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목요일오후한시 즉흥연극 일기 ② 늘어나는 천

2009. 4. 19. 15:17Feature

 * 인디언밥은 극단 ‘목요일오후한시’(이하 목한시)의 즉흥연극 일기를 4~5월 약 2개월 동안 연재합니다. 목한시는 호기심과 즐거움을 원동력으로 하는 집단으로, 플레이백씨어터 공연 및 워크샵, 퍼포먼스 등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플레이백씨어터Playback Theater는 관객의 이야기를 듣고 배우와 악사가 바로 그 자리에서 연극으로 만들어 보이는 즉흥연극으로, 목한시는 오는 5월 인천 스페이스 빔에서 <매일같이 사춘기>라는 제목으로 공연을 펼칩니다.(16일부터 31일까지 매주 토·일 저녁6시) 또 올해 10월까지 계속될 야외 퍼포먼스·게릴라 공연이 얼마 전 첫 테이프를 끊었습니다. 인디언밥에서 연재하는 즉흥연극 일기에는 목한시 단원 해진(곱슬)이 보고 겪는 목한시의 일상이 담깁니다.



2009년 4월 7일 화요일. 먼지가 끼고 건조한 봄기운 : 연습을 마치고 나오니 쌀쌀하다

전부터 다양한 소재의 천을 활용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특히 잡아당겼을 때 쫙쫙 늘어나는 천이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는데, 최근 동대문종합시장에 들를 일이 있어서 ‘늘어나는 천’을 주문해두고 왔었다. 오늘 그 천을 찾아서 연습실로 향했다. 나른한 봄기운이 몰려들었지만, 이 천으로 또 어떤 걸 시도해볼 수 있을지 궁금하고 기대가 됐다.

새로운 무언가가 들어오면, 신선하고 재밌지만 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이리저리 탐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목요일오후한시 안에서는 주변의 물건들을 자유롭게 소품으로 활용하지만, 자연스레 재료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맞지 않는 것들은 걸러지게 된다. 주로 천과 큐빅, 아기자기한 악기들을 쓰게 된다. 때로 배우들의 욕구에 따라 천 행거에 까만 재킷을 걸어두기도 하고 투명한 우산, 부채 등을 쓸 때도 있다. 공연의 주제와 관객의 이야기에 어울리고, 또 목한시 구성원들이 원한다면 그 무엇이든 연기에 활용할 수 있다. 단 재료의 힘이 너무 강하고 구체적인 형태를 띤다면 즉흥연극의 자유로움과 상상을 오히려 가둘 때가 있어서, 그럴 때는 배우들이 섬세하게 판단해서 선택한다. 

시장에 있었던 ‘늘어나는 천’의 이름은 ‘강연’이었다. 뭔가 강하면서도 부드럽다는, 그런 인상을 주는 이름이다. 색깔도 여러 가지였는데 뭘 선택해야 할지 헷갈려서 일단 빨간색을 샀다. 수경, 홀, 현수, 나는 이리저리 잡아당기고 뒤집어 써보았다. 양쪽에서 한명씩 잡고 잡아당긴 후 팽팽해진 천을 향해 뿔난 황소처럼 돌진해 들어갔다. 들어갈 때는 뿔난 황소 같았는데, 천에 맞닿아 쑥 들어가니 영화 ‘스크림’의 얼굴 같기도 하고 불난 집에 있는 사람 같기도 하고 고난이도의 표현을 감행하는(하하하) 무용수들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번 공연의 주제 ‘사춘기’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집에서 키우는 장수(수컷 고양이의 이름)의 발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됐는데, 홀은 발정난 암컷 고양이가 냄새를 풍기는 장면을 오늘 새로 들어온 천을 가지고 표현했다. 이 천은 늘어나면서도 무게감이 있는데, 이 천을 홀이 들고 깃발처럼 크게 흔들자 ‘푸드득, 타다닥’ 하는 식의 강한 바람소리가 났다. 선명한 붉은색감과 강한 바람소리가 고양이들의 무대를 장렬한 느낌으로 채웠다. 수경과 현수는 큐빅 위에 올라가 뛰어내리면서 고양이들의 ‘내뿜는’ 에너지를 표현했다. 현수가 반투명한 흰색 천을 팔과 손 위에 걸치고 양쪽 검지손가락을 허공에 쿡쿡 찔렀다. 동물병원 의사였다. 사실적인 형태로 천의 매무새를 다듬지 않아도, 즉흥연극에서는 명확한 하나의 특징이 인물을 만들고 사물을 만들어낸다.

오늘 내가 한 이야기는 이것 말고도 하나가 더 있었다. 요새 시끌시끌한 북한 로켓과 관련한 기사였는데, 미국과 일본이 북 로켓의 잔해를 찾아 분석한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티비에서 뉴스로 처음 접했을 때, 우주에서 떠도는 잔해들을 수집하는 우주선과 우주인들이 상상되었다.(실제로는 태평양에 떨어진 잔해를 찾아 분석한다고 한다)

다음날 바로 국방부가 미국과 공조해 잔해를 찾는다는 기사들이 쭉 올라왔다는 이야기, 이에 대한 배우들의 정치적 견해 등이 오고갔다. 더 자세히 이 이야기의 미묘한 구석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만 손끝이 더디다. 아, 정말이지 플레이백씨어터는 그 현장에 있는 것 아니고서는 이야기와 연극의 생생함을 전하기가 어렵다.(자판을 두들기며 답답한 심정이 된다)

아무튼 이야기를 듣고 배우들은 정말 우주 한가운데 떨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막막한 표정이 되었다. 웃으면서 농담 같은 몇 마디를 주고받더니 장면(사건 중심인 이야기일 때는 보통 ‘장면(Scene)’이라 부르는 형식으로 즉흥연기를 한다. 이 외에도 ‘움직이는 조각상’, ‘페어’, ‘따블로’, 목한시가 자체적으로 만든 ‘페스츄리’ 등의 형식이 있다)을 시작했다. 아, 이번 장면은 정말이지 걸작이었다. 로켓이 발사되고 각 추진체가 분리되고, 태평양에서 미국과 일본이 잔해를 찾아 수집하고 MB가 등장해 바보 같은 말을 한다. 순간 진공상태의 우주가 되는 듯 싶더니 미사일이 날고 인물들이 하나씩 쓰러진다. 나는 감탄했다.

나는 오늘 이야기를 하고 친구들의 장면을 보며 동공이 풀려 감탄했지만, 하지만! 정작 악사 보노보노의 이야기 안에서 연기를 할 때는 역시나 첫 연습 때처럼 엉덩이가 무거웠다. 이번 주에는 연습진행을 맡고 있어서 그 영향이 있는 것 같다. 그냥 풍덩 뛰어들지를 못하고, 어디서 어느 각도로 뛰어들면 좋을지 어떤 사이드코치를 해야 할 지 살피느라 머리가 좀 더 긴장해 활동하는 느낌이랄까. 안 돼! 안 돼! 안 돼!     

한 가지 위안을 삼자면, 플레이백씨어터 연습을 할 때는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그걸 보는 것 또한 연습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나저나 지난번에 이어 오늘도 너무 길게 써버린 것 같다. 짧게 쓰겠다고 다짐했었는데. 누가 끝까지 읽는담. ㅠㅠ

                                                                                                                                    글|김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