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쿵짝프로젝트 <아웃스포큰 Outspoken>

2018. 10. 20. 12:15Review

 

고요를 택한 당신을 기다리며

<아웃스포큰 Outspoken>

공동창작_쿵짝프로젝트

 

_김민범

 


나에겐 아직 더 많은 사랑이 남아 있다

그리고 아직 우리의 사랑은 시작되지도 않았다.

 - 김봉곤, 여름, 스피드, 문학동네, 2018, 작가의 말 , p.278

 

비열한 사랑이 이어졌다. 너와 나를 우리라고 뭉뚱그려 생각하고, 손에서 입술, 애무 그리고 섹스로 이어지는 고루함을 답습했다. 몸에 대해서는 항상 무지했다. 한쪽이 사정을 늘어놓으면 상대는 곤란을 연기했다. 유구한 남성 중심적 연애 관습 하에 기울어진 연애가 지속됐다. 사랑이라고 믿었던 감정이 끝나면 홀로 비참한 사람이 되어 비겁을 정당화했다. 기나긴 연애의 전통은 정해진 승자와 패자의 서사를 비열하게 서술해왔다.

 

말하지 않았던 것들, 말할 수 없던 것들이 깨지기 시작했다. 편중된 이야기에 익숙해서 묵과되었던 이야기가 낯설어서 반갑다. <아웃스포큰>은 단어의 뜻처럼 노골적으로 (거침없이) 말하는연극이다. 네 명의 배우와 한 명의 오퍼레이터가 등장해서 발화되지 못했던 말들을 쏟아낸다. 암전 후 무대에 등장한 네 명의 배우 중 한 명은 자신이 하고 있던 브래지어를 풀어 무대 한편에 건다. 조이고, 감춰졌던 말들이 시작된다.



자신을 무성애자라고 소개하는 작가 효진이 마이크 앞에 서서 정적을 깬다. 자신을 소개하는 데 있어서 가장 두려운 것은 사랑에 대한 가능성의 차단이라고 말한다. 무성애자에 대한 편견으로 성적인 끌림을 느끼지 않는 것을 사랑할 수 없는 것으로 오해받을까 봐 두렵다고 한다. 그는 사랑이 아주 많은 사람이고, 누군가를 너무 많이 사랑하게 되면 섹스가 아닌 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말의 끝을 붙잡아 다른 배우가 연극을 소개한다. 부족한 여성 연극, 그중에서도 여성 퀴어 연극을 하기로 마음먹고 극을 준비했다고 한다. 민지라는 이름을 가진 세 명의 여성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준비하던 중 작가 효진이 질문을 던진다. 무성애자인 자신은 성적인 끌림에 대해 잘 모른다고. 언제 성적인 끌림을 느끼는지, 좀 더 근본적으로 성적인 끌림이 무엇인지 묻는다. 이 질문을 시작으로 공연시간 내내 사고실험 하듯 질문과 대화를 이어간다.



세 명의 민지는 각자 자신의 성적인 일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언제 성적인 끌림을 느끼는지, 처음 야한 문물을 접한 것은 언제인지, 자위와 자위 기구에 대해, 자신에게 섹스는 어떤 의미이지 돌아가며 이야기한다. 섹스를 곱창과 양꼬치에 비유하며 성욕과 식욕과 동등하게 배치하고, 인터넷에는 왜 참외, 컵라면 등을 이용한 남성을 위한 자위 방법만 넘쳐나는지 남성 중심의 섹스에 대해 질문한다. ‘민지라는 여성의 경험뿐만 아니라,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의 우에노 지즈코부터 D.H.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등 다양한 문헌을 인용하면서 지금까지의 여성 혐오와 여성의 성적 대상화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폭로한다.

 

이러한 대화들 사이에서 효진은 나직히 노래를 부른다. 전기뱀장어의 송곳니에서는 상대에 대한 궁금증과 알 수 없을 거라는 마음이 부딪치는 부분을, 심수봉의 백만 송이 장미에서는 미워하는 마음없이사랑하고 싶다는 가사를 읊조린다. 세 명의 대화에 의해 효진의 노래는 쉽게 묻힌다. 유성애자 사이에서 무성애자는 소수자가 된다. 효진은 자신의 이야기를 자주 끊는 민지들을 향해 야이 유성애자 새끼들아!’라고 일갈하며 무성애자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사랑과 성욕이 연결되어 있지 않을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정적은 짧고, 다시 민지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또 하나의 가능성이 닫힌다.


 

생리대, 여성의 몸에 대한 검열과 편견, 기독교가 가진 성에 대한 모순, 이성애 중심의 결혼, 무례한 성적인 대화 경험들이 무대에서 통쾌하게 펼쳐진다. ‘이라는 속된 농담 끝에서 레드벨벳의 빨간 맛에 맞춰 춤을 추고, 요가를 하며 자신이 나무에서 버드나무정도는 되었다며 눙친다. 남성들이 해왔던 품평과 후일담을 거침없이 되돌려 준다.

 

네 명의 배우는 공연 내 관객의 시선과 함께 다른 시선을 감당해야 한다. 오퍼레이터는 카메라로 대사를 하는 배우를 찍어 정면 벽에 상영한다. 카메라는 대화를 풀어내는 배우의 모습을 담다가 입술, , 눈 등 신체 일부를 극단적으로 확대해서 비춘다. 때로는 카메라가 그들을 찍기도 하지만 렌즈가 향하고 있는 곳에 자신을 맞추기도 한다. 카메라는 내부이자 외부에 존재하는 시선이다. 그들은 매 순간 감시되거나 자기검열을 한다.


 

휘몰아치던 이야기가 끝나고 네 명은 다시 처음 섰던 자리에 선다. 공연 동안 효진과 민지들이 고민하던 결혼, 유성애와 무성애, 페미니즘, 이상과 현실 사이에 대한 이야기를 차분하게 건넨다. 공연을 엄마가 보면 어쩌냐는 민지의 농담은 발칙한 공연 끝에서도 여전히 남은 고민이다. 오퍼레이터도 카메라를 끄고 그들과 같이 선다. 네 명의 배우의 이야기가 끝나고 오퍼레이터도 마이크 앞으로 나선다. 들썩이는 입술과 다르게 오퍼레이터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혹은 하지 못한다. 이내 배우들은 박수 유도를 한다. 오퍼레이터도 같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연극이 끝났다.

 

<아웃스포큰>은 무대가 없었던 목소리들에게 자리를 준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경계한다. 무성애자 효진을 통해 소수자 속에 속해있는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무감하지는 않은지 질문하고, 아직 목소리를 내지 않은 오퍼레이터에 대해 생각한다. 마이크가 놓이기 시작했지만, 아직 소리를 내지 않은 목소리들이 남아 있다. 폐기 돼야 할 것은 사랑에 대한 가능성이 아닌 비열한 사랑의 역사다. 수는 조금 미뤄도 괜찮다. 들썩이던 입술을 기억한다. 마이크는 오래도록 켜져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시작하지 않은 사랑이 많이 남아있다.



*사진제공_플레이포라이프(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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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_김민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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