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밥 3월 레터] 냉소와 상상력


냉소와 상상력 

잠시 지난해 겨울에 보았던 극단Y의 공연 <그냥 청소하는 것도 필모그래피가 되나요?>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세 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연극계의 위계, ()폭력, 편협한 젠더 의식 등을 다루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아직도 문득 문득 떠오릅니다. 연습실에 권리장전을 붙여놓고 현실과 부딪히는 프로덕션 막내이자 조연출, 권위로 누르려는 연출, ‘원래 그런거야, 피곤하니까 연출 좀 건들지 마라고(냉소)하는 선배가 그곳에 있었습니다. 창작자들의 공통의 기억을 자극했던 이 작업은 매우 사실적이었고, 표현 방식은 섬세했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작업과정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이들이 권리장전을 준수하며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요, 토론을 지켜보며 그들이 주체적으로 발언해 왔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극단Y<그냥 청소하는 것도 필모그래피가 되나요?>는 건강한 연극제작환경이 작품성에 미치는 영향을 눈으로 확인했던 경험이었습니다. 작업 내내 권리장전을 치열하게 붙들고 극단의 상황에 맡게 내부 규율을 만들어 간 창작자들이 멋있어 보였습니다. 

2월에는 <이젠 더이상, 여기선 안돼!>라는 제목으로 한국 공연예술 자치규약(KTS)를 위한 첫 걸음, ‘시카고 씨어터 스탠다드(CTS)'의 시작 로라 피셔 초청 국제 워크숍이 있었습니다. 그 중 두 번째 파트에 해당하는 공연예술계 종사자를 위한 오픈 워크숍에는 서울연극센터 1층이 가득 찰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습니다. 가득찬 공간과 참석자들의 태도를 보며 차별 없고 안전한 창작환경 만드는 것에 창작자들의 높은 관심을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시카고 씨어터 스탠다드를 읽으며 촘촘하게 짚어낸 규약들에 감동 받았습니다. 우리에게 초석으로 삼을 사례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로라 피셔의 강연 끝에는 실질적이고 날선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단 두 명이 출연하는 프로덕션에서는 어떻게 하나요?’, ‘가해자가 무대로 복귀하려고 할 때는 어쩌죠?’ 저 질문에도 수십 가지 맥락이 존재한다는 것,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실 것 같습니다. 저는 상상력의 필요를 느꼈습니다. 

어느 때보다도 상상력이 풍부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 같습니다. 전부터 들어왔던 자본주의 너머의 삶, 위계와 ()폭력, 차별, 배제를 철저하게 배제하는 삶. 오늘날까지 사회 구조를 공고하게 만드는 장치로 사용 되어 온 것들을 버리고 나면 채워야 하는 빈자리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 다른 세계를 상상하는 것, 다른 환경을 상상하는 일 말입니다. 그렇게 하자면 우리는 함께하는 작업자들과 어느 때보다도 많은 대화를 나누어야 할 것입니다. 이때 냉소주의는 커다란 장애물로 작용합니다. 모호하고 불확실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것을 피하고, 가시적이지 않아도 변화가 일어난 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 가령 어쩔 수 없어서라고 생각하는 것 말입니다. ‘어쩔 수 없어서라는 말은 어쩌면 상상력이 부족해서의 다른 말 아닐까요? 

슬로터 다이크는 그의 저서 <냉소적 이성비판>에서 냉소란 회의와 불신에서 비롯되는 비웃음이기에 냉소주의자는 늘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요? 불가능합니다.”라고 말하며, 그들은 군중 속으로 잠적함으로써 익명성을 또 하나의 특징으로 하고, 그저 자신의 삶을 돌보는 소시민의 외양을 지니게 된다고 기술합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지점은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사회가 도덕적이지 않으며 아울러 잘못되어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지만(따라서 냉소의 시선으로 그 사회를 바라보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사회와 조화로운 관계를 맺는 구성원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체제의 부당한 면이 드러나고 그것을 사회의 구성원들이 정확하게 인지하더라도 변화는 일어나지 않으며 부당함조차 체제 속으로 편입 됩니다. 사실 우리는 이런 역사에 익숙해진 것 같습니다. 

리베카 솔닛은 그의 저서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에서 순진한 냉소주의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그녀는 순진한 냉소주의자들이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단순화가 무언가를 그 본질로만 압축하는 일이라면, 지나친 단순화는 그 본질까지 내던지는 일이다. 지나친 단순화는 여간해서는 확실성과 명료성을 허락하지 않는 이 세상에서 쉼 없이 그것들을 추구하는 일이고, 섬세한 뉘앙스와 복잡성을 명쾌한 이분법 속에 욱여넣고 싶어 하는 마음이다. 순진한 냉소주의가 걱정스러운 것은 그것이 과거와 미래를 납작하게 만들기 때문이고, 공공의 삶과 공공의 담론에 참여할 동기는 물론이거니와 지적인 대화에 참여할 동기마저도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냉소를 지우면 우리는 가슴 설레는 말들을 많이 듣게 될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권리장전’, ‘한국 공연예술 자치규약(KTS)’,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모두를 위한 극장과 같은 것들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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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밥 필자 채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