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지만 낯설지 않은 코로나19 시대] 1. '예술이 업이 된다는 것'

2020. 4. 20. 20:16Feature

 

 

처음이지만 낯설지 않은 코로나19 시대 (1)

 

 

예술이 업이 된다는 것

 

 

‘자고 일어나니 다른 세상이다.’ 요즘 우리에게 딱 들어 맞는 말인것 같습니다. 코로나19는 사회의 취약한 부위를 강타했습니다. 네. ‘우리’요.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지만 연쇄작용으로 인한 또 다른 이슈들이 계속 달려옵니다. 거의 모든 작업이 취소 및 연기된 가운데, 거기에 삶을 영위하기 위해 가졌던 다양한 정체성도 제 역할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가 힘들긴 하지만 낯설지는 않습니다. 예술은 재난 앞에 유독 취약했으니까요. 인디언밥은 기획연재를 통해 예술생태계의 다양한 지점에 존재하는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이를통해 각자가 발견한 생활 속 ‘절망’ 혹은 ‘전망’을 공유해보려 합니다.  

 

글_강정아(독립기획자)

 

2월부터 조짐이 심상치 않았던 코로나19가 벚꽃이 질 무렵의 봄이 오기까지 여전히 이 난관일 줄은 우리 모두 다 예상하지 못했던 전개일 것이다. 한차례 겪어왔던 익숙한 일처럼 이 또한 지나갈 것이라는 안일했던 생각은 2월이 넘어서 3월이 되면서 피부로 체감되는 현상을 겪었다. 예상과는 다르게 감염의 주요 발생지가 ‘사이비’ 드라마 한 장면을 연출했고 이것은 대한민국을 들쑤시기엔 충분한 소재였다. 온갖 비방과 가짜뉴스가 보도되면서 무엇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분간할 수 없었다. 사회의 민낯이 여과 없이 드러나면서 욕망과 혐오, 비방을 숨기지 않았다. 그동안 우리가 믿어왔던 상식과 이성이란 이름으로 뭉쳐졌던 체제가 차례대로 무너졌다. 

 

개인의 안정과 안위로 뭉친 목소리는 최선이 되었고 사회적 거리두기는 신체의 위협과 질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하나의 지침이 되었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안 된다’라는 전제는 국공립 기관들이 잠정 휴관 상태에 돌입하게 된 명분이 되었다. 코로나19사태가 판데믹 단계에 돌입하면서 모든 국공립 기관들이 잠정 휴관 선언 후는 자연스럽게 민간의 영역까지도 영향을 미쳤다. 국공립에서도 안전과 안위로 휴관을 선택하는데 민간에서 관람객 모집동원은 어쩐지 ‘상식’을 벗어나는 일이 된 것이다. 이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기금사업은 다양한 종류로 쏟아졌다. 그동안 기금사업은 당연히 생계 수단이 되지 못하기에 춘분기에는 다들 작품지원에 대한 기획서를 쓰면서 생업 활동을 병행할 일들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축제와 행사, 각종 모임이 취소되면서 생업 활동 할 일용직 일들마저도 사라진 것이다. 

 

코로나19사태가 끼친 영향은 비단 문화예술계뿐만 아니다. 전 세계가 초유의 경제적위기에 놓여 있으며,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거 일자리를 잃는 마당에 ‘예술’은 배부른 소리가 아닌가 싶다. 이 글에서 밝히고자 하는 부분은 예술의 사회적 의미나 가치보다 이 재난 앞에 예술이라고 부르는 ‘업’이 어떤 위치와 상태에 놓여있는가를 밝히고자 한다.

 

사진출처_트위터

 

나는 문화예술기획자이자 프리랜서이면서 자영업자이기도 하다. 이 세 가지의 범주에 공통점이 있다면 ‘소속되지 않은’ 상태이다. 4대 보험을 지급할 어떤 기관에 소속되지 않고 매 순간 재능을 증명해야 함으로써 소득이 생기며 정해진 노동의 시간과 강도를 스스로가 결정해야 한다. 특히, 법적 근거 안에서 ‘예술노동’에 대한 부분은 모호하고 대부분 정부의 기능 아래에서 소득이 발생하며, 소득 예측과 변동성이 심하다는 점이다. 예술의 생산과 경제적 가치수익창출은 어떻게 증명해야 할 것인가. 여전히 뜨거운 예술의 ‘노동법’은 사회적 보장체제 아래에서 이뤄지며 노동의 대상보다 복지의 대상으로 접근된다. 코로나19사태에서 문화예술계를 대상으로 기금이 대거 쏟아지는 이유 또한, 대부분 문화예술의 일거리 창출이 국가지원 제도 아래에서 작동되었고 더 이상의 기능적인 노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쏟아지고 있는 기금은 기존에 진행되었던 작품지원과 코로나로 인한 피해사실 증명, 긴급생활융자자금 및 재난사회에 대처하는 예술적 방법을 지원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형태 또한 ‘증명’이 필요하다. 피해사실을 증명하거나 재난을 대비하는 실천과 방법을 요구하고 이에 대한 합당한 기준 안에서 지원한다. 

 

코로나19사태로 대부분 프로젝트가 잠정 중단되었고, 지원사업 공지가 올라왔다는 소식을 서로가 발 빠르게 공유하고, 예년보다 몇 배가 넘게 지원한다. 이 마저도 ‘나이’란 제한된 기준이 있거나 아이디어나 실현 가능성, 새로운 콘텐츠 개발에 대한 예시까지 제안해야 하며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수혜대상이 되지 못한다. 결국 재난사회에서도 ‘젊고’ ‘예술적 가치’를 증명하고 ‘사람이 모이면 안 된다’는 전제를 안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끊임없는 자기 가치 증명과 실천을 모색해야 되고, 사회적 거리두기의 지침에서 관객과 대중과의 대면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할 몫 또한 현장에 있는 이들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또한 쏟아진 기금을 위해 쓰는 기획서가 몇 개인지도 모르겠다. 사업의 목적과 방향에 맞게 프로젝트를 수정하고 보안하면서 나 역시도 가치를 증명하고 선발된 ‘기준’을 예상하면서 말들을 다듬어갔음을 고백한다. 이 고백은 체제에 대한 순응이라는 비난, 기형적인 문화예술 생태계 구조에 대한 비판일 수도, 자립 생산에 대한 책임을 지고자 하는 자기반성이기도 하다. 

최근 지인들과 코로나19사태가 아니더라도 “항상 가난했었다”라는 자조적인 말을 나누면서 우리가 닥친 재난을 무기력하게 체감하고 있다. 순응이라는 비난, 구조에 대한 비판, 자립성에 대한 책임에 대한 부채감 모두 우리를 더욱 무력하게 만든다.

 

노동이 인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자신의 가치와 인정, 고통과 가난은 당사자의 몫으로 남겨질 수밖에 없고 이는 국가가 주는 수혜와 혜택으로 해결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술가는 이 구조 안에서 독립과 자율성으로 움직일 수 있는가? 우리는 정책 체제에 포섭되지 않는 상태의 독립성과 창작 자율의 가능성을 순진하게 믿었던 것은 아닐까. 자율은 보장된 것 아래에서 이뤄진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우스갯소리로 동료들에게 ‘몇 개의 직업을 가지고 있느냐?’고 질문한 적이 있다. 결국, 하나의 일로 생계를 유지하기엔 위험하다. 우리는 몇 가지의 일거리는 항상 대비해둬야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울리는 경보음과 사회적 거리두기 안내문을 볼 때마다, 빗장 문을 걸어 잠근 집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서성이는 행인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낀다. 그런데도 불안한 생계유지와 사회적 인정 가치가 저조한 이 ‘일’을 여전히 지속하고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렇게 인정받지 못하고 불안정한 상태에 놓인다면 당장이라도 그만두면 될 일이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어떤 대답을 겨우 할 수 있을까. 언제나 당사자들이 고통을 증명하고 요청해야 한다. 대거 쏟아지는 기금이 코로나19사태의 긴급지원이지만, 노동도 복지도 아닌 이 모호함에 다투어 우리는 매번 오디션 봐야 하고 등급이 매겨진다. 

 

예술이 자기 어둠으로부터 존재한 희미한 그림자에 기인한 역사를 발견하는 희열과 기쁨이라면, 소외되고 배제된 것에서 오는 외로움을 인지하고 외면하지 않은 태도, 이것이 상식과 이성이 무너지고 혐오가 도사리고 있는 허무주의 세계 너머를 꿈꿀, 아직 오지 않을 시대에 대한 희망을 품고 요청한다는 것이라면, 우리가 하는 일은 ‘업’이 될 수 있을까. 예술이 ‘업’이 되는 그날이 오긴 오는 것일까.

 

필자소개_강정아(독립기획자)

시각예술 기획자이자, 계간지 <히스테리안> 발행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소하고 작은 일을 터부시하지 않는 태도로 세계를 바라보려 한다.