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丙소사이어티 - 신토불이 연작1 <우리의 뿌리는 왜 발이 되었나>

2018. 11. 10. 13:46Review


근본 없는 호로새끼가 되지 않기 위하여

신토불이 연작1 <우리의 뿌리는 왜 발이 되었나

송이원 작,연출 / 김은한 출연


글_채 민

 

초심을 잃지 말라

말씀하시네

모두가 입을 모아

말씀하시네

하지만 사실 나는

기억이 안 나

옛날에 내가 어떤

놈이었는지

 

…………

 

초심 따위 개나 줘 버려

시원하게 내팽개쳐 버려

초심 따위 개나 줘 버려

조심하지 마 변해 버려

- 장기하와 얼굴들 <초심> 가사

 

지난 1025, 해체를 선언한 장기하와 얼굴들(이하 장얼)’의 마지막 앨범이 나왔다. 타이틀 곡의 제목은 초심이다. ‘초심을 버리라고 하다니. ‘장얼은 얼마 남지도 않은 당위적 규범을 또 흔들었다. 소위 잘나가는 사람, 기성세대 또는 선배가 되어버린 사람, 혹은 사랑하는 연인들을 옭아매는 구실이 되곤 했던 초심이라는 빛바랜 비석을 깨버리라고 말한다. 그냥 변해버리라고 종용한다. 안 그래도 우리는 갈팡질팡자유로웠지만 미디어에서 주문같이 흘러나오는 노래에 또다시 무중력 상태가 되어 같은 자리에서 뱅글뱅글 돈다. ‘그래 돌아갈 곳이 어디냐. 기억도 안 나는데……

 


자꾸 돌아가라고 하니까

 

초심을 잃지 않기어떻게 하는 것일까. ’장얼은 그 대답으로 나는 옛날이랑은 다른 사람 어떻게 맨날 맨날 똑같은 생각 똑같은 말투 똑같은 표정으로 죽을 때까지 살아갈 수가 있겠어라고 노래한다. ‘초심이라는 애매한 언어를 파고들어 초심이 지칭하는 실체가 없음을 드러낸다. ’장얼의 앨범이 발매되기 약 삼 주전, 신촌의 작은 극장에서도 이와 비슷한 맥락의 선언이 있었다. 바로 신촌극장에서 공연된 소사이어티<신토불이> 연작 이다. 이곳에서 소사이어티장얼과 비슷한 전략을 취한다.

 

결론부터 밝히자면 <신토불이> 연작은 신토불이라는 네 글자로부터 국가주의의 신화를 벗겨내고자 하는 프로젝트이며, 이를 위해 정확히 그 언어에 천착해 기존의 언어를 교란시키고자 하는 프로그램이다. - 신토불이 연작 프로그램 노트

 

초심을 잃지 마라는 의미를 담은 사자성어로는수구초심이 있다. ‘신토불이는 몸과 태어난 땅은 하나라는 뜻으로, 제 땅에서 산출(産出)된 것이라야 체질(體質)에 잘 맞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두 사자성어는 모두 근본을 지향한다. 근본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대는 언제부터 였을까? ‘먹고살기 바빳기 때문에돌보지 못한 우리 고유한 문화를 다시 회복하고 문화적 동질성을 되찾기 위해 1990년에 문화부가 출범 했을 때부터? 전 세계가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넘어 자본주의라는 하나의 질서로 다시 정렬되기 시작한 그 때부터? ‘소사이어티는 수상한 태생의 비밀을 품은 채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은 신토불이를 주제로 두 섹션의 공연을 올렸다. 이 글에서는 두 개의 연작 중 송이원 작·연출의 <우리의 뿌리는 왜 발이 되었나>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한다.

 


뿌리는 뿌리를 잃고...

 

<우리의 뿌리는 왜 발이 되었나>의 김생숭(배우 김은한)근본 없는 호로새끼가 되지 않기 위해 뿌리를 연구한다. ‘잊지 말아야 한다거나 찾아야 한다라는 말은 자주 초심, 근원, 뿌리와 같은 단어와 만나 당위적 명제를 만든다. 이는 동시에 부재를 상기시키는 말이다. 따라서 지금은 없지만 한 때는 있었던 것을 찾던 김생숭은 자신의 꼬리뼈에 집중한다. 서 있던 김생순은 꼬리뼈의 속삭임에 따라 어느새 땅에 눕는다(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법). 덧없이 바닥을 뒹굴던 김생순은 땅에 닿아 있는 두 발이 뿌리의 흔적이라고 결론짓는다.

 

김생순은 땅에 닿아 있는 발로부터 뿌리의 기억을 더듬어 보려고 한다. 김생순은 열심히 땅을 밟는다. 엄밀하게 말해 김생순이 밟고 있는 것은 그가 신은 삼선 슬리퍼의 고무 밑창이다. 하얀 양말을 신고, 삼선 슬리퍼에 들어가 있는 김생순의 두 발은 뿌리 찾기의 작위성을 조롱한다. 이어 김생순은 뻗어나가는 뿌리의 성질을 이용해 사고실험(두 눈을 감고 상상하기)을 감행한다. 이제 뿌리는 근원이라는 상징성을 상실하고 실성한 듯 지구를 꿰뚫는다. 사고실험 끝에 김생순의 뿌리가 도달한 곳은 망망대해다. ‘바다……?’를 외친 김생순은 말없이 볼풀장을 만들기 시작한다. 객석 뒤편에 볼풀이 가득 담긴, 그의 키만 한 자루가 네 개나 놓여있다. 그는 말없이 자루를 질질 끌고 객석과 무대를 오가며 꾸역꾸역 바다를 만든다. 이른바 병맛의 순간이다.

 


자본주의의 열매, 암부르게사

 

김생숭이 표류하던 곳은 아르헨티나 영해였고, 김생순은 아르헨티나가내 뿌리의 땅이라고 외친다. 뿌리의 땅에 도달한 김생숭은 그곳의 문화를 학습한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근원은 내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습득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 ‘그렇다면 그것이 근원이냐고 묻는다. 아니 근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이런 식으로 거대하지만 빈곤한 신토불이의 환상에 균열을 만든다. 김생숭은 하루에 한 끼 정도는 아르헨티나의 지리적 특성에 꼭 맞는 음식인 암부르게사(햄버거)를 먹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지리적 특성은 신토불이의 강박이며, 암부르게사는 맥도날드와 버거킹을 떠돌며 국적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놀랍게도 암부르게사는, 작고 여린 자신의 형태 안에 이 지구라는 거대한 세계를 품고 있는것이죠. - 김생숭의 대사

 

암부르게사는 자본주의의 상징이다. 지금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설명할 수 있는 건 본원주의(신토불이)가 아니라 자본주의다. 김생숭은 암부르게사를 꿰뚫는 꼬챙이가 뿌리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는 위아래 참깨 빵을 고정하고 있는 꼬챙이를 보며 반고신화를 떠올린다. 거대한 구라앞에 무력해진 김생숭은 무중력 상태가 되어 다시 방바닥에 드러눕는다.

 


사실 원래 없었던거 아닌가요

 

내 뿌리가 있는 곳을 드디어 찾았습니다. 내 뿌리의 땅, 우르과이!’

 

시무룩하게 볼풀장을 휘적이던 김생숭은 갑자기 일어난다. 본인이 표류한 남태평양은 아르헨티나와 우르과이의 국경 지점에 있었다고 말하며 어쩌면 앞서 말한 모든 것들이 아닐 수도 있겠다고 말한다. 일관되게 작위적이었던 <우리의 뿌리는 왜 발이 되었나>신토불이태생의 비밀을 외치며 끝을 맺는다. ‘신토불이우르과이 라운드를 출발삼아 전 세계로 확산된 자유시장 논리에 맞서 국산품 수호의 사명을 띠고 농협에서 태어난다. 기나긴 빈정거림의 끝이 또 다른 빈정거림의 시작이라 맥이 풀렸다. 배우 김은한이 극에 몰입 할수록 송이원 연출의 냉소가 느껴졌다.

 

장얼의 뮤직비디오 <초심>의 마지막, 초심을 개에게 준 장기하는 경찰에 연행된다

뭐 선택은 각자 알아서 해라는 표정으로 으쓱하는 장기하를 배경으로 크레딧이 올라간다. ‘초심을 잃었다라는 말을 질리게 들은 장기하와 얼굴들은 해체하기로 한다. 해체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마지막으로 노래한다. 초심, 그런 건 없다고. 이곳에도 냉소만 남았다.

 

우리는 곳곳에서 구태의연한 규범을 무장해제 시키며 체제의 균열을 기대한다. 나는 공연이 끝나고 비처럼 흘러내리는 땀을 식히기 위해 신촌극장의 쪽문을 여는 배우 김은한을 바라본다. (병맛의 순간들을 살려낸 그에게 박수를.) 김은한의 지친 얼굴을 바라보니 문득 생각난다. ’노력을 해라는 말에 노오력 노오력을 하라구여?’라고 빈정거리는 우리는 사실 백배는 더 노력하며 살고 있구나.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살기위해서. 진지해지지 않기 위해, 한 발자국 뒤로 떨어져 선 채 냉소 하면서.



*사진제공_丙소사이어티

*丙소사이어티 SNS페이지 바로가기 >>>  https://www.facebook.com/Bjung330



 필자_채민

 소개_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가치를 믿습니다. 아직 부족하지만, 시간을 가지고 충분히 고민하고 싶습니다.


 

신촌극장 2018 라인업

 [신토불이 연작 X 송이원 / 고해종]

 

 [공연내용]

제각기의 높이와 너비를 지닌 몸으로서의 인간은 땅과 혹은 공간과 별개일 수 없는 신토불이(身土不二)적 존재이다. <신토불이> 연작은 우리의 상태 그 자체로서의 신토불이와 대한민국 사회가 요구하는 언어적 규범으로서의 신토불이가 상충하는 지점을 탐구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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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tion 1. 우리의 뿌리는 왜 발이 되었나>

둥근 지구의 북위 37.6도 동경 127, 행정구역 서울특별시. 이곳에 사는 김씨는 이따금씩 자신의 뿌리와 근원에 대해 사색하는 시간을 가진다. 때로는 빙빙 에둘러서, 또 때로는 두더지처럼 파헤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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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송이원 / 출연 김은한

조명 이혜지 / 음향 목소 / 무대 김진아 / 자문 구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