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예술가의 생존전략 - 인디 뮤지션 연합전선의 기수, 한받을 만나다

2009. 4. 10. 14:33Feature

 

인디 뮤지션 연합전선의 기수, 한받을 만나다


글 ∥ 연리목 (인디뮤지션)
* 조회수 1239 / 2007.07.10



한받(아마츄어증폭기, 스트레칭 져니) 인터뷰



우리의 만남은 나의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우연히 들어갔던 그의 블로그에서, 그가 끼적여 놓은 ‘홍대 인디씬 연구’라는 카테고리를 발견했고, 거기 있는 글들을 내 맘대로 해석해버린 것이다. 나는 그가 홍대 인디씬 자본의 흐름이 기형적이라는 것을 인식하여, 이러한 현실을 전복시킬 대안을 모색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분히 투쟁적인 그의 문체는 나를 고무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리하여 그는 나에게, 홍대 인디씬에서의 자본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되었고, 이 인터뷰의 첫 대전 상대가 되었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나는 그를 오해한 것이었다. 그는 상처받고 희망이 꺾인 한 마리 수줍은 고등어 같았고, 대안은커녕 지금의 현실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만을 조그맣게 펼쳤다. 그러나 묻고, 묻고 다시 물었을 때 그는 결국 숨겨가지고 있던 희망을 드러내어 주었다. 그의 단상들은 앞뒤가 맞지 않았고, 나는 뒤섞인 그 것들을 정렬하고픈 욕망에 사로잡혔다. 나는 다그쳤고 -지면에 싣지 않은 수많은 대화들이 있었음을 밝힌다.- , 그는 실토했다. 나는 승리한 것 같은 기분에 도취되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이틀 뒤, 나는 나의 공격적인 성향에 대해 사과했고, 그는 자신의 중구남방인 이론을 반성했다. 인터뷰 장소였던 홍대 근처 어느 콩나물국밥집의 적적한 분위기가 나를 더욱 전투적으로 만들었을까.

 

1. 연합전선

홍대 인디씬 연구 관심 있게 보고 있습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일단 그때 제가 쉬는 기간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많았어요. (웃음) 엄청 많은 시간과 노력, 열정을 투자해서 노래를 만들고 공연을 하고 있는데, 이 노력들이 그냥 잊혀져버리면 안되겠다. 기록해야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 시작하게 된 거죠.


글들을 읽으면서, 한받씨는 인디음악으로 돈을 벌어 살고 싶어 한다. 그 방법을 모색 중이다. 라고 느껴서 인터뷰를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진척이 좀 있었나요? 제가 그런 생각을 가졌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게 이상적이라고 생각은 하는데, 지금 제 생활만 봐도 다른 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기 떄문에...


그럼 이상적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욕망하지는 않는다는 말씀이신가요? 욕망이 있으니까 그렇게 연구를 진행하시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해결방식이나 이런 것을 찾으려고 한건 아니고 그때그때 생각나는 것들을 적었어요. 한받이란 인간이 여기(홍대 인디씬)서 겪었던 경험들을 올린 거죠. 어떤 대안을 제시한건 아닙니다. 그런데 그게 실마리가 되어서 연리목씨 같은 분들이 한 단계 넘어주셨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은 드네요.


그럼 제가 오해를 한 거군요. 인터뷰 주제가 독립예술가로 살아남기라서 모신 건데 이거 큰일 났네요 (웃음) 아 그런데 한 가지 생각하고 있는 건 있어요. 무기획, 무홍보, 무원칙을 원칙으로 하는 연합전선을 구축하자는 거죠. 연합전선이요? 무엇을 위한, 어떤 연합전선인가요? 저는 이게 하나의 전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제국주의와 거대 미디어와의 전쟁이요. 그래서 모든 장르의 음악가들이 너무 취향에 집착하지 말고 뭉쳐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보통은 어떻게 하면 미디어를 잘 이용해서 인디씬이 대중에게 더 잘 드러나게 할까를 고민할 것 같은데요, 전쟁이라 말씀하시다니 의외입니다. 미디어를 이용하려는 시도는 지금까지 계속 실패해왔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영국의 펑크를 보면, 이용하려다 도리어 이용당한 경우거든요. 펑크라는 것은 노동자 계급의 의사를 놀이라는 방법을 이용해서 전달하고자 했던 건데, 그게 미디어로 넘어가면서 결국 노동자계급을 위한 게 아니고 어린이라든지, 중산층에 소비가 되면서 이용당하는 상황이 돼버린 것이죠. 미디어에 뛰어들었을 때는 어떤 혁명의 기운이 있어서 뛰어든 것인데, 결국은 그렇게 되어버렸지요.


네, 그래서 전쟁을 택하셨군요. 그런데 전쟁이란 치밀한 기획과 원칙이 있어야 승리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무기획, 무홍보, 무원칙의 원칙으로 공연을 한다면 잘 될 리가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요.하하 제가 블로그에 올리는 것들이 다 그런 겁니다. 어찌 보면 말장난일수도 있는 거죠. (웃음) 무기획, 무홍보, 무원칙이라는 것은 제가 견지하고 있는 도덕 떄문인 것 같아요. 틀이 만들어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요. 그리고 끈질긴 하나의 저항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클럽들은 각자 견지하고 있는 자세 즉 원칙들이 있어서, 음악가들이 클럽주들의 지휘 아래 많이 얽매여 있거든요. 거기서 돈을 벌지도 못하면서 말이죠. 그게 클럽들의 생존전략이지 않습니까? 클럽마다의 개성을 특화시키는 것. 관광 상품처럼 말이죠. 네. 빵 사장님의 색깔론이 바로 그런 거죠. 근데 빵은 좀 폐쇄적인 게 있습니다. 그게 안타깝기도 하고. 근데 저도 폐쇄적이에요. 취향에 많이 목매는 편이고. (웃음)

 

그런데 취향을 경계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건가요? 어차피 음악을 창작하거나 소비하려면 취향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런 자연스러운 고집을 배척하는 것이 오히려 강압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저는 미국의 가치관이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너무 마구잡이로 전도되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유교문화가 좋았다 그런 건 아니고, 개인주의에 너무 빠져있다는 겁니다. 자기 취향이 절대적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된다는 거죠. 자기 취향을 맹신하게 되면 그 쪽으로만 빠지게 되거든요. 고인 물처럼. 개인주의가 물을 고이게 하는 기반인 것이고요. 흔히 말하는 홍대 문화, 젊음. 그런 것을 깨야 되지 않나 싶어요. ‘매니아적으로 가지 말자’ 그런 거죠.


그럼 다시 연합전선으로 돌아가서, 만약 취향을 타파한 연합전선이 꾸려진다면 그 다음엔 어떻게 되는 거죠?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일단 음악가들이 주체가 되어서, 너무 고집피우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연합해서, 우리 자신이 공연한 수익이 본인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클럽은 공연수익이 클럽의 운영비로 쓰이잖아요. 거기서 돈을 받아갈 수는 없는 입장이라는 거죠. 사실 알고 보면 클럽의 운영이 클럽주인만 하는 게 아닌 거예요. 클럽주인, 음악가, 관객 이 세 주체가 같이 이 씬을 이끌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러니 우리가 클럽에서 돈을 받을 형편이 안 되는 겁니다.

그럼 연합전선을 구축하면 수익이 생길 수 있다는 건가요? 어떤 식의 공연을 생각하고 계신건지 궁금하네요.
연합전선 나름의 어떤 야외, 특정한 공간이 아닐 수도 있고요. 일단 무기획이기 때문에 세밀한 계획은 없습니다. (웃음) 거기서 수익이 나면 가져가는 것이고..

그런데 일단 요즘은 사람들이 음악 공연을 별로 보러오지 않는다는 시대적인 문제도 있잖습니까? 대중매체나 mp3다운로드 등을 통해서 음악을 접하기 너무 쉬워졌기도 하고, 워낙 시청각적인 자극을 많이 받고 사는 세대라 인디 뮤지션들의 음악 공연은 별 재미를 주지 못하는 것 같아요. 밴드들이 연합한다고 해서 많이 보러올 것 같지도 않고요.
공연 안 보러 오겠다는데 그걸 어떻게 합니까. 삐라를 돌릴 수도 없고. 연합전선 측에서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은 관계가 없어요. 흥행에 대해서는 생각을 안 하고 있는 거죠. 저는 자본주의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어서 흥행에 대해서도 반감을 가지고 있어요. 흥행을 안 하면 직업으로 삼을 수가 없지요. 여기서 음악 하는 사람들을 보면요. 좀 웃긴 말이지만 신선들 같아요. 금전적으로 얽매어있지 않고, 어렵게 힘들게 사는데도 공연이나 음악에 대해서 애정을 막 바치죠. 정말 밤새도록 만들기도 하고. 그런 분들을 몇몇 봤기 때문에. 이런 말도 좀 웃기지만 덜 타락했구나. 이 씬이 계속 이대로 갔으면 좋겠다. 자본의 개입이나 스포트라이트를 안 받고. 자기 생명을 유지할 정도로만 노동으로 돈을 벌고 음악으로 나머지 타락한 사람들에게 치유의 빛을 던져주는. 어떤 동정, 기부의 행위가 아닐까.


흥행에 대해 생각을 안 하신다고요? (아니 그런 폭탄선언을! 이 발언은 이날 두고두고 공격당하게 된다.) 네. 그러니 이렇게 되면 이걸 직업으로 삼고 갈 수 있느냐 문제가 되는데 지금 상황에서 이걸 직업으로 하는 건 굶어 죽을 수 있다고 봅니다. 노동을 해야 된다는 거죠 뮤지션도. 어떤 육체적인 노동을 통해서 자기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는. 


(또 돌발발언 등장) 노동에 대해서 쓰신 글 본 것 기억나요. 그런데 그 노동이 그 노동이었나요? 전 음악을 다른 노동자처럼 해야 한다. 라고 쓴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그러다가는 죽을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웃음)



2. 한받


인터뷰 주제가 독립예술가로 살아남기입니다. 독립예술가로서 살기가 어떤가요? 전 그 단어에서 항상 빨간불이 들어오는데요, 예술가라고 하는 말에 반감이 들어요. 항상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확실히 뭘 해도 예술가가 아닌 걸로 회귀를 했던 적이 있는데 거기서 자만심을 가졌던 것 같아요. 거기서 더 할 수 있다 하고 더 뻗어나갔는데 2004년 정도가 진짜 좋았어요. 예술가인 것 아니고 진짜 재미있는 음악가로써. 근데 지금은 남들이 예술가라고 하고 그렇다는 걸 느껴요. 예술이라는 것에 많이 거부감이 있습니다.


그러면 인디음악인 이라는 표현은 괜찮을까요? 홍대 앞에서 활동하는 창작자로써 인디씬, 인디 음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90년대 중반에 인디씬? 펑크씬이 뭔가 좀 흥했잖아요. 그거는 제가 볼 때 좀 놀았던 거죠. 진정한 인디씬은 지금도 가고 있는 게 아닌가. 어떤 아집이나 똥고집 같은 걸 가지고, 계속 저항하고 있다. 그런데 왜 지금 90년대처럼 잘되지 않은가 라고 문제제기를 하잖아요? 그건 문제를 잘못 짚은 것 같아요. 자꾸 과거로 눈을 돌리는 거고. 그 상황에 대한 분석도 안 되어있는 상태고. 거기에 대한 구름만 덕지덕지 붙어있죠. 그걸 계속 선망하면서 갈 수는 없는 거죠.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계속 무보수로 공연을 하고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지만 돌아오는 건 왜 허탈함뿐인가. 그런 고민을 하면서도 이 씬을 계속 이어져나가게 하고 있다. 그러면 패배감이 아니라 어떤 자부심을 느껴야 되는데 자꾸 과거로 가면서 왜 우리는 안 되는가 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왜 굳이 모든 사람이 내 음악을 들어야하나 라고 쓴 글을 본 기억이 납니다. 물론 자기만족을 위해 창작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보통은 보여주고 싶고, 들려주고 싶은 욕구가 있어서 만드는 것 아닌가요? 특히 아마츄어증폭기 같이 공연을 많이 하고 앨범도 여러 장 낸 밴드라면 더 더욱 그러한 욕구가 큰 것이라 할 수 있을 텐데, 어째 그 점에 대해 부정하시는 것 같습니다. 예. 그랬죠. 좀 모순된 감정들이 왔다갔다 하나봅니다. 보여주고 싶기도 하고, 근데 너무 많이 보면 싫고...아마쥬어증폭기의 소년중앙(작년에 발매한 앨범)의 경우 판매가 너무 소극적이었나요? 현재 아예 생산을 중단했습니다. 앨범 내면 막 홍보를 많이 하잖아요. 저는 그런 걸 안했거든요. 앨범을 자체 제작해서 팔아봤는데 본전 나오더라고요. 거기서 돈을 못 벌겠더라고요.


그런데 ‘사려면 이쪽을 통해 사라’ 그런 글도 올리셨죠. (그는 이즘이라는 웹진 게시판 한군데에 홍보 글을 올렸다.) 이라는 나름의 홍보를 하신 거잖아요. 팔려고. 근데 기왕 팔 거면 왜 딱 한군데만 홍보를 하셨나요? 예를 들어 공연을 했는데 100명 정도 왔다, 그러면 싫어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주니까. 좀 이상한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주니까 싫은 게 아니고, 어중이떠중이 몰려있어서 싫은 거 아닌가요? 그러니까, 자신의 음악을 소수만 즐길 수 있는 고급문화라고 생각 하시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어떤 심오한 사람들만이 내 노래를 이해할 수 있다 라고. 심오하다기보다는 주파수가 맞는 극소수의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까 주파수가 넓어지면 기분이 나쁜 거죠. 내가 너무 쉽게 하고 있다. 어떤 비밀처럼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던 희귀한 영화를 남도 좋아한다는 걸 알았을 때 기분이 나쁜 거랑 비슷하게. 그렇죠. 맞아요. 근데 아마추어증폭기는 거기서 벗어나려 하고 있어요.


본인의 취향에서 벗어나려 한다는 말씀이세요? 음.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취향이잖아요. 이건 별로지만 취향의 다양화를 위해서 만든다. 이런 건가요? 그게 아니고, 내 취향대로 하는 것이 지겹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지겹다. 하기 싫은 걸 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것만 하지 않겠다. 2004년에 그렇게 해서 정말 좋았었죠.


만약 소년중앙이 주문 폭주 했다면 기분이 안 좋았을까요? 일단 주문폭주를 안 바랬죠. 기대 안 했는데 주문 폭주 했다면? 아 그러면 다음 앨범도 할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하면서 더욱 작업을 열심히 하겠죠? 그러니까 많이 팔리면 좋은 거죠? 예 많이 팔리면 해외여행도 가고. 하하하 근데 찍어내는 게 너무 힘들어서 많이 못 팔았을 거예요.


앨범을 만들어내는 행위자체가 그냥 음악을 들려주고 싶은 거랑은 좀 차이가 있는 특별한 행동이잖아요. 수록곡도 고르고, 앨범 컨셉도 잡고. 누군가가 앨범을 어떤 작품으로, 정성을 담은 것으로 여겨주고. 네. 그래서 지금 홍대에서 운영되는 인디레이블들이 더 상업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뮤지션을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레이블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저는 일단 음악 자체가 너무 아마추어적이어서 이런 음악을 레이블의 사장이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겠다 라고 생각 하지는 않을 것 같지만요.


당시 핑퐁사운드에서 아마츄어증폭기가 상품성이 있겠다 생각해서 음반을 내게 되신 것 아닌가요? 네 저도 야심이 있었죠. 그거 인터뷰에서 다 밝혔는데. 웨이브 인터뷰에서. 하하 근데 그 야심은 너무 거한 야심은 아니고 작업을 밤새 하면서 키워진 그런 것 같아요. 의도가 아니라. 핑퐁사운드가 도산을 하고, 개인적으로 상처를 받았고..


인터뷰 주제는 상당히 물질적인 것이었는데 점점 한받씨의 내면세계를 탐구하게 되네요. 그러니까 예전에 2003년에는 앨범 팔아 해외여행을 가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야심이 있었는데, 레이블 도산으로 상처를 받고 나서 음악을 직업으로 삼으면 굶어죽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거군요. 그런데 다음 앨범에 대한 기대는 또 가지고 계시고. 앨범을 많이 팔지도 모른다. 노래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라고 생각했었어요. 핑퐁도 그렇게 생각을 했고..


네. 다그치는 것은 여기서 접도록 할게요. 고생하셨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일단 예술을 안 하고 싶고. 예술가가 안 되고 싶고. 독립적으로 살고 싶긴 한데. 일단은 인디씬에서 계속적으로 노래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실마리가 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근데 현실적으로 들어가보면 좀 암울하긴 하네요. 소년중앙같은 경우에 좀 믿음으로 낸 것도 있었고. 지금 생산중단을 하면서 다시 넘어졌지만. 또 일어나서 앨범을 내고 싶고 공연을 계속 하고 싶고, 무홍보 무기획 무원칙의 연합전선의 축제를 기획하고 싶고. 이 인디씬이 자본이나 거대미디어시스템에 흡수되지 않고 지속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바로 예술하고 싶다 라는 말로 들리는데요. (웃음)  마무리 하면서 인터뷰 마칠게요. 마지막으로 한 말씀. 지금 홍대 앞에 라이브클럽에서 공연하시는 음악가들로 주로 구성된 이 흐름. 라이브 클럽주, 공연하시는 분들, 그걸 보러 오는 관객들로 이루어진, 즉 삼두마차가 이끌어가고 있는 이 흐름. 나름대로 이것이 저항의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것들이 계속 되면 좋겠다. 그래야 저도 계속 공연을 할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