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1. 16. 17:05ㆍReview
‘실패하는 관객의 영토를 분별하기’
<공공하는 몸 – 프롤로그>
정다슬 안무 / 유지영·임은정·주혜영 출연
글_김민관
세 명의 퍼포머(유지영, 임은정, 주혜영)는 삼각 구도를 이루고 있고 중간 중간에는 블라인드가 겹쳐져 있다. 몸은 펼쳐지고 드러난다기보다 감추어져 있고 말려 있다. 확인되는 건 움직임보다는 차라리 시간이다. 미세한 몸의 분절이 어느 정도 시간 이후에 일어났는지를 뒤늦게 감각하는 것. 움직임은 알 수 없이 나타나고 간격을 두고 일어나기에 급작스럽다. 마치 몸들은 공공 건축물의 형상을 떠올리게 하는데, 다만 조각상처럼 고정된 자세로 머무르는 스태추 마임의 미세한 떨림과 분절되는 움직임은 그것의 의도 차원을 삭감하기보다 오히려 더 경이로운 것으로 만드는 것처럼, 여기서 움직임은 필수 불가결하다. 그것은 생리적이거나 물리적인 몸의 한계를 수용함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의도 차원에서 몸의 정지와 정지로부터의 벗어남 모두가 가능한 차원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세 퍼포머는 어슴푸레한 조명 아래 이들은 모두 시선의 대상이되 시선의 주체성을 획득하지 못하는 대상에 가깝지만, 셋 모두 상반신을 노출한 상태라는 점은 문화적 금기 혹은 저항의 의미와 맞물리며 조금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몸을 재확인시킨다. 곧 그들의 상반신은 무‘표정’한 얼굴, 정지되어 있는 얼굴과 동등한 몸의 표면을 나타내며, 여기서 얼굴은 조금 더 특별한 의미 지층을 갖지 못하는 반면 몸 역시 어떤 표정으로 분별되지는 않는데, 얼굴이 스스로의 말과 표정이 없음이 아니라 그것들이 드러나지 않으며 역설적으로 말하는 부분과 상반신이 그 스스로 말함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지만 그럼에도 드러날 수밖에 없는 부분은, 결코 하나의 의미로 종합되지 않고 분열한다. 말하지 않고, 말하지 않음에도 여전히 신체로 온전히 수렴되지 않는 얼굴로부터 우리는 어떤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없는 고립된 상황에, 그리고 문화적이고 사회적으로 가려져 있던 신체는 분명히 드러남에도 그것을 언어로 확정할 수 없는 동시에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점으로부터 우리는 자유롭지 못한 아이러니한 상황에 각각 처하게 되며, 이는 계속 간극을 안고 수행된다. 언어로서의 얼굴과 기표로서의 상반신은, 또는 비신체로서의 얼굴과 문화적 상징으로서의 상반신은, 끊임없이 횡단하며 무한 차원의 운동을 한다.
사실 처음부터 세 퍼포머는 일종의 경계를 형성하고 중앙의 빈 공간을 형성했다. 들어갈 수 없는 영역, 경계의 영역을, 세 개의 몸이 아닌 빈 터전을 포함한 하나의 신체를 구성했다. 관객은 어정쩡하게 가로 내몰리며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었고, 그들과 관객의 거리는 너무나 가까운지라 실제 얼굴과 상반신은 하나로 온전히 조망될 수 있는 대신, 어떤 하나의 부분에 임시적으로 고정되어야 했고, 두 기호계의 상이함은 어느 하나로 수렴/소급될 수 있는 대신, 시선의 횡단을 강요했다. 여기서 중간 중간에 설치된 블라인드들은 한층 더 몸에 대한 시선을, 그리고 경계의 영역을 모호하게 투과하게 만든다. 안무의 첫 번째 전략이 이런 바라보기의 미끄러짐, 나아가 시선이 미끄러지며 당도하는 대상이 (결코) 투명한 몸이 아니라 그런 시선 자체가 획득하려는 지배 전략이 실패하는 지점, 그리고 그 시선의 당사자가 실패하는 주체로 수렴됨을 스스로 지각하는 방식까지였다면, 안무의 두 번째 전략은 국민체조의 전유, 복기이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으로 복귀하려는 것, 그 간극에서 움직임을 조망해보는 것이다.
셋이 그 전까지 시간차에 의해 실제 시선의 합산될 수 없는 각자의 영토로 분별되었었다면, 여기서 삼각 구도는 차이들의 종합을 그 자체로 지각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움직임은 세대에 따라서 누군가에게 익숙할 수도 있는 국민체조의 배경음악에 따라 즉각적으로 발생하고, 또한 국민체조의 동일한 스코어를 갖기 때문이다. 여기서 확인되는 건 그 동일성이 아닌 퍼포머의 신체와 움직임, 움직임을 추동하고 지속하는 리듬에 따른 약간의 차이들이다. 묵중하고 슬렁대는 몸짓, 더 뚜렷하고 각이 잡힌 몸짓, 유연함을 추구하는 몸짓, 각각 임은정, 유지영, 주혜영의 움직임은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이는 차이를 상쇄한다고 보이던, 사실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움직임들의 안무, 곧 시대의 지배적 기표로서의 스코어가 가진 국민체조의 폭력성을 우회해서 드러내는 것일까. 국민체조 음악 자체는 끊임없이 현장에서 디제잉/믹싱돼서 느려지고 빨라지는 것에서 나아가 의도적인 왜곡과 함께 그로부터의 몸의 이탈과 몸의 소진을 향해 간다. 변주되며 이어지는 음악과 그에 따른 ‘빨간 구두’의 변증법적 알레고리, 곧 결코 끝이 나지 않는 음악과 춤은 시대라는 악령을 가리키는 것일까. 한편 이들은 벌거벗은 상반신이 비치는 얇은 옷을 걸치고 가까스로 ‘국민’을 주조하는 국가적 부름과 의무적 노동의 영토에 진입했었다. 이는 막의 구분에 따른 단절적인 의상 변화가 아닌, 몸의 자연스런 변화(’그것은 여전히 몸’)를 기입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갈음되지 않는 시대의 기표와 종합되지 않는 차이의 움직임들을 묶는 두 번째 안무에 이어, 세 번째 안무는 시선에 대한 언어의 연동소를 구성하는 방식이다. 세 퍼포머는 닫힌 공간에서 풀려나 관객과 조금씩 가까워지며 ‘내가 그를 보고 그가 나를 보고, 내가 보는 것을 그가, 우리가 보고 …’ 따위의 말을 반복한다. 시선으로 나, 그, 너, 삼자의 위치를 언어의 호명 때마다 확정하며. 시선과 호명으로 관객의 거리는 분별되며 종합된다. 이 작업이 추상적인 혹은 형이상학적인 시공간의 차원 이동이 아니라, 분명한 영토의 상정과 시선 자체를 지시하는 공연이라는 점은 여기서 한층 더 구체화된다. 관객은 추상적인 하나의 동류 집단이자 유령적 영토의 일원이 아니라, 시선을 받고 시선으로 존재를 지시하는 분별되는 기호로서, 명시적인 영토의 주인이자 상상적 공동체의 영역에 묶이게 된다. 이러한 공동체는 퍼포머와 관객 하나하나가 평등하게 맞물리며 공존한다는 지점에서 낭만적인 영토를 상정하는 것일까. 아님 그 호명과 시선의 주체가 세 명의 퍼포머에 한정되어 있으므로 이 역시 일방적인 지배라고 기각시켜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세 퍼포머의 속삭이는 말로부터의 촉각적인 가까움과 물리적인 거리의 떨어짐의 상황에서 이중 구속으로 묶인다. 우리는 말로부터 떨어질 수도, (말을 갖는) 신체와 더 가까워질 수도 없다. 그것은 결정적으로 은근하게 작은 볼륨으로 드러나기에 그러한데, 소리와 입가의 신체적 공명은 나와 가깝고, 그 호명과 시선은 나, 그리고 그, 우리를 향하지만, 나는 그 시선이 지정해주는 거리를 좁히거나 조종할 수 없다는 점에서 여전히 멀다. 나는 왜 이동할 수 없는가, 그 시선에 붙들려 있기 때문에? 아님 나는 움직임의 주체가 될 수 없는 관객으로 존재해왔고 존재해야 하기 때문에? 여기서 드러나는 공연이 갖는 지배적 우위성과 제한된 영역/영토의 부분은, 이 공연이 의도적으로 취하고 보여주고자 하는 부분과 맞물려 가시화되고 문제화된다. 곧 시선의 지배성(과 미끄러짐)과 영토의 분별(과 허물어뜨림)이라는 안무의 방식 차원으로부터. 사실 멈춘 신체, 동일 스코어 수행의 신체, 말하는 신체라는 매우 단순한 안무의 궤적은 모두 뚜렷하게 자리 잡으며, 신체를 시선과 시대와 무대와 반죽하며 반추하게 한다. 곧 신체는 결코 투명하거나 아름다운 그런 무엇이 아니라, 여러 코드에 따라 세워지는 표면이며 또 그 코드를 드러내며 존립하는 불투명하는 기호라는 것을 드러낸다.■
*사진촬영_조현우
필자_김민관
소개_아트신(artscene.co.kr) 편집장. 예술을 체험하고 기록한다. 다양한 예술 아카이브에 관심을 갖고 실천하고자 한다. 좋은 예술이란 무엇일까라는 탐문과 함께 비평적 관점으로 동시대 예술의 계보를 재구성해 나가려고 노력 중이다. 한편으로 예술(계)이 더 좋아질 수 있는 환경과 이를 위한 개인적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다. |
[크레디트] 안무·아이디어: 정다슬 발전·공연: 유지영, 임은정, 주혜영 드라마투르그: 정경미 무대: 이신실 사진: 조현우 [아티스트 소개] 정다슬은 독일 함부르크와 한국 서울을 오가며 움직임을 중심으로 하는 공연 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 공연 참여자 개개인의 역사를 해체, 재조합 및 구조화하는 작업들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사진과 필름, 인스톨레이션 등 다양한 장르와의 협업 및 접근을 통해 안무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2018년 독일 함부르크 안무센터 K3 ㅣ Zentrum fur Choreographie의 레지던스 안무가로 선정되었으며, 독일 함부르크 문화부와 함부르크 문화재단의 젊은 예술가 지원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2016년 러시아 ‘Experience Europe’과 2015년 우크라이나 ‘첼론카 현대무용 페스티벌’에서는 해외 안무가로 초청되어 현지 무용수들과 함께 작업을 선보였다. 주요 안무작으로는 <Floating Applique>, <Islte>, <Old Dusty Things>, <Theory of Cremation>, <I think I though I saw you tried> 등이 있다.
[공연내용] 우리의 몸은 스스로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공공성을 습득하여 왔는가? <공공하는 몸- 프롤로그>는 그동안 몸 속 깊이 침투해 온 ‘역사적 먼지투성이’가 개인을 어떠한 방식으로 고정시켜왔는지를 탐구함으로써 몸의 주체성을 환기시키고자 한다. 작업은 보여주고 보여지는 상호 과정 속에서 발생하는 대상화의 이미지를 통하여 몸의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을 동시에 작동시킨다. 몸을 낯설게 만들기, 고정화된 관계를 혼동시키기, 강요된 흐름을 방해하기는 이제까지 개인의 몸 안에 내재되어왔던 관계를 전복시키고, 대상화된 몸을 온전히 드러내는 방식으로 몸 자체를 퍼포먼스의 대상으로 삼는다. 우리의 몸은 온전히 사적이며, 주체적인 몸으로 체화될 수 있을까?
[공연정보] 일시 : 2018년 10월 26일 20시 / 27일 28일 17시 장소: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서울특별시 강남구 언주로133길 11) 머신룸 지원: 한국 문화예술위원회, 서울문화재단, 컨템포러리아트센터 플랫폼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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