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목요일오후한시 즉흥연극 일기 ① ‘나를 말랑하게 해요’

* 인디언밥은 극단 ‘목요일오후한시’(이하 목한시)의 즉흥연극 일기를 4~5월 약 2개월 동안 연재합니다. 목한시는 호기심과 즐거움을 원동력으로 하는 집단으로, 플레이백씨어터 공연 및 워크샵, 퍼포먼스 등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플레이백씨어터Playback Theater는 관객의 이야기를 듣고 배우와 악사가 바로 그 자리에서 연극으로 만들어 보이는 즉흥연극으로, 목한시는 오는 5월 인천 스페이스 빔에서 <매일같이 사춘기>라는 제목으로 공연을 펼칩니다.(16일부터 31일까지 매주 토·일 저녁6시) 또 올해 10월까지 계속될 야외 퍼포먼스·게릴라 공연이 얼마 전 첫 테이프를 끊었습니다. 인디언밥에서 연재하는 즉흥연극 일기에는 목한시 단원 해진(곱슬)이 보고 겪는 목한시의 일상이 담깁니다.



2009년 4월 5일 일요일 맑음 : 연습을 마치고 나오니 훨씬 따뜻한 봄이다.

인천 프로젝트의 첫 연습이 시작되었다. 대본이 있는 연극이 아니라서 모든 연습이 새로운 ‘첫’ 연습이지만, 그래도 한 프로젝트의 시작점에 서 있는 심정이 조금은 다르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배우와 스태프뿐만 아니라 연습진행자도 돌아가면서 맡아 하는데, 오늘을 포함해 이번 주까지는 내가 연습진행을 맡게 되었다. 첫 연습을 잘 시작해야한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쳤다. 말똥말똥한 눈으로 누워서는 머릿속으로 테트리스를 맞추듯 연습 프로그램의 앞뒤를 이리저리 바꿔보았던 탓이다. 일요일 연습은 평일 연습보다는 시간이 좀 더 길다. 평소 시간에 쫓겨 충분히 시도하지 못했던 것들을 일요일에 보다 여유를 가지고 해보기 위해서다. 오전 10시의 프린지 스튜디오. 다른 팀들의 연습 흔적이 남아있는 이곳에서 난로를 켠다. 지하라서 그런지 아직은 춥다. 연기를 뿜으며 쿨럭이던 난로가 금세 발그레해지고, 친구들이 하나 둘 도착했다.



몸풀기와 호흡·발성 훈련을 마치니까 벌써 12시를 넘어간다. <매일같이 사춘기> 공연은 ‘사춘기’를 주제로 한 전시 <기이한 공동생활>과 함께 하는데, 그림을 그리는 최윤정씨가 일찍 연습실을 찾아 함께 연습을 했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시종일관 웃음을 터뜨린다. 하긴, 호흡과 발성 훈련을 할 때의 표정이나 자세가 이상하고 웃겨 보일 수도 있겠다. 원으로 둘러선 사람들이 ‘푸르르릅’하며 입술떨기로 노래를 부를 때나 아래턱을 무기력하게 만들자며 손으로 턱을 만질 때 윤정씨는 “아하하하~” 웃으며 즐거워한다. 난 그 모습이 또 재밌어서 웃음이 나오지만 다음 순서를 진행하기 위해 참는다. 웃음을 참는 게 더 웃긴다. 첫 연습이자 오랜만에 연습 멤버가 많이 모인 날이라서 오늘의 목표는 ‘나를 말랑하게 해요’로 잡았다. 짧았지만 못 본 사이에 냉장고에 방치해 둔 떡처럼 혹시 굳었을까봐. 친구들의 특유한 에너지에 힘입어 웃고 구르며 오전 연습이 끝났다. 곁에서 지켜보던 마뇨가 “이제 좀 경직되게 하라”며 농담을 한다. 마뇨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기획을 맡았다. 앉아서 다른 일을 돌보면서도 배꼽 잡으며 실없이 웃는 배우들을 건너다보며 씩 웃곤 한다.


 
  “너, 뭐 하니?”
  “나 노래해”
  “나 수영해”
  “나 지금 뛰어”
  “나 지금 땅 파”

연극놀이의 한 대목이다. 짝꿍이 ‘너, 뭐 하니?’ 물으면 ‘나 ○○해’ 라고 말하며 그 행동을 하는 거다. 우리의 모든 연습이 그렇듯이 떠오르는 것을 바로 표현하면 된다. 홀은 “나 지금 쓰러져”라며 갑자기 바닥으로 쓰러진다. 다른 친구들도 뭘 먹고 있다는 둥, 때리고 있다는 둥, 맞고 있다는 둥, 잡으러 가고 있다는 둥 한바탕 난리가 났다. 오정은 땅에 엎드려 있고 현수는 홀을 쫓아다니고 윤정 작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요리를 한다. 분명히 2명씩 짝지어 시작했는데 어느새 4~5명이 무리지어 있다. 왁자한 이 아수라장이 즐겁고 신기하다. 공연을 본 관객이 “어떻게 그렇게 해요? 연습을 어떻게 하는 거예요?” 물어볼 때가 있는데, 목한시 단원인 나도 가끔은 신기하다. ‘쟤네들, 어떻게 저렇게 하는 거지?’ 나 말고도 아마 그런 생각을 하는 친구들이 있겠지. 그런데 ‘쟤네들’에는 늘 내가 있고 그 친구들이 있고 그렇다. 끝도 바닥도 보이지 않는 바다에 풍덩 풍덩 뛰어드는 것처럼 우리는 그 바다 앞에 모여 있고 한명 한명 용기를 내어 뛰어드는 거다. 그래서 가능한 게 아닐까 생각해보는 밤이다.    
    

‘눈 마주치며 공간 걷기’를 하면서 보다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갔다. 배우의 에너지를 공간에 채웠다가, 이번에는 몸과 주변의 사물을 활용해 ‘배, 교회, 사막’의 공간을 만들었다. 한명씩 무대로 들어가 공간을 채우니 정말 파도를 타는 배가 되고, 기도하는 교회가 되고, 낙타가 지나가는 사막이 된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표현한 오정의 주위로 배우들이 기도하며 빙그르르 돌자, 오정은 “교회인데 웬 탑돌이를 하고 있어~”라며 웃는다. 모두 일제히 빵 터져서 웃는다. 안 그래도 분위기가 모스크였다가 성당이었다가 절이었다가 했다. ‘교회 안가봤냐’며 서로 배꼽을 잡는다.


‘제왕의 자리는 어디인가?’를 할 때는 등받이가 있는 의자 하나, 큐빅 네 개, 보온병 하나가 재료였다. 배우들은 한 사람씩 나와 가장 강렬한 위치를 차지하도록 물건 하나씩을 늘어놓는다. 물건들의 구도가 갖춰지면 배우들은 자신의 몸을 가장 강렬한 자리에 배치한다. 앞서 나간 사람보다 더 강력한 자리를 찾아 자세를 취하면서 앞 사람의 힘을 빼앗는다. 이것은 아우구스또 보알의 ‘억압받는 사람들의 연극 센터’의 단원들이 했던 연기훈련이다. 이 훈련은 정말로 다른 배우보다 강력한 힘을 가지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힘의 구조를 다룰 줄 알기 위해서 한다. 힘의 방향, 힘 있는 자의 새로운 출현, 힘의 역전 등을 인식하게 되면 우리는 그 힘의 구조에 갇히거나 매이지 않고 가지고 놀이할 수 있다. 그 태도와 정서는 고스란히 공연 무대에 영향을 미친다. 재밌는 건, 멤버들이 강렬한 자리를 ‘권위’, ‘높은 지위’의 측면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해 움직인다는 거다. 현수는 쌓여있는 큐빅 더미 뒤로 가더니 납작 엎드려 얼굴 표정을 보이고, 수경이는 다리만 보이게 해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윤정 작가는 정면에 엎드리며 이 전체를 감상하는 포즈를 취했다. 그러자 사물과 배우들이 이룬 구도가 순간 화폭 속의 풍경이 되었다.  




플레이백씨어터 시간에는 세 가지의 이야기와 만났다. 윤정 작가가 사춘기 시절에 반복해서 꾸었다는 꿈, 은옥 작가의 종교와 짝사랑 이야기, 현수의 문학선생님 이야기. 나는 확신이 가지 않는 연기를 할 때가 있었고 스튜디오의 기둥 뒤에 숨어있을 때도 있었다. 장면이 진행중일 때는 플레이백씨어터의 특성상 보이지 않는 곳으로 퇴장할 필요 없이 그저 한 곳에 비켜 서 있어도 되는데도 말이다. 각 장면이 끝날 때마다 우리는 서로 어긋나거나 만났던 지점, 아쉬운 부분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반복해서 다시 해보기도 하고 악사 보노보노와의 앙상블을 꾀하기도 했다. 몸풀기 및 훈련을 할 때는 오늘의 목표대로 말랑해졌었는데, 이상하게도 플레이백씨어터를 하면서 다소 경직되어가는 기운을 느꼈다. 이야기와 만난다는 건 확실히 어떤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저마다의 해석이 첨예하게 갈리기도 하고 만나기도 하면서 여러 사람의 에너지가 예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뭉쳐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 긴장감을 이기고 계속해서 이 활동을 하는 것은 그 ‘예상할 수 없이’, ‘자유롭고’, ‘즐거우면서도’, ‘긴밀하게 호흡을 주고받고’, ‘순간에 충실할 수 있는’, ‘지위를 고정하지 않는, 고정할 수 없는’ 무정형의 즉흥연극이 목요일오후한시 구성원들의 가치관과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라 짐작해보는 깊은 밤이다.    

쉬는 사이 사이에, 난로에 떡을 굽고 빵을 먹고 커피를 먹고 도시락을 먹었다. 즐거우면서도 미묘한 기운이 오고가는 대화가 있는 연습. 두 번째 연습은 화요일 저녁이다.      

글|김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