들이 직접 포트폴리오를 들고 와 주거나 인터뷰한 작가들이 또 다른 작가를 추천해 주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 기대되는 새로운 문화공간이 홍보해달라는 연락을 주는 것은 너무 반갑고 봐 달라고 만든 보일라를 배부처에 가서 찾아 읽어주는 독자들은 고맙다. 정기구독하는 독자들은 살짝 귀찮지만 꼬박꼬박 챙겨 보겠다는 의지는 채찍질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맘대로 출근 칼퇴근하는 사무실 사람들은 참견 없이 각자의 일을 하는 것에 익숙하다.

보일라는 자신이 하는 일에 이기적일 정도로 완성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좋다. 보일라도 그렇게 만들고 싶다. 더불어 그런 독립예술인들을 만나면 꼭 취재하겠다.

필자소개

부산에서 발행되는 문화잡지 보일라의 발행인 겸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