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밥 10월 레터] 우연하게 만나는 우연 아닌 것들

 

우연하게 만나는 우연 아닌 것들

  

10월 초부터 달 중순경 열릴 축제 생각을 했습니다. 청년예술가창의주라는 이름으로 중국 각지 및 해외의 젊은 예술가의 새 작업을 볼 수 있는 독립예술축제가 개최되기 때문입니다. 같은 시즌 열리는 상하이국제예술제가 비교적 상업성이 강한 대규모 공연을 포함하는 축제라면, 청년예술가창의주는 프린지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기간에 수향마을 우전에서 우전연극제도 볼 수 있지만, 티켓 가격대도 더 높고 해외 초청작의 비중이 큰 연극제는 그 뿌리를 공유하는 베이징프린지페스티벌과는 이미 사뭇 다른 규모와 성격의 행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 역시 매력적인 축제임은 분명하지만 '독립예술축제'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건 청년예술가창의주라는 것이지요.

  

축제가 가까워지면서 행사가 열리는 상해희극학원 곳곳에 큰 시간표가 붙고, 학생들이며 외부인 할 것 없이 시간표 앞에 서서 일정을 확인하며 관람 계획을 짜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습니다. 학교를 다닐 적 봄학기가 시작되면 도서관에서 너나할 것 없이 페스티벌 봄 시간표를 확인하고 예매 전화를 거는 모습을 보는 게 연례행사 같은 것이었는데, 꼭 그때 생각이 났어요. 학기말에 프린지 라인업이 뜨는 걸 볼 때 같기도 하고.

  

편지를 쓰는 지금은 축제의 끝물입니다. 여러 장르의 전시와 공연을 보았습니다. 프린지서처럼 열심히 여기서 저기로 옮겨가며 열심히 본다고 봤는데.. 관람하고 싶었던 작품을 놓치는 일도 많고 우연히 계획하지 않았던 작품을 보기도 하고, 결국 계획과는 다른 궤적을 그리게 됐습니다. 축제는 연습실로 쓰이는 교실과 100석 미만 소극장 두 군데와 100석 이상 소극장 한 군데, 중극장 하나와 대극장 하나, 크고작은 잔디밭 두 군데, 야외 농구장(이라고 부르지만 공터) 등에서 열리는데 극장 공연은 티켓 소지자 사전입장 후 티켓 미소지 대기인원을 입장하게 하고, 비극장공연은 실내의 경우 줄을 서서 차례로 객석에 앉고 야외는 자유롭게 앉거나 서서 공연 관람을 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줄이 너무 길어서 관람을 포기하기도 하고 때로는 지나치던 곳에서 열리던 공연이나 전시에 발길이 이끌려 의도치 않던 관람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내내, 만남은 우연이지만 각각의 작품 안에 쌓인 시간이나 그 성취는 우연히 얻어진 게 아니란 생각을 하였고요.


  

특히 생각나는 몇몇 작품이 있습니다. 중극장 1층에서 열린 전시 <데뷔>(원문 전시명은 여전히 여기서 활발히 쓰고 있는 표현.. <처녀작>이었습니다만)가 그 중 하나입니다. 쓰촨, 광시, 귀저우 등지의 농촌에 거주하는 노인들을 만나 이들의 '첫 그림'과 이야기를 수집해 만든 이 전시는 어쩌면 이젠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기획의 결과물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과연 그 서사의 튼튼함이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한 할아버지는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훗날 야학에서 배운 아라비아숫자를 캔버스에 적었습니다. 젊은 시절 입던 옷에 수놓인 묘족 전통문양을 그린 할머니, 평생 일해온 석탄광산의 석탄 나르는 리어카를 그린 할아버지, 마을의 천 년 된 나무, 대장장이로서 평생 만들어온 낫, 독실한 티벳불교신자로서 가장 친숙하게 여기는 만자 같은 것이 화면을 채웠습니다. 산파로 몇십 년을 일한 할머니는 영물을 그려 아이를 받아온 시간을 기억했습니다. 그림 한 폭에서 사람의 삶을 엿본다는 것이 당연한 듯 신비롭게 느껴졌습니다. 손으로, 물감 나이프로, 캔버스의 결결을 메꾸는 터치로, 처음 잡아보는 붓에 어색하게 들어간 압력으로 만들어낸 이미지의 스펙트럼을 보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윈난에서 온 배우들이 선보인, <요재지이> 속 이야기 네 편을 각색해 만든 짧은 연극도 재미있었습니다. 요괴, 귀신, 혼령, 신이 나오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이들은 소품 하나 없이 몸을 움직이고 입으로 효과음을 냈습니다. 같이 본 친구가 그 다음날 불쑥 "배우들이 자기가 어떻게 보일지 신경쓰지 않던 게 생각나" 말해서 저도 그 담대하고 무람없던 표현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또 하루는 무용학교의 발표 공연이 있었는데, 우산춤 중간에 음악이 뚝 멈추고 잠시 후에는 조명도 꺼졌습니다. '쇼 머스트 고 온'이라고는 하지만 놀라서 잠깐 멈추거나 우왕좌왕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도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고 침착하게 박자를 맞추어 끝까지 춤을 추었습니다. 운영의 미흡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데다 꼭 무슨 고난을 겪어 진정성을 인정해주는 것처럼 어영부영 상황을 포장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지만, 몇 번씩이고 연습을 하고 호흡을 맞추어서 이심전심으로 움직이던 그 맑은 얼굴들은 참 좋았습니다.

 

백족의 전설을 바탕으로 한 창작극도 기억에 남습니다. 여성 주인공으로 등장한 배우이자 연출이자 기획자는 사라져가는 소수민족의 예술에 관심을 갖고, 백족 마을에 찾아가 전통 가락을 노래하는 가수를 만났다고 합니다. 내내 전해내려오는 음악을 악사의 선율에 맞춰 노래하던 데서 벗어나 변사, 소리꾼, 가수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며 무대에 선 백족 예술가와 젊은 배우들의 호흡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인사를 한 연출이 백족의 이야기를 소재로 쓰기 위해 피상적으로 접근하는 한족 배우가 되어 상처를 주지 않을까 걱정되어 했던 고민들, 백족 마을에 찾아가 구술사를 채집하고 전설을 듣던 시간들을 들려 주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야기를 하다가 눈물이 나려고 하자 이를 악물고 참은 뒤에 "그건 제가 했어야 했을 일일 뿐입니다. 여기서는 백족의 예술에 대해서 같이 얘기할 분들은 남아서 이야기 나누어요"하던 모습이 떠올라요. 성실한 진심은 눈에 보이기도 한다는 걸 또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청년예술제에 맞춤한 프로그램은 아니겠지만 영국 국립극장의 NT라이브 상영도 포함되어 린지 터너 연출의 <햄릿>을 보았습니다. 한참 이야기를 듣던 영국에서 만드는 셰익스피어 연극에는 집안과 학벌이 좋은 백인 배우만 캐스팅될 수 있다는 루머가 해명하기 면구스러울 만큼 들어맞던 시기가 분명히 있었는데, 여전히 대단하달 만큼의 지각변동은 아닙니다만 다양한 억양으로 말하는 다양한 체형과 인종의 배우들을 보는 건 좋은 일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잉글랜드 액센트가 없는 오필리아와 흔들리지만 단단한 목소리를 내는 거트루드의 선명함과 풍성함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커튼콜 때에는 햄릿을 맡은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햄릿>은 세이브더칠드런과 함께하는 공연이고 시리아 난민 어린이를 위한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그리고는 공연의 공식적인 마무리이자 지지의 의미로 다음과 같은 시구를 암송했습니다. '누구도 어린아이를 배에 태우지 않는다, 육지가 바다보다 안전한 경우라면'

  

편지를 쓸 때마다 인디언밥 페이지에 접속해서 하염없이 글을 읽는 데 쓰는 것보다 많은 시간을 소요하곤 합니다. 인디언밥을 타고 전달되는 글과 그림과 사진이, 그 속에 담긴 사람과 작품과 세상이 각별히 재미를 주고 위로가 되는 날들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예술가엄마의 육아일기 시리즈를 주루룩 읽었어요. 이주야 연출이 '나모는 말을 잘 듣는 아이인가요?' 질문에 '말을 잘 듣고 안 듣고 보다는 내가 그 존재랑 어떻게 지내느냐의 문제'라고 답한 데서 한참이고 머물렀지요. 어느덧 인디언밥도 열두 살이고, 천 편이 넘는 게시물이 인디언밥을 통해 발행되었습니다. 단순한 게시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매체로서 인디언밥이 나누어드릴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고, 그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걷고 보고 쓰고 그리는 사람들도 계속 있을 것입니다. 일기이고 일기예보인, 한담이고 토론인, 또 그 자체로 독립예술이기도 한 이 기록들을 꾸준히 나눌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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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밥 필자

김 송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