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불편한연극>말하기 5. SF의 탈을 쓴 일본식 가부장적 교훈 드라마 '산책하는 침략자'

 

 

SF의 탈을 쓴 일본식 가부장적 교훈 드라마

 

 

<산책하는 침략자>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불편한 연극>말하기 - '국가지원 연극의 성평등 모니터링'은 젠더비평의 관점으로 연극을 보고 말하는 모임이다. 작품 내에 주변부를 소외시키거나 혐오의 이미지를 재생산하는 등 가부장제 질서에서 행해지던 폭력을 인식하고 재현윤리를 검토한다. 국가의 지원을 받는 동시대 연극이 추구해야 하는 방향성이 무엇인지 실마리를 찾는 프로젝트이다. 

 

일시 : 2019년 9월 16일 오후 1-3시

장소 : 삼일로창고극장 갤러리

참석자 : 대도루팡, 명탐정코난, 모두까기, 무민, 앵두, 초코송이

모더레이터 : 찹쌀떡

공연명 : <산책하는 침략자>

 

찹쌀떡: 각자 간단한 감상평부터 말해보면 좋겠다.

 

모두까기: 실망이 컸다. LAS라는 팀이 페미니즘 이슈에 관심이 많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이번 공연을 봤을 땐 그렇지 않은 팀이라는 걸 확신했다. 젠더 이슈에 관심이 있었다면 이 작품을 선택하지 않았을 거다. 예를 들면, ‘나루미’와 ‘신지’가 별거 중인 상황인데, 법적 아내라는 이유만으로 당연하다는 듯이 정신이 이상해진 남편을 돌봐야 한다는 게 납득이 안 갔다. 나라면 신지의 부모님에게 보냈을 거다. 또 나루미의 언니 ‘아스미’도 너무 전통적인 여성상이었다. 옷차림도 그렇고, 손님을 맞는 태도라든가, 돌봄 노동을 담당하는 헌신적인 여성 캐릭터였다. 소녀 몸에 들어간 외계인도 정신병원에 갇혀서 소년이 구해줄 때까지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

 

초코송이: 개념을 뺏는다는 발상은 재밌었다. 나루미와 신지가 얼마나 애틋한 관계인지 극 전반의 흐름에서는 느끼기 어려워, ‘갑자기 분위기 러브스토리’처럼 느껴졌다. 젠더 관점에서 가장 걸렸던 지점은 신지가 나루미에게 “차 좀 내오지.” 하는 대사였다. 

 

명탐정코난: 공연 보고 나서 할 말이 딱히 없었다. LAS의 기존 작품이력을 봤을 때는 페미니즘이나 젠더 이슈에 관심이 없는 팀은 절대 아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관련 이슈를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간 해왔던 작업방식에서 조금 벗어나서 오히려 고전적인 무언가를 해보고 싶은 욕구가 있었던 게 아닐까. 새로운 의미발견이나 새로운 실험과 시도를 하기보다는 원작을 최대한 재현하는 방향이었던 것 같다. 

 

앵두: 가부장 구조 전반에 깔린 편견들을 전혀 걷어내지 않은 나이브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아스미가 ‘혈연’ 개념을 뺏기고 나루미 내외를 문전박대하는 걸 이상하게 느끼지 못했다. 충분히 납득이 가서, 개념을 뺏긴 이상행동으로 보이지 않았다. 문제해결에 전면적으로 나서는 인물들의 직업이 의사, 기자, 형사인데, 그 성별이 다 남성인 것도 고정관념이 그대로 녹아있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또한, 신지의 경우 성인 남성이 어린아이로 퇴행해버린 느낌이 들어서 그 부분에 모종의 연민이나 정을 느낄 생각을 하니 짜증이 났다. 

 

무민: 일본 작가의 작품을 가져온 이상 가부장 구조나 성역할이 기저에 아주 뿌리 깊게 깔려있기 때문에, 수정을 해야 했다면 대대적으로 갈아엎었어야 할 것 같다. 건드리기 쉽지 않기 때문에 원작에 충실했던 것 같다. 

 

찹쌀떡: 사실 LAS는 여성주의 관점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관객과의 소통, 대중성, 연극성, 다양한 서사에 중점을 둔다.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라는 공연도 처음부터 여성주의에서 출발했던 건 아니었고 창작자들 본인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했을 뿐인데, 관객들 반응이 여성주의 코드로 이뤄진 것이다. 그러한 관객들의 피드백을 확인한 후에 페미니즘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것 같다. <줄리엣과 줄리엣> 역시 사실 여성주의적 관점을 전면에 의도했다기보다 정확히는 로미오가 남성이 아닌 여성이라는 상상의 재미에서 출발한 것 같다. 반면 이번 <산책하는 침략자>의 경우는 오롯이 대중과의 소통, 연극성이 목적이었던 것 같다. 

 

대도루팡: 재미있게 봤다. 상상력과 설정은 조악했지만 스토리 구조가 잘 짜여있어, 그 부분에서 감각적으로 재미를 느낀 것 같다. 사유가 치열하지 않아도 결국 극의 의도대로 빠져들어 가게 하는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의 힘이 흥미로운 지점이자 고민되는 지점이었다. 

 

찹쌀떡: 작품에서 전쟁 이야기를 배경에 두고 있다. 인류멸망이라는 더 큰 문제보다 눈앞에 닥친 전쟁에 빠져서 더 본질적인 문제를 통찰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까? 전쟁코드가 무슨 의미인지 궁금했다. 

 

모두까기: 작품에서 외계인이 수집하는 개념들이 전형적이고 일차원적인 것처럼, 작가가 생각하는 전쟁도 피상적인 의미 수준이었다고 생각한다. 작품 안에서 전쟁에 관한 담론을 풀려면 역사의식에 기반을 두어서 이야기를 해야지, 소유의 개념을 뺏자 평화를 이야기하게 된다는 논리는 나이브하고, 전범국가로써의 반성과 고민이 전혀 없는 태도다.

 

대도루팡: 그래서 오히려 더 역설적이고 자조적인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마루오’가 정말로 우스웠는데, ‘소유’ 개념 하나 뺏겼다고 저렇게 극단적으로 반전운동까지 하는 이 비약이 너무 웃음 포인트였다. 과거사에 대한 반성 없이 사적소유 개념을 뺏어야지만 평화를 추구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시인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 평화가 너무 공허한 외침이라 우습다고 느꼈다.

 

명탐정코난: 연출노트엔 전쟁이야기는 전혀 없긴 하다. 시놉시스와 연출노트를 보면 모두 ‘인간의 본질’, ‘인간다움’을 말하고자 한다. 결말이 ‘사랑’으로 끝난다는 것은 곧 인간의 본질과 인간다움이 사랑이라는 건데, 전쟁이라는 배경과 나의 일상을 직시했을 때, 꼭 사랑이 아닌 다른 가치여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놀라운 것은 <산책하는 침략자>가 25개국에서 흥행했다는 점이다. 

 

찹쌀떡: 인간의 본질에 대해 말하고 싶은 작품, 그래서 아주 명확하게 교훈적이면서 어느 나라로 가도 먹힐 정도의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개념을 뺏어갈수록 인간은 아이처럼 되어가거나 최초의 외계인이 등장했을 때 모습이 되어 간다. 인간을 구성하는 개념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등장하는 개념들은 관념적이고 추상적이었다. ‘사랑’이란 요소도 한 인물이 정의하는 ‘사랑’이 전체 인류의 ‘사랑’에 대한 개념을 대표할 순 없는 것인데. 이런 지점들은 결국 안전하고 바른 사회를 구성하기 위한 요소에 해당되는 부분들이었다. 그러나 알다시피 안전하고 바른 건설적인 사회는 교과서에 등장하는 사회다. 개인보다는 집단의 이익과 안정을 위한 규범이 우선되는 사회. 좀 더 디테일하게 접근했으면 더 재밌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있다. 세상을 간단하게 이해하여 압축하고 상징화한 작품인 것 같다.

 

명탐정코난: 개념을 뺏을 때 정서도 같이 딸려와 신지에게 감정이라는 게 생겨났는데, 이 설정도 이해가 잘 안 됐다. 그렇다면 아스미에게서 혈연이란 개념을 뺏었을 때 사랑의 정서도 획득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꼭 성애적인 것만이 사랑이 아니니까. 

 

모두까기: 나루미가 사랑을 뺏겼을 때 반응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신지에게 아예 무관심해 지는데, 꼭 사랑이 있어야만 타인에게 관심을 갖게 되나? 너무 사랑을 대단한 가치로 생각하고 인간의 본질과 연결시키는 게 와 닿지가 않았다.

 

대도루팡: 사실 인간의 본질을 잘 몰라서 계속 더 탐구해야 할 우리들인데 쓰고 만들고 한다는 게 애초에 무리일 수 있다. 작가가 한정시켜놓은 가치관을 주관적으로 말하는 것이지 진정한 인간의 본질을 설명해주려는 의도의 작품은 아닌 것 같다. 

 

모두까기: 작가가 자기 가치관을 들이민다기보다는 개념의 작동원리에 대해 엄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초코송이: 이 작가가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들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니라 무엇이 비인간적인가 하는 질문에서 출발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보이는 개념들이 단순화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작가의 입장에서 이해를 해보자면 구조를 짜는 데 정말 어려웠을 것 같다. 사실성에 기반을 둔 작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SF적인 설정을 전개하고 해결해가는 구성을 짜는 공력이 돋보였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놓치고 가는 포인트들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지점들에 우리가 아쉬워하는 거고. 

 

찹쌀떡: 일본작품을 가져올 때 원작의 구조를 그대로 올리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효과적이라 생각하시는지?

 

초코송이: 작년 서울연극센터에서 이홍이 번역가의 특강을 들은 적 있다. 작품을 가져올 때 대부분 원작자 측에서는 수정 불가를 조건으로 내건다고 한다. 그런데 공연을 만들면서 수정해야 할 부분이 생기면 번역가가 작가를 설득해야 하는데, 그것이 굉장히 지난한 과정이겠구나 싶었다. 특히나 일본연극은 각 포지션의 경계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다고 한다. 각자가 할 일이 명확하고 서로 영역 터치도 없고.

 

모두까기: 차라리 배경을 한국으로만 바꿔서 번안만이라도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것만으로도 오히려 젠더 이슈가 눈에 잘 띌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다미 무대세트 말고는 배경이 일본이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찹쌀떡: 일본이라는 내가 익숙하지 않은 문화 때문에 ‘뭔가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하는 전제를 깔고 보기 때문에 더 감안해주게 되는 것 같다. 만약에 배경만 한국으로 바꿨더라도 굉장히 이상하게 느껴졌을 것 같다.

 

모두까기: 배우들의 연기에도 아쉬움이 많았다. 이번 <산책하는 침략자> 여성캐릭터들도 전형적인 ‘여자연기’를 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아스미 캐릭터는 화가 나거나 공격성을 표출해도 전혀 공격적으로 보이지가 않았다. 배우의 원래 자기 모습과 많이 닿아있을 수도 있지만, 페미니즘 이슈에 관심 있는 여성 배우들 중엔 그동안 학습되어 있는 것들을 걷어내고 자기 안에 잠재되어있는 것들을 찾으려고 노력하시는 분들이 있다. 나는 이 팀에서 그런 고민의 흔적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앵두: 팀 내부에서 실제로 여성주의 관점을 고민하는 것보다 높게 외부에서 이들의 방향성이 여성주위 관점에 있다고 평가한다는 건데, 그 이유 중 하나가 팀에서 작품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연출이나 작가와 같은 역할을 젊은 여성이 맡고 있고, 다른 구성원들이 이들을 신뢰하고 지지하는 분위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나도 깊이 생각하지 않았을 때는 이 팀이 페미니즘적인 행보를 걷고 있다고 한 톨의 의심도 없이 생각했다. 오늘 좌담회에서 이야기 하면서 그동안 봤던 작품들을 떠올려보니, <손>이라는 작품에도 전형적인 엄마가 등장했었다. 모두를 사랑하고 분쟁을 말리고 중재하는 인물로 그려졌었다. 그런 것을 생각해보니, LAS가 추구하는 방향성은 여성주의 관점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명탐정코난: 나는 이 좌담회에서 나눠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올해 초에 LAS의 한 공연의 배역 교체 일화가 있었다. 이 일에 대해서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간략하게 상황 설명을 드리면, 작품에 캐스팅이 된 배우분이 성폭력 가해자가 속한 극단 출신이었다. 해당 배우는 SNS에 극단 출신 모든 사람들을 너무 나쁘게만 호도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는 글을 남긴 적이 있다. 당시에 어떤 관객들은 그 글을 ‘너도 가해자 옹호하겠다는 의도냐’로 해독을 했다. 해당 배우는 ‘미투’ 시작 전에도 LAS와 같이 작품을 해왔었는데, 올해 초에 LAS 공연 출연 공지가 뜨면서, 그 관객들 사이에서 해당 배우의 출연 자체가 ‘가해자가 돌아왔다’라는 가해자 컴백 이슈로 회자 되었다. 관객들이 사실상 항의를 한 셈이다. 그래서 제작진 측에서 배우 교체를 하겠다는 사과문을 올렸다.

 

모두까기: 그 배우를 선택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텐데, 그랬다면 그것을 밀고 나갔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 배우 개인이 어떤 사람인지 관객들은 모르지 않나. 해당배우가 있었던 극단은 한 기수에만 몇 십 명씩 있고 거기 출신만 몇 천 명이며, 구성원 개인마다 워낙 상황과 속사정과 층위가 천차만별이다. 그 사람의 가해사실 여부를 제대로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단지 그 극단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업계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 건데, 업계 종사자가 이런 사정을 알면서도 관객과의 대화나 설득하는 과정 없이 바로 배우를 잘라버리는 것은 비겁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대도루팡: 충분히 대화의 방법이 가능한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관객들이 먼저 대화를 시작했으면, 업계종사자 입장에서 그 대화를 이어받아 논의를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고민들을 하고 있는 다른 포럼이나 단위들도 있었다. 팀의 선택을 비난 할 순 없지만, 선택지가 그 방향만 있지는 않았다는 걸 말하고 싶다.

 

찹쌀떡: 내가 알기로는 극단에서 하차를 강요하거나 급하게 하차시킨 건 아니라고 알고 있다. 다만 이러한 내부 속사정을 사실 외부인들은 알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창작자들 내부의 사정이 외부와 소통되고, 가능하다면 이상적이긴 하지만 현장작업자들과 관객이 함께 충분한 대화와 설명을 할 수 있는 창구가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어떤 결정을 하던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결론이 되었을 것 같다. 

 

앵두: 몇몇 관객들 사이에서는 당시의 LAS의 대처에 대해서 아직까지도 좋은 대처의 예로 회자되고 있다.

 

모두까기: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찹쌀떡: 관객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두려움이 있을 것 같다. 다른 사례에서는 연출이 오히려 가해이력이 있으면서 법적 처벌을 받기도 한 배우를 감싸고 보호해주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 돌아오는 가해자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과 논의들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반증인 것 같다. 이런 시점에 관객들은 현장의 사정을 잘 모르기에, 누가 가해자고 피해자인지도 알 수 없기 때문에, 더 불안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관객들은 차라리 무조건 배제의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상황을 잘 알고 있는 현장작업자라면 시간은 걸리더라도 정확한 정보를 대중에게 제공하고 때에 따라 분별력 있게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그 과정이 좀 더 투명하게 대중들에게 전달될 수 있다면 현장작업자들과 관객 사이에 서로 오해가 덜하지 않을까. 

 

대도루팡: 그런데 이 문제는 작년이나 과거의 SNS발언을 가지고 관객들이 일일이 사상검증을 한다는 건데, 이럴 경우 어떻게 대처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되어야 할 것 같다. 일을 빨리 진행해야 하는 사람들은 논의 없이 결정을 해버리고, 누군가는 그 과정에서 폭력적이거나 부당한 상황을 겪고, 관객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관철되었다는 만족감을 느끼지만 오히려 현장과 거리는 더 멀어져버리고. 이런 논의는 현장 안에서만 공유될 이야기들이 아니라, 관객과도 공유되어야 할 이슈인 것 같다.

 

앵두: 관객들도 당시 여론은 매우 편파적이었는데, 지금은 판단이 갈리는 것 같다. “사과문을 잘 쓰긴 했는데, 왜 하차까지 시켰을까” 하는 이야기도 있고, “지금 이미 여성배우의 설 자리가 부족한데 이런 잣대로 다 배제시켜 버리면 이게 결국 여성관객들이 원하는 방향인가”하는 이야기도 오가고 있다.

 

모두까기: 피해와 가해는 이분법적으로 말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하지 않고, 여러 쟁점의 층위들이 복잡다단하게 얽혀있어서 이것을 관객들에게 전부 설명하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로부터 많은 관심과 애정을 받고 있는 팀이라면 대화시도는 해봤으면 좋았을 것 같다.

 

※  한줄평 

 

모두까기: SF의 탈을 쓴 일본식 가부장적 전형적인 교훈 드라마.

 

초코송이: 재기발랄함은 잡았지만 깊이가 좀 아쉽다.

 

명탐정코난: 대중의 마음은 잡았지만, 나이브하다. 

 

앵두: 좌담회나 평가의 자리가 왜 필요한지 알게 된 공연.

 

무민: 설정이나 사유의 깊이에서 허술한 점들은 많았으나, 극적구성이 좋아서 설득 당했다.

 

찹쌀떡: LAS의 색이 다 드러나지 못해 아쉬운, SF‘일본’연극인 느낌적인 느낌.  

 

※  이 좌담은 한국여성재단2019 성평등조성사업 지원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사진출처_창작집단 LAS 페이스북

2019 아르코 파트너

이기쁨 <산책하는 침략자>

8.30(금) - 9.11(수) 오후 8시, 주말 오후 3시 |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연출 : 이기쁨 (창작집단 LAS)

원작 : 마에카와 토모히로

출연 : 윤성원, 한송희, 권동호, 김대웅, 김희연, 고영민, 임현국, 장세환, 한수림, 김연우

초연 : 2018 미아리고개예술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