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푸른색으로 우리가 말해야 하는 것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2018. 11. 25. 11:56Review


푸른색으로 우리가 말해야 하는 것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원작_김연수 소설 /제작_극단 애인  


글 유혜영

 

붐비는 극장이 아니었던 탓에 나는 재빠르게 극장 문을 나올 수 있었습니다. 지하철역은 코앞이었고, 어느새 집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원작 소설을 읽었을 때, 나는 솔직히 시큰둥했습니다. 푸른색 볼펜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맘에 잘 와 닿지 않았습니다. 그건 줄거리를 후루룩 이해한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연극을 보면서 마음이 떨렸고 얼굴이 뜨거워져 걸음이 빨라졌습니다. 푸른색으로 쓸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연극은 소설보다 훨씬 말수가 적었고, 느렸고, 왠지 편안했습니다. 마치 한 편의 시()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극장의 사방이 검은색으로 둘러싸여 있지 않아서 그랬던 건지, 대학로의 번화한 거리를 지나지 않아도 돼서 그랬던 건지, 공연이 시작하기 전부터 나는 괜스레 마음에 여유가 있었습니다.

 

소설이 푸른색 볼펜으로 결국 아무것도 쓰지 못했음을 고백한다면, 연극은 어떻게든 한 문장이라도 쓰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은 참혹하기 그지없는 진실일 것입니다. 무자비한 세상의 원리, 우리의 무력함, 보지 말았으면 좋았을 것을 본 후에 덮쳐오는 슬픔 같은 것들연극은 우리가 그것을 써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진실은 가라앉지 않는다!"

"장애인 등급제를 폐지하라!"

공연의 마지막에서 배우들의 목소리로 울려 퍼진 몇 차례의 구호는 푸른색으로 어렵게 써낸 문장들이었습니다. 연극은 우리가 말해야 한다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내 마음이 떨렸던 것은, 여전히 나는 아무것도 쓰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항상 지금도 한 글자도 쓰지 못합니다. 나는 내가 최근에야 알아차린 그리고 지금도 감당치 못해 허우적거리고 있는 나의 개인적인 고통을 무대에서 봤다고 고백합니다. 정확한 실체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는지 무엇이 원인인지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다만, 너무나 갑작스럽게 나와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덮어버린 그 고통과 함께 나는 정말로 '나는 단테다, 나는 단테다'를 중얼거리며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숲을 헤매는 중입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무대에 있었고 나는 감히 그들에게 공감했습니다. 그것은 진심이었습니다.

 

소설의 화자였던 주인공은 연극에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는 상담사이자 소설가인 김무건이 됩니다. 그는 "저 사람은 우리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거야. 그냥 없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야"라는 말을 듣고 아팠던 한 여성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콜택시가 아닌 지하철을 타기로 하면서 "사람들 속에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던, 하지만 냉장고에 있는 음식을 '스스로' 꺼내 먹어야 하는 정도의 일상조차도 아직은 어색한 한 남성의 말도 듣습니다. 그는 그들이 '세상 밖으로 가두어진 사람들'이라고 씁니다. 김무건의 글씨는 한 자, 한 자 무대 벽에 투사되어 객석으로 보여집니다. 그는 자신 또한 감당치 못할 슬픔에 말을 잃은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의 삶에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실제 장애인인 배우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로서 대사를 말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내가, 그리고 내 가족이 겪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현실인 듯 비현실인 듯, 하지만 분명히 내 두 팔을 붙잡고 늘어지는 무거운 슬픔으로 내 삶에 존재합니다. 그는 이런 내 이야기도 들어줄 수 있었을까요.


 

24번 어금니로 남은 사랑의 소설가 정대원은 푸른색 볼펜을 들고 그가 아직 쓰지 못했던 진실에 대해 써보려고 한 사람입니다. 사실 정보도 아니고, 오감의 경험도 아니고, 그것을 넘어서서 존재하고 있는, 너무도 당황스러워 침묵으로밖에는 반응할 수 없는 그것을 말입니다. 그는 비 오는 동물원에서 아무런 울음소리도 들을 수 없었던 밤을 보냅니다. 그리고 절필하게 됩니다. 나는 정대원을 연기했던 하지성 배우의 얼굴을 정말 뚫어져라 쳐다봤습니다. 그에게는 나의 눈길을 끌어당기는 배우로서의 힘이 있었습니다. 24번 어금니가 썩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가 무대를 가로질러 달려가는 모습, 돌아선 그의 표정은 푸른색으로 우리가 써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었습니다. 발끝으로만 느껴지는 진실, 그 당황스러움, 무기력하게 견딜 수밖에 없는 무중력의 슬픔. 


연극의 각색은 소설이 품고 있는 여러 맥락을 걷어내면서도, 다소 개인의 것에 머물렀던 이야기를 여러 사람의 것으로 확장합니다. 그리고 공연은 침묵을 깨 버립니다. 소설이 '쓰는 것'이었다면, 연극은 '말하는 것'을 제안합니다. 우리가 그동안 겪어왔던 말도 안 되는, 도대체 믿을 수 없는, 그러나 허위와 환상의 위로로 덮여 있었던 슬픔의 진실을요. 진실을 알아버린 사람들끼리의 연대로써 연극은 행동하기를 원합니다. 별다른 효과음도 없이 내내 조용히 흐르던 극장의 공기가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팽팽하게 당겨졌습니다.


 

나는 이 공연의 리뷰를 하기에 적합한 필자가 아닌지 모릅니다. 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장면을 확대하고, 해석하고, 감상에 빠져듭니다. 나와 같은 관객이 있었음을 드러내는 일이 그저 내가 하고 있는 일입니다. 내 손에도 푸른색 볼펜이 있습니다. 내 안에 있는 이 암 덩어리가 내가 써야 할 말을 알려줄까요. 그래서 나도 푸른색으로 무언가를 쓰게 될까요. 나는 아직 어두운 숲에 있습니다■ 


 

*사진제공_극단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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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_유혜영 

 소개_다 똑같은 거 아는데, 별거 없을거 아는데, 그래도 혹시나해서, 괜히 기대하고 그래요. 아직 안 끝났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